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66화 (366/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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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정확히 원하는 시간으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능력이 발현됐다고 해도 실력이 정말 미미한 녀석들이 많고. 순간이동 능력자만 해도 그래. 처음에 능력이 발현된 애들은 고작 몇 미터 이동하는 게 전부고 그 능력도 한 번 사용하고 나면 몇 시간씩 쿨 타임이 있어. 시간 이동자들이 시간 이동을 하면 경우에 따라서 기억을 잃기도 하고, 시간 이동자들한테는 페널티가 많이 걸려있어.”

“페널티라는 건 인위적으로 주어지는 거예요?”

내가 물었다.

“헤드들끼리 서로 제약을 둘 수 있어. 그래서 약한 헤드는 자기 능력자들을 지켜주지 못하지. 시간 이동자들이 처음에는 강했는데 대대적인 습격 이후에 많이 약해진 시기가 있었어.”

시간 이동 능력이 있다고 해도 시간 이동의 의지를 가져야 능력을 사용할 텐데, 강력한 인식 제어자에게 걸려버리면 자기가 가진 능력을 써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패하게 될 거라는 것이 깨달아졌다.

“임정우씨는….”

카린은 정우 형에 대해 어떻게 호칭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라 대충 그렇게 말을 했다.

“그 능력들이 고루 나타나는 겁니까?”

카린이 물었다.

“나는 찬탈자니까.”

형이 말했다.

“찬탈자가 다른 능력자의 능력을 뺏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근도가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떤데?”

형이 씨익 웃었다.

“…….”

우리 세 사람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사람들을 상대해서 전부 죽였다는 말인 건가.

형이 사용하는 능력들은 상당한 수준들이었다.

순간 이동 능력도 그렇고 아직 신체 강화를 하는 건 보지 못했지만 헬퍼와 파트너에게 암시와 최면을 걸어놓은 걸 보면 최면술사로서의 능력도 강했다.

시간 이동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형의 시간 이동 능력은 거의 헤드 수준에 비견할 정도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능력자들을 상대로 해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능력을 뺏었다는 거다.

미래의 나는 진짜 대단한 남자였나보다.

'역시!'

“정우는 나보다 더 강해질 거야. 막강한 파트너들이 있으니까.”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근도와 카린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npc들 말인데요. npc를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는 것까지도 가능한 겁니까? 헤드의 능력으로요? 솔직히 npc를 홀로그램으로 만들고 홀로그램에 입체적인 형상을 갖추게 하는 것 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가 돼요. 그건 인간 기술로도 불가능하기만 한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사람의 몸에서 잉태돼서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건. 아무리 헤드라고 해도 그런 것까지 할 수 있는 건가요?”

카린이 말했다.

“알려지지 않은 능력자들이 있다는 얘기를 헤드한테서 들었어. 당연히 그렇지 않겠어? 헤드들은 그런 특이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섭해서 자기 밑에 두고 그 사람들의 능력을 집약시킨 아이템을 만들어서 그걸 퀘스트의 보상으로 쓰기도 하지. 내가 정우한테 준 아이템들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야. 그런 능력자중에 사람과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헤드들의 결의에 따라서 죽였다는 말도 있었어. 그 사람이 어떤 헤드한테 붙느냐에 따라서 싸움의 양상이 달라질 테니까 모두한테 너무 위험한 변수였다는 거지. 어쨌거나 내 헤드한테는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아이템이 있었어. 내가 그걸 받았고. 정우 네가 해결해야 될 일들이 있어. 네가 능력자들한테 노출될 때를 대비해서. 그랬을 때 너는 그게 네 싸움이 되게 해야 돼. 네 주위 사람들한테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거야.”

정우 형이 말했다.

나는 형이 하는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형은 미담의 주인공이 아니다.

좋고 아름답고 슬프고 감동적인 얘기만 끌어안고 찾아온 산타 클로스가 아니라는 거다.

그와 동시에 형은 지금부터 엄청나게 나에게 부담을 안겨줄 이야기들을 풀어놓을 거였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 준비돼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 싸움이 돼야 한다는 말. 그리고 내 주위 사람들한테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떻게요?”

나는 나도 모르게 겁에 질린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은 과장님이 알려줄 거다. 지금쯤은 알아냈을 거야.”

형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려고 하며 말했다.

당연히 형의 손은 내 어깨에 닿지 못했다.

“하지도 못하는 일에 욕심부리지 말고 나 시키라고.”

근도가 말하더니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포커페이스가 가능한 형이었지만 나를 만지려다가 안 됐을 때는 민망해했다.

민망해했다기보다는, 약간 상처받은 얼굴, 아련해 하는 얼굴 비슷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보는 형만이 아니어서 근도도 몇 번 형을 토닥여주려고 하다가 헛스윙을 했다.

그러면 형은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근도를 놀려댔다.

공수 교대는 금방금방 됐다.

아직 근도를 놀리는 게 다 끝나기도 전에 형의 헛스윙이 나오곤 했으니까.

“카린. 이 녀석을 잘 도와줘. 최근도. 너도 마찬가지고.”

마침내 형이 점잖은 목소리로 말했다.

얘기를 일단락 짓기는 해야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우리끼리만 있었으면 상관이 없었겠지만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있는 카린을 위해서라도 얘기를 대충 마쳐줘야 한다고 느낀 것 같았다.

“당연하지. 이 자식한테 뭘 맡기겠냐?”

근도가 웃으며 말했다.

