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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출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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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녀석을 데리고 오기는 했는데 누구한테 시험을 해 봐야 할지 마땅치가 않았다.
그러다가 사이보그설이 돌 정도로 표정도 없고 웃는 일도 없고 고지식하고 답답한 교수님 한 분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시험을 오픈북 테스트로 해서 강의는 인기가 많았지만 조별 과제를 쓸데없이 많이 내주고 학생들의 시간을 마구 흡입하려 들어서 교수님 자체에 대한 평판은 좋지 않았다.
굉장히 지독한 남성 혐오자라는 말이 들려오는데 그 말에 반박을 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교수님은 남자들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삼십 대 후반에서 사십 대 초반의 나이인 것 같은데 몸에는 군살 하나 없었다.
목 위에 놓인 부분은 스킵하고 아래쪽만 본다면 굉장히 퀄리티가 훌륭하다.
내가 알기로는 이혼을 했다는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사회적 지위도 그렇고 어디가서 빠질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자기 자신도 그걸 아는지 늘 자부심이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고.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남한테 소개한다거나 할 때 그런 평가를 내려줄 수 있다는 거지 내 스타일은 아니다.
나이에서 벌써 아웃. 내가 어떻게 커버할 수 있는 나이 차이가 아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교수님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했고 교수님은 안경 아래로 나를 내려다 보았다.
원래의 키대로 하면 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사이즈가 절대로 안 나오지만 교수님은 나를 내려보기 위해서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렇게 해 놓고 거만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인사에 대답도 해 주지 않고서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정말로 좋아하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누구는 좋아서 인사를 해 준 줄 아나.
꼭 저 교수님만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나는 인사 안 받는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한다. 특히 윗사람이 그러는 건 더 싫어해서 내가 정스 짐 가맹점들을 돌아다닐 일이 생기면 (내가 정스 짐 대표라는 신분을 밝히고 다닐 때에는) 내가 먼저 나서서 트레이너들한테 일일이 인사를 하고는 했다.
나는 내 가방에 손을 넣고서 므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준비하고 있으라는 표시다.
그게 그 뜻이라는 걸 이 녀석도 알아먹어야 될 텐데.
나는 큰 보폭으로 앞서 걸어가는 교수님을 뒤쫓아갔다.
“교수님. 죄송한 말씀인 건 아는데 말입니다. 조별 과제를 할 때마다 같은 조로 계속 이어지다 보니까 불합리한 점이 너무 많아서 말입니다. 이번에는 조원을 바꿀 기회를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나는 천재같다.
즉흥적으로 생각해 낸 건데 어쩜 그렇게 논리가 정연하냐?
교수님은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태도로 나를 노려보았다.
“불합리?”
불합리하다는 말이 교수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교수님의 얼굴을 보니 딱, 내가 너 따위한테 그런 지적을 받아야 되는 거냐? 라고 물으려는 것 같은 얼굴이다.
“교수님. 몇 명은 PPT를 못 만든다고 하면서 매번 협조를 안 합니다. 한 두 번도 아니고 한 학기 내내 그런 일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이 조원으로 있는 조의 다른 조원들은 잘못도 없이 고스란히 피해를 보는 거잖습니까. 기여도에 따라서 점수를 차등으로 주시는 것도 아니니까요.”
나는 내 말투가 건방지게 들리지 않게 주의하면서 말했다.
지금의 목적은 싸우자는 게 전혀 아니니까.
“그래서 지금 나한테, 엄마얏!”
나이스!!
기회를 노리고 가방에서 나온 므로가 바닥으로 뛰어내려 교수님의 스타킹 신은 다리를 핥고 있었다.
“뭐, 뭐야. 저리 안, 가?!”
교수님은 갑자기 다리에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 때문에 소스라칠 듯 놀랐지만 자기 다리에 붙어 있는 게 사람을 심쿵사로 죽여버릴 수 있을만한 핵귀여운 새끼 고양이인 것을 알아 보았다.
교수님은 더 이상의 악담을 퍼붓지는 못하고 그대로 다리를 내주고 있었다.
“어머. 세상에. 얘가 어디에서 왔지?”
