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8 ----------------------------------------------
소코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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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불빛.
핫 걸이 오고 있었다.
나는 핫 걸의 차에 올랐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핫 걸은 자기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나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의 운명이 그런 것일 거다.
그 소식은 다른 누구에게 전해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나에게 전해졌다.
예멘으로 간 아버지와 새엄마, 그리고 연우가 속한 그룹이 자살 폭탄 테러의 희생 제물이 될뻔 했지만 다행히 첫 시도에서는 부상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괴한들이 나타나 그들을 납치해서 인질극을 벌였고 함께 붙잡혔던 사람들 중에 미국인과 일본인이 차례로 살해당했다. 뒤의 소식은 나중에 들었다. 핫 걸은 그 얘기를 차마 전화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만나고 나서야 얘기를 해 주었다.
"IS인 겁니까?"
내가 물었다.
"IS의 소행이라고 믿기를 바라는 다른 단체의 소행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어요."
핫 걸이 말했다.
나는 핫 걸을 바라보았다.
핫 걸은 그 어느때보다 지쳐보였다.
그러나 지금 자기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다른 단체라면요?"
"전쟁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겠죠. 이 평화로운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요."
우리는 서로 신중했다.
결국 그 이름을 먼저 꺼낸 쪽은 나였다.
"사바스입니까?"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핫 걸이 말했다.
핫 걸은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
핫 걸 자신도 나를 따라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
핫 걸은, 김 경장이 전해온 몇 가지 정보들을 파악하고는 있었지만 일이 이런 식으로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미안해 했다.
키샤장조차도 그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 평소에 이용하던 것과 다른 루트로 핫 걸을 급하게 깨워 소식을 전하고 바로 나에게 연락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면서 핫 걸은 달리 더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내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몇 마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그냥 마음 속에 담아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냐고 핫 걸의 마음을 살펴 묻지 못했다.
혈관을 타고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사바스도 용서할 수 없었고, 일이 이렇게 되게 만들어버린 내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나는 원래 그 시간에 연우와 아버지와 함께 그곳에 같이 있어야 했다.
내가 거기에 있기만 했더라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나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도무지 나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예멘에서는 오래 전부터 외국인 납치가 골칫거리였어요. 부족들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중앙 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 종종 외국인들을 납치해서 협상카드처럼 사용한다고 전해지고 있고요. 그런 점이, 사바스가 그곳을 선택한 좋은 이유가 됐을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이 일어나도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전에도 이런 일은 있어왔고요. 현재로서는 사바스가 관여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지만 수일 내로 밝힐 수 있을 거라고 봐요.”
핫 걸이 말했다.
"범인들이 백인이었다고 합니까?"
내가 물었다.
"김 경장은 자살 폭탄 테러와 인질극을 벌인 사람들이 예멘 현지인들이었다고 했어요. 사바스가 보유한 막대한 잉여금으로 현지에서 용병을 구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을 거예요. 자살 폭탄 테러에 이용할 사람을 구하는 건 사바스에게서 돈을 받은 사람들이 알아서 했을 거고요. 그렇게 간단하게 눈가림을 할 수 있었겠죠."
“왜 이런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은 거죠? 인질이 죽기까지 했다면서요.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니고 미국인인데. 언론이 통제되고 있습니까? ”
“그 말이 맞아요. 모든 외신이 침묵하고 있어요.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로 논평을 자제하고 있고요. 키샤 차원의 요구라서 아마 엄격하게 지켜질 겁니다. 그런데 오래 가지는 못할 거예요.”
키샤 차원의 요구라는 말을 곧바로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 건 어떻든 상관이 없었다.
“긴 시간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랑 일본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겁니까?”
키샤가 두 나라에까지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가 하는 의구심에 그렇게 물었다.
"일본은 미국 정부에서 잠시 그러고 있자고 하니까 마지못해서 그러고 있는 것 같고 미국 정부는 모든 보고를 미리 받고도 카린 때문에 꼼짝을 못하고 있는 상태예요. 카린이 실질적으로 드러나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폴은 지금 완전히 카린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있어요. 카린은 폴을 통해서,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이 섣부르게 논평을 냈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경고했어요. 이건 돈에 눈이 멀어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미국 민간 용병들이 IS를 사칭해서 벌인 짓이라고 미리 규정을 한 것 같아요. 이 사건이야말로 폴을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게 만들어줄 절호의 기회라고, 카린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핫 걸이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증명할 방법도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카린이 직접 나서기로 한 거예요. 카린은 자기한테 24시간만 주면 납치범들을 소탕하고 납치범들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단언을 했어요. 그 후에는 미국 정부에서 어떻게 대응을 하든지 전부 받아들이겠다고 했고요. 그 책임은 폴이 지고 있어요. 잘못되면 폴 콜드먼이 그 책임을 전부 지고 대선후보로서의 지위도 포기해야 될지 몰라요. 두 사람은 이제부터 완전한 운명 공동체가 돼 버린 거죠."
"카린이 그걸 통해서 얻는 게 뭡니까?"
핫 걸을 보고 물었다.
"민간 군사기업은 어느 정도 필요악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잡초를 뽑으면 다시 잡초가 나오죠."
"사바스를 제거하고 그 구역을 자기가 먹으려고 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죠. 외부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고 하더라도요. 내 생각에는 카린이 임정우씨한테 졌던 빚을 이런 식으로 갚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요?"
핫 걸이 말했다.
코야 리코와 내가 소설을 쓰고 카린의 부탁을 들어주었던 일을 말하는 듯했다.
핫 걸은 최대한 밟고 있었지만 나한테는 끔찍하게 느린 속도였다.
나는 차를 세우라고 하고 내가 운전석으로 가서 운전대를 잡았다.
그리고 뒷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속도를 냈다.
핫 걸은 나를 말리지 못했다.
"사바스 용병들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 파악이 되지 않고 있어요."
핫 걸이 말했다.
그러면서, 키샤의 지원을 바란다면 자기가 인원을 보충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나의 전쟁이다.
속으로 나는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핫 걸과 내가 공항에 갔을 때는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준비 돼 있었다.
미국에서는 카린과 근도가 예멘으로 오기로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더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마지막 순간에 나는 혼자서 고개를 저었다.
사바스든, 누구든.
일단 내 사람들을 건드렸을 때 그들의 목숨은 끝이 난 것이다.
겁을 주는 차원에서 끝을 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목격자의 수를 늘려서 좋을 것은 없었다.
***
김 경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두고 있는 상태였다.
김 경장이 준비해 둔 무기만 가지고도 우리가 가고 있는 시밤을 몇 시간만에 점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김 경장과 핫 걸이 무장을 하는 동안에도 나는 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들고 있기는 해야하지 않겠냐는 김 경장의 말에 나는 예멘 남자들이 들고 다닌다는 잠비아라는 칼을 들었다.
맨 손으로 싸운 괴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서 칼을 든 것일 뿐, 그걸 정말로 사용하게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김 경장이 준비해 둔 무기도 실제로 쓰일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사바스의 무장 상태를 알지 못해서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한 거라고 했다.
그곳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