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03화 (30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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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너…. 뭐라고 불렸냐, 그동안? 뭐라고 불러야 돼?”

큰아버지가 물었다.

“임정우요.”

“정우. 이름은 다행히 그걸로 계속 썼나보네. 너는 민정우다.”

“그런 말씀하실 입장은 아니잖아요.”

나는 큰아버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큰아버지는 잠시 말이 없더니 묵묵히 조수석에 올랐다.

“너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형진이한테도 미안하고. 그런데…. 너한테 뭐라고 설명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희 엄마하고 도저히 계속해서 엮일 수가 없었어. 무섭더라. 너를 데리고서 무슨 짓을 더할지 알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네 엄마에 대해서 이런 말 하는 거. 듣는 게 불편할 거다. 그래. 너를 못 지킨 건 우리 탓이고. 서운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야. 네 말이 맞다. 그리고 미안하고.”

큰아버지는 두서없이 말했다.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그 말이 비겁한 명령이라고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알았다.

그래서 큰아버지가 하는 말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상관없어요. 저 때문에 말씀 가리실 필요는 없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알려주세요.”

큰아버지는 내가 얘기를 들을 준비가 된 건지 보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형진이가 그렇게 되고 나서. 네 엄마가 너를 가지고 몇 번을 협박을 했는지 모른다. 그때는 우리 집에도 돈이 좀 있었어. 아주 부유한 건 아니었지만 웬만큼 먹고 살만큼은 있었지. 근데 네 엄마가, 돈을 안 주면 낙태를 하겠다고 돈을 뜯어냈다. 천 만원씩 세 번을. 진짜 비참하더라. 동생을 잃은 것도 슬픈데 조카 생명을 가지고 그런 짓을 하는 여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게. 태어나지도 않은 너를 인질로 뺏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너를 구해내고 싶었지만 너는 그 여자 몸 속에 있고….”

큰아버지는 도중에 몇 번이나 말을 멈췄다.

“정우야. 듣기 힘들면. 네가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큰아버지가 말했다. 큰아버지가 하려는 말은, 엄마가 나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나에게 하는 것을 큰아버지는 나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 이야기를 거기에서 끝내고 싶어했다. 큰아버지가 내 앞에서 변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냥 계속 하세요. 저는 괜찮아요.”

“이 세상에. 자기 동생을 잃은 사람은 많을 거다. 근데. 네 아빠, 민형진이라는 동생을 잃은 사람은 나뿐이었어. 그 자식은…. 너. 진짜 네 아빠를 꼭 빼다 박았다. 정말로 형진이가 서 있는 건 줄 알았어.”

큰아버지가 내 어깨와 팔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몸은 확실히 네가 더 좋다.”

“그 얘기 계속 해 주세요.”

"형진이는. 진짜 멋있는 녀석이었어. 못하는 게 없었고. 머리도 엄청 좋고 공부도 잘해서 대학 4년 전액 장학생에 학기마다 등록금을 면제받고 70만원씩 따로 또 장학금을 받았어. 운동도 잘 했고 리더십도 있었고 얼굴도 잘생겼고. 뭐하나 부족한 게 없는 녀석이었어. 그러면서도 사람들한테 친절했고. 내 동생이지만 가끔 그 녀석을 보면 진짜 현실감 없는 놈이다 싶기도 했었고."

나는 어느새 큰아버지가 그려내는 아버지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 엄마가 계속해서 낙태하겠다고 말하면서 돈을 뜯어가더니 산달이 다가오니까 거의 미친 것처럼 날뛰더라. 완전히 미친 건지 일주일이 멀다하고 계속 그런 전화를 하는데 나중에는 경찰에 신고를 했어. 너한테 화풀이를 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그 여자가 그렇게까지 하니까 나중에는 무슨 생각이 드냐면, 너를 이미 지워버린 게 아닌가 싶은 거야. 그 여자라면 그렇게 하고도 남았을 거다. 그리고 어디에서 다른 아기를 구해와서 그게 너라고 할 것 같기도 하고. 솔직하게 말해서. 싫은 걸 떠나서 그 여자가 무섭더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모질까 싶었다. 거대한 아나콘다가 우리 가족들을 전부 모아서 자기 몸으로 칭칭 감고 압박해서 천천히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 내가 나서지 않았으면 아마 우리 가족은 전부 길거리에 나앉았을 거다. 우리가 전부 길거리에 나앉고서라도 너를 구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가 없었어. 네 엄마한테 뜯긴 돈은 우리한테 진짜 큰돈이었어. 그런데 그 여자는 욕심을 계속 부렸고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나 모르게 주신 돈이 더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빚도 많이 생겼고.”

