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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369화 (369/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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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에? 그런 일이 우연히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데요?”

내가 물었다.

“그러게 말이야. 나도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 생각에 그건 100퍼센트 사기예요.”

“사기?”

“네. 형이 거기에서 잘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형 전 여자 친구가 일부러 거기에 간 거죠. 우연인 것처럼 하고요.”

“너는 우연히 그렇게 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해?”

은호 형은 서운한 듯이 물었다.

“네.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요.”

“왜? 여행을 왔다가 여기에 오는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애도 그렇게 왔다고 했고.”

“만약에 정말로 그렇다고 믿었으면 형이 그런 어투로 저한테 그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겠죠.”

“징한 새끼!”

형이 화를 냈다.

“그 여자가 뭐라고 했는데요?”

“그게. 자기 남편은 일 중독이고 애는 벌써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이제 자기 인생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나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난다는 거지. 우리는 헤어지면 안 되는 사이였다고 말하면서.”

“그래서요?”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거야.”

“형한테요?”

“응. 어떻게 생각하냐?”

“그 여자가 형을 병신 호구로 보는 거죠.”

“그런 거지? 맞는 거지?”

형은 한숨을 푸우우욱 쉬면서 말했다.

“조금이라도 형 인생에 대해서 진지하게 걱정하는 마음이 있는 여자라면 그 따위 제안을 하면 안 되는 거죠. 누구 인생 망칠 일 있대요? 자기 남편이랑 짜고 그러는 거 아니래요?”

내가 마구 소리를 지르자 은호 형은, 내 인생이 그렇지 뭐, 라고 기가 죽은 채 말했다.

다 지나간 인연의 과거의 여자가 왜 갑자기 나타나는 건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내 일도 아닌데 화가 났다.

“그래. 뭔 놈의 여행이야.”

형이 말했다.

“아이미하고는 문제 없이 지내고 있는 거죠?”

“어. 응. 응.”

“아이미 괜찮은 애잖아요. 형.”

“그래. 알았어. 잠깐 흔들렸는데 네 소리 들으니까 내가 미쳤었다는 생각이 든다.”

네. 제 생각도 그래요, 라고는 차마 못하고 몇 마디를 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세상에는 진짜 별별 인간들이 다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기분전환겸 몸캠 영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영상을 봤고 거기에 나오는 여자가 왠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누굴까, 누굴까 하면서도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그것은 마치, 십여년 전에 왕성하게 활동을 하다가 홀연히 은퇴하고 사라져버린 스타의 이름이 기억날 듯 말 듯한 것과 비슷했다.

결국 나는 그 여자를 내가 어디에서 봤는지 알아내겠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영상을 다운받았다.

그렇게 세기말적이고 염세적인 영상은 최근에 본 일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영상은 그런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런 쪽으로 유명한 감독이 아예 작정을 하고 만들려고 해도 그보다 더 잘 만들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암울한 분위기를 고조시킨 것은 그 여자의 왼쪽 손목에 선명하게 난 서 너 줄기의 자상 자국이었다.

다크 써클이 짙은 얼굴에, 화장기는 없었다.

깡마른 몸매에 영양실조에 걸린 것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잘 나가는 모델들과 비슷한 체형 같기도 했다.

‘유명한 모델인가? 얼굴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체념한 듯한 커다란 눈에는 소녀 같은 위험이 내포되어 있었다.

소녀.

섣불리 다가가면 좆된다는 생각을 짙게 심어주는 단어.

심장이 철렁이 아니라 손목이 철컹철컹할 것 같고.

차갑고 가녀린 턱선 아래, 어깨에서 떨어지는 팔은 한없이 가늘었지만 허리에서 엉덩이로 내려오는 라인은 제법 볼륨감이 넘쳤다.

저 정도면 가슴도 한 손으로 다 누르지 못할 만큼 탄력감 넘치게 차오를 것 같고 막.

그래도 다리를 벌렸을 때 완충제 역할을 해 줄 살이 충분하지 않아서 뼈가 닿고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란 인간의 생각이란.

여자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나흘 후였다.

그 애는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한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던 여자 아이였다.

'한동안'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보다는 좀 더 긴 기간이다.

족히 일 년은 넘었을 테니까.

여자에 대한 환상으로 부풀어 있을 사춘기 때, 버스에서 보는 그 아이는 나를 많은 망상에 빠지게 했었다.

신비로워 보이는 눈.

가늘고 부드러운 선.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타인성이라는 요소.

우리가 그 오랜 시간을 넘어서서 다시 마주쳤을 때 그 아이는 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고 있는 나에게 그 아이가 먼저 다가와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나에게 한 말.

“야! 너 이성민 맞지!”

저기요.

이 상황에 딱 맞는 이모티콘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고.

“아닌데. 나 임정운데.”

“어…. 너 혹시 XX교회 다녔어?”

“나는 이날 이태껏 교회에는 나가본 적이 없다.”

“어머. 그래? 절 다니니?”

이 아이의 실축이 계속되다보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종교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통학버스에서 너를 봤던 것 같은데.”

“아아아아아아!! 그렇지? 맞지! 나 정유나.”

“어.”

무슨 소개의 순서가 이러나.

안녕. 우리 중학교때 버스에서 자주 보지 않았어? 나 정유나.

이런 식으로 돼야 할 것 같은데 웬 초면에 교회에 다니냐 절에 다니냐 드립을 하다가 한참만에 자기는 정유나라고.

기승전 정유나를 시전하는 정유나.

