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5 ----------------------------------------------
안 고마운 도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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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와 달랐다.
그 전까지 몸캠 영상 사이트는 내가 사이트에 대해서 잊고 있으면 그냥 잊히는 존재처럼 그 쪽에서 먼저 나한테 먼저 메시지를 보내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내가 새벽 네 시가 넘는 시간까지 평가서 검토를 하다가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스마트폰에서 삐비비빅 거리는 소리가 났다.
끌어다가 확인을 해 보니 폰의 알림바에 사이트의 표시가 떴다.
사이트에 쪽지가 와 있는데 확인하겠냐는 요지의 알림창이었다.
전에는 그런 게 뜬 적이 없었다. 내가 사이트에 접속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게 떴다는 건 더 이상했다.
나는 부은 눈을 비비고 소파에 몸을 던진 채로 사이트에 접속했다.
[축하합니다. 펫을 획득하셨습니다.]
밑도 끝도 없이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서 멍하니 있다가 나는 스마트폰을 든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전혀 흥미도 없었고, 사이트에서 무슨 펫을 준다고 해도 기쁠 것 같지도 않았다.
시간마다 물을 먹이라고 하거나, 아니면 먹이를 주기 위해서 화장지를 벌어 오라고 할지도 모르고 사이트가 그걸 빌미로 나한테 무슨 만행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생각을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잤을 때였나.
사이트는 내가 그냥 다시 잠들어버리자 한 번 더 나를 깨웠다.
처음에 나를 깨웠던 것과 비슷한 알림음이 나서 봤더니 ‘펫을 키우시겠습니까?’ 라는 질문이 떠있고 '예스'와 '노'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창이 깜빡거려대는 중이었다.
‘나중에’라는 버튼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런 건 없었다.
가차없이 '노'를 눌렀더니, 그런 대답을 하라고 질문을 한 게 아니라는 듯 똑같은 질문이 다시 떴다.
'노'라는 대답은 거부하겠다면서 '예스'와 '노' 중에 선택을 하라니.
나는 다시 한 번 '노'를 선택했다.
그러는 와중에 정신이 조금 들기는 했다.
이번에도 질문이 다시 떴다.
확 스마트폰을 던져버릴 뻔 했다.
"아우. 씨. 어쩌라고! 그럼 물어보지 말고 그냥 펫을 키우라고 하던가!"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별 수 없이 '예스'를 눌렀다.
일단 보고 마음에 안 들면 물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삭제 버튼 같은 거라도 있겠지.
나는 멋대로 그렇게 믿어버렸다.
나는 사이트에서 서둘러 나와서 아예 스마트폰을 꺼버렸다.
이 멍청한 대화에 계속해서 응해주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평가서를 검토하고 학교 과제를 하고 강의는 강의대로 들으면서 여러 가지 다른 업무들도 챙기다보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나흘동안 잔 시간이 다 합해서 여섯 시간도 되지 않았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에 스마트폰을 꺼놓고 잠깐 다시 잠을 자는데 다리 털이 왠지 축축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잠결에 몇 번이나 다리를 털었다.
'왠지 다리가 덥다?'
그러면서도 나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그냥 다리를 털기만 했다. 그러나 내가 다리를 털어낸다고 해서 그 느낌이 멈추지는 않았다.
꼭 강아지가 혀로 핥아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혹시 펫이라는 게 여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안돼!’
사이트가 멋대로 보내버리는 여자가 정상일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불현 듯 머릿속에 들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솟구치듯이 일어섰다.
그리고 내 다리를 감싸고 올라오는 그 녀석을 발견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버렸다.
누워있던 내가 갑자기 일어섰는데도 내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고 꽉 매달려있는 녀석은.
‘흐응…. 흐으응! 귀여워!!’
콧바람이 저절로 나오게 만든 녀석은 내 주먹 하나만한 새끼 고양이였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넌. 뭐야?"
묻는다고 말을 해 줄 리가 없겠지만 나는 그렇게 묻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하고 혼자서만 궁금해 했다가 그게 사이트에서 나온 펫이라는 생각이 나서 잽싸게 스마트폰을 켜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인벤토리에는 펫이 없었다.
