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59화 (35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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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384 & 공지와 수정 관련)

다짐을 하면서 나는 병원으로 갔다.

의사는 이만한 게 진짜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천만번쯤 했다.

사고가 엄청 크게 났다던데, 차는 폐차해야 한다던데, 하면서 내 입에서 생생한 사고 소식을 기대하는 것 같아서 나는 환하게 한 번 웃어주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님의 호기심을 채워줄 생각이 전혀 없거든요?

그리고 내 차가 맡겨졌다는 공업사에 갔다.

내 차는 이제 사망선고를 받고 장례식장 고고의 운명이 됐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앞에 정비사가 서 있었다.

아니. 내 앞에 서 있던 건 아니었다.

나하고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다른 차를 붙들고 씨름을 하는 중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데도 그 여자만 자기 일에 몰두했다.

공구가 무시무시하게 잘 어울리고 헉 소리가 나게 섹시했다.

이건 전혀 다른 그림 도구를 이용해서 그린 그림을 본 것처럼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점프 수트를 입고 있는 여자의 몸에서 나는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공업사 사장이 그런 나를 눈여겨 본 것 같았다.

페라리가 폐차되고 나면 내가 다시 차를 살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아는 누군가를 소개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유능한 사람들은 자신의 직종과 연계되어 있는 사람들을 알아놓고 서로 일과 고객을 소개해 주면서 커미션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리곤 하니까.

나는 공업사 사장이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멋있는 놈인데 아깝게 됐네요. 폐차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사장이 말했다.

“예. 졸음이 웬수죠.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이죠.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는데. 다른 사람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예요.”

내가 말했다.

사장이랑 얘기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내 시선은 계속해서 정비사에게 향했고 내 입은, 뇌를 거치지 않은 말을 저 혼자서 떠들어대고 있는 것 같은 실정이었다.

“혹시 생각하는 차 있습니까? 제가 아는 녀석 중에 외제차들을 잔뜩 사서 청담동에 전시장을 만들어 놓은 놈이 있거든요. 지인들이 원하면 가끔 탈 수 있게 해 줘요. 돈이 많아서 어쩔 줄 몰라서 지랄 발광을 하더니 어느 날 보니까 그 짓을 하고 있더라고요.”

“아. 정말입니까? 재미있겠네요.”

나는 대충 호응을 해 주었다.

그러다보면 정비사의 일도 얼추 끝나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생각하고 있는 차가 있으면 타 보시겠습니까? 제가 말하면 하루 정도는 그냥 빌려줄 텐데.”

“아아. 셰어링을 하시는 건가 보네요?”

그제야 호기심이 본격적으로 생겨서 사장을 바라보았다.

“셰어링을 업으로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자기가 이것 저것 타고 싶어서 차를 수집한 거고 그렇게 사 놓은 차를 다 끌고 다닐 수는 없는 거니까 지인들한테 타게 해 주는 건데 우리 입장에서도 그만한 차를 셰어하면 얼마가 드는지 대충 아는데 그냥 신세만 지고 말 수는 없어서 성의 표시만 조금씩 합니다.”

말 준나 어렵게 하네.

그러니까 셰어링하고 돈 받는 것 맞는 것 같은데.

아마도 이 사장이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 사람은 지인들한테 차를 그냥 타라고 말을 하고, 이 사람이 나서서, 그래도 어떻게 그냥 타냐, 라고 하면서 돈을 내게 하고.

그 사람한테 하느니 내가 아는 업자한테 말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자동차 매장에 가서 타봐도 될 텐데 뭘 그렇게 복잡하게 하나 하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닐 필요 없이 한 자리에서 원하는 차들을 전부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남자들이 그렇게 비싼 차를 사는 건 편안하고 빠르게 달리겠다는 이유만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부차적인 이유를 위해서도 좋은 찬지. 그것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술에 취한 상태면 안 되겠다.

말을 직접적으로 하는 방법을 못 배운 것 같다.

