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53화 (35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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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딥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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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린은 나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츠유리 타테오를 만나기 위해서 먼 곳에서 달려온 카린은 정말로 츠유리 타테오가 우리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냥 앉아서, 츠유리 타테오가 오기로 한 날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어서 우리는 출판사로 갔다.

그리고 츠유리 타테오를 우리가 먼저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대표님은 내가 갑자기 그곳에 들이닥친 것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만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따질 겨를이 없었다.

카린은 나보다 더 심했다.

카린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출판사를 다 엎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카린이 거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만들어 위협을 하려고 해서 그때마다 카린을 막느라고 애를 먹었을 정도였다.

대표님은 카린이 자기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과, 뭔가로 인해서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래서 쓸데없는 절차 같은 것은 미뤄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서 츠유리 타테오와 연락을 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좋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원래, 같이 진행하려고 했던 행사에도 오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자기가 먼저 제의를 해 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린가 하면서 대표님이 화를 냈을 정도였다.

그러나 츠유리 타테오는 자기가 한 말에 변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다른 방법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다.

그리고 시간을 많이 날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츠유리 타테오가 온다고 한 날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그 날이 돼서야 그가 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보다는, 이렇게 일찍 알아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카린에게 우리 집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말을 하고 혼자서 차를 몰았다.

카린은 내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협상의 여지가 없는 문제라는 뜻으로 내가 단호하게 바라보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서 떨어졌다.

그렇지 않았으면 껌딱지처럼 붙은 카린을 데리고 키샤에 갔을 것이다.

핫 걸은 그곳에 들이닥친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핫 걸뿐만 아니라 김 경장과, 다른, 내가 얼굴을 아는 몇 사람이 그곳에 더 있었다.

“만나야 돼요. 만나게 해 줘요.”

나는 핫 걸에게 말했다.

핫 걸은 당황한 것 같기는 했지만 이 일이 나한테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렇게 미친 놈처럼 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핫 걸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핫 걸이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외부인이 그곳까지 왔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고 팀장의 독단적인 결정을 자기들이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핫 걸은 나를 키샤장에게 데려가기로 마음을 먹은 후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거치적거리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말했다.

“화상 회의실로 간다. 다른 사람의 출입은 통제시켜. 김 경장.”

핫 걸이 김 경장에게 말했다.

“예. 팀장님.”

나는 핫 걸을 따라 화상 회의실로 향했다.

내가 핫 걸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그 때에야 들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갚을게요. 고마워요.”

내가 말했다.

“보스를 만나게 되거든 그때나 말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화상 회의실에 가서 보스를 부르는 것 까지예요. 우리가 찾는다고 해도 보스가 나올지 안 나올지는 몰라요. 아마 무시하기가 쉬울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형 스크린이 밝아졌고 거기에는 밝은 회색의 벽면이 비추어졌다.

“수고했다. 서지영. 이제 돌아가봐도 된다.”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면에 나오는 것은 여전히 회색 벽뿐이었다.

“…죄송합니다.”

핫 걸이 말했다.

“됐어. 잘 한 거다. 그동안 고마웠다. 여러 가지로.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해 줬어.”

“왜…. 그런 말씀을…. 어디로, 옮겨가기라도 하십니까?”

핫 걸이 물었다.

“나는 이런 인사도 못하나? 고마웠다. 서지영.”

“……!”

핫 걸의 시선이 허공의 어느 곳으로 옮겨지면서 눈이 커다랗게 떠지는 것을 보고 나는 핫 걸이 보고 있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아무도 없었던 그곳에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이 홀로그램이라고 생각한 것은 몇 초가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그 사람이 거의 완벽하게 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데도 시간이 조금 걸렸다.

“보…스!”

핫 걸이 말했다.

핫 걸은 홀로그램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다가 나를 보고 겨우 말을 이었다.

“이재현…씨예요.”

핫 걸이 말하자 그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틀렸다. 서지영.”

서지영은 갑자기 숨을 들이마시더니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때 내가…. 예멘 사나에서 사람들이 납치당했을 때 보스가 나를 찾아왔다고 했잖아요.”

서지영이 내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했잖아요.”

내가 말했다.

서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급한 일이었으면 전화를 하는 게 더 빨랐을 텐데 왜 직접 온 건지 모르겠다고 했었잖아요.”

"아!"

그때는 나도 서지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남자에게는 순간 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타인과 물건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없는, 홀로그램 속 영상이라는 한계 때문에 자기가 직접 사람들을 구하러 갈 수는 없었지만 핫 걸에게 오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멍한 눈으로 남자와 핫 걸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가 지금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곳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핫 걸도 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는 둘이서 대화하고 싶군.”

그 말에 핫 걸은 우물쭈물하다가 회의실을 나갔다.

나는 홀로그램의 남자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분명한 나였다.

나보다는 나이가 좀 많은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나 할아버지처럼 보인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

“누굽니까.”

“너지. 임정우.”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놀랄 거였으면 그때 놀라야 했고 반박할 거였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그 사람을 바라보기만 했다.

홀로그램의 남자가 웃었다.

웃는 그 모습.

눈꺼풀이 내려오고, 눈이 다시 치떠질 때 눈꺼풀에 주름이 잡히는 것, 입술이 올라가는 것까지도 나였다.

언젠가 연우가 내 모습을 가까이에서 영상으로 찍어서 보여준 일이 있었다. 연우는 내가 눈을 내리 떴다가 치뜰 때 내 얼굴의 각 부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일일이 설명하면서 알려줬었다.

눈썹이 만들어내는 그늘.

콧날의 높이와 각도.

입술에 새겨진 잔주름의 숫자와 붉은 정도, 모든 게.

모든 게 같았다.

홀로그램 속의 영상일 뿐인 그 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도 놀라웠다.

나는, 만져봐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지 않고 슬금슬금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 사람은 내가 무슨 생각으로 오는 건지 알고 있다는 듯 입을 다물고 체념한 듯이 두 눈을 위쪽으로 한 번 올렸다 내리더니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분명히, 내가 할 법한 동작이었다.

나는 그 남자의 팔을 스윽 만졌지만 내 손을 그대로 투과되어버릴 뿐이었다.

“생각한 대로야. 나는 실체를 포기했으니까.”

그 사람이 말했다.

왠지 그 말이 너무 슬프게 들렸다.

“앉지. 얘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까.”

그 사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들어야 할 아주 긴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았다.

============================ 작품 후기 ============================

이제 360화를 읽으시면 됩니다.

설정 붕괴로 내용이 삭제되었고 뒷부분에는 읽어가시던 분들을 위해서 우선 그 내용을 압축해서 남겨 두었습니다.

굳이 그 부분 읽지 마시고 (내용이 상충되고 설정 붕괴가 있습니다) 360화로 가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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