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74화 (27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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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아. 그건 아니고.”

“다 알아봤어요. 내가 오빠한테 빨대 꽂을까봐 거짓말한 거죠?”

“아니야. 그런 건.”

내가 당황하는 게 웃겼는지 준위가 웃었다.

“나도 그런 일 겪어봐서 다른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아무리 돈이 없어도 그런 짓을 할 성격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없으면 안 입고 안 먹으면 되지 다른 사람 힘들게 하면서 그걸로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어요.”

준위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기특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는 건 내가 자기를 그렇게 생각해서 거짓말한 걸로 단정짓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 상황에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근데. 방금 말해준 건 정말 고마워요. 힘들면 꼭 얘기할게요. 나중에 저한테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말. 별 거 아닌 건데 괜히 힘이 되네요.”

나는 준위의 옆에서 몸을 굴려 준위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다가 입술을 내려 키스를 했다.

“나. 진짜 잘 한 것 같아.”

내가 말했다.

“뭘요?”

“수업 시간에 네 대출해 준 거. 근데 교수님은 네가 여자라는 것도 모르더라.”

“그러게요. 어떻게 대답했어요? 해봐요.”

“네에~~”

나는 콧소리를 섞어서 여자 목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준위가 깔깔거리고 웃어댔고 나는 준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그렇게 황홀한 휴식을 누리다가 준위를 일으켜 주었다.

“PPT 만들자.”

“넵.”

준영이 아버지가 준 최음제의 효능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

그 후로도 나는 과제에 깔려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상태의 연속이었다.

별로 쓸데도 없는 것 같은 과제를 뭘 그리 자꾸 내 주는 건지.

그래도 준위가 있어서 학교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

교수님의 강의야 일주일에 겨우 두 번 있는 거고 해미는 아직 대화가 통하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해미랑 같이 있는 시간이 막 유쾌하거나 해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가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각자가 가진 나름의 매력과 장점이 있어서 나는 그들 덕에 내 지루한 학부 생활을 견뎌나갔다.

교수님은.

그야말로 진짜. 아놔.

그냥 익스트림.

강의 전 시간에 농대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거기에서 교수님의 엉덩이가 빨갛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때리면서 정사를 하는 게 어쩌다보니 우리의 정해진 일과가 되었다.

교수님은 내가 사정을 한 후에 자기 브리프에 꼭 한 번 다시 싸게 만들고 그걸 입었다.

도도한 교수님이 내가 정액을 싼 속옷을 입고 교단에 서 있다는 사실은 나만 알고 있었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려면 강의 시간 내내 발기가 풀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강의 전 시간과 강의 후, 두 타임을 교수님에게 쏟게 됐다.

알고 보면 굉장히 지능적인 분 같다는.

그런데.

그러다가 교수님이 질염에 걸렸다.

그런 걸 계속 입고 있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교수님은 질염이 나을 때까지 나와 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엄청나게 절망했고 자기가 나을 때까지 다른 여자를 사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약속해달라고 해서, 나는 그런 건 애초에 소망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교수님은 내가 다른 애한테 한 눈을 팔지 못하도록 그런 거였는지 과제 폭탄을 안겼고, 나는 까짓것, 이 과목은 그냥 F 맞고 말자 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학기 내내 나는, 끝나지 않는 노동의 저주에 걸린 시지푸스처럼 과제를 반복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 서클을 가리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전화가 걸려와 받았는데 근도였다.

근도라는 걸 알면서도 반가워해주지도 못할 정도로 지쳐 있었는데 근도의 목소리는 엄청 활기찼다.

근도는, 집에는 언제 오냐? 라고 물었고 나는 지금 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근도가, 그래. 조심해서 와, 라고 말을 하고 우리의 통화가 끝났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는 이 자식이 왜 '가냐'라는 말 대신 '오냐'라고 말을 한 건가 했다.

그래도 설마 설마했지, 정말로 근도가 우리 집에 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집 앞에 요란한 차가 세워져 있고 그 안에 근도가 있었다.

