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93화 (29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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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조직에는 존재하고 있겠지만 정말 그곳에 있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걸 알아내려고 하지 말고 숨 좀 쉬어가면서 해요.”

카린이 말했다.

카린도 키샤장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당황한 것 같기는 했지만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카린은 나하고 같이 보려고 했던 용무가 끝나자 돌아갈 길을 서둘렀다.

가기 전에 카린은 나에게 사바스의 근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바스는 아직 본격적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과 해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사바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은 많이 있다고 말하면서.

“사바스가 좋아서가 아니라, 사바스가 망해버리면 자기들도 같이 망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하는 거긴 하지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멈추지 않고 일어나는 분쟁들.

그것이 사바스를 생존하게 하는 필수적인 영양분들이었다.

분쟁이 생기지 않으면 사바스는 분열을 스스로 조장해서라도 살아갈 길을 만든다고 했다.

나는 사바스가 나에 대해서, 그리고 근도와 내 주위의 사람들에 대해서 잊어주기만을 바라면서 카린의 얘기를 들었다.

***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는 방황을 마음 먹었다.

그러나 대단한 교수님들.

학생이 방황할까봐 방황하지 말라고 과제를 쉬지도 않고 내 주는 교수님들 때문에 방황하겠다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나는 준위를 찾아가 제발 나 좀 살려달라고 했고 준위는 기분 좋게 자기가 미리 해 놓은 과제들을 공유해 주었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라는 말을 열 번도 더 한 것 같았다.

발표 수업에서 우리는 준위의 대활약으로 A플러스를 받았고 그 후에 조를 편성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준위와 패키지로 묶여 다녔다.

학기가 끝나가면서 지방에서 올라온 애들 중 몇은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 같다면서 스트레스를 크게 받았다.

이번에도 기숙사 경쟁률은 높을 것 같다며 어떻게든 기숙사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는 녀석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기숙사마다 사감과 사감보가 있었는데 사감보는 각 단과대학의 조교들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

나는 사감보들이 기숙사생들에게 하는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와 같이 가다가 누군가를 보고 우르르르 달려가서 구십 도로 인사를 하고 아부를 하고 하는 것을 보고서 누군데 그러는 거냐고 물으니 여자 기숙사 사감보라고 했다.

사감보는 꽤 큰 권한을 갖고 있었다.

사생의 생사 여탈권을 가진 게 사감보였다.

사감보에게 잘 보이면 여러 가지 면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혜택이라는 게, 벌점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냥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였다.

벌점을 피할 수도 있는데 벌점을 계속 맞다보면 그 사생은 결국 기숙사를 떠나야 했고 한 사람이 기숙사를 떠나면 기숙사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던 후보생 중에 한 사람이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기숙사생을 뽑는 기간이 아니어도 사감보에 대한 구애는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자 기숙사의 사감보는 나와 나이가 같았다.

군대를 갔다 오지 않고 그대로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으니 내 나이에 조교가 돼 있는 것이다.

그 사감보가 기숙사로 가려면 우리 단대를 통과해서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어서 그랬는지 나하고는 마주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도 나는, 딱히 내 선배인 것도 아니고 나와 접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그게 그 사감보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뻔히 아는 사이인데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하지만 사감보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기숙사생이나,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뿐이지 나에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런데도 사감보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인사를 하지 않는 게 못 마땅한 듯 나를 야리면서 지나가곤 했다.

그러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자꾸 반복이 되다보니 기분이 좋질 않았다.

한 번만 더 야리면서 지나가면 확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뒤통수를 쳐버리겠다고 했더니 내 후배들이 제발 오빠가 참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괜한 불똥이 자기들한테 튈 수도 있다면서.

그런데 보기 싫은 사람은 왜 여기저기에서 그렇게 잘도 마주치게 되는 건지.

학생 식당에 가도, 도서관에 가도, 매점에 가도 잘만 나타났다.

그럴 때 나는 거의 준위와 같이 있었는데 그 사감보가 나를 보고 지나갈 때의 표정은 꼭 헤어진 여자친구가 저주를 하면서 보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결국 참다 못해서 한 번 사감보를 그대로 불렀다.

