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68화 (268/402)

0268 ----------------------------------------------

4부. The other side

“그래? 그게 진짜야? 그렇다면 진짜 다행이다.”

나는 눈물을 쓰윽 훔치면서 말했다.

“자랑할 게 더 있기는 한데. 그건 내가 나중에 보여줄게. 수술 끝나면 내가 한국으로 가서 보여줄게.”

근도가 말했다.

“내가 갈까?”

“뭘 와. 학교 다니는 거 힘드냐? 이 자식이 뻑하면 미국으로만 넘어오려고 그러네.”

“근도야. 진짜 괜찮은 거야?”

“진짜로 괜찮아. 이게 토나오게 비싼 장비라서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냥 받으라고 해서 나도 그냥 미친 척 하고 받기로 했다.”

“누가? 카린이? 카린이 찾아왔어?”

“응. 이 팔만 1200만불짜리래.”

“헐. 근데 카린이 왜 그렇게까지? 일단 알았어. 근도야. 너는 돈 문제는 조금도 신경쓰지 마. 카린한테는 내가 갚을 테니까.”

“야. 그 사람 돈 많은 것 같던데 너도 그냥 모른 척 하고 있어. 임정우. 나 진짜 완전 신난다. 하. 내가 이걸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입이 근질거려서 죽겠다. 내가 요즘에 고민하는 게 뭔지 아냐? 손을 만들 때 손가락을 여섯 개를 달아 달라고 하면 안 될까. 그 고민 때문에 잠을 못자겠어.”

“이 새끼는 웬 또 헛 소리래.”

“아. 그런 게 있어. 나중에 보면 알아. 내 팔이 괘히 1200만불 짜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다.”

근도가 웃으며 말했다.

애가 자주 웃는 건 좋은데 하는 얘기를 봐도 그렇고 살짝 미친 게 아닌지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됐다.

그래서 근도와 통화가 끝나자마자 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린은 근도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근도가 아무래도 굵은 팔뚝을 선택할 것 같으니까 확실하게 운동 시켜줄 트레이너나 하나 미리 섭외를 해 놓으라고 했다.

한쪽 팔은 이쑤시개 같은데 다른 팔만 통나무 같으면 그게 얼마나 징그럽겠냐면서.

나는 근도의 팔 값은 내가 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진작에 고맙다는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말을 못 했다면서 뒤늦게 고맙다는 말도 했다.

카린은 됐다면서, 자기가 근도한테 해 준 일은 근도한테 받으면 된다고 했다.

혹시 근도한테 이상한 짓을 시키려고 그러는 건 아닌가 하고 내가 경계하는 눈빛인 것을 알았는지 자기 집에서 파티를 하거나 중요한 사람들을 모을 때 근도가 와서 도와주기로 약속했다고 카린이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에 나는 마음을 놓았다.

나는 카린에게 폴 콜드먼과 해밀이 온순하게 굴고 있냐고 물었고 카린은 ‘더할 나위 없이요.’ 라고 말했다.

카린은 근도를 납치해서 죽이려고 했던 놈들이 사바스 놈들이었다는 것을 나한테서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해밀을 충동질해서 사바스를 흔들어 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사바스는 아무리 해밀이라고 해도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질 브렛이 오랫동안 행방 불명 상태고 해밀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으니까 사바스는 자연스럽게 고사될 수도 있을 겁니다.”

카린이 말했다.

서로 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카린이, 근도가 한국에 갈 때 자기도 한국에 같이 갈 거라고 말했다.

“아. 네.”

혹시 나한테 가이드를 해 달라는 말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왜 자기 스케쥴을 나한테 일일이 보고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으로 말하자 카린은 자기도 멀뚱해졌는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긴 다음에야 나는, 카린이 오면 우리 임 과장님이 엄청 반가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별로 반갑지 않지만 그럼 내가 가이드를 해 줄까?’

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계산이 끝난 후에 나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근도와 통화를 한 후에 나는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개운함을 느꼈다.

