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57화 (25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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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

앞으로 이 스킬이 내 의지대로 사용될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원할 때 사라질 수 있게는 해야지.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괜히 사라지지 말고.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카린이 옆에 있으니 그나마 좀 낫기는 했다.

이상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고 카린에게는 적어도 물어보기라도 할 수 있으니까.

기대가 너무 컸는지, 카린이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 실망도 컸지만 카린은 긍정적인 말을 해 주었다.

처음 나타난 능력이 폴 콜드먼 앞에서 꽤 오랫동안 지속된 것을 보면 나한테는 능력을 컨트럴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말이다.

코야 리코의 앞에서 모습이 사라졌다가 나중에 나타나 버린 것은 내가 아직 그 스킬의 생성 사실을 알지 못하고 스킬을 사용하겠다는 아무 의지도 반영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면서 자기 저택에 머무는 동안 코야 리코나 집사, 다른 헬퍼들을 상대로 그 능력을 조절하는 연습을 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은 그 스킬 역시 기본적으로는 인식 제어 능력에서 비롯된 것 같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실제로는 나를 보지만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도록 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거울에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비추어졌고 카린도 나를 보았다.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카린은 나에게 그런 특별한 능력이 나타난 것을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자기는 왜 쓸데없는 그림이나 그리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코야 리코와 나는 며칠을 더 매달려서 작품을 완성했다.

꼭 장편으로 써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적당히 에피소드가 끝났을 때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사람들은 분량을 더 늘려달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문제의 장면을 올렸을 때 사람들은 폴이 화이트가 아니냐고 궁금해했지만 폴은 의연했다.

폴은 자기에게 질문한 기자에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면서 코야 리코에게 직접 물어봐도 같은 말을 듣게 될 거라며 여유만만하게 웃기까지 했다.

자기가 카린을 배신하지 않는 한 카린이 그 동영상을 유포할 일은 없을 거라고 믿은 탓이었다.

해밀은 거창한 선물을 가지고 카린을 찾아왔다.

폴과 함께였다.

해밀이 카린에게 화해의 선물로 가져온 것은 커다란 래브라도 리트리버였다.

해밀은 카린에게, 자기가 데려온 래브라도 리트리버의 이름을 해밀로 불러달라고 했고 해밀이 카린의 속을 썩이는 일이 없을 거라고 믿어달라고 말했다.

카린은 웃으면서 해밀의 어깨를 두드렸고 나는 스킬 사용 숙련도가 한층 정교해 진 것을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카린을 제외한 누구도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폴의 외교 정책은 180도 변했고 그것은 선거의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릴 수 있을 만큼 엄청나고 급격한 변화였다.

그러나 폴은 그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폴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선거에서 참패한 대통령 후보와 모든 사람으로부터 저주를 받는 수간자.

그리고 후자보다는 전자가 낫다는 생각에 카린이 원하는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카린은 폴이 곤두박질치도록 버려두지 않았다.

폴을 몰락하게 할 거였다면 애초에 코야 리코까지 동원해 가면서 그런 어마어마한 이벤트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카린은 폴을 유력하고 똑똑한 장난감으로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카린은 자기에게 충성을 맹세한 폴에게 날개와 지팡이를 들려주며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뒤에서 움직였다.

폴에게 대외정책의 방향을 바꾸도록 한 것은 카린이 대단한 애국자여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한국인인데도 불구하고 폴이 한국을 깐 게 굉장히 거슬렸을 뿐이었고 한국과 한국인은 반사적 이익을 누렸다.

그리고 그 최대 수혜자는 호텔 큰과 리얼 그릴이었다.

카린의 저택에서 석방된 코야 리코는 호텔 큰에 머물면서 사흘 동안 그곳에서 팬 사인회를 열었다. 그냥 연재만 되었고 책이 발간되기도 전이라 책이 없어서 책 표지만 인쇄된 종이에 사인을 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한 삼십분 동안 사인을 하고 나더니 차라리 카린의 집에 있을 때가 더 나았다고 해서 뻥좀 치지 말라고 대꾸해 주었다.