형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이더니, 그럼 얘기들 나누라고 하면서 사라졌다.

“내가 한 말 잊어버리지 마.”

형은 그 말을 남겼다.

사라지기 전에 한 말은 은 과장님을 찾아가라는 말이었다.

“형이 무슨 말을 했지? 뭘 잊어버리지 말라는 거야? 너무 많은 말을 해서.”

형이 사라지고 나서 근도에게 말하자 근도가 내 뒤통수를 쳤다.

이 자식이, 형 앞에서 너무 기고만장해지더니 형이 사라진 후에도 그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내가 눈을 부라려도 이제 먹히지 않았다.

그 자식은 이제 전부 알아버린 것이다.

내가 자기를 위해서 어떤 헌신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그래서 혼자 마구마구 감동을 먹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돕기 위해서 죽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은 일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돼서 기쁘다고 말했다.

“뭘 죽기까지야?”

우리가 본론에 쉽게 이르지 못하고 자꾸 샛길로 빠지는 게 답답했는지 카린이 정리를 해 주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그건 것 같습니다. 싸움을 임정우씨의 싸움으로 만들고 주위 사람들한테 불똥이 튀지 않게 하는 거요. 그 해결방법을 은 과장님이랑 의논을 해 보라는 거고 말입니다.”

“아.”

나는 내 여자들을 지켜야 했다.

헤드니 능력자니 하는 놈들이 내 여자들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형은 내 여자들이 다시 희생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형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카린과 정우를 바라보았다.

“도와줄 거죠?”

나는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카린과 근도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은 카린답지 않게 깊이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나라고 해도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시간을 되돌려서, 자기 몸을 잃으면서까지 지켜내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카린이 말했다.

“정우는 그냥. 모두가 사라진 그 세계에서 혼자 사는 게 재미없어진 걸 거예요.”

근도가 말했다.

근도를 때리려고 확 손을 들었지만 근도의 분석이 정우 형을 이해하는데는 좀 더 정확한 것 같기도 했다.

들어올렸던 손은, 근도가 내 팔을 막으려고 오른 팔을 들어올리는 걸 보고 스르륵 내렸다.

저기에 맞았다가는 뼈가 남아날 것 같지가 않았다.

“당분간은 그럼 돈을 모으는데 주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쓸만한 사람들을 동원하려면 돈이 있어야 할 테니까요.”

언제나 믿음직스러운 카린이 말했다.

나는 카린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언제나 카린이 그 말에 담고 있는 의미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꼭 일이 전부 끝난 다음에야 깨닫게 되곤 했다.

카린이 돈을 모은다고 말을 하면 그게 어느 정도 규모를 포섭하는 건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

새엄마를 찾아갔다.

내 정액이 여자들의 점막에 흡수된다는 등의 얘기는 정말 새엄마와 아들이 할 얘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정우 형의 명령에 따라서 나는 새엄마하고 심층 상담을 해야했다.

나는 새엄마한테서 충격적인 얘기 몇 가지를 연달아 들었는데 하나는 새엄마가 병원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는 거였다.

나는 새엄마한테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고 걱정을 하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하지만 새엄마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면서 새엄마는 알파 물질에 대한 연구에 전념 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했다.

연구 기관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다른 제약을 받지 않고 새엄마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싶어서 결국 그런 선택들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무슨 연구를 하는지 정기적으로 보고를 하는 시스템도 마음에 들지 않고, 그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방향을 전환할 의지도 새엄마에게는 조금도 없었다.

새엄마는 어떤 연구가 왜 필요한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설득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에 새엄마가 들려준 소식은 조금 더 충격적이었다.

새엄마는 내가 사정을 하고 정액이 여자들의 점막에 흡수가 돼도 알파 물질은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었지만 대신 다른 효과가 나타나기는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게 정확히 뭔지 알아내려고 연구를 하는 중이라고 하는 새엄마에게 나는 지금이야말로 내 비밀을 전부 털어놓을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새엄마는 놀란 척을 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지만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을 무표정한 얼굴로만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새엄마는 내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도 알았고 내 몸의 알파물질에 대해서도 알았기 때문에, 새엄마의 패러다임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와도 수긍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새엄마는 내가 새엄마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과, 내가 새엄마에게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를 이해한 것 같았다.

새엄마는 정우 형에 대한 얘기도 들었고, 새엄마가 정우 형이 나를 위해 찾아준 헬퍼라는 것, 그리고 정우 형이 나에게 새엄마를 찾아가라는 말을 했다는 것도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그 사람을 만나봐야 할 것 같구나. 거의 다 왔고 손에 뭔가가 잡히고는 있는데 그게 뭔지를 몰라서 답답해 죽겠는 그런 느낌이거든. 내가 그 사람을 만날 방법이 없겠니?”

새엄마가 말했다.

말하는 새엄마의 눈에는 눈물이 흐른 자국이 있었고 새로운 눈물이 계속 솟아나고 있었다.

새엄마는 눈 앞에 내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정우 형의 형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새엄마는 울었다.

내가 죽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있다는 것.

그 두 가지 상충되는 사실이 모두 진실이었다.

그리고 새엄마는 내 죽음을 애도해 주었다.

나는 새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꼈다.

“그래. 그러니까 임정우지.”

내가 정우 형의 회귀에 대해서 말을 했을 때 새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팔을 쓸어주기도 했다.

새엄마는 우리를 동일시해야 할 때 동일시했고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때 분리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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