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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웹 MK-370화 (3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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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기분 나빠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하면서 이 일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유나는 점점 더 화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숟가락을 소리가 나게 바닥에 탁 내려놓았다.

“너!”

유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우연히 만난 것처럼 하더니. 내 뒤를 쫓아다녔니?”

“어?”

“왜? 왜 그런 거야? 언제부터 그런 거야? 그러고는 가증스럽게 내 앞에 나타나서 우연인 것처럼 지금까지 나를 놀린 거니?”

그 말이야말로 놀라웠다.

내 짐작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정유나. 내가 한 말이 맞는 거야?”

“너. 지금 그거 굉장히 가증스럽게 보인다는 거 알아?”

유나는 화를 참을 수 없는 표정으로 나에게 쏘아붙였다.

“헐!”

그 말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었을까.

“유나야. 너. 나하고 지금 어디로 좀 가야겠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너하고 같이 갈 거 같니?”

“응. 가야 돼. 네 또다른 기억 속의 네 모습이 npc가 맞다면.”

유나는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자기를 놀리는 건지 아닌지 판단하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혹시 말이야. 그 기억 속에 나도 있지 않아?”

내가 물었다.

“네가 왜?”

유나가 말했다.

하도 당당하게 말해서 나는 그대로 포기를 할 뻔했다.

하지만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네가 npc였다면 너는 유저를 도와주는 거 아니었어?”

“너 지금 나 가지고 장난하려고 그러는 거야?”

유나가 말했다.

유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유나는 간절히,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싶었을 테지만 의심없이 그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정말 오랫동안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지만 자기 앞에 내밀어진 손이 혹시 호의를 가장한 악당의 손은 아닌지 불안했을 것이다.

나는 유나의 갈등을 너무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네가 만난 유저. 기억해?”

나는 유나에게 물었다.

“…….”

유나의 눈썹이 비맞은 강아지처럼 시무룩하게 휘었다.

“기억, 안 나?”

“안 나…….”

유나가 말했다.

“안 나? 유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응. 안 나. 나는……. 그런데 너. 내가 이런 말 해도 아무렇지 않아? 내가 미친 사람 같지 않아?”

유나가 물었다.

“좋아. 이렇게 하면 좀 공정해지겠지. 나도 그래. 그런 기억이 있어.”

나는 유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약간의 거짓말을 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꼭 거짓말인 건 아니었다.

정우 형의 기억이 내 기억일 수도 있는 거니까.

유나는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언제부턴가 나는 같은 꿈을 반복해서 꿔.”

나는 그럴듯하게 들리도록 각색을 했다.

표정도 그럴듯하게 꾸몄다.

유나를 속이려는 게 아니었다.

유나가 나를 믿고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했을 뿐이었다.

나는 정우 형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해 주었다.

능력자들의 이야기.

딥웹.

헤드들의 전쟁.

나를 보는 유나의 눈이 점점 커졌다.

식탁 위에 올려진 유나의 몸이 내 앞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나는 어디까지 얘기를 할까 하다가 아직 유나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정보를 풀어볼 생각을 했다.

그러면 유나가 나에 대해서 경계심을 거둘 것 같았다.

나는 정우 형의, 아니, ‘나의’ (그때는 그렇게 말해야 했다) npc들이 홀로그램이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그들이 스스로 사라진 것도 말해주었다.

유나가 갑자기 고통스럽게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왜 그래? 혹시 네가 꾸는 꿈도 그거랑 비슷해?”

내가 묻자 유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우 형을 기억하고 있는 npc가 있다니.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왜 유나만 그러는 건지 그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나랑 나가자. 정유나. 네가 꼭 만나야 될 사람이 있어.”

내가 말하자 유나는 더 이상 버티지 않고 일어섰다.

더이상 버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 나는 전혀 모르겠어? 꿈속에서 나오는 그 유저가 나였던 것 같지는 않아?”

내가 물었지만 유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내가 왜 자꾸 묻는지 알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네 꿈에 내가 나오니?”

아. 그건. 아직 모르는데.

하지만 아직은 그렇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일단 가서 얘기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유나를 재촉했다.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나는 핫 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한테, 내가 바로 봐야 된다고 전해주세요.”

핫 걸은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고, 유나와 내가 차에 탔을 때 나는 뒷자리에 정우 형이 앉아있는 걸 보았다.

유나는 뒤에 앉은 정우 형을 보지 못했다.

나는 형이 유나를 보고 지은 표정을 보고 유나 역시 형의 npc 중에 하나였던 게 맞는 것 같다고 짐작했다.

