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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329화 (32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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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트라

김 경장은 나와 핫 걸에게 면목이 없는 듯, 자꾸만 시선을 회피했다.

백업을 맡고 있던 사람이 그들을 놓쳤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김 경장이 계속 우리 사람들을 주목하고 소식을 전해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올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김 경장을 위로했다.

김 경장 혼자서 사바스를 상대로 인질들을 구해내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카린과 근도가 합류하기 직전에 우리는 연우 일행이 억류된 장소를 알아냈다.

김 경장이 그동안 포섭해 놓은 사람들에게서 정보가 들어온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곳은 외딴 곳에 있는 호텔이었다.

흙벽으로 지은 건물이 높게 올라가 있는 곳.

그곳에 연우가 있었다.

나는 카린을 기다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도저히 일 분도 그 자리에서 낭비하며 기다리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가야될 것 같습니다. 카린이랑 근도를 기다렸다가 같이 오세요."

핫 걸에게 말하고 내가 그곳을 먼저 떠나려고 했을 때 카린과 근도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내가 자기들을 기다리지 않고 떠날 거라고 생각하고 서두른 것 같았다.

카린은 다른 어떤 때보다도 차가운 얼굴이었다.

사바스가 마침내 문제를 일으켜 버렸고 자기가 그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근도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짜져 있지 뭘 한다고 와. 겁도 안 나냐? 네 손을 자른 놈들이랑 한 패거리잖아.”

나는 근도를 보고 말했다.

그래놓고는 근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걸로 내 고마운 마음이 근도에게 전해지기를 바랐다.

“그러니까 한 번은 봐야지. 내 손 자른 놈들은 네가 죽여서 나는 손댈 기회가 없었으니까 다른 사바스놈들한테 화풀이라도 하려고.”

근도는 내 말에 대꾸를 하고 핫 걸과 김 경장하고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밖으로 나온 우리는 짚차에 올라탔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 근도와 카린이 탔고 핫 걸은 김 경장과 함께 다른 차에 탔다.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의 눈치를 안 보고 우리끼리 할 말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옆에 앉은 근도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었다.

"와 줘서 고맙다."

근도는 다 이해한다는 듯이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카린은 뒤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그렇게 쉽게 마음을 놔 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그랬습니다. 이번에는 내 그림이 틀린 모양이라고 생각했어요."

카린이 말했다.

차마 나를 바라보지는 못하고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나는 카린을 탓할 수 없었다.

카린의 그림이 그려진 후로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알게 된다고 해서 그 일에 전부 대응할 수는 없는 거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 절실하게 깨달은 후였다.

"카린은 충분히 해 줬습니다.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리고 아직 아무 것도 끝나지 않았지 않습니까. 바로잡을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내가 바로잡을 거고 말입니다."

내가 말했다.

김 경장과 핫 걸이 처음에는 앞장을 섰지만 곧 우리에게 뒤처졌다.

“한세영이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카린이 말했다.

“뭣 때문에요? 세영이 누나가 무슨 일을 해줘야 되는 건데요? 사바스 용병 놈들의 기억을 누를 필요는 없을 겁니다. 죽으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카린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놈들 중 한 명도 그냥 살려서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내 말에 카린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김 경장에게서 받아두었던 사진들을 근도에게 건네주었다.

근도는 첫 장을 보고 바로 볼을 부풀리면서 사진들을 카린에게 던지듯이 줘버리고 바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죽은 미국인은 CNN 기자였다.

김 경장이 사진을 보여 줬을 때 핫 걸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핫 걸은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고 몇 번 헛구역질을 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산전수전을 겪었을 핫 걸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진은 끔찍했다.

남자였다는 얘기를 미리 듣지 못했다면 사진 속의 사람이 남자라는 것도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시신은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십자가에 거꾸로 박혀 처형된 것처럼 두 팔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머리가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는 바닥에서 일 미터 정도 띄워져 있었고 배와 허벅지에 함부로 못이 박혀져 있고 발목은 모아져 위에서 하나로 묶여 있었다.

직접적인 사인이 뭔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무슨 일을 당한 건지는 예측이 가능했다.

나는 그 사람이 그 일을 당하는 동안 쇼크로 정신을 잃고 일찍 죽었기를 바랐다.

그런 일을 당하는 동안 오래도록 정신이 붙어있는 상태였을 거라고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남자의 얼굴이 있는 부위를 중심으로 나무가 집중적으로 검게 그을려 있었고 바닥에는 불을 피워올린 나뭇가지들이 검게 타 있었다.

남자의 머리카락은 남아있지 않았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살아있는 동안 그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근거는 불에서 안전하게 지켜진 다리의 형체 때문이었고 불길에 능욕당한 얼굴과 가슴팍은 형편없이 녹아내렸다.

불타버린 옷들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게 해 주었다.

“구강 내부 사진을 봤는데 이 사람, 화염을 빨아들였어요. 입천장에 수포가 있었고 그게 아마 기도까지 이어진 것 같았고요. 머리가 불에 타는 동안 이 사람은 살아 있었을 겁니다.”

우리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김 경장은 묻지도 않은 것까지 설명해 주면서 우리를 더욱 심란하게 만들었다.

“단순히 죽이는데만 목적을 둔 게 아니예요. 감정을 자극하려고 한 거예요.”

핫 걸이 말했다.

핫 걸의 말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CNN 기자가 살아있을 때의 사진을 띄우고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삶을 살았는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서, 그 사람이 예멘에서 테러범들에게 무슨 짓을 당했는지 깨닫게 해 준다면 사람들은 쉽게 테러범들을 향해서 분노하게 될 거였다.

자기들이 합당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건지는 어느 순간 중요하지 않게 된다.

화풀이를 할 상대가 필요하고, 너무나 화가 나 있다는 사실만 중요하게 남는다.

그게 사바스가 노리는 일이었다.

지금쯤 사바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당장 전쟁을 시작하고 IS 소탕작전을 벌이지 않으면 다음에는 자기들이 희생 제물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끔찍한 죽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잔혹성은 일본인 인질의 시체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일본인 인질은 20미터 높이의 용혈수에 끌려 올라가 그곳에서 던져졌다.

용의 피가 흐른다는 거대한 나무 용혈수에서 던져진 일본인의 머리가 쪼개지는데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느니 인간이 존엄하다느니 하는 말들은 적용되지 않았다.

그냥 물리의 법칙이 적용될 뿐이었다.

땅에 떨어져 박살이 난 얼굴에서 뇌수가 흘렀다.

뼈가 부러지면서 팔과 다리는 기이한 각도로 뒤틀려 원래 놓일 수 없는 자리에 놓였다.

그런데도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신의 몸이 밧줄에 묶인 채 몇 번이나 다시 공중으로 들어올려졌고 다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사진이 일단 국제 사회에 퍼지기 시작하면 파장은 걷잡을 수 없게 될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이 새끼들이 먼저 이런 짓을 했다면 적어도 죄책감은 안 가져도 되겠네.”

뒤에 앉아 있던 카린이 사진을 보고서 말했다.

내가 원했던 말이었다.

그런 짓을 저지른 사바스에게 괜한 자비 따위를 베풀 생각은 하지 말라고.

나는 내가 너무 늦어버려서 아버지와 연우와 은 과장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바스 놈들이 근도를 어떻게 괴롭혔었는지 그것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일단 거기에 잠식당해 버리고 나면 인식 제어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평정을 유지해야 했다.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에 나는 더욱 속도를 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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