결국 내 명석한 두뇌로 해석을 해 보건데, 여자랑 같이 가서 그 비싼 차들 안에 타서 안에서 ‘나쁜 짓’도 해 볼 수 있다는 뜻인 것 같다.

나는 사장을 바라보았다.

“소개해 드릴까요?”

“네. 부탁합니다.”

내가 그 말에 흔쾌히 대답을 한 이유는 그곳이 땡겼기 때문이었다.

가서 보고 그대로 베껴서 나도 그런 공간을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정우 형을 불러서 놀려 줘야지.

형은 못타지? 메에에에롱~~ 하면서.

그러면 의지가 불타올라서 자기도 몸 만들어 달라고 말할 거라는 나의 이 속 깊은 생각을 형은 모르겠지?

솔직히 형을 놀리고 싶어서 그런 게 맞다.

그리고 빨리 달릴 수 있는 좋은 차가 있어야 하는 것도 맞고.

앞으로 상황이 변할 것에 대비해서 그런 것도 이제 차근차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제가 같이 가면 좋겠지만 예약된 일이 많아서. 이승희씨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겁니다.”

사장이 말했다.

“이승희씨요?”

사장은 눈짓으로 여자를 가리켰다.

정비사 이름이 이승희였다.

“그럼 제가 뭘 해 드리면 되죠?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그냥 알기 쉽게 말해 주시면 좋겠는데요. 하루 셰어. 그리고 사장님이 원하시는 매장에서 지정하시는 분한테서 차를 사면 될까요?”

사장은 갑자기 돌직구가 날아오자 움찔하는 것 같더니 아하하하하 하고 어색하게 웃어댔다.

“맞는 거죠?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이승희씨가 차에 대해서는 잘 아니까 불편함 없이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원래 딜러였어요. 실적도 좋았는데 이 일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아직 일선에서 뛸 때 나한테서 일을 배우고 싶다고. 내가 또 좀 뛰어나서 업계에서 알아주거든요. 아하하하하.”

재미있는 사람 같았다.

나도 아하하하 하고 웃어주고 싶기는 했지만 옆에 이승희씨가 있어서 그러지는 못했다.

“승희야.”

사장이 이승희를 불렀다.

그리고, 나머지는 자기가 할 테니까 나랑 같이 가서 차 고르는 걸 도와주라고 말했다.

이승희는 싫은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대충 보고 서로 대충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목적지인 청담동으로 가면서 우리는 정말 많은 얘기를 했다.

이승희는 ‘자기가 좋아하는 차’를 주제로 8박 9일 동안 쉬지 않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

별로 관심없는 얘기가 나오면 대답을 대충 하거나 아예 딴 생각을 했고 내 질문과 전혀 상관없는 말을 하면서 화제를 자기가 관심가지는 것에 대한 것으로 옮겨 놔 버렸다.

나는 그런 매니아는 진짜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이승희는 원래 차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딜러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됐다고 했다.

사장님은 잘 하셨다고 하던데요, 라고 말했더니 지인들이 팔아준 건 좀 됐다고 했다.

“남자들은 여자 딜러한테서 차를 소개받는 걸 여자한테 축구 배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여자한테서 군 생활에 대한 조언을 듣는 것 같은 식으로. 전문가한테서 컨설팅을 받는다는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군대에서 축구 잘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서는 여자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겠네요.”

내가 말했더니 이승희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승희를 따라붙으며 괴롭혔던 문제였나보다는 생각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바로 사과했다.

그리고 내 여자친구들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여자친구라고 말을 하지는 않고 내가 아는 여자 중에, 라고 말을 했다.

남자들이랑 건축 현장에서 같이 일하면서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건물을 짓고 싶어하는 유재경과, 예쁜 몸관리 대신 남자들처럼 근육을 키우면서 보디빌딩을 하는 이재인에 대해서.

이승희는 내 말에 관심을 보였다.

