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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카린은 사바스가 당분간 몸을 웅크리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손가락에 난 티눈처럼, 잘라내고 잘라내도 어느샌가 다시 돋아나서 작은 불편을 줄 수 있을 거라면서 카린은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는 카린에게 핫 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근도를 구했을 때 핫 걸이 키샤장의 명령으로 그곳에 와서 현장을 치웠다는 말을 하면서 혹시 키샤에 대해서 아는 게 있는지 물었다.
카린은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젓는 속도를 봤을 때 카린도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카린은 키샤가 정보를 얻는 게 좀 이상하기는 하다고 말했다.
정보원을 통한 것일 때도 있지만 어느 때 보면, 그 시간이 지난 후에야 정확히 알 수 있는 것들을 키샤가 미리 알고 그걸 바탕으로 행동을 하는 때가 있다고 한 것이다.
일단 그런 결론에 이르자 갑자기 대화가 막혔다.
그 뒤를 이어갈 말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근도는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 했고 나는 내 차 한 대를 근도에게 빌려주었다.
근도는 나갈 준비를 하는데 카린은 딱히 갈 곳이 없는지 멀뚱히 앉아 있었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살 줄은 몰랐다는 둥, 이런 일들을 전부 스스로 하냐는 둥 주먹을 부르는 소리를 하면서.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근도가 기다리는 동안 카린이 나에게 하이드 스킬에 대한 것을 물었다.
나는 스킬이 상당히 숙련됐다고 말했고 카린은 나에게 보여달라고 말했다.
카린 앞에서는 안 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밖으로 나가는 척 하면서 근도의 눈 앞에서 내 몸을 숨겼다. 근도의 인식을 제어한 것이다.
근도는 내가 나간 것으로 알았고 카린은 내 모습을 녹화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손짓을 했고, 나는 다시 돌아온 것처럼 하면서 카린에게 다가갔다.
카린은 내 모습이 영상에 찍힌 것을 보여주고, 별 거 아니네요. 하하하하하 하고 웃어댔다.
새 장난감을 선물받은 동생을 보고 혼자서 잔뜩 심통이 나 있다가 그게 사실은 별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고 나서 급 기분이 좋아진 형처럼.
카린이 찍은 영상에 내가 그대로 나온 것을 보고 기분이 급 우울해졌다.
“나도 알고 있었어요. 형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냥 단지 인식 제어만 하는 거니까. 그래서 거울에도 내 모습은 그대로 보이고.”
내 마음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고 하려는 듯이 그렇게 말을 했지만 이미 기분은 상할대로 상해버렸다.
거기에 반비례해서 카린의 광대는 점점 승천하는 것 같았고.
으으. 얄미워.
근도는 이제 슬슬 나가봐야겠다면서 떠났고 나는 카린을 차에 태우고 은 과장님을 보러 갔다.
은 과장님은 내가 카린을 데려갈 거라는 말에 엄청나게 긴장을 한 것 같았고 카린을 검사해 볼 수 있겠는지 미리 설득해 달라고 나한테 부탁을 했었다.
그런 말을 미리 하면 카린이 내 말을 안 들을 것 같아서, 남은 일은 힘으로 제압할 생각을 하고 나는 카린을 그냥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카린은 은 과장님으로부터 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내가 전에 카린에게 해 주었던 선보다 더 많은 정보가 나오지는 않았다. 내가 은 과장님에게 그 얘기를 해주고 딱 그 수준에서 멈춰달라고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카린 역시 전에 나한테 해 줬던 수준의 얘기만 해 주었다.
은 과장님은 카린을 검사했지만 (이 과정에서 카린은 거절을 할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우리 사이에 이미 얘기가 다 됐을 거라고 생각하고서 은 과장님이 너무 자연스럽게 카린을 검사실로 데려가는 바람에 카린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왜 가고 있는 건지도 알지 못한 채 이미 그 일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깥에서 친절하게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별다른 것은 나오지 않았다.
은 과장님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것 외의 것을 발견하지 못했고 내가 앓았던 병에 대한 힌트도 얻지 못했다.
은 과장님은 서운해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고 카린은 자기가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괜히 미안해 하는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잘못 생각한 거겠지.
카린이 고작 그런 일로 죄책감을 가질 리가 없잖아?
그러면서도 우리 새엄마의 앞에서라면 그런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은 과장님은, 상대방이 별로 잘못을 안 했는데도 마구 죄책감이 들게 만들고 은 과장님에게 마구 협조하게 만들고 싶게 하는 뭔가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그게 은 과장님의 절대적인 카리스마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카린이 은 과장님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는 했다.
