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295화 (29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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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한쪽에는 여자가, 한쪽에는 남자가 원색의 유화풍으로 프린팅되어 있었는데 걷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슬퍼하기만 해야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신발을 벗어서 나란히 붙여 놨을 때에야 비로소 둘은 같이 있게 됐다.

수영이 만든 스트랩 힐의 남자 모델이 나인 것 같다는 말은 비단 연우에게서만 들은 것이 아니었다.

핫 걸은 수영에게 직접 추궁을 했다.

그러나 수영은 그냥 웃기만 했을 뿐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반면에 여자들의 그림은 조금씩 달랐다.

남자는 똑같고 여자만 다른데 그게 은근히 나를 디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우는 수영에게서 구두를 직접 선물받았는데 그걸 좋아하면서 자주 신었다.

그리고 내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하면 과감하게, 내가 그려져 있는 구두를 다른 발로 밟았다.

그러면 그때는 굉장히 희한한 의미로 치욕스러워진다.

나는 수영의 브랜드 론칭을 축하해 주고 싶었다.

내 힘으로, 그리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영은 얼마든지 쉽게 성공에 이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수영은 그것을 자기 힘으로 이루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수영은 류아의 스트랩 힐이 아니라 수영의 스트랩 힐로 불리게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괜히 미안해졌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이 빠른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서 그들이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랐고 좀 더 높은 곳, 좀 더 많은 사람들, 더 수준 있는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더 좋은 것을 빠르게 많이 배우기를 바랐다.

그러나 수영의 말을 듣고 보니, 다른 사람의 버프를 받아서가 아니라 자기 본연의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은 내가 너무 미안해 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오히려 나에게 사과를 했다.

자기는 정말로 나에게 고맙고,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의 방법대로 해서 나를 놀라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모든 선물을 오빠가 준비해 주면 나는 오빠를 놀라게 해 줄 방법이 없잖아요. 작은 거라도 내가 준비해서 오빠한테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미안한 마음을 쉽게 거두지 못하는 나에게 수영이 한 말이었다.

나는 수영이 그런 생각을 해 주고 있다는 게 기뻤다.

하지만 수영이 수영제화를 만들었을 때 수영제화에 투자하는 것까지 막지는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나는 지분의 80퍼센트를 가졌고 대대적인 지원을 했다.

그때에는 수영도 거부하지 못했다.

정스 짐과 수영제화는 파트너십을 맺었다.

수영은 패션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도시들을 찾아다니며 그 도시의 백화점과 유명한 편집샵에 수영제화의 신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발품을 팔면서 홍보를 하고 다녔다.

솔직히 나는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수영의 구두가 물론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고.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던 것이다.

이미 류아의 스트랩 힐로 한 번 유명세를 치르기는 했지만 그게 류아의 후광을 업고서 나타난 반짝 인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혼자서 전전긍긍했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닌데 수영이 너무 준비되지 않은 채 혹독한 세상에서 신고식을 치르게 되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수영은 보란 듯이 그 일들을 이루어냈다.

순전히 자기 자신의 실력으로 이루어낸 거였기 때문에 고맙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훨씬 더 컸다.

어떤 전문가가 수영의 디자인에 대해서 한 말이 있었다.

수영의 디자인에서는 관습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하면서 그 사람은 단순한 디자인에서도 수영의 강한 에너지가 휘몰아치는 게 느껴진다고 했다.

패션과 디자인에 대해서 문외한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이해됐다.

수영의 디자인은 과감했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뒷감당을 하겠다는 걱정 같은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의 백화점 엠디들은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소품의 크기를 조금씩 조절하자거나 재질을 바꾸자거나 색깔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보자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들의 의견을 피력해 가면서 수영에게 적극적으로 굴었다.

수영은 샘플로 가지고 갔던 물건들을 강탈당하다시피 모두 순식간에 팔아버리고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주문받은 것을 만들기 위해서 즉각 공장을 돌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수영은 그것을 자기가 이루어낼 일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매일 매일 하나 이상의 디자인을 새로 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수영은 그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고 남의 쇼에도 열심히 쫓아 다녔다.

수영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서 은호 형이 내렸던 처방은 주효했다.

패션지 어시스턴트로 일하면서 수영의 감각과 안목은 눈에 띌 정도로 성장했고 두터운 인맥 형성에도 도움이 되었다.

수영은 자기와 코드가 맞는 디자이너들의 쇼에 자신의 구두를 협찬하기도 했다.

쥬얼리 디자이너, 의류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패션의 세계는 정말로 넓다는 것을 수영 때문에 알게 되었다.

수영이 너무 많은 일 때문에 지친 것 같은데 오빠가 수영이 좀 찾아가서 맛있는 것도 사 주고 하는 게 어떻겠냐고 연우가 나에게 말했을 때, 나는 연우의 말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가 해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 모습을 보고 연우가 웃더니 내 등을 탁 때렸다.

“왜 이렇게 약한 모습 보여요? 오빠답지 않게? 평소에는 아주 소신에 넘쳐있더니.”

“그래? 그럼…. 응?”

“으이구!”

연우는 내 등을 한 대 더 때렸다.

그러면 그건 수영과의 관계를 허락해 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나는 연우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봤다.

연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기 용무를 봤다.

‘그렇단 말이지?’

다음날 수영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수영은 쥬얼리 디자이너의 트렁크 쇼에 가야 한다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 오빠가 가서 도와줄까?”

“오빠가요? 오빠가 와서 뭐하게요?”

“그러게. 그런데 가면 무슨 일 해야 되는데?”

“뭐. 내 쇼도 아니고 우리 신발을 협찬한 것 뿐이라서 내가 바쁠 건 딱히 없어요.”

“그래? 그럼 오빠도 가서 같이 놀까?”

“왜 그래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왜. 오빠가 간다니까 싫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뭔가 수상하잖아요. 나한테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아니면 연우 언니한테? 나한테 잘못한 건 없으니까 연우 언니한테 잘못한 게 있나보네. 그래서 나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는 거죠? 대신 잘 말해서 화 풀어지게 해 달라고?”

수영이 말했다.

듣고보니 그럴듯하기는 했다.

“아니거든!”

“그럼요? 오빠가 아무 이유없이 이렇게 나올 사람이 아닌데. 아아. 지영 선배구나. 지영 선배한테 단단히 걸린 거죠? 뭐하다 걸렸어요? 노상방뇨? 아니면 공연음란 같은 거? 아무래도 오빠하고는 뒤쪽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고.”

“아니라고. 이 인간아!!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 간다.”

“알았어요. 와요. 멋지게 하고 와야돼요. 안 그러면 안 들여보내줄 거예요.”

수영이 그렇게 말하고 깔깔 웃어댔다.

“대충 드레스 코드 알려줘.”

“오빠가 갖고 있는 수트는 어떤 거라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래. 어디로 가야될지 알려줘. 지금 출발하면 돼?”

“네. 근데 진짜 왜 그래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끝까지 의심을 버리지 않는 수영을 보면서 나는 혼자서 웃음을 터뜨렸다.

술에 취해 길가에 뻗어있던 녀석을 데려와서 욕조에서 씻겨주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자기 브랜드도 만들고 어엿한 회사의 사장이 됐다니.

업어키운 동생의 성공을 보는 것만큼이나 흐뭇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그곳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그곳에서 수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수영이 내 차지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세계에서 수영은 어느덧 유명인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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