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75화 (2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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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그게 어디에 있다가 나온 거야? 그만한 게 들어있을 자리가 없잖아. 손가락 속에 그게 웅크리고 있었던 거라고?”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서 물었다.

“안에 있을 때는 착착 포개져있지. 그러다가 나오면서 펼쳐져. 아직 다 안 끝났어.”

근도가 말했다.

"만져볼래?"

이건 아무나 못 만지게 하는 거지만 너니까 특별히 만져볼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듯, 근도는 선심을 쓰는 척 나에게 거품기를 내밀었다.

"아니. 안 만져도 될 것 같아."

"그래. 그럼. 근데 이것 말고도 또 있어."

근도는 신이 나서 말했다.

거품기를 집어 넣은 다음에는, 보기만 해도 날카로운 칼도 나왔고 그 다음에는 면을 건져 올릴 국자에 채까지 나왔다.

아니. 부피도 꽤 나가는 게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오는 거냐고.

그런데 또 근도가 뭔가를 누르면 착착착 접히고 접히기를 반복하면서 다시 감쪽같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근도가 손가락이 꼭 다섯 개여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한꺼번에 재료 다듬을 때.”

근도가 뭘 눌렀는지, 이번에는 엄지를 제외한 손가락 네 개에서 똑같은 칼이 나왔다.

그 다음에 눌렀을 때는, 칼이기는 하지만 앞쪽으로 갈고리처럼 휘어진 칼들이 나왔다.

“이건 열에도 끄떡없어. 철을 녹이는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오더라도 안 녹아. 표피마저도 그래.”

근도가 말했다.

“피부랑 똑같아 보이는데?”

내가 근도의 손을 마지자 조금은 이질적인 차가운 감촉이 돌았다.

“금속에 페인트만 칠한 거냐?”

“그런 셈이지.”

근도가 말했다.

대단했다.

할 말이 마땅히 생각나지도 않았다.

"야. 진짜. 우와."

나는 그런 식의 의미없는 말만 계속 늘어 놓았다.

"진짜 놀랬지. 진짜 대단하지?"

근도가 말했다.

"응. 아프지는 않아? 이상하지도 않고? 네 팔이 아니라는 생각은 안 들어?"

"들지만 그래서 더 좋아."

근도가 말했다.

괜히 나를 안심시키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근도의 표정에는 전혀 꾸밈이 없었다.

그렇게 내가 근도의 손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혼자서 집 구경을 알아서 마친 카린이 들어왔다.

“코딱지만해서 헬퍼가 따로 있을 필요도 없겠네.”

내 집을 둘러본 카린의 첫 감회였다.

“카린. 근도한테 해 준 일은 정말 고마워요. 근데 근도는 내 친구니까 내가 돈을 내야 될 것 같아요.”

내가 말하자 카린은 신경쓰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조금이라도 힘든 일이었으면 거듭 고맙다는 말을 들어도 되겠지만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질 브렛도 엄청 멍청한 거 아닙니까? 셰프를 잡아다가 괴롭힐 생각이었으면 혀를 자를 것이지. 혀를 잘랐으면 우리도 좀 힘들었을지 모릅니다. 하긴. 그렇게 멍청했으니까 당한 거겠지만.”

근도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카린을 보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근도는 앞으로 카린이 뭐라고 말을 해도 카린에 대해서는 무한 애정을 보여주기로 작심한 것 같았다.

"맞는 말이야. 만약에 그때 혀를 잘려서 미각을 잃었으면 나는 그 새끼가 나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도 스스로 죽었을 것 같아."

근도가 확신에 찬 채 말했다.

“근데 임정우. 뭐 먹고 싶냐. 어? 형이 뭐든 만들어 줄게.”

라면, 이라는 말과, 라면만 빼고, 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

전자는 내 입에서 후자는 근도 입에서.

결국 근도는 그 대단한 가제트 만능 팔 같은 걸 갖고 라면을 끓였고 맨 손으로 냄비를 들고 왔다.

