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77화 (27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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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그런가? 그렇게 봐야 되려나? 확실히 일반적이지는 않은데.”

은 과장님이 신중하게 말했다.

“저도 조심해야 될까요?”

내가 물었다.

“글쎄다?”

“어떤 식으로 최면을 걸어요? 막 이러이런 걸 상상해라. 몇을 세면 당신은 최면에 빠진다. 그런 말들을 해요? 그럼 그 사람이 생각하라는 걸 생각하지 않아버리면 최면에 안 걸리는 거 아니예요?”

“아니야. 음악이랑 향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방법은 여러 가지야. 나는 최면에 안 걸렸어. 너도 내 아들이니까 안 걸릴 것 같은데?”

아잇. 심쿵.

우리 엄마는 저렇게 급시에 심장을 어택하고 무안하게 본다니까.

어쨌거나 나는 그 인과관계 없는 격려에 기분이 마구 업된 채로 일어났다.

은 과장님은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었다.

“지금 출발한다고 해 놓을 테니까 다른 데로 새지 말고 바로 가.”

“넵. 여러 가지로 감사해요. 엄마.”

“뭘, 카린한테 기대 많이 했는데 실망이다. 아. 나도 나가서 배웅 해야 되나? 그래도 나 때문에 여기까지 온 사람인데.”

라고는 했지만 갑자기 수술실에서 급하게 은 과장님을 찾는 바람에 은 과장님은 나를 밀치다시피 하면서 달려갔다.

내 옆을 지나가는 은 과장님의 하얀 가운에는 볼펜 자국, 핏 자국, 삶과 치열하게 싸우며 얻어낸 이런 저런 부상 같은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갈게요. 엄마. 수고하세요.”

나는 카린이 다가오는 걸 보고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저런 엄마를 보면 자랑하고 싶은 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괜히 우쭐해진 채 카린에게 최면술사 얘기를 했고 카린은 꼭 가야 되는 거냐면서 입이 댓 자나 나왔다.

엄마가 갔다오라고 했다고 하자 카린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차를 가지고 간 우리는 한 시간 이십 분쯤이 지나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자였고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은 과장님 친구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 그래서 도중에 말을 정정한 거였던 건가? 친구는 아니고 아는 사람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음악도 향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임정우라고 합니다. 은 과장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아. 네. 아드님이시라고. 잘 대해주라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셨어요. 한세영입니다. 그럼 이쪽이 카린이군요.”

한세영은 나와 카린과 순서대로 악수를 했다.

한세영이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뭔가 이상한 기운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그것은 다음 순간 그보다 더 강한 힘에 의해 반격을 받고 다시 흘러나갔다.

한세영은 짧은 순간이기는 했지만 나를 바라보았다.

한세영은 거기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카린의 손을 잡았다.

카린은 한세영과 거의 5초 정도는 손을 잡고 있었던 듯했다.

“많이 걸어 오셨나요? 주차장이 좀 멀죠? 이마에 뭐가 묻었네요.”

한세영은, 분명히 아무 것도 없는 카린의 이마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요즘 여자들이 작업가는 방식인가 하면서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준위한테 배운 습관인 것 같다.

한세영은 우리를 자리에 앉게 했고 카린에게 곧바로 몇 가지를 물었다.

내가 보기에 카린은 이미 약하게 암시에 걸렸는데 한세영은 초조해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장악되지는 않고 바늘에 살짝만 걸려 딸려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지.

한세영은 그 시간 동안 자기가 알아내려고 한 것을 전부 알아내려고 최대한 빠르게 들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한세영이 카린에게 질문하는 것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세영이 카린과 나를 처음 보는 거라면 할 수 없을만한 질문들이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은 과장님이 한세영에게 이미 우리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해 준 상태라는 것을 뒤늦게 추측할 수 있었다.

한세영의 질문에 카린은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한세영이 어떤 특정한 질문을 했을 때, 카린도 나도,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정우씨를 처음 봤을 때 당신이 그를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습니까?”