근도가 다시 요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 혼자서 방 안을 왔다갔다하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한테는 오늘 안에 끝내놔야 할 과제가 수북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이 많을수록 왜 그렇게 다른 짓을 하고 싶어지는 걸까.

나는 그동안 거의 보지도 않고 있던 몸캠 영상 사이트를 지금 바로 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박관념까지 느끼면서 스마트폰을 켰다.

하여간 대단해요.

시험 기간에도 그렇고 과제가 숨막히게쌓여있을 때도 그렇고.

이럴 때는 특히 더 이쪽으로 마구 음기가 뻗치는 걸 보면.

나는 내가 카린의 집에 머물면서 헬퍼들의 ‘도움’으로 받아뒀던 화장지를 쓸만한 영상이 있는지 보고 있었다.

곶감 빼먹듯 한다더니 전에 다운받았던 건 이미 질릴 정도로 봤다.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난 거야 당연했지만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깊이 있게 만나는것에 지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현실에서 그 여자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당연하게 여기면서 그냥 별 것 아닌 얘기나 하다가 헤어지는 정도였고 우연히 만남을 계속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애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럴만큼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고 일시적으로 내 에너지가 소진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내가 기대감으로 잔뜩 달아오른 채 몸캠 영상 사이트에 접속을 한 것 자체가 오랜만이다.

현실에서 만날 여자들이 넘쳐났고 그 여자들의 수준이 높아서 이제 다른 여자들 영상을 기웃거리지 않게 된 건지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은 가볍게 기분을 풀 수 있는 영상을 보고 그런 여자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러 개의 영상을 보다가 그 중에 한 영상 속의 아이가 우리 과 여자 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하고 같이 듣는 과목이 많이 겹치지는 않았지만 전공 과목과 교양 과목 몇 개는 같이 들었다.

호기심에 나는 캡쳐 사진을 보았다.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얼핏 보기에는 스스로 찍은 오디션 영상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 아이가.

아.

준위.

김준위.

이름이 그거였다.

출석을 부르는 시간에 김준위라는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당연히 남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자 목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려서 김준위를 본 적이 있었다.

김준위는 대답을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김준위를 본 적은 이번 학기가 처음이어서 나는 친하게 지내는 후배들에게 김준위에 대해서 물었다.

“아, 준위 누나요? 준위 누나도 형만큼이나 학교에 잘 안 나와요. 크큭.”

뭐가 좋은지 웃어대던 그 녀석은 준위라는 애가 애초에 연극을 하고 싶어했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학교에 있는 기린 극회라는 동아리에 들어 거기 활동만 엄청나게 열심히 하고 학과 수업은 완전히 뒷전이라고 했다.

그래도 머리가 나쁘지는 않은지 시험 기간에만 나와서 애들한테 예상 문제 답안을 구걸해서 그것만 외워서 시험을 보는데 지금까지 성적은 괜찮게 나와서 곧잘 장학금도 받고 그러면서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왜 누나냐고 하니까 일 년을 늦게 들어와서 나이가 한 살 많다고 했다.

그래봐야 나보다는 어리지만.

그래서 준위라는 여자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틀에 맞춰진 외모가 아니었고 나름대로 개성이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이 싫지 않았다.

몸은 호리호리하고 동작이 빠르고 센스가 있었다.

무엇보다.

눈빛이 깊었다.

그리고 얼굴에 표현되는 감정의 깊이가 남달라 보였다고 기억됐다.

그런 녀석의 오디션 영상이라는데 당연히 호기심이 생겼다.

오디션 영상이 아니라 남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나와 기웃거리고 있는 영상이라고 했어도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나는 준위를 보았다.

준위가 만든 오디션 영상은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 녀석. 성인물에 출연하려고 그러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노출이 파격적이었다.

상반신은 전부 노출을 한 채 야한 춤을 추면서 중간 중간 무슨 대사를 하는 건데 나는 준위가 왜 그런 영상을 찍은 건지 알지 못했지만 괜히 기분이 나빠졌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준위와 나 사이에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었다.

지나가다가 마주친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