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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그래. 같이 가자.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
“아니면 장소가 어딘지 물어봐서 우리 먼저 거기로 가도 되고요.”
“그러지 말고. 나는 먼저 가서 기다릴 테니까 너는 천천히 마치고 그쪽으로 와. 그러면 되잖아.”
“그럴래요?”
수영은 그제야 안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수영의 뺨을 한 번 쓰다듬어 주고 힘내라고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오늘 멋있었어. 김수영. 오늘 쇼를 연 디자이너가 엄청 멍청한 것 같더라. 네 신발을 협찬받는 바람에 사람들이 신발만 보느라고 쥬얼리에는 눈도 안 주더라.”
수영은 크큭거리고 웃으면서 나를 두고 돌아갔다.
나는 가만히 한숨을 쉬고 수영이 말해준 장소로 옮겼다.
트렁크 쇼 뒷풀이를 기다리며 아직은 조용한 자리에 앉아서 일행이 도착할 동안 혼자서 의자를 데우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게 누구야? 설마.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는데. 정우씨 아니예요?”
유재경이었다.
그 자리에 다른 누구와 마주친 것보다도 더 기뻤다.
나는 서울에 올라온 후에도 유재경이 가끔 떠올라서 유재경을 보기 위해 다시 수목원 현장을 한 번 다시 갈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재경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여기에 있어요?”
재경이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의자에 앉으려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일행 있어요?”
“어. 아직은 아니예요. 오려면 아직 멀었어요. 쥬얼리 트렁크쇼 뒷풀이를 여기에서 한다고.”
“어머. 그런 거에도 관심 있어요?”
그러면서 재경은 내가 거기에 두었던 가방을 옆으로 옮기면서 앉았다.
자주 본 얼굴도 아닌데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말없이 재경을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어요.”
작업용 멘트도 아니었고. 내 진심이었고 사실이었다.
재경이 웃으면서 자기도 그랬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웬일이예요? 일 전부 끝났어요?”
“아아.”
재경이 웃었다.
“차출됐어요. 조금 더 큰 현장이고 제가 꼭 배워보고 싶었던 일이어서. 그리고 수목원은. 제가 빠지는 편이 더 잘 돌아갈 것 같기도 하고요. 정우씨랑 모르는 사이였으면 모르지만 이제 아는 사인데, 아는 사람 수목원을 내가 나서서 망칠 수는 없잖아요.”
“내 수목원도 아닌데 뭘요. 그냥 망치지."
"에에?"
"근데 방금 그 말. 겸손한 척 하는 거예요?”
“아뇨.”
재경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사람이 마음에 드니까 별 허접한 소리를 해도 그냥 다 재미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내가 물었다.
“미국요. 친척이 거기에서 이것저것 운영하는데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싶은가봐요. 근데 거기 사람들 데리고는 일을 진행을 못하겠대요. 그 사람들 일하는 거 보고 있으려면 속이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다고요. 일은 진짜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데 언어가 안 돼서 그렇다고, 나한테 와서 현장 좀 맡아주면 안 되겠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요?”
“네. 그건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여기는 막. 뚝딱뚝딱하고 올라가잖아요. 근데 거긴. 어휴. 내가 봐도 답답하긴 하더라고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그냥, 타의로 꽉 묶여 버리는 거니까.”
“그럼 오래 걸리는 일이겠네요?”
“몇 달은 아마 있게 될 거예요. 거의 6개월은.”
“아쉽게 됐는데요?”
“놀러와요.”
재경이 말하면서 팔을 앞으로 뻗더니 두 손을 내 손 위에 얹었다.
그래놓고는 자기도 자기가 그랬다는 게 놀라웠는지 손을 빼려고 했다.
나는 재경이 손을 빼기 전에 재경의 손을 잡았다.
“갈게요. 보러 갈게요.”
내가 말했다.
“…….”
재경은 얼굴을 붉히며 어색한 듯 앉아 있었다.
“가면. 언제 떠나요?”
“떠나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좀 있어요. 2주 정도?”
“가기 전에 한 번 만날래요?”
“좋아요. 전에 잘 얻어먹었으니까 갚을 기회를 한 번 줘야죠. 나한테도.”
재경이 금방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나한테 붙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
그러고는 그 손으로 턱을 받치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재경이 그런 것처럼 턱을 받치고 재경을 바라보았다.
“재경씨 생각 많이 했는데.”
“무슨 생각요? 그런데 왜 연락도 안 했어요?”
“그럼 안 될 것 같아서요.”
“치. 내 생각을 했다는 게 거짓말이겠죠.”
재경이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말했다.
“아닌데. 재경씨는 나 안 보고 싶었습니까?”
“보고. 싶었죠.”
“근데 왜 연락 안 했어요?”