자기가 내내 차에 대해서 떠들어 대던 때보다도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대단하네요. 엄청 멋질 것 같아요.”

이승희가 말했다.

“확실히 그렇죠. 꿈을 확실히 갖고 있고 흔들리지 않고 정진하고 결국 자기가 원한 일들을 이루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정말로 더 놀라운 건,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이른 후에도 꿈을 잃거나 흔들리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대개 단기적인 꿈과 목표 이후의 것은 생각을 잘 안 하거든요. 그래서 그 일을 이룬 후에 허무해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바로 다음 단계를 위해서 준비했고 지금도 새로운 목표를 위해서 도전하고 있죠.”

내가 말하는 동안 이승희는 눈을 빛내면서 내 말에 귀기울여 주었다.

“잠깐만요. 이재인 선수님이 혹시 제가 아는 그 분일까요?”

이승희가 갑자기 내 말을 멈추어 놓고 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재인 선수를 알기는 하죠. 아마 맞을 것 같은데요?”

이승희는 놀라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안전 운전을 해 달라고 이승희에게 말해야 했다.

“사고나서 폐차하고 온 사람한테 그렇게 겁 주면 안 되죠.”

“네. 아. 네.”

이승희는 다시 전방을 주시했지만 입에서는 끊임없이 이런저런 감탄사가 나왔다.

“멋있는 분들을 많이 알고 계시네요.”

이승희가 말했다.

나한테 소개받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만난지 얼마되지도 않고 그런 것을 턱턱 부탁할 수 있는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을 못하고 있는 걸 거다.

나는 옆에서 이승희를 구경했다.

작업복을 벗고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것 뿐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일을 하는 동안 위로 질끈 묶고 있던 머리는 풀어서 빗었는데 머리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 앙증맞아 보였다.

그렇다고 인상이 귀여워보이지는 않았다.

면접관처럼 좀 까다로워보이는 인상이었고 자주 자기만의 세계에 빠졌다.

“왜 정비사가 됐어요?”

나는 내내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재밌잖아요. 작동하던 걸 작동하지 않게 할 수도 있고 작동하지 않던 걸 작동하게 할 수도 있고요. 부품을 갈거나 내가 고쳐서요. 고친다는 거. 그 말 참 굉장한 것 같지 않아요?”

“의사랑 비슷한 건가요?”

“의사보다 대단하죠. 왜냐면 사람 몸은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을 갖고 있잖아요. 기계는 안 그렇고요. 고장난 물건을 다시 고치는 건 그런 의미에서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이승희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정우 형을 생각했다.

정우 형의 몸은, 이제 스스로 회복하는 능력은 완전히 잃어버린 걸까 하면서.

이승희는 어떤 차를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마음에 드는 건 이것저것 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마도 자주 사용할 사람들은 현이나 근도가 될 것 같아서 두 사람에게 톡을 보내 의향을 먼저 물어보기도 했다.

차를 산다면 어떤 게 좋겠냐고.

근도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세 모델을 적어서 보내 주었고 현은, ‘페라리 캘리포니아 T, 빨간색. 그거면 돼.’라고, 별로 부담되지 않는 걸 요구하는 듯이 말했다.

역시 이 자식들은 나를 다룰 줄 알아.

근도는 조금 있다가 하나를 더 보냈다.

그러다가 조금 있다가 또 하나 더.

그만 보내라고 할 때까지 생각나는대로 하나씩을 더 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근도는 내가 내 차를 새로 사려는 건줄 알고 이런 모델들 중에 한 번 골라봐라 라고 보내준 거였고, 자기가 말했던 차들이 전부 들어차 있는 차고지를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미친 새끼. 너는 진짜 독보적이야. 인마!”

그게 나중에 내 콜렉션이 완성됐을 때 그걸 보고 내린 근도의 평가였다.

