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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딥 웹
“그런데 그 일이 왜 필요한 겁니까. 모두들 충분히 벌고 있잖습니까.”
나는 왠지 모르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해서 카린에게 물었다.
도대체 뭣 때문에 그 사람들이 용병이 되겠다고 한 건지 꼭 알고 싶었다.
“많은 돈을 번다.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게 있는 것 아닌가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을 해 낼 때의 성취감. 나를 필요로 하는 장소에서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 나란 존재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고 깨닫게 해 주는 일. 그런 것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카린이 말했다.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요?”
“그런 건 스스로 결정할 나이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까?”
내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괜한 고집이라는 걸 알았다.
카린이 나에게 뭔가를 속이려고 해 봤자 그것이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카린과 나,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전적으로 각자가 선택한 일입니다.”
“…….”
나는 카린이 하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어려운 일들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위험할 것 같은 임무는 거절할 거고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수행해야 하는 경우라면 그때는 임정우씨나 내가 같이 가도 되는 것 아닙니까.”
카린이 나를 설득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나는 그래도 우리가 그 일을 해야 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 사람들한테도 존재의 이유가 필요한 겁니다.”
카린이 말했다.
“이지도 대대장과 정은수가 홀에서 진상 고객들과 실갱이를 하다보면 피가 끓는 순간들이 오겠죠. 최근도는 고문으로 자기 손을 잘렸고 민현은 휠 체어에서 일어설 수 없었고 말입니다. 강함에 대한 열망과, 자기들을 주저앉게 만든 외부의 힘에 대한 분노는 모두에게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힘을 손에 넣을 정도로 용기를 내지 못하고 현실에 타협하는 거고 우리는 다른 겁니다.”
“…….”
“그 사람들의 뜻은 이미 정해졌습니다. 단지. 임정우씨한테 빚진 마음이 크기 때문에 임정우씨 모르게 뒤에서 결정하고 싶지는 않다는 거고요.”
“그럼….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은요?”
“작전은 기껏해야 1,2주 정도 걸릴 겁니다. 그 사람들이 돌아갈 곳은 언제나 있어야 되죠. 그 사람들은 어딘가로 멀리 떠나는 게 아닙니다. 잠깐씩 자기들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 주는 일을 하고 돌아가는 겁니다. 홈, 스위트 홈으로요.”
나는 카린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 문제에 대해서 각 사람하고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숨을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와 얘기를 해 보기는 해야 되겠지만. 일단 알았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나도 지지한다고 말해줘야 되겠네요.”
“앗싸아아.”
희한한 소리를 내더니 카린이 웃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카린이 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뭘 말입니까? 지금 혹시 농담하신 겁니까?”
“아뇨. 최근도씨랑 나는 임정우씨가 그렇게 말할 거라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시에라리온 반군이 점령하고 있는 곳을 지나는 수송 작전을 시험삼아 했죠. 그리고 요르단 궁전 호위도….”
카린은 내 표정이 좋지 않다고 느꼈는지 입을 다물었다.
“근도가 정말로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겁니까?”
내가 묻자 카린이 스마트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57명의 민간인을 인질로 잡았던 테러범들입니다. 정부 요청으로 우리가 일을 맡았고 최근도와 민현이 투입됐죠.”
“현이도요?”
나는 그렇게 묻고 카린이 보여준 사진들을 보았다.
절제의 미학이라고 해야 하나.
카린이 보여준 사진 속의 시신들 모습에서는 호흡의 중지, 생명 활동의 중단 이외에 어떤 의도도 보이지 않았다.
테러범들은 쉽고 빠른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죽는 순간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지도 않았다.
“근도…라는 겁니까?”
“아니죠. 이쪽은 민현이고. 최근도는 무기가 다르죠. 총을 들 수 있으면서도 그냥 자기한테 있는 걸로 하는 걸 좋아해서.”
카린은 다른 사진을 보여주었다.
“최근도는 상대가 죽었는지 두 번, 세 번 다시 확인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처음에 확실한 방법으로 끝을 냅니다.”
몸과 분리되어있는 머리는, 카린의 말처럼 두 번 확인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죽음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걱정돼서 반대하는 건 두 사람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는 거죠.”
카린이 말했다.
“저 모르게 뒤에서 결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이미 결정이 됐고 몇 건은 이미 수행도 한 것 같군요.”
그런 말이 이미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절차라는 것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는 임정우씨를 잘 알지 않습니까. 그리고 시간의 순서를 그냥 꼭 눈에 보이는대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닐까요?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카린 자신은 자기가 뭐라고 말하는 건지 알려나?
그래놓고 카린은 살금살금 나한테서 멀어지더니 어느새 문 앞에 붙어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바스의 빈 자리는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채워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카린이 그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걸 근도와 현이, 대대장님과 은수 형의 소수 정예로 꾸리기로 한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보다, 근도와 현이 테러범들에게 해 놓은 일로 인한 충격이 더 컸는지도 모르겠다.
“허!”
혼자 남은 집에서 나는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혀만 차고 있었다.
그때 연우가 집에 왔다.
오늘 집에 와도 되냐고 물어서 된다고 했다고 신이 나서 달려온 모양이었다.
“방금 집에서 나간 사람. 카린 맞아요? 카린 차 같던데.”
오자마자 연우가 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응? 응. 왜?”
“좀 일찍 올 걸. 카린한테 할 말 있었는데."
"카린한테 무슨 말을?"
"근도씨가 므로를 안 데려와서 전화를 했는데 내 전화를 일부러 피하는 것 같아요. 전화를 안 받아요. 그래서 카린한테 므로좀 데려다 달라고 하려고 그랬는데. 아으! 근도씨한테 화 나려고 그래요.”
카린을 머슴처럼 생각하는 건 은 과장님한테서 배운 것 같다.
세상의 누가 연우나 은 과장님처럼 카린을 쉽게 생각할 수 있을지.
게다가 근도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
“안돼. 연우야. 근도한테 화내고 그러면 안 돼. 므로는 그냥. 없는 고양이인 걸로 치자.”
연우를 다독이며 내가 말했다.
근도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녀석인지 자세히 말해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연우가 근도한테 화를 내게 놔둘 수도 없고.
연우가 자기한테 화를 낸다고 근도가 연우한테 화풀이를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무서운 놈은 미리미리 조심해 놓는 게 좋지.
“그게 무슨 말이예요? 므로를 없는 고양이 치자뇨?”
“그런 게 있어. 근도한테 앞으로 정말 많이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영문을 몰라하는 연우를 달래면서 나는 혼자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카린과 근도가 돌아가고 므로도 다시 연우의 품으로 돌아오고 평온한 일상이 며칠 이어지던 중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살아있었는지 안부 전화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팀장님은 어제까지 통화했던 사람이랑 다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전화를 걸어서 얘기를 해 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팀장님이 나한테 번역을 맡기려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일단 경계부터 했지만 팀장님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우선 원고를 읽어보기만 하면 안 되겠냐고 말했다.
그건 고전적인 수법이었고 그동안 나는 그 방법에 참 잘도 넘어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정말로 그럴 시간이 없었다.
팀장님은, 내가 번역 초기부터 시작해서 계속해서 맡아 해왔던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한 번 읽어보기는 하라면서 나에게 원고를 보내주었다.
독후감을 쓰라고 할 것도 아니고 독서 토론을 하자고 할 것도 아니고, 그냥 인연 깊었던 작가의 작품이 새로 나왔으니 읽어보라는 게 전부라면 원고를 받아둬서 나쁠 건 없겠다고 생각하고 나는 원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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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는 조금 슬플 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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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