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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웹요?”
“응. 모든 게 열려있었어. 정보의 바다였고 아무 것도 통제되지도, 정제되지도 않았어. 모든 게 다 있었지. 김 경장이라면 아주 환장을 했을 거다. 서지영이 딥 웹에 접속할 수 있었으면 서지영은 몇 날 며칠이든 그 앞에서 꼼짝을 안 할 거야.”
왠지. 상상이 됐다.
형은 친근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 사람들에 대한 형의 애정이 엿보여서 나도 모르게 그런 형의 얼굴을 넋 놓고 봤던 것 같다.
"금지가 없는 곳이었어. 온갖 금기를 넘어선 폭력적이고 퇴폐적이고 잔인한 정보들이 수두룩했고. 처음에는 그게 왜 근도 폰으로 날아왔는지 이상했지. 이상하다는 생각만 했어. 거기에 접속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처음에는 안 했어. 그때 나한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고 그런 것에 정신 팔 여유도 없었거든."
나는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고 해도 그랬을 것이다.
형은 기본적으로 나니까, 형이 그랬을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을 그냥 날리고, 나는 근도를 그렇게 만든 것들을 찾아서 손을 봐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보고 싶잖아. 내 인간관계가 얼마나 편협한지 너도 알잖아. 친구라고는 근도 하나였다고. 나를 친구라고 부를 놈들은 얼마든지 있겠지만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놈은 그 놈 하나였어. 나머지 놈들은 이해관계가 얽혀서, 서로한테서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해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놈들 뿐이었고 내가 친구라고 부를 놈은 최근도 그 새끼 하나였다고."
저기, 형? 저는 안 그런데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한테는 근도 말고도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우와 핫 걸, 수영, 카린과 은호 형, 내 트레이너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형은 나를 보더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안 그렇다고 말하려고 그랬지? 그거도 다 내가 바꿔줘서 그런 거야. 내가 관여하지 않았으면 너는 나하고 똑같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아. 네."
"아무튼. 나도 호모포비아지만 그딴식으로 비열하게 사람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개새끼들. 씹창 새끼들! 그 새끼들은 지들 인생에서 패배해서 그런 짓거리나 하고 다니는 거라고. 죽을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겨우 그런 일로 자살을 할 정도의 멘탈이라면 일찍 죽는 편이 나은 거라고, 지들한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들도 있더라. 세상엔 진짜 미친 것들이 많더라고. 그래서 검색을 시작했어. 딥웹 사이트에서 말이야. 근도가 다니던 회사 이름을 쳤는데 언제부턴가 화면 오른쪽 하단에 어떤 여자가 무릎을 세우고 앉아있는 거야. 이게 뭐야? 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튜토리얼 도우미라고 대답하는 거야. 자기는 npc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된대.”
“네?”
“어이없지? 나는 아무 장비도 없이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을 하고 있는데 내가 혼잣말을 하는 걸 듣고 튜토리얼 도우미라는 녀석이 말을 한 거야.”
“네에?”
이 사람은 임정우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얼마나 거짓말에 능하고 뻥이 심한지는 내가 가장 잘 알지 않겠는가.
나는 이 사람이 나를 가지고 장난을 하려는 건가 보다고 생각했다.
“저한테 그 주소를 알려줄 수 있어요?”
내가 말했다.
“왜? 거짓말 같아서 네가 접속해보게?”
“네.”
피차 서로를 잘 아는 마당에 '그래서 그런 건 아니예요.' 라고 수줍게 말할 필요가 있겠나 싶었다.
형은 웃더니 싫다고 말했다.
“놀랄만한 얘기를 해 줄까? 임정우. 이 세계에서 네가 몸캠 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만난 여자들 말이야. 그 대부분은 아이템을 써서 내가 만들어낸 거야. 내가 살던 세계에선 그 녀석들, 사람이 아니었어.”
"네?"
나는 멍하니 형을 바라보았다.
“설마…. 형이 살던 곳에서 연우가 튜토리얼 도우미였다는 말을 하는 건 아니죠?”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리면서 말했다.
