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65화 (36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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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말 안 할 거냐?”

근도가 말했다.

좀전보다 훨씬 사나워진 말투였다.

나는 어쩔 수 없게 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이제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근도는 내가 자기 없는 자리에서 카린과 자기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자기가 들어오니까 입을 딱 닫아버렸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

“알았어. 뭐. 언젠가는 꼭 해야 될 말이기도 했고. 이렇게 된 이상. 그래. 차라리 잘 된 건지도 몰라. 네가 믿건 말건 상관은 없어. 하지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는 전부 사실이야.”

나는 그렇게 말을 해 놓고 근도의 앞에 앉아서 내가 정우 형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했다.

근도는 몇 번 헛웃음을 웃으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짜고 자기를 놀리는 거라고 생각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근도는 나도 알고 카린도 알았다.

우리가 그렇게 실없이 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네가 믿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정우 형이 가진 능력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도 정우 형한테서 받은 능력이 있어. 보여줘?”

내가 물었다.

근도는 대답을 못하고 카린을 바라보았다.

카린은 근도에게 아무런 말도 해 주지 않았다.

나는 근도의 앞에서 천천히 환상을 펼쳐 보였다.

근도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공간을 근도의 앞에 만들어 보였다.

근도를 놀라게 하거나 겁을 먹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무서운 장면보다는 우선 근도가 좋아할만한 곳을 만들어냈다.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바다와 모래사장을 보면서 근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모래 바닥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여주고 그곳에서 므로가 튀어나오게 해 주었다.

므로는 어디서 꼭 저같이 생긴 짝을 데리고 왔고 므로의 새끼들이 모래속에서 퐁퐁퐁 생겨났다.

처음에는 놀란 눈으로 보던 근도의 눈이 초승달같이 휘더니 이 자식은 지금 자기 앞에 내가 왜 이런 환상을 펼쳐놓는 건지도 잊은 듯이 므로를 보면서 마냥 좋아했다.

어디 한 번 므로한테 깔려죽어봐라 하고 나는 근도가 보는 환상 속에 므로의 섬을 만들어 버렸다.

근도는 므로가 저에게 튀어오자 므로를 안으려고 하다가 뒤로 쿵 넘어졌다.

그리고 므로의 털과 무게, 혀의 감촉을 그대로 고스란히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 근도는 우리 눈에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카린은 바닥에서 혼자 데굴데굴 구르며 꺄르르르 웃어대며 므로, 하지마, 라고 외치는 근도를 보면서 고개를 내둘렀다.

“사회에서 매장시키기에는 딱 좋은 방법이겠네요. 미친 놈이 따로 없어요. 자기가 우리 앞에서 이랬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죽어버리고 싶을 겁니다.”

카린이 말했다.

나도 카린의 말에 동의했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은 지금 근도에게만 보이고 있었다.

모두의 눈에 보이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이제 나는 각자에게 그에 맞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것까지도 가능해졌다.

카린에게는 므로의 섬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근도는 제 품에 안겨들던 귀여운 므로가 너무 많아지자 헉헉대고 버둥거렸다.

므로, 그만. 므로. 이제 진짜 그만해, 라고 말하는 근도의 외침이 점점 커질 즈음 나는 근도에게서 환상을 거두었다.

근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방금 그거?”

근도가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의 일부."

그리고 나는 벽에 커다란 거울이 만들어지게 하고 그곳에 끔찍하게 일그러지고 온몸이 반점으로 뒤덮인 괴물이 서 있는 것을 보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고, 그 다음에는 검은 바다 위에 높고 거친 바다가 출렁이는 환상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근도는 점점 겁에 질리는 모습이었고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진실이라는 건 때로 이런 모습인 거다.”

환상을 거두고 내가 말했다.

