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4 ----------------------------------------------
므로, 출격
“무슨 일인데? 그보다 정우 너는 어떻게 알았는데?”
은 과장님이 연거푸 질문을 해댔다.
“그건 말씀드리기가 어려워요. 잘 하는 업체에 경호를 부탁했어요. 사람들이 엄마를 경호할 거예요. 이게 무슨 일인지, 누가 노리는 건지 알게 될 때까지는 불편하시더라도 경호를 받으세요.”
“나만 위험한 거야? 아버지는 괜찮은 거니?”
은 과장님이 말했다.
“네. 현재로서는요.”
“…아무 일…. 없겠지. 정우야?”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할 거예요. 저를 믿으세요, 엄마. 내일 아침에 일찍 병원으로 찾아 뵐게요. 오늘은 이것저것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부탁한다….”
전화를 막 끊었을 때 핫 걸에게서 연락이왔다.
은 과장님의 경호에 자기도 투입이 되게 됐다고 말을 하면서 핫 걸은 키샤장이 지금 진행하고 있던 모든 일보다 우선해서 은 과장님을 지키라고 했다고 말했다.
“갑자기 왜 은 과장님이 목표가 된 건지 알아요? 누가 그러는 건지 짚이는 데라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핫 걸은 담담하게, 자기가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었다.
은 과장님이 최근에 알아낸 유전자 정보 때문에 어느 거대한 다국적 생명공학기업에서 은 과장님에게 접근을 해 왔고 은 과장님은 큰 유혹이 된 제안을 매번 거절해 왔다는 것이다.
“그 유전자 정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거예요?”
내가 물었다.
“은 과장님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분이신 것 같더라고요. 은 과장님이 알아낸 유전자 정보에 특허권을 인정받으면 그 회사랑 은 과장님은 돈 방석에 오르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은 과장님은 어마어마한 고기를 낚으면서 그 고기를 전부 그냥 던져놔 버리고 있는 거예요. 그걸 팔면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안달이 나 있는데 은 과장님은 그걸로 돈을 벌 생각이 전혀 없는 거고요. 그래서 생명공학기업들마다 은 과장님을 스카웃하고 싶어서 전쟁을 벌이는 거고요. 그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들부터 해서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중이예요.”
“그 고기가 얼마나 하는데요?”
“몇 년만에 조 단위의 돈을 벌어 들일 수도 있는 정보라고 평가가 나왔어요.”
“그, 그걸 엄마가…. 그냥 공개를 해 버린 거라고요? 왜…요?”
은 과장님이 도대체 왜 그랬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은 과장님은 은 과장님이 알아낸 것들을 완전히 오픈했고 그걸 기반으로 다른 생명공학기업과 의료기관의 연구가 탄력을 받기를 바란다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대체 왜 그런 말을 하셨나는 거예요.”
“그게. 정우씨 때문이예요.”
핫 걸이 말했다.
운전 중이었는지 커브 도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나 때문…이라뇨?”
“어느 학술지에 은 과장님이 그런 말을 한 게 실렸더라고요. 은 과장님한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 아들이 있다고요. 지금은 잠복기지만 은 과장님의 아들은 아직 터지지 않은 폭탄을 몸 안에 가진 채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요. 그게 몸 안에서 영원히 터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은 과장님은 아들의 몸에 내재된 잠재적인 위험성을 완전히 사라지게 해주고 싶다고요."
"네?"
"은 과장님은 여러 모로 치료방법을 찾기 위해서 애쓰고 있지만 혼자만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어요. 그러니까 은 과장님이 모은 단서를 바탕으로 같이 범인을 찾아 달라는 부탁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 은 과장님이 말한 그 아들이. 혹시 나인 겁니까?”
“은 과장님한테 다른 자녀는 없어요.”
“나는…. 다 나았는데요? 아직 약을 먹고 있기는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라고요?”
“확실하게 하고 싶으신 거겠죠. 잠재적인 위험성도 제거하고 싶다는 게 은 과장님의 표현이었어요.”
그 말에 나는 얼떨떨해졌다.
