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67 ----------------------------------------------
정우 형을 보고 싶다는 새엄마의 말에 나는 정우 형을 불렀고 정우 형은 우리가 있는 곳에 나타나 주었다.
정우 형이 은 과장님을 본 것은 처음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내 새엄마가 돼 있는 은 과장님을 본 것은 어쨌거나 정우 형에게도 처음이었을 것이다.
정우 형은 신기해하는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나는 그게 어떤 표정인지 이해했다.
은 과장님을 헬퍼로 선택한 자신의 지혜로움을 찬양하라고 막 주위 사람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으로.
나와 새엄마는 정우 형이 뭘 원하는지 알았지만 쌩까주었다.
각자에게는 자기다움이라는 게 있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우리다운 행동이니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하지 않는가.
정우 형과 새 엄마, 두 사람은 본론에 들어가 진지한 토론을 나눴고 정우 형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해주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내 npc들의 안전입니다. 그런데 아마 싸움이 시작되면 그 녀석들도 공격을 받게 될 것 같아요. 나는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오랫동안 고심해 왔는데 아무래도 알파 물질이라는 게 해결책이 돼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알파 물질은 여러 능력을 흡수하면서 생겨난 물질이고 독소를 생산하는데 그게 정우한테만 위험한 물질은 아닌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능력자들한테도 위험할 것 같거든요. 나는 내 npc들이 정우와의 성관계를 통해서 독소를 흡수해서 땀구멍을 통해 독소를 자연스럽게 배출할 방법에 대해서 은 과장님이 연구를 해 주었으면 합니다. 비용은 얘가 낼 거예요. 그럴 거지?”
형이 물었다.
어찌나 자연스럽게 말하는지 집중하지 않고 넋놓고 들었으면 비용은 ‘내가’ 낼 거예요, 라고 말한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형이 하는 말을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빠르게 굴려야 했다.
내 여자들이 내 독소를 흡수해서 그걸 땀구멍으로 배출하는 방법으로 능력자들의 접근을 차단할 수 있다는 건가?
“자연계에도 그런 식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개체가 존재하기는 하죠.”
새엄마가 말했다.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npc들이 다시 위험에 빠진다면, 내가 여기로 돌아온 것도 다 소용이 없게 됩니다.”
형이 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절박한 목소리라고 해야겠다.
새엄마도 걱정하고 있었다.
형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새엄마도 전부 알아차린 것 같았다.
“정우가 내 npc들을 일시적으로 보호해 주거나 정우 능력으로 커버를 해 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다가는 저한테 생겼던 문제가 반복될 겁니다. 정우가 동력원이 되게 하면 안 돼요. 아무리 정우라고 하더라도 스킬과 아이템을 사용하는데는 제한이 있는 거고 그렇게 되면 정작 싸워야 할 때 정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나도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보호해 줄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다가 형이 하는 말을 듣고 이해가 되었다.
그건 본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말이다.
“연우를 다시 검사해 볼 필요가 있겠군요. 정우가 의도하지 않는 동안에 그 일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던 건지도 몰라요. 한 번 확인을 해 봐야겠어요.”
새엄마가 말했다.
만약 새엄마의 말대로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연우의 몸에서 이미 그 물질이 배출되고 있고 그게 능력자들의 접근을 막거나 아니면 능력자들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역할을 해 주고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정말로 하이드 스킬이 필요한 녀석들은 내가 아니라 내 여자들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서 숨을 필요는 없었다.
능력자들.
그들의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되는 거였다.
형과 내 눈이 마주쳤다.
“다시 잃게 하지 마라.”
형이 말했다.
형은 부탁한다는 듯이 내 어깨를 손으로 짚으려고 했다.
아, 진짜 저 형.
붕어도 아니고 나를 만질 수 없다는 걸 언제쯤 깨닫게 될까.
***
유소이는 볼에 바람을 넣고 나를 슬쩍슬쩍 바라보고 있었다.
보자고 해서 불러내놓고서 내가 말이 없으니 이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새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새엄마가 손쉽게 검사를 해 볼 수 있었던 연우와 수영, 그리고 핫 걸에게서 특별한 페로몬이 발견된 이후에 새엄마는 그것들을 계속해서 연구했다.
정우 형은 그게 능력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봐야겠다고 하면서도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화를 계속하던 중에 새엄마는, 그게 적대감을 없애는 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적대감을 없애고 호감을 주는 화학물질에 대해 연구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새엄마는 그쪽으로도 알아보았다.
정우 형은, 그거라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수긍했다.
새엄마는 거기에 대해서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고 나와 최근에 만난 여자들을 검사해 보고 싶어했다. 그 여자들에게서는 나와 관계가 오래된 여자들한테서 발견된 페로몬이 발견되지 않았고 나한테는 특명이 떨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짧게 만나고 잊었던 여자들의 페로몬 분비량을 높이라고.
그게 하이드 스킬처럼 강력하게 몸을 은폐시켜주지는 못하더라도 존재의 노출을 회피시켜 줄 수만 있어도 1차적인 방어막은 형성되는 거라면서 정우 형은 기대를 품었다.
그렇게 시작된 일이었다.
나는 소이에게 연락을 해서 만나자고 말했다.
오랜만에 소이를 다시 만난 것이다.
수술이 끝나고 병원에서 헤어진 후로 정말 긴 시간이 지나 있었다.
소이의 눈은 더 이상 충혈되고 부은 눈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소이의 눈은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고 소이가 수술 전에 찍었던 사진에서 보이던 묘한 매력도 다시 소이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것은 눈에 초점이 정확하게 잡히냐 아니냐의 문제라기보다 소이 자신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이는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아 섭섭했다고 말했다.
