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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누구도 자의로 몸캠 영상 사이트에 영상을 올린 적은 없었지만 그 영상은 사이트에 등록이 됐고 나와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역시나 해킹인 건가?’
하지만 아무리 해킹을 한 거라고 하더라도 나하고 만남을 유도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키샤장이라면.
만약 키샤장이라면 그 일을 할 수가 있을까?
해킹을 하고. 내가 어떤 영상을 봤는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 사람을 내 앞에 나타나게 하고?
세영 누나 정도로만 인식 제어가 가능하다고 해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그러면 히사에를 죽게 한 사람도 키샤장이었을까?
왜?
무슨 이유로?
거기에서 갑자기 생각이 막혔다.
그 전 단계까지는 할 수도 있는 일일 것 같았지만 히사에부터는?
몸캠 영상 사이트에 셸터 아이템을 띄운 이후부터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만약에 몸캠 영상 사이트 운영자가 키샤장이라면 키샤장은 또 누구고?
아무래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봐야 하는 건가?
아니면 큰아버지라도?
그러고보니 큰어머니가 아들을 낳았었다고 했지.
그 애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지?
나하고 나이도 같겠는데?
혹시 최근도? 이렇게 되면 막장 중의 막장이 완성될 텐데.
그 생각을 하고 웃음을 터뜨리면서 고개를 들었더니 수영이 나를 보고 있다가 마주 웃었다.
내가 왜 웃었는지도 모르고.
아마 스마트폰에서 재미있는 짤이라도 찾았다고 생각한 모양이겠지.
나는 그 사람들을 찾는 일을 핫 걸에게 부탁을 할까 하다가 그렇게 하면 키샤장이 쉽게 내 움직임을 알게 되겠다고 생가했다.
그러다가 다음 순간에 든 생각은, 내가 아무리 키샤장 눈을 피하려고 해도 이미 키샤장은 전부 알게 돼 있다는 생각이었다.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만 빙빙 도는 거라면 힘들게 체력을 낭비하지 말고 그냥 주저 앉아 있어 버릴까?
불쑥 불쑥 떠오르는 생각으로 머릿속은 터지기 직전이었고 결국 나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핫 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호?”
무슨 전화를 그렇게 받나.
어쨌거나 핫 걸이 내 전화를 받으면서 낸 소리는 분명히 그거였다.
“부탁할 게 있어요. 몇 사람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줬으면 해요. 가능하다면. 가능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키샤장은 모르게 했으면 좋겠고요.”
"음. 잘 아네요. 대장 모르게 하는 건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했죠? 네. 가능하지 않을 거예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무슨 일인데요? 아니. 누군데요? 내가 알아봐야 할 사람이?”
“내 할아버지랑 큰아버지. 그리고 내 사촌 동생요.”
“왜요? 안 하던 친족회라도 하려고요? 그보다 임정우씨 아버지는….”
“네. 내가 찾으려는 분들은 내 친아버지의 가족들이예요. 이름은 톡으로 보내줄게요.”
“아…. 혹시 이제와서 핏줄이 끌려서 그러는 거예요?”
핫 걸이 갑자기 왕성한 호기심을 보였다.
“그냥 알아봐주기나 해요.”
“넵. 알아모셔야죠.”
“얼마나 걸릴까요?”
“어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기본적인 정보는 10분 안에 다 나올 거예요. 거기에서 좀 더 파고든 내용을 원하면 시간이 좀 더 걸리기는 하겠지만. 자세한 걸 알려면 잠복이랑 탐문도 하는 게 확실하니까요.”
“…그것까지 해 줄 수 있어요?”
“당연히 해 줄 수 있죠.”
김 경장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핫 걸을 써 먹을 일이 있으면 충분히 써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후로는 시간이 정말로 더디게 갔다.
그냥 핫 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서 알아볼 필요가 없다고 말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야말로 내 진짜 혈육이 누군지를 알게 되는 건데 지금 내 기분이 어떤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 것 같았다.
그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가 됐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엄마를 보고, 믿을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린 걸 보면 바보들은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됐지, 뭐.
