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51화 (35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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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딥 웹

“그 사람은 누구인 겁니까?”

카린이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지금 가겠습니다. 우리가 같이 가서 그 사람을 만나보죠. 그 사람은 분명 우리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겁니다.”

카린이 말했다.

카린이 그렇게 서두르는 것을 보자 나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본 여자들을 만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사람.

츠유리 타테오에 대해 그 생각이 미치자 더 이상 여유를 갖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혹시 핫 걸을 통해서 츠유리 타테오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해서 핫 걸에게 연락을 했다.

핫 걸은 나에게,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왜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곧 조사를 시작해 주었다.

그러나 핫 걸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없어요. 아무 것도 없어요. 조사한 대로라면 츠유리 타테오라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했던 적이 없는 사람이예요.”

나는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핫 걸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자세히 얘기를 해 주었지만 설명을 들을수록 더욱 복잡해지기만 했다.

츠유리 타테오라는 필명으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사람은 한국에 사는 서른 네 살의 남자 이재현이었고 그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만 그 사람은 완벽한 허무인이라고 했다.

나는 ‘기록은 존재하지만 완벽한 허무인’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물었고 핫 걸은, ‘기록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다시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사람을 만들어내는데 국가가 공조했다는 뜻이예요. 한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서류들이 전부 거짓으로 꾸며진 거예요.”

담담한 목소리로 핫 걸이 말했다.

“이재현이 다닌 학교나 그 사람이 근무했다는 회사에 알아봤지만 이재현을 아는 사람은 없었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재현이 없었던 거예요.”

“그게 가능합니까?”

핫 걸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주었다.

핫 걸의 설명을 듣고 보니 가능했다.

가능한 일이었다.

키샤 소속의 많은 요원들이 지금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신원과 소속을 숨기면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관청이나 회사에 소속되어 있지만 누군가 그들을 찾으면 그들은 일시적인 프로젝트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사실 그 어느 곳에서도 그들은 발견되지 않을 거였다. 그들은 키샤의 사무실이나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혹시라도 누군가 그들의 소재를 파악하려고 나선다면 그것은 키샤에게 알려지고 키샤 차원에서 조치를 취한다.

“국가가 공조했다는 게 무슨?”

그렇게 묻는 내 머릿속에는 키샤가 떠올랐고 핫 걸도 키샤를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핫 걸은 거기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나를 도와주려고 하겠지만 키샤의 이해와 상반되는 순간에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거라는 것을 나도 이해해야 했다.

말하지 못하는 핫 걸에게 더 이상 채근할 수가 없어서 나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역시 키샤장인 건가?’

나는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고 서성거렸다.

그러다가 내가 처음 핫 걸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그게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정확히는 나의 뛰어난 관찰력으로 알아낸 거라고 생각했다.

키샤에서 우연히 저지른 사소한 실수로 내가 핫 걸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핫 걸이 자기 몸을 찍으면서 카메라를 돌렸을 때 화면에 내가 알아볼 수 있을만한 책이 있었고 그 책에 키샤라는 조직이 언급돼 있었다.

그리고 그 키샤에 대해서 유진 선배가 알고 있었고 유진 선배가 키샤에 대해 알려줬었는데….

나는 그걸 내가 우연히 알아낸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조차도 전부 다 의도된 거였던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름이 끼쳤다.

나는 은 과장님이 나를 세영 누나에게 보냈던 일을 떠올렸다.

은 과장님은 세영 누나에 대해서 알지 못했지만 세영 누나에게 최면이 걸린 상태로 나에게 세영 누나에 대해 말했었다.

‘혹시 나도 그런 식으로 최면이 걸려 있었던 건가? 그 영상을 봤을 때 출판사와 유진 선배에게 연락을 해서 키샤와 핫 걸에 대해서 알아내게 되도록?’

내가 지금까지 이뤄온 일들 중에는 핫 걸과 키샤가 아니었으면 하기 힘든 일들이 많았다.

은호 형을 만나는 일 조차도 그랬다.

‘도대체….’

도대체 어느 것이 내 자유 의지로 이루어진 일인지 그때부터는 전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여자들도 전부 몸캠 영상 사이트와 키샤장에 의해서 감정이 조작됐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몸이 부들부들 떨릴 지경이었다.

므로가 근도를 흥분시키는 것처럼 나 역시 몸캠 영상 사이트와 키샤장에 의해서 흥분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여자들한테 사랑이라는 감정을 품었다는 건가?

연우도, 수영도, 핫 걸과 해미, 준위도 전부.

전부.

나하고 아무런 감정을 나누지 않고 스쳐서 지나갈 수도 있었던 사람이었던 건데 누군가의 통제와 조종으로 내가 그들을 사랑했다고 믿었다는 건가?

생각이 한 번 엉키기 시작하자 내 생각은 폭주해버렸고 도중에 멈출 수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건 아니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나를 안심시키고 설득하기 위해서 중얼거렸다.

츠유리 타테오와 만난다면 모든 의문이 자연스럽게 풀릴 거라고 기대하면서 나는 그에게 묻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했다.

내가 답을 찾을 수 없는 일에 매달리기만 하다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츠유리 타테오는. 그 사람은 그런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었을까.

내가 수영을 만나고, 핫 걸과 머슬 퀸을 만나게 되는 걸.

연우와 다른 사람들까지도.

어떻게 그런 것들을 알고 책을 썼을까.

나는 내가 번역했던 책들을 다시 보았다.

그렇게 정리를 해서 봤으니 내 얘기라는 걸 알 수 있었던 거지, 소설의 배경은 일본이고 자잘한 에피소드도 차이가 있어서 번역을 하는 동안에는 조금도 상상을 할 수가 없었다.

‘츠유리 타테오. 츠유리 타테오.’

그를 만나면 몸캠 영상 사이트의 비밀이 풀릴 거라고 생각하니 일 초, 일 초가 얼마나 느리게 흘러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연우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여보세요? 오빠?”

연우가 나를 불렀다.

“연우야.”

“오빠.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연우가 걱정하는 말투로 물었다.

“연우야.”

내가 다시 연우를 부르자 연우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연우는 늘 그랬다.

언제나 한결같았다.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으면 내 걱정을 해주고 나를 위해서 나서주려고 했다.

막상 자기가 가진 힘은 정말 미약하지만 연우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불에 던져지면 연우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같이 그 불구덩이에 뛰어 들어서 나를 건져내려고 할 것 같았다.

왜 눈물이 나왔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왜 정말로 연우가 나를 위해서 죽었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

그것은 내 기억에 없는 일이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너무나 선명하게 들었다.

“연우야. 오빠가 지금 너한테 갈게.”

그 순간. 연우를 보고 싶다는 생각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갈까요, 오빠?”

연우가 물었다.

“아니. 너는 그대로 있어. 너는 거기에 그대로 있어. 오빠가 갈게.”

연우가 나한테 오다가 사고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

나는 연우에게 가기 위해 차를 몰았고 회사 로비에서 서성이고 있는 연우를 발견했다.

연우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를 발견하자마자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누가 보는 것도 상관하지 않고 나를 안았다.

그리고 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를 전부 살폈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연우가 물었다.

“응.”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연우를 안아주었다.

내가 찾아내고 내가 사랑한 사람이라고, 나는 그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우의 체온이 나에게 현실 감각을 되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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