어찌됐건 그건 나중 일이고 나는 이승희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청담동에 이르렀고 내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건물에 들어가서 크게 다르지 않은 절차를 걸쳐 차들이 들어차 있는 곳에 이를 수 있었다.

공업사 사장과 대단한 친분이 있는지, 그리고 이승희도 전에 본 적이 많이 있었는지 그 엄청난 컬렉션의 주인은 나를 환영해 주었다. 전화로.

그 사람은 그곳에 없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인맥 하나 더 만들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으니까.

쓸모도 없는 남자를 새로 알아서 뭘 하겠는가.

여자라면 또 몰라도.

공업사 사장에 대한 신임이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나라면 웬만한 사람들은 그런 곳에 들여보내 주지 않을 거였다.

거기에 불 지르고 튀면, 그대로 40억 상당의 손해는 보장될 만한 곳이었다.

나는 이승희에게 내가 봐야 될 모델들을 알려주었고 이승희는 정확히 찾아서 나에게 그 녀석들을 소개해 주었다.

딜러였던 감각과 지식은 녹슬지 않아서 설명이 유려했다.

이승희에게는 내 반응이 조금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승희에게는 내가 고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수퍼 카들이 앞에 쫙쫙 놓여있는데 시큰둥하게 보고 여기 온도가 좀 높네, 습하네 하는 개소리만 해 대고 있었으니 이 남자가 침대에서 쌀 줄은 아는 건지 의심이 든 모양이다.

지금까지 이승희가 만나왔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대충 상상이 됐다.

하지만 이곳은 나에게 그렇게 '굉장한' 곳까지는 아니었다.

리얼 그릴 주차장에는 이보다 훨씬 더 화려한 차들이 서른 배 정도 들어차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승희와 공업사 사장이 보여준 호의에 답하려고 나는 최대한 열심히 놀란 척을 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나도 할만큼 한 거였다.

이승희는 내가 감동받기를 기다리는 것 같더니 결국에는 포기했고, 자기라도 열심히 구경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은 것 같았다.

이승희는 차체를 만지면서 황홀해 했다.

지미추 구두에 열광하는 여자 애가 자기 형편으로는 도저히 지미추를 사 신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열심히 윈도우 쇼핑에 몰두하는 것과 비슷한 광경이었다.

나란 남자는 그런 이승희를 보면서, 본네트 위에 올려놓고 박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고.

일단 그 생각이 들자 모든 본네트를 볼 때마다 그런 장면을 떠올렸다.

본네트가 널찍한 차를 보면, 이 위에서라면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차체가 낮은 곳을 보면, 이 위에 올려놓고 하려면 다리를 어정쩡하게 구부려야 해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나는 근도와 현이 원하는 차를 알게 됐으니 거기에서 더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가이드 해 준 값을 하기는 해야 할까 싶어 이승희에게 차를 선택하게 하고 그 차를 빌렸다.

이승희는 스피드광이었다.

의외라는 생각같은 건 들지 않았다.

처음에 본 순간 그렇게 느꼈으니 말이다.

운전을 해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이승희에게 운전을 맡기고 나는 얌전히 조수석으로 들어가 짜져 있었다.

그리고 이승희가 감탄을 해 가면서 신이 나 소리를 지르는 동안 나는 이지도 대대장님과 은수형에게도 원하는 차를 물었다.

값을 떠나서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차를 두 세 대 정도 정해서 알려달라고 하자 두 사람은 각자 자기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차를 알려주었다.

뜻이 확고하게 달라서 두 사람은 절대로 같은 차를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둘이 의견을 모아서 한 대로 정해달라고 했으면 그 날 안에 두 사람의 관계는 파경에 이르렀을 거다. 확실하다.

부대에서 하던대로 대대장님은 은수형한테 대가리 박으라고 명령을 했을지도 모르고.

두 사람은 나하고 아직 얘기를 하는 중이었는데도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차를 찬양하고 상대가 고른 차를 폄하하느라고 설전을 벌였다.