근도는 진회색 정장에 검정색 셔츠, 거기에 흰색 슬렉스를 입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한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어깨부터 손까지만 집중적으로 스캔을 하게되는 첫 경험을 했다.

근도는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자켓을 벗고 오른 팔을 들어 올려 보였다.

"그렇게 보고 싶었냐?"

근도는 의기양양하게 말하면서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근도가 팔을 보이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는 내 심정은 마치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순간 같았다.

“헐…!”

빈 소매가 펄럭거리며 그대로 흘러내려 버리는 대신, 그 안에 굵은 팔이 꽉 차 있었다.

내 친구한테 팔이 달려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그렇게 기뻐할 수가 있다니.

나는 근도의 팔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야. 빨리 들어가자. 나 여기서 삼십 분 넘게 기다렸어. 카린. 카린도 들어갈 거예요?”

근도가 차 안에 대고 물었다.

"카린? 카린도 왔어?"

카린도 같이 왔다는 건 그제야 알았다.

"같이 온다고 했다던데. 몰랐어?"

근도가 말했다.

아. 들었던 기억이 나기는 하지만.

뭐 이리 다들 갑작스럽게 와.

집에 연우라도 와 있었으면 어쩌려고.

"카린. 나와봐요."

근도가 말했다.

카린은 내가 사는 꼬라지를 한 번 봐 주겠다는 듯이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하지만 나는 카린에게 줄 관심은 남아있지 않아 근도에게 달라붙은 채 근도의 오른 팔을 만져댔다.

“야. 적당히 만져.”

근도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 닥치고. 팔이나 걷어봐.”

내가 말하자 근도는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나는 근도의 하인처럼 근도의 재킷을 팔에 얌전히 걸친 채 근도의 소매가 올라가는 걸 바라보았다.

저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게 나오다가 사라져버릴까봐 겁이 났다.

손이 있는 건 봤는데 어깨 밑으로 팔 사이는 그냥 가느다란 철심 같은 걸로만 연결돼 있는 건 아닌지 괜히 혼자만 긴장을 했다.

그러나 근도의 팔은 완벽했다.

근도가 잃었던 오른 손과 완전히 똑같은 손이었다.

잃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야. 진짜는 따로 있어. 여기서는 못 보여줘. 빨리 들어가자.”

근도가 말했다.

“응. 응.”

나는 부리나케 두 사람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카린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린이 너무 늦게 따라와서 우리는 먼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일단 문은 열어줬으니까 그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근도는 자기 팔을 자랑하고 싶어 죽겠는 얼굴을 하더니 놀랄 준비가 됐냐고 물었다.

“응. 응. 보여줘봐.”

내가 말하자 근도가 잔뜩 설렌 얼굴로 자기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드디어 자기 비밀을 알려주게 됐다는 사실 때문에 근도는 마치 삼촌 야동 사이트 비밀번호를 알아낸 조카처럼 들떠 있었다.

“봐. 겉으로는 그냥 손 같지?”

근도는 마술사가 자기 손을 보여주는 것처럼 내 눈 앞에 자기 손을 보였다.

“응!”

웬만하면 그만 뜸 들이고 빨리 보여 달라고 뒤통수라도 한 대 쳤을 텐데 팔을 다시 달고 나타나준 근도가 그저 고마웠기에 나는 근도가 하는 쇼를 마음껏 기다려줄 수 있었다.

“잘 봐라.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근도가 말했다.

나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근도의 손을 보고 있었고 근도의 손 끝에서 뭔가가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 깜짝 놀라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세상에!

그건 여러 의미의 놀라움이었다.

“이게….뭐냐?”

나는 근도의 손가락 위로 튀어나온 것을 보며 물었다.

“거품기.”

웃어대는 근도.

세상에. 1200만불짜리 의수를 가지고 무슨 장난을 한 거래, 그런 생각이 처음에 들었지만 셰프인 근도에게는 그것만큼 실용적인 게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뭘 눌렀는지 거품기가 마구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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