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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나는 내 앞에 서있는 남자와 피로 채워진 욕조에 담겨있는 근도를 보았다.
“최근도!”
근도는 정신을 차렸다.
차라리 정신을 차리지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녀석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임정우! 왜 왔어, 멍청한 새끼야!”
근도가 소리를 질렀다.
자기가 의도한 만큼 소리가 힘있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랄하긴. 개새끼. 죽지마. 죽기만 해 봐. 가만 놔두나. 죽지마!”
그리고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놈을 향해 돌아섰다.
근도가 계속해서 피를 흘리고 있어서 이 인간을 오래 상대해 줄 수도 없었다.
그 녀석은 나를 보더니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친구를 위한 마음은 가상한데 네 명을 네가 재촉했다는 듯한, 대충 그런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비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놈이 나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을 하건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그 놈을 바라보았을 때 그 놈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고 한 장의 사진이 아닌 영상이 지나갔다.
영상이 흐른 시간은 5초도 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그놈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그 놈은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속도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막지 못했다. 애초에 나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세면대에 놈의 머리를 처박았다.
세면대가 부서지고 파편이 튀었다.
놈의 얼굴은 그것이 원래 사람의 얼굴이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부서졌고 나는 그 얼굴을 다시 거울과 벽에 찧었다. 더이상의 몸부림이 없어질 때까지, 벽에 처박힐 정도가 되도록 짓찧어댔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근도를 욕조에서 꺼냈고 지혈을 시켰다.
그리고 그제야 그 많은 피가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알 수 있었다.
근도의 오른 손이 없었다.
리얼 그릴 수석 셰프의 오른 팔에, 손이 달려있지 않았다.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 했다.
차마 조절하지 못한 작은 신음 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눈에 눈물이 번져, 내 앞의 광경이 돋보기 아래의 글씨처럼 부풀어 돋아 보였다.
나는 근도가 쏟은 핏물을 더듬어 그 아래에 잠겨 있던 근도의 오른 손을 찾아냈다.
그리고 옷을 벗어 근도의 팔을 묶어 지혈을 하고 근도를 안고서 손을 챙기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근도는 내 목을 감지도 못했다.
팔이 자꾸만 밑으로 축 늘어졌다.
나오면서 봤을 때 바닥에 쓰러져있던 놈들은 모두 미동조차 없었다.
살아있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피갑칠을 한 이 상태로, 시체가 남아있는 집을 그대로 두고 가는 게 걸리기는 했지만 나는 근도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차에 타려고 했을 때였다.
눈이 부시도록 불을 밝히고 달려와서 멈추는 차가 있었다.
처음에는 화물 트럭인 줄 알았더니 거대한 트레일러였다.
내가 뭔가를 할 틈도 없이 그곳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와 의사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카린이 보내서 왔습니다. 안으로 오르세요.”
그 말에 나는 근도를 안은 채 그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세상에 이런 시설을 갖춘 차량이 있었나 할 정도로 각종 첨단 의료설비들이 빈틈없이 들어차 있었고 안에서는 이미 수술을 위한 모든 준비가 마쳐져 있었다.
나도 근도를 데리고 안으로 가려고 했지만 일단 소독을 먼저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에 간호사를 따라 가야 했다.
내가 다시 갔을 때 근도는 수술대 위에 있었다.
지금이라도, 근도의 손을 다시 붙일 수 있겠는지 묻고 싶었지만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꾹 참고 있었다.
나는 카린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근도를 책임지고 맡아준다고만 한다면 시신들이 남아있는 집으로 돌아가 시신 은닉을 위한 최소한의 방법은 강구해 보고 싶었다.
내 생각을 알았는지, 간호사가 나를 보고 말했다.
“카린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와 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린은 자기가 보낸 사람들을 믿어도 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만 간단히 하고 우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카린의 말을 믿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할 수 있는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카린이기 때문이었다.
근도를 저 사람들한테 맡겨도 된다고 생각되자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에 생각이 미쳤다.
세 구의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내가 트레일러에서 내려 근도가 납치돼 있던 곳으로 향하려고 했을 때였다.