형은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듣고 추론을 할 생각이었는지 나에게 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형에게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직은 형을 유나에게 소개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유나에게, 우리 집으로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유나는 상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유나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왜 자꾸 두리번거리는 거냐고.

뭘 보는 거냐고.

유나는 자기도 잘 모른다고 했지만 나한테 조금이라도 성의있는 대답을 해 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그게. 그 기억 속에서 나타나곤 했던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끔 보여.”

“네가 돕던 유저를 공격했던 능력자들 말이야?”

“같은 사람인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느껴져. 뭔가 달라. 분명해.”

“혹시 나에 대해서는 그런 게 안 느껴져?”

“응.”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한 명쾌한 태도.

나는 유나에게 형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는 건 도대체 언제쯤 익숙해질까.

익숙해질 때가 오기는 하는 걸까.

유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기억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다.

그것은 정우 형이 얘기했던 것과 많은 부분에서 겹쳤다.

유나는 왜. 왜 유나만 정우 형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걸까.

그리고 왜 능력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걸까.

내가 하나씩 하나씩 묻자 유나는 그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거나 자기를 쫓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단지 자기가 그들을 알아보는 것 뿐이라고 확실히 말했다. 지난 기억이 너무 선명해서 그들을 보기만 해도 위축이 되고 겁에 질려서 스스로 숨고 싶어지는 거라고 유나는 말했다.

“사실은 나도 그래. 나도 그거야.”

내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능력자라고."

“어떤?”

유나는 그 말을 믿을 것인지 말 것인지 보류한 채로 물었다.

나는 유나의 앞에서 몸을 감췄다.

유나는 놀라워했지만 곧바로 이해했다.

그 후로는 군말없이 내 말을 믿었고 나는 그 기세를 몰아서 유나에게 뒤를 돌아보라고 말했다.

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하는 게 우리의 안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유나가 놀라고 광분해서, 운전하는 내 멱살을 잡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유나는 정우 형을 보고서 어깨가 축 늘어지더니 세상에, 말도 안 돼, 진짜잖아, 라는 식의 얘기를 계속 이어서 했다.

나는 그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이 그렇게 많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너!”

유나가 나를 보고 말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 아니지? 트릭을 쓰고 있는 건 아니지?”

유나가 말했다.

“내 수준을 뭘로 보고. 나는 이런 트릭을 쓸만큼 대단하지 않아.”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정우 형을 바라보았다.

“유나를 알겠어요?”

정우 형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유나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했다.

유나가 두 개의 기억을 같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 일 때문에 정신병원에 들락거렸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정우 형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신병원에 들락거렸다는 얘기에 동정을 해줄 틈도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걸 동정할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유나는 그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았을 뿐, 실제로 유나가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 건 아니니까 위로받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유나와 정우 형이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는 동안 나는 최대한 빨리 집을 향해 달렸다.

두 사람은 서로의 기억이 비어있는 부분을 채워주었고 점차 자신들의 기억을 견고하게 다져갔다.

유나는 정우 형이 기억하지 못하는 몇 건의 공격에 대해서도 기억했다.

그 일로 정우 형이 아주 위험했었다는 것도 기억을 했다.

그리고 자기들이 사라지기로 결의한 원인이 되었던 사건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 일을 유나는 괴롭게 떠올렸다.

형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던 모양이었고 유나와 npc들은 그게 자기들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던 모양이다.

그게 죽음이라는 것을 명확히 인식하고서 npc들은 결단을 했다.

그러나 유나에게는 그게 쉽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정우 형을 잊을 자신이 없어서, 남은 npc가 자기 하나뿐이라면 정우 형의 에너지도 그렇게 많이 소모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기대를 하면서, 그리고 정우 형에게도 누군가 한 사람 정도는 남아서 보살펴줘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 정우 형의 곁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자기 예상이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우 형이 npc들을 잃고 좌절하고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는 걸 보면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괴로워하는 정우 형을 보는 것은 자기가 직접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고 유나는 정우 형을 두고 사라졌다.

나는 그게 유나가 그때의 기억을 아직까지 갖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유나의 대응은 다른 npc들과 달랐던 것이다.

유나는 차에서 내리고 정우 형을 기다렸다.

유나는 정우 형이 홀로그램이라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 따위는 처음부터 거의 갖지 않은 것 같았고 정우 형을 챙겼다.

챙겼다기보다 마음이 기울고 정우 형을 의지했다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우 형은 차에서 내릴 필요가 없었다.

유나는 정우 형이 사라진 것을 보고 당황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정우 형이 집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내 말대로 형은 집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때부터 또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형은 유나를 근도에게도 소개해 줘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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