그럼 안녕히 계시라고 말을 했지만 내 말에는 대꾸도 해 주지 않았고 아마 전화가 끊긴 것도 몰랐을 것이다.

접수가 된 이상 시간을 끌 필요는 없었다.

나는 이승희에게 내가 사고 싶은 차들의 목록을 알려 주었고 그 과정을 맡아 처리해 주면 돈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승희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지금 장난하는 거죠?”

이승희는 몇 번이나 그렇게 물었다.

“차를 받으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이 중에 특별히 오래 걸리는 차도 있어요? 나는 기다리는 건 싫어하는데.”

내가 그렇게 묻자 이승희는 내 말을 믿어도 되는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차량들을 인도받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요."

“혹시 돈 많은 남자 코스프레를 해서 나를 꼬시려고 한 거면요. 그런 거면 성공한 것 같네요.”

이승희가 말했다.

“그래요? 먹혔어요?”

사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나누는데 꼭 그렇게 복잡한 과정을 일일이 거쳐야 하는가에 대해서 내 생각은 점점 부정적이 돼 갔다.

이것 저것 재고 따지고 잴 것 없이 그냥 눈빛 통하면 침대 위로 가서 잘 맞는지 확인해 보고 거기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재고 따지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너무나 많은 변수로 채워져 있지 않은가?

이승희는 내가 하는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그 많은 차들을 한꺼번에 살 수 있을 거라고 믿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나하고 빨리 헤어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승희와 함께 식사를 했고, 편안한 곳에 가서 같이 누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말했다.

내가 그랬다고, 그리고 그게 통했다고 여러분도 막 따라하면 안 된다.

그럴 때는 함부로 용기를 내면 안 됩니다.

적어도 나처럼 생겼을 때 가능한 것 같음.

그리해서.

이승희는 나를 따라 나섰다.

내가 말하는대로 나를 따라나선다고 해서 이승희가 가볍거나 천박해 보이지는 않았다.

쓸데없이 고집을 부리지 않고 따라와 줘서 다행이고 고맙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나는 모텔이나 호텔로 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승희와는 그런 곳으로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 둘 중 한 사람의 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희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처음 보는 남자를 따라서 그 사람의 집으로 가는 것과, 자기 집을 공개하는 것 중에 어떤 게 더 부담스러웠을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우리 집으로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승희는 자기 집으로 가자고 했다.

내가 나쁜 놈이고 뒤끝이 있는 놈이고 버려지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서 나중에 자기 집에 쫓아가서 깽판을 부리면 어쩌려고 그런 제안을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내가 나중에 술 먹고 찾아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이승희는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5일 후에 이사가거든요."

"하!"

왠지 속은 기분이 들었지만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졌다.

이승희와의 만남은 끝까지 유쾌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승희의 집은 보통 정도 되는 집이었다.

우리 가족이 위기를 겪기 전에 살았던 집 같은 그런 모습.

그래서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왜 집으로 가고 싶다고 했어요? 나는 호텔로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승희가 물었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하다가 결국 사실대로 실토했다.

일단 질리기도 했고.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만나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호텔을 피하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서.

언젠가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짤 하나를 봤는데 영상 속에서 여자 하나가 호텔 객실로 보이는 곳에서 옷을 벗고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그냥 돌아다닌 거면 말을 안 하겠는데 그 여자는 무슨 희한한 정신병에라도 걸렸는지 모든 침구류와 가구류에 거기를 문지르면서 액을 묻혀댔다.

화장대 앞의 의자에 앉아서도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의자 모서리에 그곳을 문질렀다.

의자의 앉는 부분은 천으로 씌워져 있었다.

세탁도 따로 하지 않을 텐데.

에로틱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역겹고 더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는 우리 호텔에서도 저런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을까봐 기겁을 했다.

아무리 잘 세탁한다고 하더라도 소파나 의자 같은 것들은 그렇게 할 수가 없는 건데 그 여자는 그런 곳에도 그걸 문지르고 다녔다.

