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02화 (30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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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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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거의 3, 4분 정도 계속해서 본 것 같았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전화를 걸었을 때 전원이 꺼져있다는 음성을 들으면서 한편으로 안도한 것 같기도 했다.

큰아버지에게 전화를 해 볼까 하다가 나는 큰아버지가 일한다는 곳으로 직접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처음에는 내 차를 가져갈 생각이었지만 도중에 마음을 바꾸고 후배 중에 중고 소형차를 가지고 다니는 녀석에게서 차를 빌렸다.

옷도 매장을 지나다가 길 앞에 걸어놓고 파는 7천원짜리 셔츠와 만원짜리 바지를 사서 입었다.

괜히 내 재력을 과시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돈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애쓰는 걸 보면 역겨움을 견디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진해는 나하고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없던 도시였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고 내 아버지가 자란 곳이 그곳이었다.

차 안에서 내 심경은 엄청나게 복잡했다.

내려가면서 나는 결국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착한 사람'이라는 건 없다고.

그저. 나에게 잘해 준 사람만 있을 뿐이라고.

나에게 잘해 준 사람이라고 전부 착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라고 전부 나쁜 사람도 아니고.

그냥 나한테 잘해준 사람을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 뿐인 거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만명을 죽인 사람이 나에게 호감을 갖고 나한테 친절을 베푼다고 해서 그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하게 되겠지.

지금 할아버지와 큰아버지에게 화가 나 있고 서운한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들이 나쁘다고 할 수만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일단은, 왜 그랬는지 알게 되기까지는 평가를 보류하자고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한 것이다.

엄마를 미워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는데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까지 미워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게 생각을 하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나에게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편견없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사촌동생 민 현 뿐이었다.

나는 도중에 휴게소에서 차를 세우고 근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거리가 있는 사람에게 내 문제를 털어놓고 싶었다.

내 얘기를 듣고 나를 동정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근도는 내 전화를 받고 지금 너무 바쁘다고 말했지만 일 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쁘면 나중에 해도 된다고 말하자 네 목소리가 그런 목소리가 아니라면서 말을 하라고 했다.

일은 어쩌고 그러냐고 하자, 믿을 수 있는 사람한테 맡겼으니까 괜찮다면서 나를 재촉했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사촌동생에 대해서 말했다.

내가 엄마와 함께 버림을 받은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그들이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고 내가 찾아낸 것이며 지금 내가 그들을 만나러 가고 있는 거기는 했지만 그 부분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지 몰라서 그냥 대충 그렇게 말을 했다.

근도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을 때 근도는,

“네가 그런 목소리로 전화를 했을 때 나한테 레시피를 물어보려고 그런 건 아니라는 정도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 얘기일 줄은 몰랐다.”

라고 말했다.

“너는 뭐가 항상 그렇게 다이나믹하냐?”

근도에게서 나온 다음 말이었다.

“그래. 그래서 미안하다, 인마.”

나는 얼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뭐. 어쩌겠냐.”

근도가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무슨 반응이 이따위냐 싶었지만 갑자기 웃음이 나오면서 그 말이 받아들여졌다.

그러게. 뭐. 어쩌겠나.

“고맙다.”

나는 웃음이 나오던 그대로 말했다.

“뭐가? 다… 된 거냐? 조금 풀렸어?”

오히려 근도가 얼떨떨해 하며 되물었다. 대충 휘두른 방망이에 공이 날아가 홈런이 돼 버린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따위로 말해놓고 풀리길 기대했다고?”

“아니. 그건 아닌데. 그래도 임정우. 어…. 혹시 너를 이제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되냐?”

“무슨 이름? 아아. 아니. 그냥 계속 임정우라고 기억해줘.”

이제 나는 민정우고 근도도 그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물은 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민정우라고 불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건 지금까지 내 영혼의 버팀목이 돼 준 아빠를 포기하는 일이 되는 것 같아서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 임정우. 뭐. 그래. 그렇다, 나는. 대단한 말로 위로를 해 주고 싶기는 한데, 네가 옆에 있으면 달달한 걸 해 먹일 수는 있겠는데 나는 말재주는 없다. 잘 내려갔다가 조심히 올라가.”

“…….”

“…….”

“그래…. 알았다.”

“그래. 올라가면 올라갔다고 전화해라?”

근도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으려는 듯 말했다.

“응.”

무슨 통화가 이런가 싶기도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잔뜩 어질러져있던 방의 쓰레기가 한 곳으로 잘 모아진 것 같은 느낌?

그런 기분이 들었다.

별 것 아니었지만 위로가 되었다.

그저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그 후로는 한 번도 쉬지 않고 핫 걸이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

큰아버지가 한다는 가게는 생각보다 더 작았고 가서 보니, 그냥 큰아버지 혼자서 운영하는 조그만 과일가게였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규모에 비해서 가게는 잘 되는 것 같았고 큰아버지는 손님에게서 주소를 받아적고 있었다.

배달도 해 주는 모양이다.

하긴. 과일은 꽤 무거우니까.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손님들이 옆에 줄을 섰다.

방금 전에 사갔는데 가족들이 먹어보고 맛있다면서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고, 물건 남아있을 때 빨리 가서 더 사오라고 했다며 팍팍 담아달라고 말했다.

신기하게 그런 사람이 내 앞에 둘이나 있었고 큰아버지는 (사진을 봐서도 알았지만 사진을 미리 보지 않았어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하고 정말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오늘 들어온 게 당도가 아주 좋다면서 많이 사가도 후회 안할 거라고 장담을 했다.

원래 그렇게 장사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물건이 좋은 게 없는 날이면 아예 문을 닫고, 좋은 물건이 있을 때만 그 물건을 받아다가 사람들한테 팔고.

한쪽에는 상자가 있었는데 흠 나거나 못 생긴 과일들을 따로 빼둔 상자였다.

그곳에 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사는 과일이 맛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내가 그곳에 도착하고 나서 십 분은 족히 지난 후에야 고개를 들어 나를 발견했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대로 나를 보고만 있었다.

큰아버지의 눈이 부풀어 올랐다.

눈물이 순식간에 고이는 것이 보였다.

큰아버지는 거침없이 나를 향해 달려왔고,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던 나를 그대로 안아버렸다.

“형진이가 온 것 같다. 형진이가 살아서 다시 온 것 같아!”

으어어어 하고 큰아버지는 눈물을 터뜨렸다.

아버지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누군가에 의해서 아직 기억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어느새 나도 큰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아직 팔 물건들이 많아서 걱정을 했더니 이건 나한테 다 줄 테니까 가져가서 주위사람들이랑 같이 먹으라고 했다.

물건이 아주 달고 맛있다는, 습관적인 것 같은 멘트도 따라 나왔다.

내가 웃었더니, ‘내가 그렇게 말하면 정말 그런 거다. 아무 과일에나 그런 말 안 해.’ 라고 말했다.

“네. 죄송해요.”

프라이드가 대단했고 그 모습이 왠지 좋게 보였다.

“네 차냐?”

큰아버지는 내가 타고 온 차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럼 나도 태워다줘라.”

큰아버지는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그러면서 가게 문을 서둘러 닫고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고는 몇 번을 자기 쪽으로 일부러 당기면서 자식, 자식하면서 나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려고 했다.

어색했지만 나는 그대로 있어 주었다.

아직 들어야 할 말이 많았지만 시간은 충분하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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