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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Dark
나는 소이가 말해준 것들을 힌트 삼아서 소이를 찾았고 소이의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
간헐성 외사시였지만 사람들이 거의 알아보지 못했고 집중을 하거나 많이 피곤할 때만 간혹 드러나는 정도였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면서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요소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소이의 사진을 보면 처음에 드는 생각이, ‘응?’ 이라는 거였다.
뭔가 이상한 것 같으면서도 어떤 게 이상한지 명확하게 닿지는 않아서 잔상이 오래 남았다.
그게 쉽게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깥쪽으로 조금 치우친 눈동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 같았다.
호기심과 의문을 들게 만드는 얼굴은 묘하게 신비로워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이국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그 표현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미세한 부자연스러움이 여러 감각을 자극한다는 것을 나는 소이의 사진을 보면서 깨달았다.
"이 사진 속 너. 엄청 매력적이다."
내가 말했다.
"치."
그 말이 좋게 들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자신이 포기해 버린 자신이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소이의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을 옆에 두고 사진이나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웃겼다.
"붕대 푸는 날이 모레라고 했지?"
"네."
“붕대 그냥 내일 풀어 달라고 하면 안 되냐?”
“미쳤어요?”
“아니. 미친 건 아니고. 빨리 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붕대 푼 첫 날은 얼굴 못 보여줘요. 눈 붓고 충혈되고 그런다고 한다니까요?”
소이가 제법 강경하게 말했다.
웃기는 녀석.
내가 아무 소리도 안 내고 자기 옆에 서 있으면 어떻게 나를 쫓아낼 건데.
“그럼 그 날은 나 여기 있지마?”
나는 그럴 생각이 저어어어어언혀 없으면서도 소이에게 물었다.
“조금 있다가 간병인 오면 가야죠. 안 바빠요? 되게 바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뭐. 매일 출퇴근 해야 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러면서 나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면서 유소이의 사진을 더 잔뜩 찾아냈다.
“유소이. 붕대 풀고 나서도 우리 가끔 이렇게 할까?”
“이렇게라뇨?”
“눈 가리고. 의도치않게 블라인드 플레이를 하게 된 것 같긴 한데. 넌 어땠어? 나는 기분 좀 남달랐던 것 같은데.”
내가 기대어린 눈으로 소이를 보면서 말했다.
하긴. 귀여운 척 해 봐야 지금의 소이한테는 안 먹힌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우리. 다음에도 봐요?”
소이가 물었다.
“넌? 다시 보고 싶은 생각 없어? 만나달라고 막 애걸복걸 할 줄 알았는데.”
“다음에는 눈 안 가릴 거예요. 답답해요.”
소이는 우리에게 다음이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런 내색은 안 하고 눈을 가리지 않겠다는 쪽으로만 포커스를 두고 말을 한다.
“그래도 다른 쪽으로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 같지는 않아?”
“아. 몰라요.”
소이의 아버지도 완전히 철면피는 아니었는지 간병인을 구해서 보내주었고 나는 늦은 시간에 소이의 병실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다시 소이를 찾아가기는 했지만.
그때마다 간병인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나는, 소이와 본격적인 섹스를 하는 건 아무래도 병실에 드나드는 사람들이랑 간병인의 존재가 신경 쓰여서 삼가고, 그냥 소이의 옆에 앉아서 소이의 환의 속으로 손을 집어 넣고 가슴을 만진다든지 소이의 손으로 내 페니스를 훑게 하면서 그 시간들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소이의 붕대를 푸는 날이 다가왔다.
나는 소이의 곁에 서 있었다.
거기에 서서 내가 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 내가 더 떨려.
두근두근두근두근.
그리고 드디어 붕대가 다 풀렸을 때.
영화같은 장면은 없었다.
눈은 시뻘겋게 충혈돼 있고 땡땡 붓고….
정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할 뿐.
그래도 다행히 수술은 잘 된 모양이었다.
수술 전의 상황은 사진으로 본 것밖에 없지만 어쨌든 잘 된 것 같다.
소이가 나를 보았다.
나는 소이를 보고 씨익 웃어주었다.
내가 소이의 얼굴을 궁금해한 것만큼이나 소이도 내 얼굴이 궁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이는 나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렸지만 조금 있다가는 다시 또 인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봐도봐도 잘 생겼냐?”
의사 선생님 때문에 크게는 얘기를 못하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더니 유소이가 어이없다는 듯이 픽 웃어버렸다.
“그럼 이제 퇴원하면 되는 거죠?”