“역시. 임정우라면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형이 말했다.
“정말…이라고요?”
“맞아. 딥 웹의 npc.”
“…….”
이 형. 아무래도 나를 갖고 장난치고 있는 거다.
그런 내 얼굴을 보고 그 형이 웃었다.
“이해되지 않는 건 안 믿겠다 이건가? 그럼 지금 너는 이런 내 모습이 이해돼서 나랑 얘기를 하고 있는 거냐?”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형은 내가 충격에 휩싸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형은 딥 웹에서 근도의 자살 사건을 검색하면서 그 포털이 다루는 어마어마한 정보의 양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됐다고 말했다.
이상한 것은, 거기에 일반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정보까지 전부 나왔다는 거였다고 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정우 형은 딥 웹이 보통 포털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초보 이용자에게 주는 특혜로 정보 이용을 무제한으로 할 수 있게 해 줬던 딥 웹이 나중에는 정보 이용을 위해 포인트를 요구했다.
포인트가 돈으로 살 수 있는 거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포인트는 딥 웹이 요구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얻을 수가 있었다.
딥 웹이 요구하는 미션은 처음에는 별 것이 아니었다.
딥 웹을 알게 된 경로나, 자잘한 설문에 응답하는 것 등이어서 거부감 없이 정우 형은 거기에 응하고 포인트를 획득했다.
레벨을 올릴 수 있다는 히든 퀘스트가 쌓여갔지만 정우 형은 레벨을 올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튜토리얼 도우미들은 형이 잊어버릴만하면 한 번씩 히든 퀘스트에 대해서 말을 하곤 했다.
그래도 형은 거기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형에게는 오직 근도의 죽음에 책임있는 놈들을 찾아내서, 도대체 왜 그랬는지를 듣고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지만 그래도 용서를 빌면 깔끔하게 용서 해주고 나도 다시 내 인생을 살러 갈 생각이었어. 그랬는데 그 쓰레기들, 반성의 기미가 없더라. 그런 짓을 저질렀으면 조용히 짜져 있기라도 할 것이지 여기저기에 글을 싸질러 놨더군. 그래서 나도 마음을 바꿨어. 근도가 당해본 대로 한 번 당해보라는 생각이었지. 근도가 너한테도 그런 말 한 적 있었지 않아? 자기는 왜 그냥 남들처럼 태어나지 못한 건지 모르겠다고.”
“네….”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가 태어난 것, 심지어는 잉태된 밤까지 저주한다는 말에 나는 그 말이 엄청 과격하다고 생각했었고, 근도가 그 문제로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괴로워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었다.
그런 근도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네가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받아들이고 네 모습 그대로 멋있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런 영혼없는 말을 위로랍시고 했었는데.
나는 그 생각이 근도를 자살로 내몰 수 있을만큼 큰 무게였을 거라는 것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형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 세계에서 근도가 죽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리얼 그릴도…. 그럼 근도가 수석 셰프가 될 수 있게 해 준 것도 전부 형이 해 준 거예요?”
내가 물었다.
“네가 한 거지. 네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나는 뒤에서 거들어 주기만 한 거고.”
형이 말했다.
“얘기 계속 해 주세요, 형.”
형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 다음에는 네가 예상할 수 있는대로 흘러갔어. 모두가 자기를 따돌리고 뒤에서 자기 얘기를 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그 쓰레기들이 직접 느낄 수 있게 해 줬지. 자기가 희생잔데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오히려 그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면 그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말이야. 너도 알겠지만, 나는 한 번 시작한 일을 장난스럽게 하거나 도중에 멈추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요?”
“그냥 노 코멘트 하는 게 낫겠다.”
왠지 그 사람들 역시 결국 자살을 선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 형이라면, 정우 형이 작정을 하고 누군가의 인생을 꼬아버리기로 결심을 했다면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 사람은 없는 것이다.
"죽은 거예요?"
