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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새로 머신이 들어오기로 한 날이었는데 나하고 상의하고 싶은 일도 있고 나한테 주고 싶은 것도 있다고 했다.
다음에 찾아뵈면 안 되겠냐고 하는데도 꼭 오늘 안으로 나한테 줘야 할 게 있다고 했다.
고집을 부릴 분이 아닌데 이상하다는 생각에 나는 굉장히 불쌍한 표정을 짓고 굉장히 미안하다는 내 마음을 담아서 준위를 바라보았다.
“김준위. 나 잠깐 밖에 나갔다 와도 될까?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네. 그러세요. 저는 상관 없어요.”
“그렇게 말하면 내가 지금까지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것 같잖아.”
“상당히. 그렇긴 하죠?”
준위가 씩 웃더니 말했다.
어라. 저렇게 웃으니까 엄청 귀엽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정신차리자고 내 싸다구를 한 번 촥 때리고 나갈 준비를 했다.
“아무 거나 만지고 다니면 안 된다. 우리 집이 아니라서 특별히 더 신경 써줘야 돼. 저 카메라들 보이지?”
나는 작동도 하지 않는 카메라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작동은 하지 않는, 그냥 공갈용 카메라가 잔뜩 달려 있었다.
그건 방범용이 아니라 사생활 보호용이었다.
“으으. 알았어요. 오빠도 빨리 와요. 일단은 나도 장학금 받고 기숙사도 들어가야 되니까 이번까지는 잘 해봐야 되니까요.”
“응. 배 고프면 뭐 시켜먹어. 밥솥에 밥 있고 냉장고에 반찬 있으니까 그거 먹어도 되고. 주소 알려줄까? 배달시키려면 알아야지.”
“웬만하면 기다릴게요. 너무 배고프면 제가 알아서 먹고요.
“그래. 늦을 것 같으면 전화할게.”
그렇게 급하게 준영이 아버지를 보러 갔더니 나를 보고 굉장히 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한쪽으로 불렀다.
“이게 말입니다. 흥분제라는데 이게 그렇게 좋대요."
"흥분제요?"
"네. 최음제요."
나는 겨우 이런 걸 가지고 사람을 그렇게 들들 볶아댄 건가 싶어서 약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준영이 아버지의 표정은 산삼 열 뿌리는 내 주는 것처럼 자신만만했다.
"공장에서 화학 약품 섞어서 만든 게 아니라 귀한 약재로 전문가가 만든 거예요. 그거 들어봤죠? 누가 만들었는가에 따라서 압착할 때 들어가는 균일한 힘에 의해서 효능이 달라진다고요. 이건 진짜 장인이 만든 거예요."
최음제를 만드는 장인이라니.
"근데 만들고나서 효능이 빠르게 사라진대요. 일본에서 가져온 건데 만든지 사흘째라 며칠 있다 드리면 효능을 장담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마침 오늘 뵐 일도 있고 그래서 챙겨놨어요. 내가 이런 걸 쓸 일도 없고. 아깝잖아요.”
“사장님. 저도 별로 필요가 없는데요?”
“인생 다이나믹하게 즐기는 겁니다. 힘 있을 때 스토리를 만들어 놔야 나중에 나이먹고 그 추억 씹어먹고 살죠.”
그러고는 막무가내로 내 주머니에 쑤셔 넣어 주었다.
내 몸이 약의 성분을 자체 분해해 버린다고 말을 할 수도 없고.
이렇게까지 주려는 걸 보면 정말 좋은 최음제인 모양인데 당혹스러웠다.
결국 나는 거절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떠밀려 나왔다.
나중에 준영이한테 줄까 했지만 이걸 주자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준영이한테 가는 것도 무리고.
아버지?
에에에에이.
그냥 김준위나 쓰라고 줄까?
그러는 동안 어느새 집에 도착했고 김준위는 내가 떠났을 때의 자세와 완벽하게 똑같은 자세로 과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 왔어요?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자료 조사는 거의 됐고요. 이제 PPT만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근데 발표는 누가해요?”
“당연히 김준위님이.”
나는 겉옷을 벗어 의자에 대충 걸치며 말했다.
