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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339화 (33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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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Dark

드디어 나는 머리끈을 찾았고 겨우 머리끈을 찾은 것뿐이면서 스스로 대견해했다.

“여기있네요. 찾았어요!”

“아. 주시면 제가 묶을게요.”

유소이가 말했다.

“내가 해줄게요.”

나는 머리 묶는 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묶으면 되겠지 했고 신중하게 천천히 시도를 했는데 얇은 끈 때문에 아픈지 유소이의 입에서는 아야, 아야 소리가 나오더니 나중에는 우리가 초면이라는 것도 잊은 듯 제법 화까지 냈다.

“내가 한다니까요?!”

유소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치. 그게 아프면 얼마나 아프다고. 기죽게.

“아. 미안해요. 잘 될 줄 알았어요.”

유소이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머리끈을 잡고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휘휘휘휘 돌리더니 금세 머리를 묶었다.

그게 뭐라고 신기한지?

그리고 그게 뭐라고 어려운 건지?

“쉽고만. 근데 왜 잘 안 됐지?”

내가 말했더니 유소이가 웃었다.

“화내서 미안해요.”

유소이가 말했다.

“그죠? 맞죠? 화낸 거 맞죠? 왜 화내냐고 따지려다가, 설마 이 착한 나한테 화 낸 거겠어?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화 낸 거 맞네.”

유소이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정말 의외라고 여겨지겠지만 의자가 없네요.”

“정말이예요?”

유소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네. 의자 위에는 가방이랑 옷이 잔뜩 놓여 있는데 남의 물건을 함부로 내려 놓기도 그렇잖아요.”

“어. 그럼 침대에 앉아요. 침대에 자리는 좀 남아있죠?”

그러고 유소이는 자기 무릎을 세워서 한 팔로 안으며 쥐며느리처럼 몸을 웅크렸다.

그러지 않아도 자리는 충분했지만 나는 유소이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나는 유소이가 경계를 허물도록 내가 만든 가상의 동생을 내세워서 유소이에게 질문을 했다.

“동생 같아서 걱정이 돼서 들어온 건데 내가 갑자기 들어와서 놀라지는 않았나 모르겠네요.”

“놀랐죠. 근데 동생이 몇 살인데요?”

“스물 두 살요.”

“어머. 신기하네요.”

그렇겠지. 똑같지?

문 앞에 붙어있는 네임 카드에서 봤어.

“왜요? 혹시 그쪽도 스물 둘? 그럼 이건 운명인데?”

“무슨 운명요?”

“스물 두 살이 올해 별로 운이 안 좋을 운명?”

“그런 게 어딨어요.”

유소이가 큭큭거리며 나를 비웃는다.

드러난 목이 예쁘다.

열이 난다더니 목에 땀이 나기는 했다.

추운데도.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목에 달라붙어 있다.

나는 손을 내밀어서, 잠깐, 이라고 말하고 머리카락을 떼주었다.

“아….”

떼주고 났더니 묘하게 흐뭇해졌다.

별 것 아닌데 성취감 있네.

별 것 아닌데 에로틱하게 느껴진다.

유소이는 그저 가만히 웃음을 짓고 있엇다.

“많이 답답하죠?”

내가 물었다.

“네. 죽겠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전신마취는 절대 안 했을 텐데.그냥 부분마취 할 거라고 우기는 건데 그때는 이렇게 될 줄 몰랐죠.”

“언니라는 사람한테 좀 강하게 말하지 그랬어요? 옆에 아무도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거잖아요. 위험하기도 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고 호의로 와 준 사람이라서 말하기가 불편해요.”

“그렇긴 하겠네요.”

내 말에 유소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한숨소리가 휴우, 그런 것도 아니고 아콩, 이라고 나와서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감기 걸리겠는데 목에 뭐라도 두르고 있어야 되지 않아요?”

“나가면 추운데 안에 있으면 너무 덥네요. 너무 답답해서 밖에 좀 데려가 달라고 졸라서 나갔다 온 거거든요. 나가니깐 너무 추워서 들어오자고 했는데 들어오니깐 또 덥고. 그래서 화 났나봐요. 변덕 부린다고.”

“그거야 당연한 거죠. 환자 상태 봐 가면서 도와주는 게 그 사람이 할 일 아닙니까? 도와주겠다고 한 사람이 자기가 뭘 해야 되는지도 모르고 자원했대요? 병원에서 의사 꼬셔보려고 나선 거래요? 애초에 못 할 것 같았으면 호의를 베풀지 말았어야지. 하지도 못할 일에 나서서 괜히 이게 뭐랍니까?”

생각하니까 열받네?

내가 갑자기 화를 내자 유소이가 워, 워, 라고 하면서 진정하라는 듯이 말했다.

