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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The other side
내가 정스 짐 이벤트로 간혹 언론에 사진이 노출된 적이 있어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큰아버지는 내가 정스 짐 공동 대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내 재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큰아버지의 오래된 2층집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갔을 때 현은 마당에 나와 있었다.
안으로 따라 들어오려는 큰아버지에게, 이제 돌아가서 가게를 여시는 게 좋겠다고 말하면서 나는 현이와 둘이서만 만나게 해 달라고 말했다.
큰아버지는 걱정스런 표정이었다.
움직임이 불편한 아들과 나를 단둘이만 남겨두는 것은 걱정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부터 전부 다 안전할 거라는 인식을 큰아버지에게 심어주지 않았다면 큰아버지는 현을 나하고만 있게 하고 그대로 돌아가지는 않았을 거였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현은 어, 하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에상한 대로였다.
현은 나를 바로 알아보았다.
내가 자신의 사촌 형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내가 정스 짐 대표라는 것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큰아버지 앞에서 현이 나를 알아보는 것을 피하려고 큰아버지를 보낸 거였다.
현은 자기 눈 앞에 스타가 나타난 것처럼 흥분한 표정이었다.
나는 현에게 다가갔다.
“여기에는 어떻게…. 문은 어떻게 열고 들어오셨어요?”
처음의 흥분이 가시자 현은 갑작스런 상황에 긴장한 듯했다.
움직임이 편치도 않은데 난데없는 사람이 들어와버렸으니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현의 눈동자가 하얗게 변했다.
나는 현의 눈동자를 통해 그날의 일을 보았다.
현을 향해 덮치던 차 한 대.
비오는 날, 빗길을 달려온 차의 운전대를 붙잡고 있던 사람.
그 사람의 눈동자.
흔들리는 와이퍼.
모든 것이, 제발 그게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엄마였다.
엄마는 술에 취한 것도, 실수로 그런 것도 아니었다.
어린 현을 발견하고 그대로 현을 향해 돌진했던 것이다.
현의 몸이 차체에 받치고 위로 튀어 올랐다가 바닥으로 쿵, 떨어지자 엄마는 차를 뒤로 뺐다가 그대로 도망쳐 버렸다.
“…….”
나는 왠지.
뭐라고 해야 할까.
엄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을 그렇게 오랫동안 알아왔으면서도 또다시 기대했다는 사실에 나 자신을 비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다시 찾은 가족들을 내가 용서할 필요가 없다는 것 때문에 좋았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내 사촌동생.
그들은 엄마로 인한 또다른 희생자들일 뿐이었던 것이고 나를 버린 게 아니었다.
그들을 용서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그들은 나에게 잘못한 게 없었다.
그 생각이 나에게 위로가 돼서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현에게 말했다.
“안녕. 처음 본다. 네 사촌형이다. 임정우.”
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
현은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임정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갑자기 자기 사촌형이라고 하는 말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휠체어 앞에 앉아서 현을 바라보았다.
큰아버지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신기했다.
“갑자기 나타나서 이상하긴 했을 거야.”
“나한테는 사촌이 없는데….”
현이 말했다.
“그렇다고 생각을 한 것 뿐이지. 하긴 나도 최근까지 그렇게 생각했어. 너랑 할아버지, 큰아버지에 대해서 전부 다 최근에 알았어.”
“나한테는 가까운 친척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냥 편하게 말해. 형이잖아. 그리고 그 얘기를 하지 못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거니까 네가 이해하고. 이제라도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까 된 거지.”
나는 현에게 몇 번 같은 말을 반복했지만 현이 거리감을 좁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결국 현의 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우리가 빨리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현은 긴장감을 늦춘 채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해 주었다.
큰어머니는 그냥 평범한 엄마였던 것 같았다.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잘 살아보려고 힘들게 노력하는 부류.
현은 할아버지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워낙 대단한 동안이어서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함께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형제인 줄 알았다고 말하면서 현이 웃었다.
현은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내 아버지가 죽었고 그 후로 아버지에 대해서 모르다가 이번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에는 아버지의 가족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현은, 처음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내가 자신의 사촌 형이라는 사실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내가 정스 짐의 대표라서 더욱 그랬다.
현은 자기가 운동을 하거나 근육을 만들 처지가 아니기는 하지만 근육맨들을 동경해 왔다고 말했다.
나는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들 중에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워낸 사람들이 있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건 변명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현은 고개를 저었다.
“내 형편에 아무 생각 하지 않고 운동만 할 수 있었겠어? 나는 다른 사람들이랑 같은 출발선에 서 있지 못했어. 그랬다고 나한테 열심히 뛰지 않았다고 그렇게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거야.”
현의 말에 나는 미안해졌다.
“형이 잘 아는 사람 중에 이 방면의 기술을 가진 사람들을 잘 아는 사람이 있어. 천천히 방법을 찾아보자.”
현은 정말로 내 말을 믿고 기대를 해도 되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현은, 우리 아버지 사진이 집에 있을 거라면서 나를 안으로 들였다.
그리고 앨범을 찾아서 사진을 찾아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내 사진 같다고 생각될만큼 나하고 비슷하게 생긴 아버지가 있었다.
“이 분이 할아버지야. 여긴 우리 아빠. 형제라는 말을 들을만도 하지?”
나는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같이 찍은 사진을 보았다.
정말 희한한 기분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라, 세 형제 중의 큰형 정도로 보였다.
“신기하다.”
“그렇지?”
현은 그것말고도 아버지의 유품을 부지런히 찾아서 보여주었다.
휠체어를 움직이는 손은 부지런했다.
가끔 나는 내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서 현의 휠체어를 밀어 주려고 했는데 현은 자기가 하는 게 더 편하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렇게 얼마간 같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일부러 그 시간을 단축시키기는 했지만 우리는 정말로 빠른 시간 안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서로가 깊은 우애같은 것을 느꼈다.
그건 우정이나 다른 감정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런 게 핏줄이라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다시 찾아오기로 하고 현을 두고 큰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
큰아버지는 과일을 팔고 있었다.
원래는 남아있던 과일들을 전부 나한테 주려고 생각했지만 내가 큰아버지에게 내린 명령에 복종을 하는 중이었다.
큰아버지는 과일을 나한테 주겠다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한테 연락을 드려봤는데 말이다. 지금 거기에 안 계신다고 하더라. 몇몇 분이랑 같이 여행을 가셨다고 해. 급한 일이니까 꼭 연락을 해 달라고 해 놓기는 했다. 우리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거 맞지?”
“네. 자주 찾아올게요.”
“그래. 미안하고 고맙다.”
큰아버지는 미리 준비를 해 두었는지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받으라고 나한테 억지로 넣어 주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닐 텐데도 나한테 그 정도는 해야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서 그러니 그냥 받아달라고 했다.
나는 몇 번을 거부하다가 그것을 받아들였고 큰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봉투에 들어있던 돈은 2백만원이었다.
큰아버지에게도 분명히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꼭 필요한 돈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서울로 올라가는 대신에 그 주변에서 세 식구가 살 수 있을만한 건물을 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