그대신 그동안 내가 사이트에서 보지 못했던 상점이 생겨나 있었고 상점에 들어가니 구매기록이 있었다.
나는 상점에 들어와 본 적도 없었으니 당연히 구매한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장지를 써서 동영상을 다운 받은 거라면 몰라도 상품이나 펫 같은 걸 구매한 기억은 없는데?
어라?
다운로드 감사 이벤트로 나한테 고양이 알이 하나 주어졌었나보다.
녀석의 이름은 므로.
아니. 그보다.
고양이가 알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잖아.
그딴 건 다 상관없다는 거냐.
고양이가 몇 달 간 엄마 고양이 뱃속에 있다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사이트는 그 고양이를 속성으로 대충 길러낸 게 틀림 없었다.
그렇게 빨리 주고 싶었으면 애초에 알로 주지 말고 그냥 고양이를 주면 되는 거 아니었나?
나는 펫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려고 했지만 학교에 가야해서 시간이 없었다.
결국 내가 알아낸 정보는 내가 고양이 알을 어떻게 받았는지, 언제 받았는지, 그리고 고양이가 알에서 언제 깨어났는지 그 정도뿐이었다.
고양이는 알에서 깨어나고 나서 사흘 정도는 방치가 된 듯했고 내가 계속해서 사이트에 접속을 하지 않는 바람에 사이트가 특단의 조치를 취해 강제 접속을 시킨 모양이다.
그런다고 무슨, 사이트 안에 존재하던 고양이가 여기로….
하긴. 사이트에서 본 여자들이 현실에 나타나서 나하고 지금 이렇게 잘들 만나고 있는데 그게 이상하다고 이제 와서 시비털 건 아닌 건가?
결국 고양이에 대한 이렇다할 정보는 얻지 못한 채 사이트에서 나왔다.
그런데 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므, 므로야?”
여기 저기 이불 속, 침대 아래까지 다 뒤져도 안 보였다.
그 녀석이 혀로 핥은 내 다리 털이 지들끼리 꼬여서 붙어있지만 않았다면 나는 내가 꿈을 꿨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오분 정도를 찾다보니까 내가 지금 뭔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시간도 없이 바빠 죽겠는데 이상한 걸 찾는다고 허비한 시간이 아까웠던 것이다.
나중에는 찾는 걸 포기했고 학교에 갈 시간도 늦어서 정신없이 챙기고 나갔다.
연우가 혹시 집에 와서 그걸 보게 되면 놀랄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고 연우한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 않았고, 톡을 하자니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것도 난감해서 미루고만 있다가 나중에는 그 녀석의 존재에 대해서 완전히 까먹었다.
공강 시간에 잠깐 한가해졌을 때 사이트에 다시 접속해서 펫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 헤매다가 나는 이 사이트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펫의 정체는 '공략을 쉽게 해 줄 도우미'?
공략을 어떻게 도와준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이트는 내가 만나는 여자들을 공략 대상 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공략을 도와준다면.
혹시 그 귀여운 외모로 여자들의 경계심을 무력화시켜서 내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말인가?
그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녀석을 보면 한 눈에 반할 것 같기는 했다.
므로가 연우한테 해를 끼칠 일은 없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다시 연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우는 잠깐 전화를 받더니 회의 중이라면서 회의가 끝나면 자기가 꼭 전화를 하겠다고 말했다.
오늘은 혹시 모르니까 우리 집으로 오지 말라고 톡을 썼다가 내용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지웠다.
별 일이야 있겠어? 라고 생각을 하면서 아홉 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을 때.
거기에는 연우가 있었다.
그 표정이 낯설지 않았다.
언젠가 준영이 아버지가 나한테 준 최음제를 복용한 여자들의 표정이 지금의 연우랑 비슷했다.
연우는 평소에 잘 입지도 않는 과감한 속옷 차림이었고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한테 달려와서 안겼다.
그러고는 서두르면서 내 옷을 벗겼다.
“어우. 워. 워. 무슨 일이야, 연우야. 어? 회사에서 꼴리는 일이라도 있었어? 야동 봤어?”
내가 장난스럽게 말을 하는데도 연우는 참기가 힘든 것처럼 몸을 나에게 밀착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