보고서 미치는 줄 알았다.

익명성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남이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짓을 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는 뻔뻔하게 체크 아웃을 하고 자리를 떠 버리는 것이다.

몰랐다고, 자기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모른 척 해 버리면 될 줄 알고 말이다.

하긴. 그런 건 알아낼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 일에는 사실 여자보다 더한 게 남자이긴 하다.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그런 면에서 남자들은 악마적인 창의력과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앙증맞은 호스를 갖고 있다.

꽤 높은 벽도 더럽힐 수 있는 호스를.

이야기가 옆으로 흐르기는 했지만. 궤도에서 이탈한 김에 생각나는 것 하나만 더 말해보자면, 내가 호텔에 있을 때, 자꾸 욕실 샤워 호스에서 헤드가 분리된 채 발견된다는 말을 하면서 고개를 저어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헤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분리가 된 채 샤워 호스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순진한 사람들은 그게 뭔지 이해가 안 됐나보다.

그게 후장 청소를 위한 거라는 것을 그 사람들은 정말 모른 모양이었다.

관장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여겨지지 않을 때 종종 그렇게 그곳을 청소하는데, 애널 섹스에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대단한 미스테리처럼 느껴진 모양이었다.

한 곳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고 잊을만하면 욕실에서 목 떨어진 샤워 호스가 나오니까 그게 기괴해 보였을지도.

애널 섹스가 게이 섹스는 아니다.

애널 섹스는 이성 간에도 많이 하니까.

특히 나는 애널 섹스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가끔 애널 섹스를 게이 섹스의 다른 표현 정도로 생각하고 애널 섹스하는 사람들은 지옥행이 예약돼 있다느니 뭐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인간들을 보면 나는 그저 뜨끔할 뿐이고.

무슨 말을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일단 몇 줄 위로 올라가서 읽어보고 수습을 해야겠다.

내가 요즘 정신이 많이 없기는 하다.

음. 이승희와 호텔로 가지 않고 이승희의 집으로 간 이유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해서 그게 목 떨어진 샤워 호스 얘기까지 왔다니.

아무튼 그러했다.

나는 이승희에게 대충 대답을 해 주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어쨌든 근사한 말을 했겠지.

우리는 같이 이승희의 집에 가서 한 방에 있었으면서도 어색할 틈이 거의 없었다.

이승희는 자기가 하던 일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 다음에는 차 얘기를 하고 차를 고치는 일에 대해 얘기했다.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았다.

보다 못해 내가 이승희에게 다가가 키스를 해 버렸다.

이승희는 뒤로 넘어지면서 깔깔거렸다.

꽤나 유쾌한 사람이었다.

“계속 얘기해요. 누워서 들어도 되죠?”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이승희의 얘기를 들었다.

이승희는 그동안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는지, 꼭 무슨 무인도에 16박 17일 정도 갇혀 있다가 나와서 처음으로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끊임없이 얘기를 해댔다.

“내 친구가 있는데 언제 한 번 꼭 만나봐요. 되게 재미있을 거예요.”

나는 근도의 팔을 생각하면서 말했다.

근도의 손에서 거품기 같은 게 쭉쭉 나오는 걸 보면 이승희는 오르가즘을 느껴버릴지도 모른다.

이승희도 내 옆에 누워서 팔로 머리를 짚고 나를 보면서 얘기를 들었다.

이승희는 내가 근도 얘기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근도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 말을 안 믿는 여자가 있는데 네 팔에서 거품기 좀 꺼내서 보여주라고 했다.

근도는 별 것 아닌 부탁이라는 듯이 착착착 자기 손가락이랑 여기저기에서 숨겨져 있던 비밀스런 도구들을 꺼내 보였다.

이승희는 와와와와와!! 대애애애애애바아아악!! 이라고 부르짖으면서 광신도처럼 무릎을 꿇고 내 스마트폰 앞에 앉아서 화면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늙은 정우 그?”

