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07화 (307/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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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사잇글

정우 오빠의 부모님 결혼식에 다녀온 후로 내 기분은 줄곧 바닥을 쳤다.

오빠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얘기는 준영이를 통해서도 계속 들어오기는 했지만 식장에 온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

더 놀라운 것은 오빠랑 그 사람들의 관계였다.

열 명도 넘는 여자들이, 그것도 자기들의 영역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빠의 관심을 받으려고 오빠 주변을 어물쩡거리는 것을 본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거기에 코야 리코와 아메 류아가 끼어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필요가 있겠나.

요즘에 잘 나가고 있는 수영 언니도 정우 오빠 주변을 기웃거렸고 정체 모를 수영 언니의 선배라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미디어를 통해서 자주 봤던 보디빌더도 있었고 내가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준영이를 오랜만에 보게 된 건 반가웠고 수영 언니를 보게 된 것도 좋았지만 그 자리는 솔직히 나한테 너무 힘들었다.

오빠가 나를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여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히 우리 사이에는 남다른 친밀감이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 무리중에서 나는 유독, 미운 오리새끼처럼 모자라고 바보같다.

아직 학생이라서, 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영 언니도 나하고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고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고서 지금의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수영 언니가 알려준 연우 언니라는 언니도 마찬가지다.

수영 언니는 나한테 연우 언니를 소개해 주었다.

“해미예요. 사촌 동생요. 준영이하고 친구예요.”

수영 언니가 소개하자 연우 언니는 착해보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웃었다.

이건 부당하다.

좀 못 되게 굴기라도 했으면 미워하기가 쉬웠을 텐데.

나는 그 언니가 오빠의 애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멀리에서 지켜보더라도 그 언니가 정우 오빠한테 특별한 사람이라는 건 알아볼 수가 있었다.

정우 오빠는 모두에게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언니한테는 특별하게 다정다감한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데 그 언니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냥 가족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허물이나 벽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언니가 정우 오빠 머리에 붙은 먼지를 떼주거나 넥타이를 바로 잡아주는 걸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슬프고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그 언니가 오빠한테 그렇게 해 줄 때 얌전히 머리나 넥타이를 내맡기고 있는 정우 오빠의 모습은 왠지 달랐다.

그 언니를 완전히 믿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저 언니한테는 귀청소도 맡기겠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언젠가 정우 오빠한테 내가 귀를 파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오빠는 나한테 미쳤냐고 그랬다.

정말로.

미쳤냐고.

지금 생각해도 열 받네.

오빠, 내가 귀 파줄까요? 라고 나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게 말했는데 그 말을 했다고 미쳤냐는 말을 처듣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나.

어이가 없어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했더니 오빠는, 귀를 후벼준다고 했다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내가 자기 귀를 막 찔러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여간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럴은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오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나는 논리적인 반박으로 내가 이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 후로 우리 사이에 오럴은 없었다.

젠장.

내가 옆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연우 언니는 나한테 몇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나는 정우 오빠의 아버지랑 새어머니하고도 인사를 했다.

정우 오빠의 새어머니가 되는 분까지도 짱짱했다.

뭐가 다 이렇게 짱짱해.

내 기분이 우울하다는 걸 모두가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음식은 전부 다 맛있어서 나는 잔뜩 우울한 얼굴을 하고 그야말로 처묵처묵해댔고 준영이는 그런 나를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나쁜 자식.

나 좋다고 따라다닐 때는 언제고 이제는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나는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정우 오빠는 좀 얼이 빠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내가 있는 테이블로 왔다.

원래는 수영 언니랑 같이 있었는데 수영 언니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한다고 자리를 비운 채였고 나 혼자서 파스타를 두 접시째 비우고 있었다.

'우울한데 왜 이렇게 맛있어.'

그래도 나한테 다가와서 인사를 해 줄 정신은 있나보다고 생각을 했다.

“안녕.”

오빠가 내 옆에 앉으며 말했다.

나는 오빠한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여기에 온, 오빠랑 특별한 관계에 있는 여자들하고 비교를 하자면 나는 그냥 오징어다.

그 생각을 하면 마구 슬퍼지지만.

아몰라. 답은 안 나오고 복잡해지기만 한다.

“초대해 줘서 고마워요.”

내가 말했다.

뭐라도 말을 하기는해야 할 것 같아서.

“어. 초대장 그거 말인데. 너도 톡으로 받았지?”

오빠가 말했다.

“네.”

“그거 좀 보여줄 수 있어?”

오빠가 말했다.

왜 그러는 건가 하면서 나는 스마트폰에서 초대장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려면 우선 포크를 놔야 되는데 마약을 넣었나.

왜 이렇게 맛있냐.

“바쁜 것 같은데 오빠가 볼까?”

오빠가 말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말을 했으면 포크를 놔야 되는데.

“…….”

나는 스마트폰을 오빠 쪽으로 밀었다.

그래. 어차피 여기 온 언니들이랑 경쟁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니까 오늘은 그냥 찌그러져 있다가 훗날을 기약하자. 오늘은 맛있는 거나 잔뜩 먹어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나이는 이 중에 내가 제일 어린 것 같고 오빠는 속물 근성 쩌는 것 같으니까 여자가 늙고 주름잡히고 탄력 잃으면 곧 관심을 잃을 것 같기도 하고.

내가 가진 건 어린 몸 밖에 없으니까.

아니.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진 건지.

근데 이 파스타는 누가 한 건데 이렇게 맛있는 거지?

오빠는 이미 내 톡을 보고 있었다.

찾는 게 안 나오는 것처럼 계속 위로 올리는 걸 보고 있다가 왜 못 찾냐고 내가 물었다.

“받은 날짜가 언제야?”

나는 포크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빠한테, ‘여기있잖아요. 이것도 못 찾아요?’ 라고 큰 소리로 말해줄 생각으로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그런데.

없다?

정말 없다.

“어어?”

오빠는 놀란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럴 줄 알았다는 것 같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 내가 지웠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말했다.

“많이 먹어. 해미야. 와 줘서 고맙고.”

오빠는 일어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는 건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나를 대등하게 생각해주지 않고 그냥 귀여운 여동생으로만 여기는 것 같아서.

나도 오빠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여자로 느껴지면 좋겠는데.

하지만 일단은, 파스타가 너무 맛있어서 나는 한 번 더 순례길을 나섰다.

테이블로 돌아왔을 때 테이블에는 준영이와 준영이의 여자친구, 그리고 수영 언니가 앉아 있었고 준영이는 내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알고 있냐면서 놀렸다.

“해미 놀리지마. 해미 오늘 기분 별로 안 좋아.”

수영 언니가 그렇게 말해 줬는데 어째 그 말 때문에 기분이 더 상하는 것 같다.

준영이 여자친구랑 수영 언니가 하는 얘기를 잠깐 들었다.

초대장을 톡으로 받았는데 지워졌더라는 얘기 같았다.

두 사람 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받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입이 꽉 차 있었고 입에 든 걸 전부 삼켰을 때는 얘기가 한참 다른 방향으로 진행돼 있었다.

배가 부르니 기분이 나른해지면서 평화주의자가 될 것 같고 모든 걸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개를 들었더니 멀리 서 있던 정우 오빠가 우연히 나를 봤는지 크리스탈 잔을 들어 올려 보이면서 웃었다.

그래. 내가 저 웃음 한 번 보려고 변방에서 설움을 겪으면서 참는 거란 말이지.

절대도 웃어주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내 얼굴은 이미 나를 배신하고 헤벌쭉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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