낯선 중형차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모르는 곳을 더듬어 찾아오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명확히 목표를 가지고 달려오는 폼이었다.
그리고 그 목표가 바로, 내가 근도를 구해온 그 건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불길하게 들었다.
“젠장!”
트레일러에서 간호사가 내렸다.
“일단 이동한다고 합니다. 차를 타고 따라오세요.”
그리고 간호사는 쏜살같이 트레일러로 사라졌고 트레일러는 그대로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한참을 멀어져갔다.
나 역시 내 차를 가지고 트레일러의 뒤를 쫓았다.
갑자기 나타나 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뒷 모습이 핫 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확인하자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근도를 맡기고 돌아갈 수가 없었다.
‘핫 걸이…. 왜 여기에?’
내 심장은 가슴을 찢고 튀어나오려는 것처럼 정신없이 쿵쾅거렸다.
***
수일 전.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던 서지영은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일하는 척 하고 있는 팀원의 뒷모습을 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의심스럽다.
너무나 의심스럽다.
저건 열심히 일할 때의 자센데 저 놈은 평생 열심히 일해본 녀석이 없는 놈인데?
저 놈한테 보고서를 맡겼다가는 석 달이 지나도 그 보고서를 구경할 수가 없어서 아예 모두들 다 포기를 했는데 저 놈의 지금 포즈는 딱 보고서를 쓰는 포즈라는 거지.
그러면 저 놈은 지금 딴 짓을 하고 있다는 뜻인 거다.
이건 백 프로다.
지영은 그대로 일어서서 막내의 자리로 갔다.
“야, 우리 김 경장님 뭘 그렇게 열심히 하시나?”
몰래 웹 서핑을 하던 김 경장은 깜짝 놀라 어깨가 절로 솟구쳤다.
이름이 경장이라 키샤 막내일 때부터 모두에게서 김 경장님이라고 불린다.
“아우. 팀장님! 깜짝 놀랐잖아요!”
김 경장이 징징거렸다.
지영은 혼자서 씨익 웃고, 못 보던 USB가 꽂힌 걸 보고 USB를 빼려고 했다.
“히이익!! 티, 티,팀장님!! 왜요! 뭘 하시려고요!!”
“젊은 놈이 현장에서 직접 부딪칠 것이지 어디서 책상 앞에 앉아서 야동이나 보고 딸이나 치려고!!”
“아, 그런 거 아니예요!!”
김 경장이 진저리를 치듯이 손을 내저었다.
“야. 그럼 내가 특별히 살려줄 테니까 레전드 급으로 파일 몇 개만 나한테 보내.”
“아우우우. 팀장님. 진짜 왜 이러세요. 팀장님 자꾸 이러시면 저는 여자들에 대한 꿈과 환상이 다 조각나잖아요!”
“그래서. 줄 거야. 안 줄 거야.”
“……. 뭘로 드려요. 수간? 근친상간? 에세머요?”
“이런 미친!! 그냥 건전한 걸로.”
“건전한 건 안 좋아하시잖아요.”
김 경장이 지영의 눈치를 슬쩍 보며 말했다.
제 딴에는 직언을 하느라 꽤 용기를 낸 거였다.
“건전한 야외 수치플.”
“야외 수치플요?”
“왜? 없어? 너무 건전해서 그런 건 안 키우냐?”
“하아아아…. 그런 건 없을 것 같은데.”
“그럼 내가 찾아볼게.”
“아아아아. 팀장님!! 안 돼요. 이건 진짜. 이건 제 심장이에요. 이거 빼 가시면 저 죽어요.”
“지랄을 하시네. 젊은 놈은 현장에서 부딪치라고!!”
“팀장님. 왜 저만 갖고 그러시는데요!”
“다른 인간들 봐라. 다들 달관한 표정이잖아. 이제는 잡고 흔들기도 귀찮다는 표정들인데 저 사람들이 웹 뒤져가면서 그런 거 모을 정신이 있어 보이냐?”
“아뇨.”
김 경장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