“저기요.”

사감보는 지나가려다가 그 자리에 딱 서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나 부른 거예요?”

“네. 그런데요.”

“저기요라고 했어요? 엄연히 선밴데?”

“아뇨. 그게 또 그렇지도 않거든요?”

나는 사감보랑 학번도 같았다.

사감보는 자기가 선배라고 한 번 눌러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걸로 안 되자 어깨를 딱 펴고 나를 노려보았다.

저 여자 평상시의 인상이 저런가 하면서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준위는 누군데 그러냐고 할 뿐 딱히 우리 사이에 나서서 중재를 하려거나 하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준위는 천상 연극 배우라고 생각되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몇 시간이건 그 사람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

아마도 사람들의 표정이나 감정 변화, 동작을 보고 익히는 중인 것 같았다.

그런 걸 잘 알아두면 자기가 나중에 혹시 연극을 다시 할 기회가 있을 때 캐릭터에 그런 것들을 입혀서 활용할 수 있지 않겠냐는 거다.

만약에 내가 18대 1 정도로 싸움이 붙고 상대가 칼이나 깨진 병조각을 휘두른다고 해도 준위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서 우리 싸움을 그대로 구경만 하고 있을 애였다.

내가 준위를 바라보았더니, 준위는 어서 싸우지 뭐 하고 있냐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사감보에게, 사람 그딴 식으로 야리고 다니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댁한테 잘못한 거라고 있냐고 하면서.

사감보는 감히 자기한테 그렇게 말을 한 거냐는 듯이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착각한 겁니까? 그쪽은 나를 그런 식으로 본 적이 없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한 거냐고요.”

내가 물었다.

“아뇨? 잘 본 거예요.”

당돌하네.

“그럼 왜 사람을 그딴 식으로 봅니까? 한 두 번도 아니고 매번. 사람 기분 나쁘게.”

“그쪽이 마음에 안 들어서요. 왜요?”

“뭐?”

아, 씹할. 이건 신종 싸이콘가.

누가 관심가져 달라고 한 적이 있었나.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그렇다고 여자를 칠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성질을 죽이기로 했다.

“내가. 아는 애들은 다 알지만 성격이 별로 안 좋거든요? 여자고 뭐고 계속 그딴 식으로 굴다가 언제 한 번 제대로 걸리면 그때는 진짜 드러운 꼴 당할 수 있으니까 눈알 간수좀 잘 해요. 돌아가려는 것 같으면 손가락으로 꽉 눌러서 못 돌아가게를 하든지.”

“오오오오.”

준위가 옆에서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우리 학과 애들이 무더기 기숙사 탈락 사건이 발생해 버렸다.

원래 우리 학과 애들은 타대보다 많은 정원이 기숙사 자리를 할당 받아 왔었는데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우는 애들한테 할 말이 없었다.

준위는 그런 애들 앞에서, 자기는 알 것도 같다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오빠가 성질 못 죽여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는 듯이.

준위도 기숙사에 떨어졌지만 준위는 아까울 것도 없이 아주 널널한 점수 차이로 떨어졌기 때문에 억울하고 자시고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기숙사에서 살다가 나가서 하숙이나 자취를 하려고 하면 돈이 얼마나 깨지는지 아냐면서 준위는 내가 잘못했던 거라고 말했다.

“야. 그게 어떻게 내 잘못이야. 걔 잘못이지. 그리고 내가 잘못하는 것 같았으면 그때 말리든가.”

“나는 더 재미있어질 줄 알았죠.”

준위가 그렇게 말을 하면 나도 할 말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4부 완결만 보고 달렸더니 어느덧 곧 300회라고.

기념으로 새 표지를 만들어주시겠다는 존잘 지인님.

바라는 컨셉이 있으면 알려달라 하시네요.

100프로 반영된다고 장담은 못하지만.

이러다 299회에서 똑 끝나버리면 ( ..)

그래도 표지 물어내라고는 안 하시겠지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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