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37화 (337/402)

0337 ----------------------------------------------

In the Dark

당장이라도 영상 속의 여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여자가 입원해 있는 곳이 어딘지 단서가 될만한 것은 영상에 나와있지 않았다.

여자가 입고 있는 환의조차도 흔하디 흔했다.

가끔 보면 환의에 병원 이름이 새겨진 것도 있던데 영상 속의 여자가 입고 있는 환의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결국 나는 우연과 운명이 협력해서 나를 그 여자에게 데려다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해미가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것은 그 이유였다.

나는 준위와 함께 병문안을 갔다.

해미는 내가 병문안을 와 줄 거라고 기대하지 못했던 듯, 완전 감동한 얼굴을 하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이틀 정도 쉬면 낫는다는 해미를 위로해주고 나온 나는 준위와 헤어졌다.

지인이 여기에 입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는 말에 준위는 군말없이 갈 길을 재촉했다.

그때부터 나는 병동을 뒤지고 돌아다녔다.

여기에서 만나게 될 거다 라는 느낌이 강했다.

뭔가가 내 발을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가 곧 만나게 될 거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달렸다.

하지만 금방 만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한참을 헤매고도 영상 속의 여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오늘은 날이 아닌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가 와서 멈췄다.

“잠깐만요.”

문이 닫히려는 것을 보면서 달려갔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서 있는 여자와 그 옆의 간병인을 보았다.

눈에 붕대를 감은 여자는 벽에 손을 짚고 있었다.

나는 멍하니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시선은 똑바로, 붕대감은 여자의 얼굴에 고정되어 버렸다.

내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던 시간은 5초도 안 됐을 것이다.

여자의 옆에 서 있던 간병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안 탈 거예요?”

여자는 웬 맹탕이 엘리베이터를 잡아놓기만 하고 타지도 않고 그러고 있는 건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서 짜증스럽게 말했다.

나는 걸음을 빨리 해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나한테 짜증을 냈던 여자는 가까이 다가가는 나를 보고 얼굴을 돌렸다.

건방지게 말을 할 상대가 아니었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여자는 손으로 목을 감싸고 콜록거렸다.

숨을 쉴 수 없는 것처럼 읍, 읍,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것은 불과 몇 초 동안 이루어진 일이었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자기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알지 못한 채로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언니…. 무슨 일이예요? 괜찮아요?”

붕대를 감은 여자가 무슨 일인 건가 하면서 손을 내밀었지만 옆에 서 있던 여자는 붕대감은 여자의 손이 닿는 것이 싫은 듯 일부러 몸을 옆으로 틀었다.

"언니."

"그만 불러!"

간병인이 사납게 말했다.

붕대 감은 여자는 뻗은 손을 움츠렸다.

“미안합니다.”

나는 붕대감은 여자를 안심시켜 주기 위해서 말했다.

멈춘 엘리베이터에 젊은 남자 한 사람이 탔다는 상황을 그런 식으로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몇…층이세요?”

언니라는 여자가 물었다.

당신이 친절을 베풀어야 할 상대는 내가 아닐 텐데? 하는 표정으로 그 여자를 한 번 바라보다가 나는 9층을 눌렀다.

이미 8층이 눌러져 있어서 그보다 윗층을 임의로 누른 것이다.

초면에 겁도 없이 아무한테나 짜증을 내는 여자를 보고 화가 나서 그런 거였지만 나는 내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 여자의 몸에 순간적으로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붕대감은 여자는 벽에 붙어 서 있다시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로 믿을 만한 사람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채 서 있는 게 어떤 공포를 안겨줄지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언니….”

붕대 감은 여자는 다시 한 번 언니라는 여자를 불렀지만 그 여자는 대답도 하지 않았고 붕대 감은 여자의 곁으로 가지도 않았다.

나는 언니라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하얗게 변하면서 몇 가지의 장면이 수면 위로 튀어오르듯 툭툭툭 던져졌다.

언니라는 여자는 전무의 비서였고 수술을 받은 여자는 전무의 딸이었다.

