소설리스트

딥웹 MK-252화 (252/402)

0252 ----------------------------------------------

[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

배경은 침엽수가 우거진 길을 지나 자이언트세콰이어 사이를 통해 다다를 수 있는 어느 대저택이었다.

도로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던 곳에 고성 같은 대저택이 있었다.

자이언트세콰이어 나무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화이트 스노우맨이 탄 리무진은, 아래쪽이 집게처럼 갈라져서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것 같은 형상의 자이언트세콰이어의 아래를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고개를 뒤로 꺾어도 나무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저택에 이르기 전에, 쓰러진 나무가 보였다.

그 거대한 나무들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리무진이 대저택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현관에는 고급 리무진과 수퍼카들이 세워져 있었다.

거물급 재력가의 차고를 개방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이 차에서 내리자 반백의 머리에 왁스를 발라 넘긴 세련된 집사가 나와서 화이트를 안내했다.

집의 내부는 더욱 인상적이었다.

피라미드를 거꾸로 붙인 것 같은 대형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천장에 붙어 있었고 대리석과 오크목으로 꾸며진 내부는 격조높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화이트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홀에 압도되었다.

그곳에는 주기적으로 몇 몇 사람들이 모였다.

사회의 명망 높은 사람들.

그 사람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음껏 그 사실을 뻐기고 다닐만한 그런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현역 정치인과 문화계의 대부는 물론이고 할리우드의 은하계를 편성한다고 불리는 영화제작자, 심지어는 전직 대통령의 미망인까지도 그 자리에 있었다. 거기에는 해밀을 연상시키는 중견 정치인도 있었다. 대통령을 만드는 남자, 킹 메이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 남자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할애된 것보다 더 많은 문장을 할애받았다. 그리고 그에 대한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누구든 해밀을 떠올리게 되어 있었다.

화이트 스노우맨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가 어느 날 범죄에 휘말리며 정치 생명을 마감하고 정계에서 은퇴하자 그 자리를 채웠다.

세계적인 셰프가 직접 주방에서 요리를 했고 사람들은 우아하면서도 분주하게 식사를 했다.

그들은 식사 다음의 순서를 열렬하게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화이트 스노무맨의 눈 앞에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었던 수준 높은 미모의 여자들이 그곳으로 들어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의 파트너들이 미리 정해져 있던 것처럼 각 사람을 찾아갔다.

화이트에게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파티를 주최한 호스트가 화이트가 다가와 화이트의 판타지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오늘 밤, 그의 판타지가 실현될 거라는 말에 화이트 스노우맨은 그저 얼떨떨하게 호스트를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그 짧은 도입부에 반응은 뜨거웠다.

댓글의 태반은, 화이트 스노우맨이 폴 콜드먼이냐는 거였다.

킹 메이커가 해밀이냐는 질문도 많았다.

코야 리코답게 수준높은 성애 장면이 가득찬 2화가 세 시간 정도 후에 올라가자 조회수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사람들은 그 저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았지만 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욕망이 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우선은 다른 사람들의 성애 장면을 보면서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빨리 화이트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해밀로 보이는 킹 메이커가 열 일곱살도 안 되는 난민 여자아이들과 난교를 벌이는 장면은 어찌나 세세하고 적나라하게 묘사가 되었는지 그 여자들의 비명 소리와 그들이 쏟는 처녀혈의 냄새가 현실에서 그대로 되살아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 회차가 나가고 해밀이 얼마나 너덜너덜해졌는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해밀은 맛보기였다.

사람들이 해밀에게 보이는 반응을 온도계 삼아서, 폴은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면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될지 예상할 수 있었다.

이제 어디를 가건 사람들은 코야 리코의 신작에 대해 얘기했다.

해밀은 역대 최고의 비호감 정치인으로 등극했고 해밀이 누구를 지지하건 간에 해밀이 지지하는 사람은 절대로 뽑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해밀은 더이상 사람들의 오피니언 리더가 아니었다.

이 상황이 계속 되다가는 레이널드가 떨어진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그 역시 추락을 면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해밀은 탈출할 구멍을 찾느라고 머리가 부서질 지경이었고 폴은 극도로 히스테릭해졌다.

폴 콜드먼에게 특별한 성적 취향이 있었는지 궁금해하는 독자들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폴 콜드먼과 학창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사람들의 글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왔다.

그 중의 태반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그런 글들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단순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좋아서 글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고 더 높은 관심을 얻기 위해서 점점 수위 높은 이야기들을 지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코야 리코의 3화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렇게나 멘탈을 단련시켜 강건하게 준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받았다.

***

리얼 그릴의 식구들은 오랜만에 만나게 된 나를 반겨주었다.

리얼 그릴 본점의 총책임자가 된 근도는 누구보다 나를 격하게 환영해 주었다.

내가 근도를 보지 못한 몇 달 사이, 근도는 그곳의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고정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이 있고 책도 몇 권을 냈다고 했다.

근도는 그렇게 된 게 전부 내 덕이라면서 고마워했다.

내가 리얼 그릴에 자기를 불러주지 않았다면 자기는 지금도 어느 작은 레스토랑의 바닥이나 닦고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근도에게 그 사이에 유혹이 많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근도의 실력이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파티를 좋아하는 상류층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자 리얼 그릴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 주겠다며 근도를 스카웃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근도는 아직 리얼 그릴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언젠가 자기 이름의 레스토랑을 내고 싶은 때가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리얼 그릴과 자신이 서로의 일부라고 여긴다고 말했다.

나는 괜히 의리 지키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좋은 기회 놓치지 말고 잘 팔릴 때 좋은 곳으로 가라고 말했지만 근도는 자기도 이것저것 계산하면서 여기에 남아있는 거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리얼 그릴에는 아직 무궁한 가능성이 있고 리얼 그릴처럼 역동적인 곳에서 같이 성장해 가는 게 좋다는 게 근도의 얘기였다.

그렇게 평가를 해주니 나로서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원하는 건 뭐든 다 해 줄 테니 먹고 싶은 걸 말해보라는 말에 라면 좀 끓여달라고 했더니 역시 이 자식은 우주급 똘아이라며 라면을 끓여 주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리얼 그릴의 수석 셰프가 끓여주는 라면을 먹기는 쉽지 않잖아.”

내가 은근히 말하자 근도는, 리얼 그릴의 수석 셰프는 은 사장님이라면서 부끄러워했고 나는 이걸로 이 자식을 놀리면 잘 먹히겠구나 하고 감을 잡고 그걸로 계속 놀렸다.

리얼 그릴의 매출 하락은 눈에 띄는 정도기는 했지만 회복이 불가능하다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부화뇌동하는 사람들이나 뜨내기들은 옮겨갔을지 몰라도 리얼 그릴을, 근도 말마따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리얼 그릴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선 라면으로 배를 불려 놓고 사람들을 만나고 처리할 일을 하고 다닌 나는 베니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도에게 묻자 근도는 오늘이 베니타가 쉬는 날이라고 말해주었고 베니타의 집 주소가 바뀌었다고도 말해 주었다.

“네가 있었을 때하고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어. 생활 수준도 달라졌고.”

근도는 모두의 생활 수준이 몇 단계씩 업그레이드 됐다면서 자기가 리얼 그릴을 자신의 일부라고 말하는 게 괜한 말은 아니라고 했다.

나는 오랜만에 베니타를 보러 갔다.

근도가 미리 말을 해 주었는지, 놀래주려고 했던 보람도 없이 베니타가 문을 열고 달려나와 나를 와락 끌어 안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