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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딥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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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은 츠유리 타테오의 기록을 덮었다.
임정우가 그 사람에게 왜 관심을 갖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자기가 알아봐 줄 수 있는 선에서는 알아봐 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츠유리 타테오라는 필명을 사용해 많은 책을 낸 이재현이라는 남자가 누구든 그 사람은 가짜 신분을 부여 받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동조나 묵인이 필요했을 거라는 게 서지영의 생각이었다.
출생 증명서부터 각종 서류들을 위조해서 그 기록들이 있어야 할 곳에 끼워놓은 사람이, 혹은 기관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부 차원의 보호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위조한 문서에 법적인 효력까지 부여할 수 있는 기관….
서지영은 그것이 아마도 키샤일 거라고 생각했다.
키샤라면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임무를 수행하러 나가는 요원들도 그렇게 가짜 신분들을 부여받곤 했다.
키샤라면.
아니면 키샤장이라고 해도….
서지영은 그 일의 배후에 있는 사람이 결국에는 키샤장일 거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츠유리 타테오의 기록을 찾으면서 정보에 접근하는 동안 몇 번 경고 메시지가 뜨더니 결국 서지영은 키샤장의 경고를 받았다.
키샤장을 만나는 게 메시지창이라고 해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키샤장은 접근 권한을 갖지 못한 채 정보에 접근을 시도하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서지영에게 경고를 했다.
할 말이 없었다.
샐쭉해져 있는 서지영의 눈에 김 경장의 뒷 모습이 보였다.
예멘에서 돌아온 후에 김 경장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지금 김 경장은 예전에 서지영의 의심을 받던 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 뒷태.
심히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그 모습이었던 것이다.
답답한 마음을 김 경장이나 괴롭히면서 풀어볼까 하고 일어서던 서지영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조쉬 그로번이 부른 You raise me up 이었다.
서지영은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섰고 갑자기 터져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김 경장이 두리번거리다가 빈 책상 위에서 울리던 전화를 받자 노랫소리가 멈췄다.
김 경장은 전화를 받으면서 서지영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전화를 끊고 김 경장이 다가왔다.
“팀장님. 괜찮으세요?”
“……!”
서지영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왠지 그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고 이제는 그 떨림이 더욱 커지면서 슬픔이 북받쳐 오르는 것처럼 더욱 커지기만 했다.
서지영은 자기가 왜 우는지 알지 못했다.
“팀장님….”
김 경장은 자기가 서지영을 울린 것처럼 전전긍긍했다.
“아니야. 괜찮아. 나 왜 이러냐? 미쳤나봐.”
서지영은 눈물을 훔치면서 씩 웃었다.
무슨 일인지알 수가 없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처럼 자기도 그게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왜 그렇게 눈물이 난 건지, 한 순간에 자기를 조여버린 그 엄청난 슬픔의 정체가 뭔지 서지영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눈물을 멈추려고 애썼다.
심호흡을 하며 눈물을 참는 서지영을 걱정스럽게 보면서 김 경장은 어쩔 줄을 몰랐다.
“아냐. 이제 괜찮아. 이제 정말로 괜찮아.”
서지영이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점이 김 경장을 더 걱정스럽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남의 걱정을 덜어주자고 일부러 웃음을 짓고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안 하던 짓을 하는 걸 보니 정말로 안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마구 불편해졌던 것이다.
***
압구정에 있는 백화점에 ‘수영’이 입점한 이후 처음으로 ‘수영’이 다른 쟁쟁한 명품 업체들을 누르고 매출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가지고 수영을 찾아온 사람은 백화점의 담당 파트 엠디였다.
수영의 브랜드가 인지도를 높이기 전부터 제품의 우수성을 보고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서 수영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던 엠디였고 수영과 나이도 비슷해서 전부터 통하던 게 많았던 사람이었다.
수영은 친한 사람들 몇 명을 더 불러서 거하게 쏘기로 하고 자리를 옮겼다.
몇 군데를 전전하고 얼큰하게 취한 수영과 무리들은 다음에 어디로 갈까 하다가 엠디가 이끄는대로 엠디의 집으로 향했다.
월세가 천 만원이 넘는다는 집에는 실내 수영장은 물론 극장을 방불케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수영은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고 있었다.
엠디는 수영이 앉아있는 소파가 스칸디나비아 송아지 가죽이라고 하는가 하면 가구들은 스위스 가구라고 하면서 수영이 관심도 없는 이야기로 자랑을 하느라고 바빴다.
그런 게 아니라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사람인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수영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때 수영의 귀에 음악이 들렸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I am strong when I am on your shoulders
You raise me up
to more than I can be
수영의 입술 주변이 가늘게 떨렸다.
“어…!”
수영은 제 무릎으로 툭 떨어진 것이 눈물이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다.
왜 자기가 울고 있는 건지.
그 음악 때문인 건지.
수영은 사람들이 그것을 눈치채고 자기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묻게 될까봐 걱정을 하면서 화장실을 찾아 달려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수영은 오열을 터뜨리듯이 펑펑 울었다.
자기가 놓친 사람, 잃어버린 사람을 이제야 기억을 해 낸 것처럼 수영의 눈물은 한동안 그칠 줄을 몰랐고 음악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음악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을 때 수영은 멍한 눈으로 거울을 보았다.
도대체 자기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랬던 건지.
무슨 일로 인해서 그런 엄청난 슬픔을 느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
연우는 정우의 팔을 베고 누워 있었다.
그 날은 이상했다.
기분이 전체적으로 깊이 침잠하는 분위기였다.
정우는 연우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어 올려주면서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으로 웹소설을 보고 있었다.
“BGM 있다. 연우야. 소리 크게 해 놓고 들어도 돼? 음악을 들으면서 같이 읽으라고 써 있는데?”
“네. 그래요.”
연우는 정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우가 볼륨을 키웠다.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You raise me up
to walk on stormy seas
연우는 벌떡 일어나 앉아 정우를 바라보았다.
“왜?”
정우가 연우를 바라보았다.
“연우야. 왜?”
정우는 연우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보던 걸 끄고 연우를 바라보았다.
“오빠….”
눈동자를 부풀어 오르게 보일만큼 차오르던 눈물이 그대로 한참을 더 고이다가 툼벙, 바닥으로 떨어졌다.
연우는 정우의 목을 감아안고 폭풍같은 울음을 쏟아냈다.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 거죠?”
연우가 말했다.
정우는 연우가 하는 말을 알지 못했고 연우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만 연우도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지 못했다.
정우의 앞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펑펑 울어버리고 이상한 말까지 해 버린 것 때문에 머쓱해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여운이 다 가시지는 않고 가슴 속에서 파도가 쓸리는 것처럼 몇 번 더 깊은 슬픔이 몰려왔다 떠나가곤 했다.
연우는 다시는 절대로 놓을 수 없다는 듯이 정우의 손을 꽉 붙잡았다.
정우는 무슨 일인지는 알지 못했어도 연우를 안아주었다.
“왜. 오빠가 다른 데로 가 버릴까봐 그래?”
정우가 웃으며 말했다.
연우는 그 말도 듣기가 싫었다.
정말로 다시 그 일이 일어나게 될까봐.
그러면서 연우는 왜 자기가 그걸, ‘다시’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알지 못했다.
한 번 그 일을 겪어버렸던 것처럼.
지워진 기억이 갑자기 불쑥 튀어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간 것처럼.
연우는 정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정우를 꽉 끌어안았다.
몇 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는 그 감정에 대한 기억도 점점 옅어졌다.
연우 너 아까 왜 그랬던 거야? 라고 정우가 물었을 때는 연우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자기도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