자기가 나서서 그런 일까지 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그 여자는 전무의 딸이 수술을 한다는 말에 간병을 자처하고 나섰다.

전무에게 점수를 따서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그저 그런, 딱 그 여자의 수준에 어울리는 짓을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는 8층에서 멈췄다.

간병하는 여자는 붕대 감은 여자의 팔을 잡고 링거대를 밀면서 빠르게 걸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그 속도가 얼마나 벅찰지 그런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나는 내 몸을 감춘 채 두 사람을 따라 내렸다.

간병하는 여자는 병실에 도착할 때까지 그 속도로 걸었다.

짜증이 가득한 태도였고, 눈이 보이지 않는 여자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나는 붕대 감은 여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유소이.

그게 수술받은 환자의 이름이었다.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유소이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스스로 알아낼 수 있을 것 같기는했지만 나는 유소이에게는 그런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았다.

유소이의 이야기는 유소이에게서 천천히 들으면서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날씨는 쌀쌀했다.

간병하는 여자는 문을 열고 유소이를 병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문을 야무지게 닫지 않아서 안으로 찬 바람이 들어갔다.

“언니. 죄송한데 문 좀 꽉 닫아주시면 안 될까요? 바람이 들어와서 추워서요.”

유소이는 추운 곳에 오래 있어서 붉어진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러나 여자는 이번에도 유소이의 말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유소이에게 목소리야말로 절실할 텐데도 여자는 고집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유소이를 침대에 데려다놓고 링거를 침대 맡의 거치대에 옮겨 걸은 여자는 링거대를 대충 옆으로 밀어놓고 나오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유소이의 침대로 다시 다가갔다.

그러고는 옆으로 치웠던 링거대를 들어 소리가 나지 않게 유소이의 슬리퍼가 놓인 곳에 내려놓았다.

유소이가 혼자서 내려오려고 하면 거기에 걸려 넘어질 것 같은 위치였다.

정말로 그걸 의도하고 저러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 여자는 심술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자기 스마트폰만 들고서 문밖으로 나왔고 문은 반이나 열어 놓았다.

유소이는 발소리를 들으며 당황한 얼굴로 앉아있다가 이불을 어깨까지 올렸다.

나는 간병하는 여자가 복도를 걸어가는 걸 보고 안으로 들어가 유소이의 침대 앞에 놓인 링거대를 치우고 문을 닫아주고 그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여자는 그 사이에 누군가와 통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원래 퇴원은 모렌데 다 나아야 가는 거지, 뭐. 전무님은 퇴근하자마자 여기로 오시고 나한테 너무 고마워하셔. 고생시켜서 미안하대. 저 기집애만 아니면 이 짓도 할 만 한데. 나는 쟤가 그냥 괜히 싫더라. 무슨 퇴원을 그렇게 빨리 해? 쟤나 좀 오래 아프면 좋겠어. 그럼 쟤 간병해준다는 핑계로 전무님 댁에 머물 수도 있을 텐데. 사고나 나면 좋을 텐데. 그냥 확 밀어버릴까? 병원에서도 사고 많이 난다는데.”

그런 말을 하면서 까르르르 웃는 여자가 도대체 제정신이기는 한 건지.

나는 여자를 따라가는 것을 멈추고 유소이의 병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일부러 소리내서 문을 열었다.

타이밍도 좋았다.

유소이는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주위를 손으로 더듬고 있었다.

“도와드릴까요?”

나는 유소이가 나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라지 않도록 말했다.

“아….”

유소이는 놀랐고 나는 유소이에게 달려가 유소이의 팔을 잡아 주었다.

“아까 엘리베이터에 같이 탔었는데요. 모르시겠죠?”

“아…. 네….”

“동생이 입원을 해서 보호자 노릇을 해 주고 있는데 동생 친구들이 와서 가질 않네요. 지나가다가 도움이 필요하신 것 같아서 들어왔는데. 혹시 불편하세요?”

나는 한껏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 작품 후기 ============================

편안한 밤 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