“네가 믿고 싶건, 그렇지 않건 그건 진실이야. 너는 죽었어. 그게 너한테 일어날 일이었어. 그 일은 우리 미래의 너한테 일어난 일이야. 그 곳에서 너를 잃은 정우 형이 여기로 왔으니까. 너한테 일어난 일을 바꾸려고. 아마 너는 이제 다른 삶을 살겠지. 이미 그러고 있고 말이야. 나는 정우 형한테 너를 만나게 해 주고 싶었어. 그런데 그걸 너한테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지 몰라서 카린이랑 의논을 하는 중이었고.”

내 말에 근도가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죽었다고? 그런데 정우 형이라는 건…. 누구야?”

근도가 물었다.

“나야. 어쨌거나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서 형이라고 부르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나는…. 어쩌다가 죽었대?”

근도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근도가 받은 충격이 크다는 것은 나도 알 수가 있었다.

“아웃팅을 당해서 직장을 잃고 재취업을 못 했나봐. 악의적인 마음을 갖고 사람들이 너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방해한 것 같아. 그렇게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자살했대.”

“…….”

근도의 손이 떨렸다.

“그런데 정우가…. 여기로 온 거라고? 그 일을 바꾸려고?”

근도는 천천히 그 말을 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꼭 너 때문만은 아니야. 형이 지키고 싶었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야 될 거야. 어쨌거나 그 시작은 너였어. 너 때문에 형이 딥 웹이라는 포털에 접속했고 그 사이트에서 알게 된 npc들을 다시 살리려고. 그 녀석들도 전부 죽었거든. 형이 동력원이 돼서….”

내가 하는 말은 점점 소리가 작아졌다.

말을 하는 나 자신도 그 말을 믿기가 여전히 힘들어서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근도가 장난 그만 치라고 하거나 내 말을 멈춰줬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근도는 내가 하는 얘기를 신중하게 듣고 있었다.

“나한테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

근도가 물었다.

“나도 잘은 몰라. 그래서 형을 만나서 더 물어보려고 하고 있어.”

“정우가…. 여기에 있어? 정우를 만날 수 있는 거야?”

“응. 근데…. 홀로그램이야.”

나는 근도가 비웃지는 않을까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말했다.

지금 나를 갖고 장난치는 거냐고 근도가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근도는 이미 내 말을 의심하는 건 완전히 포기해 버린 모양이었다.

“정우를 보고 싶어.”

근도가 말했다.

“어…. 알았어.”

그러다가 나는 근도를 바라보았다.

“야. 너. 혹시. 내가. 이런 말은 정말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혹시 너. 나나 정우 형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사랑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차마 근도의 얼굴을 보지도 못하고 말했다.

근도는 사납게 나를 노려보더니 얼굴보다 훨씬 더 사나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학교 다닐 때 샤워실에서 홀딱 벗고 같이 씻은 게 한 두 번이냐? 내가 너 보면서 똘똘이 일으켰던 적 있어? 내가 아무리 굶주려도 내 스타일 아닌 놈은 안 먹는다고. 나는 너한테 우정 이상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안 생겨서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너하고는 끝까지 베스트프렌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지? 그런 거지?”

나는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카린이 자기는 어떠냐고 묻자 어디서 되도 않는 얼굴을 들이밀면서 그런 걸 묻냐고, 아주 스트뤠스 처받은 얼굴로 근도가 되물었고 카린은 그 대답에 좋아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나마 평소에 카린과 근도 사이에 세워져있던 위계질서 비슷한 것 때문에 그 정도로 끝난 거지, 예민해진 근도는 정말로 까칠했다.

"정우는 볼 수 있는 거지?"

근도가 나에게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면 돼? 어디로 가면 볼 수 있어?"

그때부터 근도는 나보다 더 서두르기 시작했다.

근도는 갑자기 정우 형에 대해 아련해 하면서 폭풍 오열을 시작했다.

예상할 수 있었던 반응이기도 했지만 그렇게까지 울 줄은 몰랐는데 그런 근도에게 한편으로 고마웠다.

정우 형이 한 일을 그동안은 아무도 몰랐지만 이렇게 한 사람, 두 사람 알아가게 되면서 정우 형의 존재가 그냥 의미없이 사라져버린 건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 괜히 내가 더 위안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정우 형을 부르고 싶었다.

