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23화 (32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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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로, 출격

사감보는 확실히 진정이 된 것 같았고 나는 욕실로 들어갔다가 곧바로 다시 나와서 내 가방을 챙겨서 욕실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고 사감보가 얼마나 치욕스런 표정을 지었는지.

“세상에! 씻으러 간 사이에 내가 뒤질까봐?!!”

사감보가 화를 냈지만 따지고 보면 그건 꼭 화를 낼 일도 아니었다.

미리미리 조심하자는 건데 그게 뭐가 나쁜가.

그리고 가방 안에는 므로도 들어있고.

이 녀석은 지금쯤 또 양말에 코박고 신나게 잠들어 있을 텐데 그러다가 코 고는 소리라도 나면 안 되니까 보호하겠다는 것 뿐인데.

내 스마트폰도 그렇고 지갑도 그렇고.

어차피 다시 볼 생각도 안 드는 사람이라서 나한테 실망했다는 표정을 아무리 리얼하게 지어봐야 별로 가슴이 아프거나 후회되거나 하지도 않았다.

나는 말끔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서 침대 쪽으로는 가지도 않고 그대로 신발을 신고 손을 흔들었다.

“저기….”

사감보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아직 사감보 이름도 모른다.

그런데 또. 이름이 궁금하거나 그러지도 않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어?”

사감보가 물었다.

“만날 수 있겠지. 둘 다 같은 학교 다니는데."

명쾌하게 대답을 해 주고 밖으로 나왔다.

사감보하고 같이 들어왔을 때는 몰랐는데 여자 기숙사에서 혼자 나가려니까 완전 뻘쭘했다.

모든 눈이 다 나를 향했고 샤워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틀어 올리고 칫솔을 입에 문 채 나오던 사생 하나는 나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그건 진짜 이해 안 되는 대목.

그게 꼭 그렇게 비명까지 지를만큼 대단히 놀라운 일인가?

놀랍다는 건 인정을 한다고 해도 비명까지 지를만큼인가?

드라마 보면 화장실에서 남자 마주칠 때마다 꼬박꼬박 소리지르는 거 보고 진짜 어이없던데 정말로 나를 보고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게 될 줄이야.

“전등 갈러 왔어요. 전등 갈러!”

나는 나를 보고 있는 사생들한테 대충 그렇게 말을 하고 쏜살같이 여자 기숙사에서 탈출했다.

기숙사 근처에 세워두었던 차에 오르자마자 나는 므로를 깨웠다.

“므로. 므로. 므로. 넌 진짜 대단해. 천재야. 아니. 천재인 건 아니고. 마법사 같다고 해야되나? 아니면 약초? 아니지. 풀은 아니지. 아무튼 진짜 대단해. 네가 대단하다는 건 확실히 알았으니까 앞으로 내가 네 도움을 필요로 하면 도와줘. 알았지? 그리고 연우 말인데. 연우를 핥았다가는 죽을 줄 알아. 알았어? 이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므로는 가릉거리기만 했고 내가 연우를 데리러 연우의 회사로 갔을 때도 조용했다.

연우는 내가 자기를 데리러 왔다는 사실에 감격한 것 같았다.

오늘도 야근이 거의 확정이었는데 내가 와서 특별히 일찍 들어가도록 허락을 받은 거라면서 연우는 신이 나 있었다.

연우는 내가 므로를 데려온 걸 알고 더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 갈 때까지 연우가 므로를 계속 안고 있었지만 므로는 연우의 몸을 핥지 않았다.

연우는 내가 므로를 훈련시켰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고, 자기가 어제 이상했던 건 므로가 아니라 아무래도 어제 먹은 음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그렇게 결론을 내버렸다.

앞으로 며칠은 더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것 같기는 했지만 연우가 므로를 받고 좋아하는 걸 보니 나도 즐거웠다.

“아. 그 녀석은 밥도 안 먹나봐. 인형 비슷한 건지도 모르겠어. 일본에서 희한한 거 그런 거 잘 만들잖아. 독거노인들 갖고 놀라고 만든 건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러니까 밥을 안 먹는다고 동물 병원에 데려간다거나 그러지는마. 므로가 정말 아픈 것 같지 않으면.”

“어어? 정말이예요?”

연우는 엄청 신기해 하면서 므로를 바라보더니, 이렇게 생긴 므로가 인형일 리는 없다고 했다가, 인형이 맞는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가 혼자서 막 헷갈려 했다.

"덜렁대니까 귀엽다."

팔을 뻗었더니 운전에만 집중하라고 하면서도 내쪽으로 기대왔다.

“예멘에 가는 일은 준비 잘 돼 가?”

“네. 예멘에서는 술을 안 파니까 술을 많이 가져가야 된다고 다들 술 가져갈 궁리밖에 안 해요.”

연우가 웃으며 말했다.

“현지 법규는 이제 통달했어?”

“여전히 어려워요.”

“근데 나처럼 잘생긴 남자가 들어가도 상관 없대? 그럼 예멘 여자들이 다시는 예멘 남자들한테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르는데. 그러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거 아니야?”