이름을 안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정유나를 만난 것이 반가웠으면서도 마음 속에서 뭔가 계속 불편했는데 정유나의 손목에 나 있던 자해의 흔적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정유나는 줄이 굵은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내 시선이 그곳에 자꾸 닿는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도 정유나는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

정유나는 급히 갈 곳이 있는 것처럼 조급하게 굴었고 나는 그대로 정유나와 헤어지면 안 될 것 같다고 느꼈다.

뭔가, 정유나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특별했다.

몸캠 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만나게 됐던 다른 여자들과 달랐다.

나는 정유나에 대해서 정우 형과 얘기를 해 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우 형에게 얘기하기 전에 나 스스로 정유나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만난 것도 대단한 운명인 것 같은데 밥이나 같이 먹자. 안 바쁘면.”

나는 굉장히 젠틀하게 정유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했다.

“바빠.”

“아. 그래도 먹자, 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정유나는 내가 말을 하는 동안에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 모습이 왠지, 어딘가로 빨리 가야 해서 그러는 거라기보다는 이 자리를 떠나는 것이 중요한 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차에 탈래? 우선 이동하면서 다음 계획을 세울까?”

내가 말하자 정유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꼭 알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유나가 다른 능력자에게 벌써 정체를 들켰고 공격이 이미 시작된 건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어디로 갈까?”

나는 머릿속에 복잡하게 떠오르는 의구심을 꾹 누르고서 물었다.

유나는 여전히 두리번거렸다.

희한한 것은, 유나가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살필 때 땅 위의 곳만 한정해서 보는 게 아니라는 거였다.

유나는 건물 위나, 하다못해 허공도 살피는 것 같았다.

“뭘 그렇게 봐?”

내가 물었지만 유나는 나를 한 번 바라보기만 했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 괜찮아?”

나는 유나의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손을 잡았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따뜻하네.”

유나가 말했다.

“응?”

“네 손.”

“계속 잡아줘?”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가 npc라면 유나는 어떻게 그렇게 일찍 나와 만나게 됐던 걸까.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였는데.

그때에는 어떤 접점도 없어서 서로를 알게 될 계기는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긴 기간 동안 같은 공간에 있었다.

다른 npc들과는 그렇지 않았다.

정유나는 왜 다른 걸까 하면서 나는 정유나에 대해서 생각했다.

“혹시 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 있어?”

유나에게 물었다.

“어?”

유나가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남한테 하기 힘든 얘기 있으면. 나한테는 해도 된다고.”

“그런 게. 있겠어?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해도 내가 너한테 말을 할 리도 없잖아.”

유나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유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갈등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먹고 싶은 거 있어? 내가 살게.”

유나는 두리번거리는 것을 한참 동안 멈추지 않다가 어느 시점이 되자 그때는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었다.

유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 것처럼 이제 내려도 되겠다고 말했다.

유나는 먹는 걸 싫어하지 않았다.

단지 환경이 문제였던 것 같았다.

마음을 놓을 수 없고 긴장 상태가 계속 되고 편하게 잠을 자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나는 잠을 자기만 하면 악몽을 꾸느라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했다.

눈 아래에 새겨진 저승사자의 발자국 같은 다크 서클은 그 지침의 흔적이었다.

"악몽이라면 어떤 거?"

"공격을 당하는 꿈. 나 때문에, 나한테 아주 중요한 사람이 위험해지는 꿈. 무서운 사람들한테 자꾸 쫓기는 그런 꿈이야."

"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건 그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나타나기 때문이야?"

내가 물었지만 유나는 내 질문을 무시하기로 작정한 듯, 아예 듣지 못한 척했다.

나는 유나가 아직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너무 훅 치고 들어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후회했다.

“뭐하고 지내?”

한참만에 메뉴를 고른 유나에게 물었다.

“그냥 집에 있어.”

“아.”

괜한 걸 물어서 자존심을 상하게 했나, 하고 있는데 유나가 나를 바라보았다.

“새로 시작을 해 보고 싶기는 한데 시간을 오래 두고 뭘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어서.”

“왜? 혹시 건강이 안 좋아?”

“응.”

유나가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정신병원에 좀 자주 들락거리고 있어.”

“아. 그래.”

유나가 한숨을 쉬었다.

“혹시 무슨 문젠지 물어도 돼?”

내가 물었다.

유나가 어떻게 생각을 하더라도 일단은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모르겠어. 정확히. 그냥 나는. 나한테 보이고 들리는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좀 늦게 깨달은 것 같아.”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는 게 보여?”

“모르겠어. 정확히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나도 내가 이상하다는 건 아는데. 뭐가 겹쳐. 동시간에 같이 발생할 수 없는 일이 같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고. 이상하지?”

“아니. 계속 말해줄래?”

“이상할 거야. 근데. 기억이 겹쳐. 열 여덟 살 때쯤의 기억이. 내가 그 시간을 두 번 살았을 리는 없는 거잖아. 그런데 그때의 기억이 다른 게 또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 했다.

“그게 혹시. 어떤 기억인지 말해줄 수 있어?”

유나는 나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말하면 나를 되게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싫어. 말 안 할래. 오랜만에 나를 제대로 된 눈으로 바라봐주는 친구를 만났는데. 안 망칠래.”

유나가 말했다.

“그럼 내가 말해봐도 돼?”

“뭘?”

“네 기억.”

“말해봐.”

유나는 재미있어 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혹시. 너. 네가 npc였다고 생각해?”

“……!”

유나가 나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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