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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트라
우리가 탄 짚차는 소코트라를 향했다.
연우가 말했던 게 떠올랐다.
오빠. 소코트라에 가자.
소.코.트.라.
그 네 음절의 단어가 참 좋은 인상을 주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가기 전이었고, 연우는 내가 심적으로 많이 괴로운 그 상황에서 자기가 한가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것처럼 미안해 했었다.
연우에게 그런 마음을 들게 했다는 게 미안했었다.
그래서 나는 연우에게 말했었다.
그래. 소코트라에 가자.
그런데 연우를 따라나서지 못했다.
예멘으로 출발하기로 되어 있던 날 내 몸이 말썽을 일으켰다.
내 몸은, 마치 내가 처음에 질병을 앓았던 그때처럼 이상해 졌다.
은 과장님에게 그 얘기를 하면 나를 돌보기 위해 은 과장님까지 당장 예멘행을 취소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일은 아버지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곧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아무 문제도 없었고 그동안 약도 잘 먹어 왔기 때문에 잘못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무 태평하게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길이, 새엄마와 아빠의 신혼 여행을 겸하는 여행이라는 생각 때문에 내 상태를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고 연우에게 두 분을 맡겼다.
연우는 내 걱정을 했고 내 옆에 있어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우가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면서 얼마나 서운해 했었는지 알고 있던 나로서는 연우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비행기가 뜬 후로는 정말 거짓말처럼 몸이 괜찮아졌다.
연우와 통화를 했을 때는 내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연우가 나한테 꾀병 부린거 아니냐고 물었을 정도였다.
나는 뒤늦게라도 예멘으로 가고 싶었지만 연우는 생각보다 현지 환경이 힘들다면서 오면 괜히 고생만 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나만 고생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뭐 대수냐고 했더니 오빠가 오면 분명히 24시간 내내 입을 안 다물고 불평을 할 거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자기가 거기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아 나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주지도 못할 것 같으니 그냥 여기에서 푹 쉬라고 했다.
이번에는 소코트라에 갈 시간도 없을 것 같으니 나중에 둘이서만 같이 거길 보러 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반쯤은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지만 반쯤은 연우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 같기도 했다.
너무 바빠서 신경을 써 줄 수도 없는데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내가 돌아다니면 자기도 불편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연우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나도 연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연우가 이벤트 때문에 너무 바쁘면 은 과장님이 혼자 방치될 것 같아 은 과장님이 걱정되기는 했다. 다행히 그 문제는 현지에 미리 파견되어 있던 김 경장 때문에 해결이 되었다. 핫 걸이 미리 김 경장에게 우리 직원들의 보호와, 특별히 은 과장님의 경호를 부탁해 놓은 것이다.
은 과장님은 항상 김 경장이랑 같이 다니게 해야 된다고 연우에게 한 번 더 주의를 주었고 연우도 혼자서는 절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했다.
연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너랑 같이 있으면 즐거울 것 같은데.”
나는 금세 연우가 그리워져서 말했다.
“말이라도 고맙네요.”
"외로우면 전화해."
"므로 데려와서 괜찮아요."
"므로? 므로를 데려갔어? 므로를 왜?"
마지막 순간까지 연우가 므로를 데려가고 싶어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정말로 데려갔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왜는요? 므로랑 같이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렇다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므로는 이제 내가 없는 곳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핥지도 않았고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인형처럼 움직이지도 않고 숨소리도 안 내고 가만히 있었다.
므로처럼 키우기 쉬운 펫은 없을 거라면서 연우는 므로를 좋아했고 므로 때문에 외로움을 덜 타게 됐다면서 나에게 고마워했다.
므로말고 좀더 안심이 될만한 녀석을 데려갔다고 했으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을 텐데.
'왜 하필 므로냐. 없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낙오된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혼자 남아 있었다.
핫 걸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 나는 최종적으로 남아있던 평가서 몇 개를 살펴보고 있었다.
새롭게 투자해 볼 곳에 대해서 사업성을 알아보려고 의뢰했던 평가서들이었다.
나는 핫 걸의 전화를 받고도 평가서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금 집 앞으로 가는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
“왜…요?”
내가 물었을 때 핫 걸은 잠시 뜸을 들였지만 이내 용건을 말했다.
사나에서 사람들이 납치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연우랑 새엄마랑 아빠는 무사해야 될 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 가족들이 머무는 곳이 사고 난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랐다.
내가 말을 하지 않고 있는 동안에 핫 걸은 납치된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곳을 달리고 있다.
차는 험한 계곡을 지나고 있었다.
돌무더기가 깔린 바닥을 지나면서 몸이 요동쳤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런 상황에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핫 걸과 김 경장도 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빠르게 뒤쫓아 오고 있었다.
카린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이드 스킬을 쓰죠. 그럼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카린이 말했다.
나는 그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그렇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나를 도우려고 나를 따라나선 사람들이 위험한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사바스 놈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는 생각으로만 머리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기꺼이 나를 따라나서준 근도와 핫 걸, 김 경장은 모두 잘못하면 여기에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따라나선 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그들에 대해서 전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문득 미안하고 부끄러워졌다.
내가 잃은 사람들만이 내 사람들이 아니었다.
아직 내 사람들은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나한테는 그 사람들을 지킬 의무가 있었다.
나는 카린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식 제어를 해서 내 모습을 감추고 들어가면 아무리 잔인한 습성을 가진 사바스 용병놈들이라고 해도 나를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계곡의 입구를 지나려고 했을 때 길은 더 험해졌다. 짚차가 하늘로 솟구치는 것처럼 요란하게 튀었다.
"지형이 진짜 험하다."
근도가 말했다.
그러다가 근도가 밖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 저거. 사, 사람들 같은데?”
나와 카린은 밖을 내다보았다.
근도의 말대로 정말로 사람들이 있었다.
깊은 계곡은 거친 돌과 암벽, 거대한 나무들로 가리워져 있었는데 그 땅에 정말로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에 묶여 있었다.
인정 사정 없이, 피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내가 차를 멈추자 근도가 재빨리 내려 그 사람들에게 달려가서 몸을 묶은 끈을 풀어 주었다.
사람들은 손가락에서 나온 칼로 줄을 끊는 근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꼼짝할 수 없는 그들의 몸에 벌레들이 붙어서 몸을 물어뜯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벌레들이 수도 없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몸에 붙은 벌레들을 떼내 주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고성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끔찍한 일들을 겪은 후라서 쉽사리 진정을 하지는 못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들은 예멘군들이 반격을 하려고 온 건가 하면서 우리 뒤쪽을 보았다.
그러다가 그들을 구출하러 온 사람들이 우리가 전부라는 것을 알고 실망하는 것 같았다.
몇 사람은 나를 알아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요? 연우는요!”
나는 연우와 같이 있는 것을 본 적 있었던 부장에게 달려가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답을 알지 못했다.
거기에서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김 경장과 핫 걸에게 그 사람들을 부탁했다.
김 경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사람들을 부축했다.
============================ 작품 후기 ============================
일단은 여기까지입니다...눈알 빠질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