“안 그래도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제일 복잡했어요.”

이제 그런 말 같은 건 우습지도 않게 받아치는 이연우.

그래놓고는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같이 가는데 문제 없는 거죠?”

연우가 물었다.

“완벽하게 준비해 놨어.”

“오빠가 준비할 게 뭐가 있는데요?”

“그러게. 그렇게 말하니까 그것도 그러네.”

그렇게 예멘으로 출발할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 므로. 넌 어떻게 하지? 누나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어? 정말 아무 것도 안 먹는 거야?"

이제는 여행을 할 때 므로 걱정까지, 걱정 하나가 더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며칠 후, 카린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날은 수업이 없는 날이어서 밀린 잠을 보충하고 있었는데 카린의 전화에 잠이 깬 것이다.

“아, 카린.”

그래놓고 겨우 눈을 뜨고 므로를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므로는 없었다.

몇 걸음을 더 돌아다닌 후에야 므로가 연우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떠올랐다.

나는 몸을 일으켜 물을 마시러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

카린이 전화했을 때 나는 현의 문제로 전화를 한 거라고 생각했다.

틀린 것은 아니었다.

카린이 한 얘기 중에는 현의 수술이 잘 됐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가 아니었다.

카린은 다른 때와 다르게 흥분한 상태였고 무슨 일이냐고 묻는 나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카린이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그림 속에 있는 사람은 은 과장님이었다.

뒤를 돌아보는 은 과장님은 손이 뒤로 묶인 채 누군가에게 끌려가고 있었고 은 과장님의 등에는 총구가 겨누어져 있었다.

그렇게 현실성 없는 그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게…. 뭡니까?”

다시 전화 통화가 됐을 때 내가 물었다.

카린은, 자기가 그렸던 그림 중에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없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린의 말은, 그림 속에서 일어난 그 일을 은 과장님이 피할 방법은 없는 것 같으니 내가 은 과장님과 같이 다니지 않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였다.

같이 있다가는 화를 피할 수 없을 거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는 안 할 겁니다.”

나는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건 나는 알려줬습니다. 내가 할 일은 다 한 겁니다.”

카린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총이라니.

대한민국에서 총이라니.

나는 한동안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카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카린.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물었지만 카린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게 어디일 거라고 생각합니까. 은 과장님은 예멘에 갈 거예요. 거기에서 일어날 일일까요?"

나는 생각나는대로 물었다.

"나도 그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임정우씨가 일정 내내 함께 다닐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예멘에서 일어날 일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말이예요."

카린이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버지나 연우라고 한다면 예멘에 드나들 일이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은 과장님은 그곳에서의 새 시작을 축하하기 위해서 기념식에 맞춰 한 번 가는 게 계획의 전부였다.

나는 아버지 회사 소속도 아니니까 식순에 상관없이 늘 은 과장님과 연우 곁을 지키고 서 있을 수 있었다. 은행 금고 안에 숨겨 놓는 것보다 내 옆에 세워놓는 게 더 안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카린도 그 점에서 의문을 품은 것이다.

"예멘은 아닐 겁니다. 임정우씨랑 같이 있다가 이런 일을 당한다고요? 호텔에서 방이 나뉜다고 해도 임정우씨 모르게 침입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요."

예멘에서의 짧은 일정동안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점점 생각하기가 어려워졌다.

약물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나한테 애초에 통하지도 않을 거였고.

'그동안은 카린이 그리는 그림이 모두 미래를 예고했지만 이번만큼은 그게 어긋나는 것 아닐까?'

어느 순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쉽사리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은 과장님이라는 건지.

왜 은 과장님이 다른 사람의 목표가 돼야 한다는 건지.

그러다가 잠시 후에 나는 핫 걸의 전화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핫 걸이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우리가 바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핫 걸은 두 말 않고 나를 보러 와 주었다.

나는 혹시 은 과장님에게 위험한 일이 생길 수 있냐고 물었다.

핫 걸은 요근래 은 과장님에게 집중한 적은 없었지만 필요하다면 바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래달라고 부탁했다.

키샤는 우리 나라 요인의 경호 업무도 맡아서 했다.

핫 걸은 은 과장님의 경우 키샤에서 보호할 가치가 큰 인물이라고 말하면서 만약 내가 원하면 경호에 나서겠다고 했다.

나는 가능하다면 은 과장님이 알지 못하도록 하고 그 일을 해 줄 수 있겠는지 물었다.

핫 걸은, 그것도 가능하기는 하지만 은 과장님에게도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게 더 효과적일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그 말이 맞겠다고 생각했다.

핫 걸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았고 키샤의 최정예 요원 두 명을 은 과장님에게 보냈다.

나는 은 과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이상한 사람을 봤다거나 이상한 연락을 받은 일이 없었냐고 했고 은 과장님은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있어, 임정우? 내가 알아야 되는데 아직 모르고 있는 게 있는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엄마.”

아무 일 없다고 말할 수 없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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