큰아버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이 얘기를 정말 계속 들어야 되겠냐?”

“네. 저는 괜찮으니까 계속 해 주세요. 큰아버지.”

큰아버지의 몸이 짧은 순간, 한 번 움찔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아랫 입술이 부르르르 떨렸다.

큰아버지라는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큰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렸다.

끄허어어억, 거친 울음 소리가 한동안 그치지 않고 계속 되었다.

나는 큰아버지가 하는 말에 조금의 거짓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이미 내 암시에 걸려 있었다.

큰아버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내게 진실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세영 누나에게서 배운 적도 없었는데 그것이 어느 순간에 나에게 습득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걸 할 수 있고, 그게 제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까지 모두 알 수가 있었다.

큰아버지는 겨우 울음을 그치고 나를 바라보더니 얘기를 이어나갔다.

“네 엄마한테는 우리한테 아이가 생겼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여자 뱃속에 있는 아이는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어. 그때 당시에는 말이다. 그런데 몇 달 후에 정말 아이가 생기기는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의 주민등록상 생년월일이 왜 내가 예상하고 있던 것과 그렇게 많이 차이가 났던 건지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너를 찾지 않은 건 미안하다. 솔직한 이유는. 네 엄마가 무서웠다. 간신히 우리에 대해서 잊게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다시 우리를 떠올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어린 너한테는, 그래도 자식인데, 모질게 굴지는 않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멀리에서 너를 본 적은 있어.”

“혹시 저를 보러온 게 현이가 사고를 당하기 전인가요?”

나는 갑자기 떠오른 하나의 생각 때문에 큰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마…. 그랬을 거다. 그건 왜 묻는 거냐?”

“좀 짚이는 게 있어서요.”

“응?”

“저를 보고 가시고 얼마 안 돼서 현이가 사고를 당한 건 아니예요?”

“그 생각은…. 그 생각은 전혀 안 해 봤는데. 너 혹시. 네 엄마가 현이를 치고 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큰아버지가 말했다.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벌벌 떨렸다.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 자라고 있는지 멀리에서라도 보고 싶다는 큰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그 마음은 엄마의 눈에 위협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엄마는 어쩌면 적당히 겁을 주려고 했다가 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지른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처음부터 그 어린 녀석을 정면에서 받아버리고 도망칠 생각을 가졌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세영 누나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머릿속의 기억들을 짚어내고 어떤 걸 눌러야 하는지 전부 뒤적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세영 누나에게 그것에 대해 묻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엄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좋게 생각하고 싶어서, 아마도 그래서 그랬을 것이다.

“아빠는 왜 그런 사람을 좋아했을까요?”

내가 물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다. 정말로. 정말로 궁금한 게 그거야. 형진이가 왜, 도대체 왜 그런 여자를. 미안하다. 그래도 엄만데.”

“그래도 엄만데라는 말. 사실은 진짜 웃기는 말이라는 거 아세요? 그런 엄마를 가져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런 말 하는 거. 진짜 웃기는 거예요. 그래도 엄만데 뭐라고요.”

나는 웃어버렸다.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문제로 고민을 해 왔는지 큰아버지는 상상도 못 할 터였다.

“할아버지는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계속 전원이 꺼져 있다고 나오던데요.”

“캐나다에 계셔. 거기에 친척들이 많이 살아서. 여기서는 아무래도 너에 대한 기억을 잊기가 힘드셨던 모양이다. 네가 왔다고 하면 좋아하실 거다. 내가 왕복 비행기 값 마련해 줄 테니까 다녀와라, 정우야.”

큰아버지가 말했다.

============================ 작품 후기 ============================

이제 4부는 3화를 남겨두고 있고 오늘이나 내일 완결이 됩니다.

스킵을 하는 건 내 자식을 망치는 짓 같아서 스킵없이, 생각했던 이야기를 시간을 갖고 전부 풀어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단, 2주에서 3주만 기다려주세요.

5부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쿠폰, 추천, 코멘트 오늘은 특히 더더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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