은 과장님한테는 내가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게 웃긴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내가 몇 천 억을 가지고 있다고 속으로 굉장히 거들먹거리고 있었는데 은 과장님은 그까짓 것은 아무 것도 아니게 만드는 값비싼 보석을 마구 캐내면서도 거기에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 질병의 원인을 알게 해 줄 돌을 찾는 것에만 온통 집중을 하고, 그 돌을 찾으려다가 발견한 보석들은 그냥 마구 던지고 있고.
“은 과장님 덕분에 관련 기업과 연구원들이 한국으로 모여들고 있어요. 은 과장님이 발견한 것들은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낼 거예요. 그 하나하나가 가진 가치도 막대하고 그걸 가지고 마케팅만 제대로 해도 세계적인 갑부가 되는 건 문제도 아닌 건데 은 과장님은 다음 연구를 할 생각밖에는 하지 않으시는 거죠.”
핫 걸이 말했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존경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이해할 수 없다고 해야 하나.
“돈으로 은 과장님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거들먹거리다가 딱지를 맞은 사람들이 지금 자존심에 엄청난 타격을 입기는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위해를 가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회유하려고 그러는 걸까요?”
나는 불안한 목소리로 핫 걸에게 물었다.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죠.”
뭔가 큰 그림이 이해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곧바로 은 과장님을 찾아갔다.
은 과장님은 긴장한 얼굴로 나를 맞아들였다.
은 과장님도 핫 걸이 예상한대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은 과장님이 발견한 유전자 정보와 관련해서 몇몇 업체가 은 과장님을 압박하려고 그러는 것 같다고, 은 과장님이 나에게 말했다.
정보를 독점해서 관리하면 그것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은 과장님을 회유하려고 그러는 걸 거라는 거였다.
나는 은과장님의 손을 잡아 주었다.
"제가 지켜드릴 거예요. 엄마."
“사람들을 보내줘서 고맙다.”
은 과장님이 말했다.
은 과장님은 그들이 보안업체에서 나온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었다.
핫 걸이 합류한 것을 보고는, 진짜가 나타난 걸 보니까 내가 확실히 위험에 처하긴 했나보네요, 라고 웃으면서 말했다고 했다.
핫 걸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면서도 핫 걸의 자세와 태도, 분위기를 통해서 대충 짐작을 한 것 같았다.
갑자기 초점이 은 과장님에게 집중되면서 내 생활 패턴은 많이 바뀌었다.
이제 학교는 전혀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휴학을 해도 상관없고 졸업장을 포기한다고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나는 은 과장님이 나에 대해서 그렇게까지 생각해 줬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은 과장님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내 몸의 메커니즘을, 은 과장님이 ‘원인모를 질병’으로 규정했다는 게 좀 웃기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모두가 뭘 해야 될지 모르고 마음만 앞섰지만 점차 그것도 적응이 돼 갔다.
은 과장님도 다시 평정을 되찾고 은 과장님의 일을 했고 키샤와 나도 마찬가지였다.
은 과장님은 나를 자주 보게 돼서 좋다고 하시더니, 내가 한가할 때 몇 가지 검사를 해 보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은 과장님은 먼저 몇 가지 검사를 하고 한 시간 동안 나를 하드코어로 운동을 하게 했다.
그러고나서 다시 또 검사를 하더니 그 후에는 사정을 하고 오라고 했다.
이런 걸 막 시켜도 되는 거냐고 했더니 되는 거라고 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민망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딸을 치고 돌아왔더니 똑같은 방식으로 다시 검사를 했고, 너무 힘들거나 하지 않으면 한 번 더 하고 오라고 했다.
그런 걸 시킨 사람이 은 과장님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그렇게까지 호응을 해 주지는 않았겠지만 어디까지나 상대가 은 과장님이어서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은 과장님은 나를 불렀다.
“결과 나왔어요?”
나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편안하게 물었다.
은 과장님은 대답하는 대신 나에게 손짓을 해서 맞은 편에 앉게 했다.
그리고 내 앞에 태블릿 피시와 노트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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