네가 먼저 하지 그랬냐고 했더니 그러기에는 아직 확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오늘은 갑자기 왜 연락한 거예요?”
소이가 물었다.
“너랑 자려고.”
소이의 목으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보여서 나는 소이의 머리를 헝클었다.
“야한 생각 했냐? 그냥 자려고 그런 건데? 이 자식. 음탕하네?”
“내, 낵, 내가 뭘요?”
소이는 속내를 들킨 게 분했는지 바락바락 대들었다.
귀여운 녀석.
“으이이이이그. 다 보여, 인마. 알았어. 그렇게 원한다면 오빠가 한 번 줘야지, 뭐. 그대신 이번 한 번만이다?”
“뭐, 뭐가요!!”
발끈하는 녀석이 귀여워서 헤드락을 걸었다.
버둥대던 소이가 칵칵거렸다.
“눈은 이제 좀 어때?”
“뭐. 적응되는 것 같아요. 어때요, 보기에? 표시 나요?”
소이가 나한테 곧바로 되물어 왔다.
“아니. 근데 나는 그 전도 괜찮았던 것 같아.”
“사실은 과교정이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간헐성 외사시일 때는 막상 표시가 잘 안 나고 알아보는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과교정이 돼 버려서 사람들이 다들 한 번씩 더 쳐다본다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소이 너는 완전 잘 된 것 같아. 평범해 보여.”
내 말에 소이가 웃었다.
“그 말 웃기죠? 평범해 보인다는 말. 그게 내가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이었거든요. 그냥 눈에 초점이 바르게 잡힌다는 것만 가지고도 나한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좋은 걸 수도 있겠다. 그걸로도 감사할 수 있잖아. 내 친구 중에 손을 잃은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겠다. 내 사촌동생은 오랫동안 걸을 수가 없었는데 그 녀석도 평범하게 되기를 바랐을 거고.”
소이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래요, 라고 말을 하면서.
우리가 만난 시간은 점심도 되지 않은, 좀 이른 시간이었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소이와 뭔가 특별한 것을 해 보고 싶었다.
“소이야. 우리 산에 갈래? 산행 좋아하냐?”
“산행요? 그럴 것 같아 보여서 물어요?”
“아니.”
“완전 싫어해요, 걷는 거. 움직이는 거.”
“불공평하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날씬한 거냐?”
그러면서 나는 소이를 차에 태웠고 등산복 매장으로 향했다.
소이는 산에 안 갈 거라고 우기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골라주는 옷과 신발을 받아들고 꼭 나한테 불만 많을 때의 므로랑 비슷한 표정을 짓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녹색이 눈에 좋다잖아. 오빠가 다 너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이렇게 너 생각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나는 되는대로 입에 담아 주워섬겼고 소이는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높은 데는 안 올라갈 거야. 그냥 적당히 땀 날 정도로만 올라가자. 도중에 힘들면 오빠가 업어줄게.”
“산에서 어떻게 업어요?”
“너. 이 근육이 괜히 달려있는 건 줄 알아?”
소이는 한숨을 푸욱 쉬고 따라나섰다.
어디로 갈 거냐고 해서 북한산에 가자고 하고.
나도 산에 대해서는 개뿔 아무 것도 모르지만 소이는 나보다 더 모른다는 걸 알고 아는 척을 시작했다.
소이는 입술을 동그랗게 모으고 오오, 아아 하면서 나의 껍데기뿐인 지식에 감탄하는 눈치였다.
“나는 뭐 가져가야 돼요?”
소이가 물었다.
“뭘 가져가. 그냥 올라가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내려올 건데. 다음에 제대로 갖추고 정식으로 한 번 올라가자.”
“근데 오늘은 왜 가는 건데요?”
“야외 플레이가 급 땡겨서.”
“으휴.”
소이가 나를 노려보았다.
임수향이라는 탤런트하고 가끔 가다 분위기가 겹친다.
눈빛이 그냥 작살이다.
소이와 함께 올라가면서 나는 사람들의 잘 가지 않는 길만 찾았다.
소이도 내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 다음에는 나에게 협조를 해 주었다.
“그런데. 올라가면 땀 나고 씻을 데도 없잖아요.”
“야외플은 그 맛이지.”
“냄새나잖아요. 땀냄새.”
“응. 그러려고 가는 거라니까?”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나는 두 사람이 같이 걷기에 좁은 곳을 빼고는 소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소이에게도 적당히 상황을 알려주고 소이가 미리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지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이 능력자니 뭐니 하는 얘기를 하면 나를 미친 사람으로나 생각하고 말 것 같아서 계속 머뭇거리게 됐다.
“혹시 주위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나서 귀찮게 하거나 그런 일은 없지?”
나중에는 앞 뒤 재지 않고 그냥 물어버렸다.
“네?”
소이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오빠한테 연락해야 된다? 어떻게든 너한테 갈 테니까.”
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이는 내가 하는 말의 의미를 80퍼센트도 알아듣지 못한 것 같기는 했지만 일단 감격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소이는 내가 감동을 주려고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소이의 두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라고?”
“오빠한테 연락하라고요.”
“그러면?”
“그러면 오빠가 올 거예요.”
“그래. 정말이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줘. 내가 너한테 갈 거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소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때의 표정은 달랐다.
조금 겁먹은 표정 같기도 했다.
소이는 얘기가 끝난 후에 내 손을 꽉 잡았고 자주 나를 올려다 보았다.
“나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그래요?”
소이가 물었다.
“아니. 그래서 그런 건 아니야. 그냥. 꼭 말해주고 싶었던 거라.”
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