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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런데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났다.
차가 한 대 도착했다는 것을 알고 밖으로 나갔을 때 첫 손님들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나는 창문으로 밖을 한 번 보고 그대로 나갔단 말이다.
그런데 거기에서 내리는 사람이 한세영이었다.
“어. 어….”
나는 연상은.
저런 연상까지는 커버를 잘 못하는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커버할 수 있는 나이는 고작 대여섯 살 위 정도까지?
그런데 한세영은 교수님보다도 나이가 많고 그리고, 내가 막 환락에 빠져들고 있을 때 한세영이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도 들고.
처음 몇 걸음은 아주 경쾌하게 달려가다가 다음 걸음부터 갑자기 느려지는 것을 눈치챘는지, 한세영이 웃으면서 차에서 내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멍청한 소리로 물었다.
“나도 그 사이트에 가입돼 있었으니까 알았겠죠?”
한세영이 말했다.
“네. 그렇겠네요.”
내 말에 한세영이 웃었다.
“근데. 그. 저기. 제가 거기에 나이 제한을….”
나는 뒤늦게 그게 생각나서 그걸로 반박을 해 보려고 했다.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잖아요.”
역시나 씨도 안 먹힌다.
“아….네.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급작스러운 예외일 줄은….”
나는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한세영을 마주 바라보았다.
한세영과 같이 있으면 저절로 눈을 피하게 됐다.
한세영의 눈을 보고 있다보면 어느 순간 정신을 뺏기고 홀리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심리학과에 다니는 사람은 왠지 사람 마음을 잘 읽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불필요한 걱정인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최면술사의 눈을 보는 건 왠지 피하고 싶었다.
한세영은 내가 지나치게 자신을 의식한다고 생각했는지 가까이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들어가도 되는 거죠?”
“네? 아. 네.”
나는 한세영이 기분 나빠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슬그머니 손을 빼면서 말했다.
수학여행에 술 싸들고 와서 마시다가 담임한테 걸려도 이렇게까지 긴장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참다못한 한세영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임정우씨한테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거예요. 안된다는 걸 아니까요. 이미 시도해 봤어요. 그런데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안 할 거예요. 알았어요?”
“네? 뭐가요? 최면요? 언제요?”
“임정우씨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나를 거부했잖아요.”
나는 한세영의 집에 내가 처음에 갔을 때 한세영과 손을 잡았을 때 어떤 기운이 나에게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고 생각한 게 내 착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여기에는 왜 왔습니까?”
“임정우씨랑 친해지고 싶어서요.”
한세영이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며 내 어깨에 손을 감으면서 말했다.
나는 한세영을 바라보았고 한세영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다.
한세영이 보여준 것은 자기가 봤던 우리, 나와 카린이었다.
한세영의 집에 방문했던 우리.
나는 한세영에게서 그 정보를 얻어내고 당황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쓸모없는 정보들이 있겠지만 이렇게나 쓸모없는 정보가 또 있을까 싶었다.
한세영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방금 뭘 한 거냐고 물었다.
나는 설명하지 않았다.
한세영이 적어도 카린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최면을 거는 능력을, 외부의 다른 사람이나 다른 힘으로부터 전달받은 겁니까?”
내가 물었다.
한세영은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런 걸 물어요?”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세영은 나를 보더니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 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최면술사들이 하는 것처럼 일부러 그런 걸 따라해 보기도 했고요. 그 사람들이 하는 최면 유도문도 외웠고. 사실 나한테는 그런 게 아무런 필요도 없었어요. 그 절차를 따라서 하면 최면이 더 확실하게 걸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요.”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른 것 같긴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나한테 최면이 걸린 채로 자기가 돌이라고 믿고 보름동안 산 속에서 있기도 했어요. 개미랑 벌한테 물리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면서도요. 산짐승들한테 공격당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죠.”
한세영은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내 머리카락 속에서는 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야말로 카린보다 더 무서운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 시간만큼은 확실히 카린보다 길었다.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은 과장님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아는 사이 아니예요.”
한세영이 웃었다.
"무슨 말입니까? 은 과장님이 그쪽을 소개해 줘서 간 건데요?"
나는 한세영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해서 불쾌해졌다.
“은 과장님한테 진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죠. 진료를 받을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때 최면을 걸었어요. 임정우씨한테 내 얘기를 하도록요. 나는 임정우씨를 만나야 했어요. 왜 그런지는 몰랐지만 임정우씨를 만나서 임정우씨가 묻는 것들에 대답해 줘야 했어요.”
“왜…. 아. 모른다고 했죠.”
한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은 그림을 통해서 나를 찾아냈고 한세영은 나와 만나기 위해서 새엄마를 찾아와 새엄마에게 최면을 걸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은 확실했지만 그 사람들을 나한테 보낸 사람이 누군지는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한세영을 바라보았다.
“나한테 최면을 걸어볼 수 있습니까? 나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게 있을지 모르는데. 내가 협조적으로 굴면 최면을 걸 수도 있는 거죠?”
“장담은 못해요. 안 걸릴 수도 있어요.”
한세영은 갑자기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해보죠. 그리고 그걸 녹화해 줬으면 좋겠어요.”
한세영은 그러려고 온 게 아니었다고 말을 하려는 듯 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더니 알았다고 말했다.
나는 문 앞에, 나를 찾아올 여자들에게 공지 비슷한 것을 써서 붙여 놓았다.
잠시 밖에 다녀올 테니 산책을 하거나 식사를 하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었다.
그것으로써, 당분간은 다른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한세영과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세영은 나를 편하게 눕게 했다.
나는 한세영이 시작하기 전에 카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한세영과 같이 있고 최면 상태에 들어가 보려고 한다면서 십 분이 지나고 나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한세영이 나를 죽인 거라고 생각하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계속 한세영을 보고 있었다.
한세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나를 노려보다가, 해 달라고 한 사람은 당신이라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카린은 일단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성의없는 말투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온 우주에 카린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한세영은 내 앞에 앉았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겠는 듯 망설이다가 정석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한세영의 최면유도문에 따라 나는 점점 편안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은 깊은 평안과 휴식을 얻게 됩니다. 완전히 긴장을 풀며 그 편안한 이완이 두 손까지, 손가락 끝까지 퍼집니다. 이제 숨을 내쉬며 배의 근육을 풀어줍니다.”
한세영이 말했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기만 하고 가만히 있었더니 한세영이 툭 건드렸다.
“천천히 숨을 내쉬어요.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상상하고요.”
“아. 네.”
나는 그때부터 한세영의 말에 더 집중했다.
"이제 두 다리의 근육, 발, 발가락까지 편안한 이완이 퍼집니다. 당신은 이제 온몸의 긴장이 풀린 상태로 완전한 휴식 속에 빠져 있습니다."
나는 발가락과 온몸에 그 기분이 퍼진다고 생각했다.
나른하고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