“아, 왜요오오오!”
“나는 울렁증 같은 거 있어서 안 돼.”
“나도 그래요.”
“무대에서 연극하던 사람이라면서 무슨 울렁증.”
준위의 표정이 일순간 또 어두워졌다.
무슨 일이 있어서 저러는 건지.
“아. 몰라. 발표는 네가 하는 거다. 대신 내가 밥 차려 줄게. 먹고 싶은 거 없어? 말만 해. 다 시켜 줄게.”
“그냥 밥 먹어요.”
웬만해선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준위는 일찍 포기해 버렸다.
“피자 좋아해? 아니면 탕수육이나. 치킨 시켜줄까? 족발? 보쌈? 우리. 시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니까 미리 다 시켜 놓을까?”
“됐어요. 돈 아껴요.”
돈 때문이 아니라면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나는 준위가 주방으로 내려가는 동안 음식을 왕창 시켜버렸다.
준위는, 밥을 먹는 동안 배달 음식이 하나 하나 도착하자 진짜 막무가내라는 듯이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계산은 다 끝났으니까 받아오는 건 김준위가 할 수 있지?”
준위가 일어났을 때 나는 애초에 그럴 계획이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준위의 물 컵에 최음제를 타고 있었다.
안 쓰면 효능이 떨어진다는데.
아깝잖아.
준위는 피자 한 조각에 치킨 하나만 먹고서 일어났다.
“칫솔 사 가지고 온다는 걸 깜빡했네. 혹시 근처에 편의점 있어요?”
준위가 말했다.
“칫솔 안 쓴 거 있어. 선반에 있으니까 거기서 꺼내서 쓰면 돼.”
나는 준위가 셔츠 목선을 잡고 셔츠를 자꾸 뒤로 넘기는 것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얼굴도 붉어졌다.
준영이 아버지가 나한테 독을 줬을 리는 없고.
이거 진짜 효과가 제대로인 모양이다.
준위는 아까부터 손부채질을 했다.
그러다가 양치하고 올라가서 하던 걸 마저 해도 되겠냐고 하더니 욕실로 향했다.
양치할 시간은 훨씬 지난 것 같은데 준위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먼저 위로 올라가 있었다.
하이드 스키이이일. 발도오오옹.
준위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나와 같이 과제를 하던 방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나를 찾았지만 나는 준위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준위는 나를 부르면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나를 찾지 못하자 자리에 앉아서 다시 과제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열기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소변이 마려운 사람처럼 자꾸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가 오지 않는지 바깥 쪽에 귀를 기울여보고 슬쩍슬쩍 자신의 비부를 만져 보기도 했고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고 가슴을 문지르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자꾸만 발기가 됐고 신음 소리가 나올 것 같아서 애를 먹었다.
준위는 자기 뺨을 계속해서 두드렸다.
자기 몸이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그런 준위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다.
“하으으. 미치겠네. 갑자기 왜 이러지?”
준위가 손부채질을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는 책상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팔꿈치로 지탱을 하고서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발꿈치에 비부를 문질렀다.
“하아. 왜 이러지? 미쳤나?”
준위는 그렇게라도 대충 참으려고 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나를 부르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잠시 후에 방으로 돌아온 준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우 오빠는 어디 갔지?”
그러면서 아랫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오빠. 정우 오빠."
준위는 몇 번 더 나를 부르면서 혹시라도 내가 대답해 올까 하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남의 집이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지는 못했다.
점점 더 열기가 피어오르고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돼 버린 것 같았다.
준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일단 내가 갑자기 들어올 가능성은 별로 없을 거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 같았다.
“편의점이라도 갔나?”
준위는 한 번 더 문 밖을 바라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이 욕실로 향했다.
나는 준위가 뭘 하려는 건지 대충 알아차리고 준위보다 앞질러서 욕실에 들어갔다.
문을 최소한으로만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준위는 갑자기 욕실 문이 열리는 걸 보고 놀랐을 거면서도 바람 때문에 그렇게 된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
사람의 의식구조가 그렇게 되어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면 그걸 어떻게든 끼워 맞춰서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패러다임 안에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욕실 창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