평소에 정우 형이 어디에서 어떤 상태로 지내는지는 몰랐다.

그러다가, 핫 걸이 정우 형에게 화상 회의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 핫 걸에게 부탁을 했다.

형이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근도뿐만 아니라 카린도 그런 형의 모습은 처음 보는 거였기에 모두가 한동안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근도였다.

입을 먼저 열었다기보다는 반가움의 표시를 먼저 나타냈는데 근도는 정우 형을 만져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고 손이 그대로 영상을 지나쳐버리는 것을 보고 근도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정우 형은 머쓱해했다.

근도는 정우 형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형한테 반말을 못 하고 있는데 근도는 그냥 정우라고 불렀다.

정우 형도 근도가 자기한테 그러는 건 그냥 용납해주는 분위기였다.

잃었던 친구가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이 적당히 만남의 기쁨을 누리기를 기다렸다가 재빠르게 치고 들어갔다.

나한테는 알아내야 할 것들이 많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문 중에 어떤 것들은 정우 형도 그 답을 모를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내가 정우 형에게 물어서 확인하려고 마음 먹고 있던 것들을 물었다.

“형. 은호 형이랑 이지도 대대장님도 형의 npc였어요?”

“아니?”

형이 간단하게 말했다.

“형이 그렇다고 했잖아요. 내 인벤토리에 있는 사람들은 형의 npc들이었다고.”

“아! 정은호랑 이지도 대대장은 아니야. 그 사람들은 내가 아이템으로 구해 놓은 사람들이야. 은 과장님처럼 헬퍼들이야, 그 사람들도. 너한테 제대로 싸울 방법이랑 조직을 전수해 주고 싶었거든. 내가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너한테 내가 가진 능력을 정교하게 사용할 방법 정도나 알려줄 수 있겠지."

“형이 잘못 말해서 오해했잖아요. 다음부터는 얘기를 할 때 정확하게 좀 해요. 그것 때문에 헷갈렸잖아요.”

“까칠하긴. 이걸 그냥!”

형이 나를 향해서 손을 들었다.

나는 당연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정우 형은 나를 때릴 수 없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내 눈이 튀어나올 만큼 강한 충격이 머리에 느껴졌다.

“헐!!”

내가 비명을 지르고 돌아보자 근도가 정우 형을 보고 씨익 웃었다.

“때리고 싶으면 나한테 말만 해. 내가 대신 패 줄게.”

근도가 말했다.

저 미친 자식!

오른 손으로 나를 때린 거다.

“너 미쳤어?”

나는 근도를 보고 소리를 바락 질렀다.

“나이스!”

정우 형은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다.

“헤드라는 게 말입니다. 정확히 어떤 존재인 겁니까?”

카린은 나와 근도가 떠드는 게 시끄러웠는지 혼자서 훅 치고 들어갔다.

“신적인 능력자들이지.”

정우 형이 말했다.

“그럼 헤드가 여러 명입니까?”

“각 능력 계열마다 하나씩 있으니까.”

“능력 계열이라는 건 어떤 것들이 있는 겁니까?”

나도 뒤통수를 쓰다듬으면서 두 사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것들을 차근차근 물어봤어야 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도도 나를 보더니, 너는 그런 걸 물어볼 생각도 안 했지? 라고 시비를 걸었다.

이 자식이 정우 형이 오고부터는 아주 기고만장이다.

“순간이동 능력자, 시간 이동자, 인식제어자, 최면술사, 신체 강화자. 찬탈자. 그런 것들이야. 최면술사는 인식제어 계열에서 빠져나간 분파야. 인식제어 계열 중에서 다른 사람한테 암시를 걸어서 행동을 조종하는 쪽으로 특화시켜서 그 기술을 발달시킨 게 최면술사들이야.”

“그럼 시간 이동자가 가장 세겠는데? 미래를 보고 와서 현재에 대응하면 되니까.”

근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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