자랑을 하고 싶은데 기교를 발휘할 만한 일이 없으니 자기 오른 손이 열에 얼마나 강한지 그거라도 자랑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라면을 먹고 내가 운동을 하는 방에 가서 근도는 굉장하다고 감탄을 하면서 그곳에 있던 모든 운동 기구와, 심지어 머신까지 오른 팔로 들어 올렸다.

나는 이제 놀라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근도가 그 오른 팔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그다지 상상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최근도. 너 딸칠 때 오른 손으로 치지 않아? 그건 어떻게 하냐? 왼손은 오른손만큼 속도가 안 나오지 않냐?”

내가 말하자 근도가 역시 그런 걱정을 해 주는 변태는 너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무의식적으로 오른손으로 잡았다가 죽을 뻔 했던 적이 두 번인가 있었고 그 후로는 항상 오나홀을 사용한다고 했다.

“주방에는 언제 복귀해? 리얼 그릴에 다시 출근하고 있어?”

“아니. 사람들한테 이걸 오픈해도 될지 아직 모르겠어서.”

근도가 말했다.

“그렇긴 하겠네.”

그 좋은 걸 갖고 써먹지도 못하면 아깝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다고 그걸 다른 셰프나 주방 보조들 앞에 보일 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려고?”

“아직 정한 건 없어. 파티 플랜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너랑 먼저 상의를 해 보고 싶었어.”

“파티 플랜? 좋을 것 같은데? 너한테 딱이겠다. 시작해봐. 근도야. 내가 투자할게.”

근도가 잘 할 수 있는 요리에, 근도가 그동안 쌓아온 인맥, 그리고 파티 요리를 하면서 쌓아온 명성을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근도와 잘 맞는 걸 찾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메뉴가 만들어지면 그 안에서 크게 유동성을 발휘할 수 없는 레스토랑 주방보다 오히려 파티 플랜이 근도의 창의성을 발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했다.

“잘 할 수 있을 거야. 해라. 근도야.”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왠지 배신인 것 같고 그랬거든. 리얼 그릴은 떠나야 하게 될 테니까. 근데 그 일을 하면 일을 내가 고를 수 있고 시간도 더 자유로워질 것 같으니까 아무래도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

“그래. 잘 했어. 나는 언제나 너를 지지하니까.”

근도가 나 때문에 그런 결정을 한 거라는 걸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내가 자기 때문에 사바스를 건드리게 됐고 그래서 사바스의 타겟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근도는 자기가 얻은 오른 팔로, 말 그대로 내 ‘오른 팔’이 돼 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카린과 사바스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싶었고 근도가 잠깐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했지만 카린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근도도 사바스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거였다.

질 브렛은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그렇다고 아무도 모르게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질 브렛이 행방불명된 후에 사바스에서 질 브렛의 행적을 뒤쫓았고 질 브렛이 무슨 이유인가로 리얼 그릴에 침입을 했다가 그 후에 사라진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 후의 행적은 사바스의 입장에서 오리무중이었다.

그들은 질 브렛과 그의 동료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지 못했고 질 브렛이 사라진 날 리얼 그릴에서 습격을 당한 근도가 그 일에 대해서 뭔가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근도에게 접근해 왔다.

그러나 치료를 받는 동안 근도가 카린의 보호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사적인 대화나 접근이 불가능했고 기회를 엿보던 사바스는 근도가 리얼 그릴에 가려고 길을 나섰을 때 근도를 납치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근도에게 손을 대지도 못하고 근도의 오른 팔에 맞고 나가 떨어졌고 그 후로는 근도에게 쉽게 접근도 하지 못했다.

근도는 곧바로 카린에게 그 사실을 말했고 카린은 사바스가 근도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못하도록 해밀을 통해 사바스에 경고를 했다.

그 후로는 사바스도 근도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는 했지만 사바스가 무슨 생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지는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사바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 곳의 최정예 요원들이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의 전쟁을 단 몇 십 명이서 수행을 하고 내전을 종식시키기도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무기 활용에 제약이 따르는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근도가 사바스 요원들을 무력화시켰다는 얘기를 듣고는 적잖이 놀랐다.

그러나 근도를 보면 볼수록, 오른 팔대 오른 팔로만 맞붙는다면 내가 근도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기가 어려울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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