은 과장님은 뭘 그렇게 멍청하게 보고 있냐고 하다가 아! 라고 하더니 카린에게는 잠시 휴게실에서 커피라도 마시고 있으라고 하고 나를 남겼다. 거기 자판기 커피가 그렇게 맛이 있다며.
세상에 그런 손님 접대가 어디있나.
커피를 자기가 타 주는 것도 아니고 사 주는 것도 아니고, 저어어기 가면 커피 자판기 있으니까 뽑아 마시라고 하면서 자기는 커피 자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 것이 대단한 호의를 베푼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카린이 바로 나가려고 하지 않자 손을 까딱까딱 흔들어 보이면서 안 나가고 뭐하냐는 듯한 제스츄어를 하는 우리 새엄마.
카린을 그렇게 쫓아다녔으면서도 이제는 볼장 다 봤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건지 카린에 대한 흥미가 급속도로 떨어져 버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가장 대단한 사람은 우리 아빠인지도 모른다.
이런 우리 새엄마의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지지 않게 여전히 대단한 매력으로 새엄마를 꽉 잡고 있는 걸 보면.
새엄마는 문을 닫고 와서 앉으라고 하더니 책상 앞에서 공모자처럼 내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야. 임정우. 내 친구 중에. 아니. 친구라고 할 것 까지는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좀 괴짜 최면술사가 있는데 말이야. 학계에서 정식으로 공부를 한 사람은 아니고 뭐라고 해야 되나. 사파라고 해야 되나? 학계에서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최면에 관해서는 세계 최고라고 보이는 사람이 있어. 그 녀석이 한국에 들어왔거든.”
“원래는 외국에 있었어요?”
“응.”
“다행이네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카린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맞춰서 한국에 와 있다는 게 뭔가 운명적인 것 같기도 하고요.”
“무슨 소리야? 9년 전부터 한국에 들어와 있었는데.”
“네? 그럼 한국에 들어왔다고 말을 하시면 안 되죠.”
“어느 부분이 틀렸는데?”
은 과장님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은 느낌.
내쪽에서 잘못한 게 아닌 것 같긴 한데.
아무튼, 계속 말씀을 해 보시라고 했다.
“집도 여기에서 별로 멀지 않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별로 멀지 않다고 해놓고 또 뭐라고 이상한 소리를 할지 몰라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이야. 퇴근 시간에 길이 막히지만 않으면 40분이면 갈 걸? 카린을 데리고 거기에 가 봐. 카린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일을 그 친구가 기억나게 해 줄 수도 있어.”
“그 정도로 대단해요?”
“응. 이쪽 방면으로는 최고라고 했잖아. 그 녀석이 끼는 순간 이 분야의 권위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다 가방 싸고 내려가야 되는 판이라서 다들 평가 절하해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기는 했지만 진짜 실력자는 그 녀석이야. 유일한 메이저 리거라고 해야 할까?”
등장하는 순간 메이저 리그를 마이너 리그로 만들고 그 판을 혼자서 점령해 버릴 사람이라는 건가?
나는 은 과장님의 말에 흥미가 돋았다.
“그런 사람이면 만나기도 쉽지 않겠네요?”
“내가 사람들을 보낼 거라고 하면 만나줄 거야.”
“말해 주실 거예요?”
“응. 오늘 가 볼래? 지금 전화 해 줄까?”
은 과장님이 전화기를 끌어 당기면서 물었다.
“네. 근데 혹시 그 사람도 그럼. 초능력자 비슷한 거예요?”
내가 묻자 은 과장님은 전화를 하려다 말고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작품 후기 ============================
사이트와 주인공의 관계 등에 대해서 풀려고 마련한 장치들이 다크하고 무겁게 느껴지는지 작품에 대한 반응에서 망삘이 느껴지네요. 선작수랑 추천수가 계속 추락하다보니 베스트지수도 계속 떨어지고, 치고 올라오는 신작의 홍수 속에 버티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고 추천수는 실망스런 수준이라 뭔가 잘못 가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주위에서 들리고. 뒷심이 딸리는지도 모르겠고. 제 입장에서 작품에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수익 측면도 큰 고려의 대상이라 몸캠의 스케일은 더 이상 벌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나왔던 걸 회수하고 봉합하면서 아마 완결 수순에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도중에 진지빠는 습관이 이번에도 나와버렸나?ㅎㅎ 쿠폰과 추천, 심지어 서평으로 응원해 주신 분들께 정말 크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