근도가 물었다.

npc냐는 질문인 거다.

“아마도.”

이승희는 자기를 두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 건가 하면서 눈을 댕그랗게 뜨고 나와 근도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나중에 한 번 봐요. 만져보게 해 줄게요.”

근도는 이승희가 정우 형의 npc인 것 같다는 말에 즉각 마음을 열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 이승희는 나에게 내 정체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도둑이지. 마음을 훔치는 도둑.”

다들 오징어로 만들어버릴 심산으로 내가 외쳤다.

근도와 현의 몸이 고장나면 혹시 이승희가 두 사람을 고쳐줄 수도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릿속에 들었다.

나는 여전히 할 얘기가 남은 듯이 계속해서 재잘거리는 이승희를 향해서 몸을 튕겨 다가갔고 이승희의 뺨을 감싸고 눕혔다.

이승희는 두 눈을 깜박거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내 몸은 슬슬 흥분이 돼서 커지고 있었다.

이승희를 꽉 안고 밀착하면서 나는 이승희가 내 상태를 파악하고 나를 불쌍하게 여겨주기를바랐다.

“나. 지금 힘들어.”

“왜요?”

“몰라. 슬픈가봐. 울잖아.”

나는 지퍼를 주우욱 내리고 드로즈 안에서 페니스를 꺼냈다.

울고 있는 꼬마 녀석이 이승희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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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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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1.

퇴근하고 열 일을 제쳐두고 [딥 웹]을 계속 쓰고 있는데 진행을 할수록 지금 진행이 잘못 됐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이렇게 계속하다가는 완결을 내는 게 불가능할 것 같고 설정이 계속 무너지고....

끝낼 수 있는 부분에서 끝내지 않고 제가 욕심을 부려서 끌고 와서 세계관이 이어지질 않고 있는데. 윽..

하... 어떻게 해야 될까요.

억지로 쓰고는 있는데 이러면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공기가 되어버리는...

생각 같아서는 엔딩을 칠 수 있었던 부분에서 삭제를 하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하고요.

지금의 구조로는 이게 지금, 이만큼이 머리인 거고 뒤에 기형적인 몸이 붙게 되는 거네요.

중간에 플롯을 수정하면서 생긴 일인데 그 오류를 지금 발견을 해서 수습이 불가능한 상태에 멘붕이 왔어요.

일단은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을 매끄럽게 하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수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ㅠ

공지 2.

어느 정도 갈피를 잡았습니다.

정우가 정우 형에 대해 알아가고 정우 형을 만나는 부분까지는 남기고

정우 형이 정우에게 얘기를 하는 부분부터 뒤집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고 이 작품의 제목은 [딥 웹 MK]로 수정. (네. MK는 몸캠입니다^^)

딥 웹에 접속한 이후 다른 능력자들과의 싸움 부분은 차차기작 쯤으로 별도로 다루거나 하는 것으로 하고 여기에서는 스페이스 아이템을 모으는 하렘 여정으로 [딥 웹 MK]의 구성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이질적인 구성이 이어지면서 불균형이 너무 심해졌고 코멘트로 주신 조언을 보면서 제가 느낀 불편감이 뭐였는지 확실해진 것 같습니다.

이 캐릭터 저 캐릭터 다 살리려고 한 게 이유였던 것 같다는 말씀이 딱 맞는 듯해요.

제가 쓰면서 갸웃거려지던 부분에서는 읽으면서도 다같이 문제를 느끼고 계셨네요.

삭제될 부분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우선은 압축해서 5화 정도로 눌러 놓고요. 차후에 그 부분은 완전히 삭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금 그 부분을 읽어오시던 분들을 위해서요.

그럼 이제 땜빵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당분간 게시판이 누더기가 되어도 이해해주세요. ^^

정우가 키샤장의 정체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거기부터 다시 시작할게요.

조언 주신 분들. 정말로 크게 빚졌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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