교수님은 방금 내 앞에서 엄하고 고집스럽게 굴었던 것 하고는 완전히 다른 얼굴로 므로를 대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내가 므로한테 의문의 1패를 당한 건가?
교수님은 므로를 두 손으로 안아들고 껴안기까지 했다.
므로는 교수님의 얼굴과 목까지 싹싹 핥았다.
내 생각이 맞다면 교수님은 이제 슬슬 흥분되기 시작할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성적 흥분감이 혈액처럼 온몸을 감돌고 배꼽 아래가 찌르르릇 거리면서…?
으잉?
교수님이 갑자기 눈을 아래로 뜨더니 그 눈을 그대로 요염하게 치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뿔싸!
므로의 특기를 시험해본다는 생각뿐이었지, 므로가 그런 짓을 할 때 교수님 앞에 있는 남자가 내가 될 거라는 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 저, 저기요. 교수님!!
나는 나도 모르게 가방을 고쳐 메고 므로를 뺏듯이 해서 그 자리를 탈출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수님의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나는 조별 과제를 수행할 때 그런 불합리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그 얘기를 심도있게 나눠보기는 해야 될 것 같군. 나는 조별 과제가 조원들의 협조로 잘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어. 아직 PPT를 못 만드는 학생이 있다는 건 믿기지 않고 그 말을 한 학생은 아마도 거짓말을 한 것 같은데. 어떤 조치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도 상의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말이야.”
“아아아아. 네에에에. 그렇…죠. 교수님. 근데 제가 지금 막, 강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걸 꼭 저하고 상의하실 필요도. 아하하하하.”
“이십 분쯤 늦는다고 크게 상관 없을 것 같은데? 내 일을 도와주다가 늦었다고 말하면 돼.”
“예???!!!”
하긴. 저 교수님은 다른 교수님들이랑도 두루두루 친하다.
친하다기보다 다른 교수님들이 저 교수님한테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게 맞겠지만 어쨌든 저 교수님이 하는 말이 일단은 먹힐 거라는 거다.
므, 므로야.
너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형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
애초에 상대를 고를 때 고지식하니 보수적이니 그런 걸로 고르면 안 되는 거였다.
일단 내 스타일인 사람중에 찾았어야 되는 거였는데.
내가 마구 갈등을 일으키며 내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는 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 교수님은 나를 계속해서 재촉했다.
그때 마침 혜성처럼 나의 구원자가 나타났으니, 교수님의 랩에 있는 조교 형이 허벅지가 터질 듯한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오다가 교수님에게 인사를 했다.
차림을 보아하니 점심 먹고 운동장에서 테니스라도 한 판 하고 온 것 같았다.
으휴. 땀냄새.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보고야 말았다.
교수님의 눈에서 쏟아져나오는 하트를.
나한테는 지독하게 느껴지는 그 땀냄새가 교수님에게는 섹시한 수컷 냄새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운동…하고 와?”
“예? 아. 예. 하라고 하신 건 거의 끝나가고 있습니다.”
조교 형은 교수님이 꼬투리를 잡아서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지 재빨리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알아서 잘 하고 있겠지. 너무 앉아만 있는 것보다는 그렇게 운동도 하고 그러는 게 좋은 거야. 효율도 오르고. 논문 준비는 잘 돼가?"
교수님은 이제 그곳에 내가 있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로지 조교 형만 바라보면서 얘기를 했고,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 것도 아니면서 그 자리에서 조금씩 호흡이 거칠어져 오고 있었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는 사람은 조교 형 뿐이었다.
"예? 그게 잘. 시간도 없고요."
조교 형이 말했다.
"그래? 지금쯤은 진도가 좀 나갔어야 할 텐데.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
“예? 아. 예.”
조교 형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혹시 아냐는 듯이 나를 보았고 나는 순진한 표정으로 형을 보고 웃어주기만 했다.
교수님과 조교 형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교수님 연구실로 같이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므로가 일을 잘 한 건지 확인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사람 뒤에 시간을 두고 쫓아갔다.
이십 초 쯤 있다가 연구실 문 앞에 섰을 때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이 떨어지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두 육중한 살덩어리들이 쉼없이 부딪치는 소리하며, 그 사이에서 점점 생겨나는 체액으로 몸이 끈적하게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들이 요란하게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