할아버지나 큰아버지를 만나게 된다고 해도 기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존재를 알지 못했던 사촌을 만나게 된다면 좀 신기할 것 같기는 했다.
만약 키샤장이나, 몸캠 영상 사이트를 만든 사람이 할아버지나 큰아버지라면 그 녀석도 나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혹시 그 녀석한테 직접 시험해보는 건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나한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번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이 생각 저 생각이 계속 연쇄적으로 꼬리를 물며 떠오르면서 걷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카린과 나한테는 비슷한 능력이 나타나면서도 능력이 나타난 시기에 차이가 컸다.
세영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된 건지, 그것도 희한했다.
우선 한 사람 한 사람씩 시험삼아서 해 본 건가?
그렇게 밖에서 서성거리는 동안 핫 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느 정도는 윤곽이 나오는데. 만나서 전해들을래요? 아니면 모아진 정보를 먼저 알려줄까요? 지금 알려주는 건 그냥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이라서 왜곡된 정보도 끼어 있을 수 있어요. 정확한 걸 알고 싶으면 사흘 정도 기다리는 게 좋고요.”
“그럼…. 기다릴게요.”
보다 진실에 가까운 정보를 듣고 싶어서라기보다 어쩌면 나는 진실을 빨리 알게 되는 게 무서워서 그렇게 한 발 뒤로 물러선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핫 걸이라면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았을 것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서 수영을 기다렸다.
수영은 사람들 사이에서 도저히 그날 빠져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기에 나는 그냥 먼저 돌아가려고 했다.
괜히 어려운 결정을 내리도록 결정을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영이 먼저 사람들을 뚫고 나에게 다가왔다.
“오래 기다렸죠? 가요. 오빠.”
“왜? 같이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이렇게 그냥 가 버려도 되는 거야? 아직 다 끝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나머지 일들은 다른 사람한테 맡겼어요."
"그래도. 네가 맡은 건 책임져야지."
"나랑 같이 가려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그럼 가요. 기다려 준 것만 해도 황송한데.”
수영은 나를 오래 기다리게 한 게 못내 미안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네가 빠지면 안 될 자리인 것 같은데. 나하고는 나중에 다시 보지, 뭐. 내가 조만간 연락할게.”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사람들이랑 같이 갈래요? 모델들이랑 같이 뒷풀이 할 것 같은데.”
“오늘 오빠 기분이 별로라서 좀 더티하게 놀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네가 데려간 사람이 진상짓 하면 이 바닥에서 네 소문 안 좋게 나는 거 아니냐?”
“아이구. 그러시려고요?”
수영이 웃었다.
“뭐야. 진짜 그러자고?”
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잘 생긴 남자친구 있다고 자랑도 하고 싶고. 그동안 쓸데없는 똥파리들이 너무 많이 기웃거려서요.”
“설마. 못생긴 김수영한테? 눈이 삐었대?”
“김수영 아직 안 죽었거든요?!”
수영이 입술을 쭉 내밀고 말했다.
“너보다 예쁜 여자들 무진장 많아서 내가 눈 돌아가면 어쩌려고 그러냐?”
“왜 안 그러겠어요. 내가 오빠를 몰라요?”
하긴.
수영이야말로 내 첫 여자나 마찬가질 텐데 수영이가 모르면 누가 알겠나.
“으으으. 오늘은 진짜. 취하도록 마시고 싶다.”
나는 복잡한 머리 때문에 이마를 손으로 짚고 말했다.
“마셔요. 내가 옆에 있으니까 걱정말고 마셔요, 오빠.”
수영은 내가 하는 말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모를 테니까.
“오빠가 술 마시고 길거리에 앉아있으면 수영이가 데려다 주는 거야?”
“네. 그럴게요.”
수영도 지난 일을 떠올리듯이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다.
"오빠가 지금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를 거야. 이렇게 잘 해 줘서 정말 고맙고 자랑스럽다."
내 직격 칭찬을 듣고 수영이 얼굴을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