카린은 초점이 느슨하게 풀린 것 같은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와 찍은 사진이 있었습니다. 십년도 더 된 사진. 나는 그 사진이 왜 나한테 있는지도 몰랐고 나랑 같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는데 임정우를 봤을 때 그가 사진 속 그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맞지 않죠.”

“그럼 그 사람이 임정우씨의 아버지나 친척일 것 같습니까?”

“모르죠. 그건.”

“그 사람이 당신한테 영향을 끼쳤습니까?”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그 후로 만난 적은 없습니까?”

“없습니다.”

"확실히 없는 겁니까?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 건가요?"

"모르겠네요. 기억나지 않는 걸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더이상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을 느꼈습니까? 그립거나 아쉬웠습니까?”

한세영의 질문 하나하나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카린의 대답이 나왔다.

“다행이라는 생각. 이제는 다시 나를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면…. 그를 닮은 임정우씨가 나타났을 때는 불안했습니까?”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나중에 기억이 났습니다. 그 사진을 갖고 있다는 것도 완전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 일이 떠올랐습니까?”

“서랍에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사진을 거기에 둔 사람은 누굽니까?”

“나도 모릅니다. 나는 내가 그 사진을 태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다시 있었습니다.”

“집안일을 돕는 사람들이 한 일인 것 같았습니까?”

“아무도 거기에는 손을 대지 못합니다.”

카린이 말했다. 의심없이 확고한 태도였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했고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한세영은 긴장을 풀라고 카린에게 말했지만 카린이 그 말을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카린. 당신은 그림을 그립니까?”

한세영이 다시 물었다.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을 그릴 때 당신은 어떤 상태입니까?”

“모릅니다. 그 그림을 그린 게 나라는 확신이 들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기절하게 만들고 그 그림을 내 앞에 두고 내 손에 붓을 들려놓고 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까?”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지만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은 나였습니다.”

“당신이 그림을 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습니까? 피곤한가요?”

“깊은 잠에서 막 깬 것처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헷갈립니다. 내가 사람이라는 인식도 없고 살아있다는 인식도 없습니다.”

“당신은 임정우를 돕고 싶습니까?”

한세영이 물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한세영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한세영은 카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내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은데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야 합니까?”

카린이 말했다.

그러면 그렇지.

최면에 걸린 상태라고 하더라도 호락호락하게 나를 도와주고 싶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당신은 당신과 임정우가 모르는 배후 세력에 대항해서 임정우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을 겁니다.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은 나도 그를 도와야겠죠. 그래야 그도 나를 도울 테니까.”

“당신이 가진 능력 때문에 두렵습니까?”

“귀찮습니다.”

“당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잃게 되더라도 그걸 포기하고 싶습니까?”

“그건 생각을 좀 해 봅시다. 뭘 그렇게 극단적으로만 가정을 합니까.”

한세영은 그 후에도 질문을 했지만 카린은 서서히 의식을 되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완전히 눈을 떴고 그 후에는 한세영을 잔뜩 경계했다.

============================ 작품 후기 ============================

따뜻한 말씀들에 모두 감사드립니다.

중요하게 푸쉬해서 얘기를 풀어야 되는 곳에서 제가 슬럼프에 빠져서 진행과 이해에 혼선이 생긴 것 같은데 억지로 써 보려고 해도 일단은 제 기분을 업 시키지 않으면 자꾸 다크다크해지네요. ㅎㅎ

그건 제가 원했던 분위기가 아니라서 오늘은 조금씩만 쓰면서 기분을 업시키는데 주력했습니다.

결말에 이르기 위해서 이 부분이 큰 커브가 되는 부분이라 세밀하게 잘 정리해서 추진력있게 밀어야 되는데

그렇다고 급완결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고 이대로 강행하면 분위기가 훨씬 가라앉은 채 진행이 될 것 같아서

혹시 용납이 되신다면 4부를 열린 결말의 형식으로 조금 일찍 완결을 짓고 몸캠의 휴지기를 가진 후에 5부로 이어 진행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 사이에 잠깐 다른 작품으로 외도를 하거나 아니면 비축분을 쌓거나 할게요.

징징글에 너무 따뜻한 말씀으로 조언들 해 주셔서 제가 방향 잡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고 감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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