“이거. 근데 되게 웃기네요. 앞도 안 보이는데 알지도 못하는 분이 와서 옆에 앉아있고 알지도 못하는 분한테 별 얘기를 다 하고 있네요. 좀 비현실적이예요.”

유소이가 말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어떤 면으로는 재미있는 모양이다.

“다 나으면 뭐할 거예요?”

내가 물었다.

“이건. 낫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전에도 저는 크게 불편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수술이 끝나고 회복이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별로 없을 것 같아요.”

유소이가 말했다.

나는 현이 생각났다.

수술을 받고나면 일어서서, 다른 높이에서 바깥을 보고 싶다고 했던가.

그동안 자기가 떠날 수 없었던 휠체어에서 일어서서.

그 말을 해 주었더니 유소이는 정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유소이가 물었다.

“당연하지. 나도 편하게 말 놓을 테니까 편하게 오빠라고 불러.”

“우와. 엄청 빠르시네요.”

유소이가 웃었다.

“근데요. 초면에 이런 거 묻는 거 실례인 것 같지만.”

“응? 아무 거나 물어봐. 막 대해도 돼.”

“저한테서 냄새 안 나요? 땀은 나고 씻지는 못 하니까 미치겠어요.”

“크크크크크. 안 나.”

유소이는 아예 자기 머리카락을 한 웅큼, 코 앞으로 가져가더니 킁킁거리고 냄새를 맡았다.

아아. 머리가 긴 여자들은 저렇게 해서 자기 머리 냄새를 맡을 수도 있구나.

신기했다.

“여기선 안 나는데. 정작 두피에서 날 것 같은데.”

유소이는 얼굴을 찡그리고 말했다.

나는 우리가 그런 말을 나누고 있다는 게 웃겼다.

“내가 머리 감겨줄까?”

“머리요? 아니요? 아! 냄새나요?”

뭐라고 대답해야 되지?

코가 썩을 것 같다고 하면 감겨주게 해 주려나?

그래도 처음 본 사람한테 머리를 감겨달라고 하지는 못하려나?

그래도….

몸은 찝찝하고 머리는 감고 싶으면.

도박을 해 봐?

“이런 말 하기 그렇기는 하지만. 처음에 들어올 때는 몰랐는데 좀 나긴 나. 의료계 종사자들도 일하는 게 쉽지만은 않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어머. 왜요?”

“냄새나는 사람들한테 화도 못 내고 상태 봐줘야 되는 거잖아.”

“어. 진짜 그 정도로 심각해요?”

“심각한 건 아니고…. 음. 나나 되니까 지금 이 정도로 참고 놀아주고 있다는 정도?”

“헐. 세상에!”

“어떡할 거야? 나도 이제 슬슬 가 보기는 해야 되는데. 감겨 달라고 하면 후딱 감겨줄 수는 있어. 동생 해 줘서 이제 그건 숙달이 돼 있어서.”

유소이는 완전 정신 분열을 일으킬만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자기 옷을 잡고 킁킁거렸다.

“머리만 감으면 되겠죠?”

유소이가 물었다.

“아. 다른 데서도 냄새가 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데는 못 씻겨주는데?"

“큽!”

유소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머리 감아도 되긴 한대? 눈 수술 한 거라서 걱정되긴 하네.”

“그건 안 물어봤는데요.”

“그럼 의자에 앉아서 미용실에서 샴푸하듯이 하면 되겠네. 그럼 압력이 눈으로 쏠리지도 않을 테고.”

“그렇게 해 줄 수 있어요?”

“내 동생도 맨날 그렇게 해 주는데?”

있지도 않은 동생의 활약이 오늘 아주 대단하다, 그냥.

“그럼 진짜 염치 불구하고 부탁좀 드릴게요.”

“그런 걸 뭘 염치를 따져. 그놈의 언니라는 사람 기다리다가는 퇴원할 때까지 병동 전체를 악취로 물들이게 될 것 같으니까 지금 당장 움직이자고.”

내가 유소이의 손을 잡았더니 유소이도 내 손을 잡고 침대에서 내려올 준비를 했다.

다 큰 사람이 나한테만 의지하고, 앞으로 한 발 내딛는 데에도 내 도움을 구하고 있는 이 상황이 왠지 내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잠깐만. 잠깐 여기 앉아있어봐. 의자 좀 먼저 갔다 놓고.”

나는 의자 위에 있던 여자의 가방이랑 옷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침대 위에 주섬주섬 옮겨놓고 의자를 욕실에 옮겼다.

그리고 유소이를 데려다가 세면대 앞에 잘 앉혀서 세면대에 유소이가 머리를 기댈 수 있게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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