“갑자기 그 일이 생기면서 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인수 인계하는 것도 그렇고 미국에 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고.”
“미국 어디에요?”
“뉴욕요.”
“뉴욕? 거기는 내 구역이잖아요.”
나는 정말로 반가워서 약간 큰 소리로 말했다.
“잘 알아요?”
“리얼 그릴이. 잘 아는 분이 하는 곳이라서요.”
“어머. 맨하탄의 그 리얼 그릴요?”
재경의 눈이 반짝였다.
“세상에. 거기에서 한끼 식사를 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데. 돈만 있다고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예약 자체가 어렵다던데요. 한 달 전에는 미리 해야 할 수 있다고. 어머. 말도 안돼. 그럼 나도 정우씨 이름 대면 쉽게 예약하고 그럴 수 있는 거예요?”
재경은 정말 놀랐는지, 숨도 안 쉬고 말을 쏟아냈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언제든지 전화만 해요. 재경씨를 위한 테이블은 항상 준비되게 해 놓을게요.”
“정말요?”
“어…. 현지 사정에 따라서 안 될 때도 있기는 하겠지만.”
너무 믿고 기대를 하는 것 같아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라운지 바에도 꼭 가 봐요. 베니타가 만든 ‘저스틴의 소중이’라는 칵테일도 꼭 마셔보고요.”
나는 베니타의 칵테일이 생각나서 말해주었다.
“어머. 그런 게 있어요? 정말 많이 아시나보다. 자주 갔어요?”
“미국에 있는 동안은 거기에서 살다시피 했죠. 가장 친한 친구가 거기 수석 셰프였어요. 지금은 사정이 있어서 그만뒀지만.”
“어머. 놀라운 소식의 연속이네요. 정우씨랑 같이 있으면 지루할 틈이 없겠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네. 정우씨를 모르고 이 얘기를 들었으면 말도 안 되는 허풍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재경이 말하더니, 자기가 너무 혼자서 들떠버렸다고 생각했는지 스스로 쿨 다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런 재경을 재미있어 하며 바라보았다.
“자주 생각났어요.”
내가 말하자 재경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가요?”
“얼굴. 처음에 봤을 때의 그 얼굴. 그리고 나중에. 단둘이 있게 됐을 때 보게 된 몸도. 부드러운 피부랑 탄력이랑.”
나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재경을 바라보다가 손을 달라는 듯이 내 손을 내밀었다.
재경은 자기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나는 재경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부드러운 손등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그날의 일들이 떠오르면서 몸에 흥분감이 돌았다.
“키스랑. 숨소리랑. 신음이랑. 냄새랑. 소리. 서로 섞이고 부딪치면서 났던. 음란한.”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내 앞에 앉은 재경도 이제 몸을 내 쪽으로 가까이 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을만한 상황이었다.
재경은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숙였다.
“일행이 있어서….”
재경이 말했다.
“그래요.”
나는 재경의 손을 놔 주었다.
“대학 동창들인데. 여자 동창들요. 세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무리가 있다면 바로 여자 동창들일 거거든요.”
재경이 조그맣게 말하면서 웃었다.
“당분간 호텔에 머무를 건데.”
재경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재경은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의 이름과 방번호를 알려주었다.
“가기 전에 전화할게요.”
말을 하면서도 수영과의 자리가 언제쯤 끝나게 될지 몰라서 약간 조심스러웠는데 재경이 먼저 말했다.
“아마 오늘은 안 될 거예요. 어쩌다보니 좋은 방에 투숙하게 됐는데 애들이 같이 가겠대요. 언제 그런 방에서 자겠냐면서. 친구 하나가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오늘 제대로 놀아보겠다고 하고 있거든요.”
다행이다...
============================ 작품 후기 ============================
아마 10회 지나지 않아 끝이 날듯하군요.
4부를 열린 엔딩으로 마감하면서 일단 완결관으로 옮겨놓고 2, 3주는 쉬면서 퍼블리싱 계약된 작품 마무리와 천천히 신작도 쓰다가 몸캠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끝나고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성격 좋다고 생각하거나 호구로 보이는지 요며칠 거지같은 댓글이 막 올라오네요? 반말은 기본에 작가가 쓰레기 새끼라느니. 그런 인간들은 회차마다 꾸준히도 달아요. 그냥 지들 인생 살지.
불량이웃 등록을 하기는 했지만 그 코멘트를 안 본 눈을 어디 가서 살 수도 없고. 근데 작품에 애정가진 분들의 격려보다 그런 말들이 잔상이 더 오래 남아서 문제입니다. 그냥 4부 마감될 때 그냥 끝내버리자 싶은 생각이 들고.
현재로서는 몸캠의 차후 진행에 대해서 확답을 드리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단 며칠 사이에 4부 마감하고 완결관으로 가는 건 확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