"자기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죽는 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 아니야? 나는 그 쓰레기들이 자기 신념을 지키면서 죽을 수 있게 도와준 것 뿐이지. 어차피 죽을 인간들이었고 그 정도 일로 죽을 멘탈이었으면 일찍 죽는 게 나은 거잖아. 내가 죽인 것도 아니고 나는 그냥 동기를 더 확고하게 만들어준 것 뿐이지. 살아봐야 별 것 없을 거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을 거라는 확신을 줬을 뿐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몇 명이나 그런 거냐고 물으려다가 그냥 혼자서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걸 알아서 바뀔 것도 없고 섣부르게 형에 대해서 판단을 내리고 싶지도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이 형이고, 그 사람들이 죽었다고 해서 형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딥 웹은 어떻게 됐어요?”
나는 우리가 감정의 대립 없이 나눌 수 있는 화제로 돌아가기로 했다.
“컴퓨터를 켰는데 내가 12레벨이 돼 있는 거야. 무슨 일인지 몰랐지. 내 모니터 하단에 앉아있던 npc 도우미도 바뀌어 있고 말이야. 어떻게 된 거냐고 하니까 내가 가장 어려운 히든 퀘스트를 전부 성공했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 그 퀘스트를 성공한 사람은 없었대.”
“그 퀘스트가 뭐였는데요?”
“그냥 이것도. 노 코멘트하는 게 낫겠다.”
살인…같은 거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제대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 웹에 반영돼 보상이 이루어진 거였다.
형은 내 표정을 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가 한 번. 공격을 당했어. 아니. 한 번이라고 하면 안 되고 처음이라고 해야 되겠다. 집에 있다가 공격을 당했어. 창문이 깨지고 뭐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방에 불이 붙고 폭발음이 들리더라고. 웬만해서는 그렇게 불이 붙지는 않잖아. 네이팜탄 같은 거라도 날린 건지. 작정을 하고 나를 아주 그냥 껍질을 홀랑 다 태워죽일 생각으로 그런 거라니까? 아, 씨이발. 그때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 npc가 나대신 일시정지 스킬을 발동해 주지 않았으면 나는 거기에서 몸이 다 날아가서 그대로 죽었을 거다. 아. 씨발. 생각하니까 열 받네.”
“그런 게 있었어요?”
형이 하는 말에 놀라기도 놀랐고, 일시정지 스킬이라는 것에 대해서 궁금하기도 해서 어느새 나는 집중하며 물었다.
“응. 그냥 이것 저것 하고 돌아다녔는데 퀘스트를 성공할 때마다 딥 웹에서 보상이 따랐어. 일시정지 스킬도 그때 생겼었나봐. 그래서 스킬이 발동된 동안 잠깐 시간을 정지시키고 컴퓨터만 가지고 도망쳐 나왔지. 모아놓은 스킬이 많았으니 망정이지 진짜 통구이가 돼 버릴 뻔 했다고. 근데 너는 인마. 내가 죽을 뻔 했다는데 스킬에만 관심이 있는 거냐?”
형이 도끼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아. 너무 티났나?
이 형도 성격 엄청 까칠할 것 같은데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들을 지금 물어보지 않으면 나중에는 잊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급하게 물었다.
“근데 그런 건 어떻게 생기는 거예요? 내가 받은 아이템요. 그런 건 어떻게 만든 거예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너한테 주는 거지. 내가 독자적으로 능력을 만들어 줄 수는 없어. 하지만 딥 웹의 헤드는 다르지.”
"딥 웹의 헤드요?"
"그래. 신에 준하는 초능력자라고들 하지. 초능력을 다루는 기술이 극한에 이르러서 신 같았어. 나한테 인식 제어 능력을 준 사람도 헤드야. 헤드는 자기 능력을 집약해서 스킬과 아이템을 만들어. 그걸 자기가 선택한 사람들한테 주는 거야. 퀘스트를 성공했을 때 주기도 하고 지 꼴리면 그냥 주기도 하고."
말을 하는 태도를 보아하니 그런 대단한 헤드라고 하더라도 헤드에 대해서 존경심이나 경외감 같은 건 조금도 없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