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당분간은 책도 보지 말고 스마트폰도 하지 말고 어쩌고 어쩌고 하는 말들을 다 듣고 내가 말했다.
소이를 퇴원시키는 일은 내가 맡았다.
차에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소이는 자기 얼굴이 원래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알겠다고 말을 해도 조금 있으면 다시 그렇게 말했다.
“너는 참 희한하다. 처음 만나고 지금까지 왔는데도 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이제 드디어 붕대를 풀었는데 이 얼굴도 네 얼굴은 아니잖아. 붓기도 빠져야 되고 충혈된 것도 사라져야 되고. 자꾸 기대하게 만드네?”
내가 뭐라고 말을 할지 걱정한 것 같던 소이의 얼굴이 펴졌다.
“우리. 계속 만나는 거예요?”
“너만 괜찮다면 나는 그러고 싶은데?”
“…….”
소이는 두 손을 마주잡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더니 자기도 좋다고 말했다.
그 즈음에 나는, 빼먹지 않으면 안 되는 고해성사를 했다.
네가 나하고 사귀겠다고 결정을 하기 전에 알아야 될 사실이 몇 가지가 있다.
나는 한 여자한테 정착을 못 하는 성격이고 너는 내 첫 여자가 아니다.
만약에 그런 관계를 용납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게 맞는 거다.
그 말에 소이는 나한테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말을 해 주었다.
중간에 내 차가 멈췄고 화가 난 소이가 우당탕탕탕 소리를 내면서 차에서 내렸다.
좀 더 일찍 말했어야 되는 거였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소이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그런데 소이는 화가 무척 난 것처럼 택시를 잡아 타고 사라져버렸고 나는 택시까지 쫓아가는 일은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서 그대로 돌아와버렸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거의 일주일이나 걸렸다는 건 좀 의외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소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제 붓기도 많이 가라앉았는데 봐야 하지 않겠냐고.
나는 실익 없는 만남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고 소이는 항복을 선언하는 부족장처럼 참혹한 얼굴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소이. 나. 너 좋아해.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이 거짓이 되는 건 아니야. 너한테 상처주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너를 속이고 싶지도 않아.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믿어도 돼. 쓸데없이 네가 나에 대해서 궁금해지게 만들지 않을 거고 우리 사이에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말할 거야.”
“오빠는 나하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거짓말 했잖아요.”
소이가 말했다.
“응. 그때 실컷 다 했으니까 이제 할 필요도 없지. 그때 원 없이 다 했으니까.”
“헐.”
나는 소이를 안고 소이의 얼굴에 내 입술을 가져갔다.
소이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고 나는 소이의 부드러운 눈꺼풀에 살짝 입술을 댔다.
“보고 싶었다. 이렇게 보기 힘들었던 눈은 처음이었어.”
내가 말하자 내 아래에서 소이가 웃는 게 느껴졌다.
“혹시요. 내가 숨겨진 존재가 되거나 오빠의 그림자로 살아야 하거나, 어느날 학교로 찾아온 사람들이 나한테 물을 끼얹는 일이 생기거나 그런 걱정도 해야 돼요?”
소이가 물었다.
“아니? 다들 너를 좋아할 걸?”
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왜요? 나를 왜요? 일종의. 경쟁자잖아요.”
“짬도 안 되는 애 때문에 긴장할 사람들이 아니거든.”
“네?”
순간 긴장하는 것 같은 소이.
“그리고 그 중에 하나가 너 좀 데려와보래.”
“네에?”
소이는 정말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머리채 잡고 싸우는 배틀을 상상한 것 같았다.
“네가 모델로 여러 활동을 했다고 하면서 네 사진을 보여줬더니 독특한 매력이 느껴진다고 소개해 달래. 네가 수술했다고 하니까 아쉬워 하더라. 외사시가 약하게 나타났을 때의 사진이 정말 마음에 든다고.”
“그건 당사자가 아니니까 할 수 있는 말인 거예요.”
소이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겠지. 그리고 지금의 너를 봐도 아주 좋아할 거야.”
“뭐하는 분인데요?”
“신발 디자인.”
“무슨 신발요?”
“수영.”
“네…?! 혹시 그, 수영요?”
“응. 걔 이름이 수영이야. 그래서 그 브랜드가 수영이지.”
“……!!”
소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더니 으으으으윽, 하고 괴성을 질렀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신상을 무리하게 지르는 게 아니었다면서, 그 언니랑 친해지면 선물로 받을 수 있을 텐데 그걸 사느라고 자기 한 달 용돈을 다 썼다면서.
왠지 소이도 대단한 적응력을 선보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5부 In the dark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