팔이 아프기는 했을 거다.

폴 콜드먼은 그곳에 직접 나타나서 코야 리코로부터 사인도 받고 코야 리코와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섰고 코야 리코도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는 폴의 말에 동의해주었다.

사람들은 그런 폴이 대범하다고 느꼈다.

자신의 이미지를 훼손시킬 수도 있는 작품을 쓴 작가의 사인회에 와서 웃으면서 기념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며 그가 생각보다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가 사전에 짜진 각본대로 움직인 거였지만 사람들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폴 콜드먼은 근도가 고정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근도로부터 한국 음식 요리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고는 왜 한국에서 천재들이 많이 배출되는지 알겠다는 둥, 이런 요리를 어려서부터 먹기 때문에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리더들을 배출하고 있다는 둥 오그라드는 멘트를 쏟아냈다.

오썸, 엑설런트, 팬태스틱 등의 말을 끊임없이 쏟아내며 엄지를 척 들어올리던 폴은, 코야 리코의 신작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없냐는 진행자의 말을 익살스럽게 받아쳤다.

“요즘에는 무서울 게 없어요. 동물보호협회에서 나온 건장한 분들이 항상 제 뒤에서 저를 감시하고 있는데 덩치가 얼마나 좋은지 경호원 둘을 공짜로 얻은 거나 마찬가지예요. 누군가 제 목숨을 노리려고 계획한다면 먼저 동물보호협회에서 나온 떡대들을 쓰러뜨려야 할 겁니다.”

폴이 그런 말을 한 후에 카메라가, 고기를 다듬는 근도를 클로즈업하자 근도가 갑자기 동공 지진을 일으키더니, ‘동물보호협회 형님들, 저는 기본적으로는 채식주의자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두 손으로 자기가 다지던 고기를 가렸고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 장면은 패러디를 낳으며 재생산되었고 고지식하기만 한 것 같던 폴 콜드먼이 그렇게 재치있는 사람인줄 몰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면서 방송 후에 지지율이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카린의 저택에서는 다시 파티가 열렸고 해밀과 폴은 자기들이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의 명단을 카린에게 보내주고 그들을 파티에 데리고 가도 되겠는지 물어왔다.

말하자면 물귀신 작전이었다.

다시 [화이트 스노우맨의 은밀한 밤]과 같은 사태가 생길 때를 대비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의 입을 사전에 막아두자는 취지였다.

한 배에 탄 사람이 많을수록 의지할 사람이 많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해밀과 폴이 모아들인 사람들 중에는 정재계, 법조계, 문화계의 거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고 카린은 그들을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의 은밀한 판타지를 찾아냈고 그들에게 꿈같은 환상을 만들어 보여주었다.

***

일이 일단락되고 은호 형은 나에게 건배를 제의했다.

나는 기분 좋게 형과 건배를 했다.

형은 그 시간 동안 자기가 얼마나 절망스럽고 겁에 질렸었는지를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너는 항상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위기에서 건져낸다고 말하면서 그냥 네가 형 하라고 했다.

“그럴까, 그럼. 은호야?”

라고 하자 바로 얼굴을 일그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같이 웃고 와인을 몇 잔이나 비웠다.

“전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요. 형. 해변을 사서 관광단지로 개발하고 싶다고 했던가? 그거 얘기해 봐요. 형. 큰은 이제 다시 정상화된 것 같으니까 새 모험을 시작해야 되지 않겠어요?”

나는 은호 형이 전에 말했던 게 떠올라 형에게 말했다.

“어? 아아. 그거? 그건 그냥 생각만 해 본 거야. 현실화하기가 어려워. 규제도 많고.”

“규제는 사람이 만든 거잖아요. 풀면 되죠. 폴 콜드먼은 우리한테 굉장히 우호적이고요.”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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