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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스페이스 아이템
말 그대로 ‘책’에 대한, 물체로서의 ‘책’에 대한 감상이었다.
종이에 붙어 마른 날파리 사체를 품고 있는 책에 대한 감상.
저자는 자기 책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 몰랐겠지.
“그리고. 다른 책들은 몇 페이지만 더럽다 말거든요? 근데 이건 한 서른 페이지 정도가 꾸준히 더러워요. 일부러 그러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
“손에 뭐가 묻은 채로 열심히 넘겨가면서 봤나보다.”
540페이지짜리 책을 골라서 이제 막 50페이지를 읽었고, 게다가 날파리 사체의 여운 때문에 진도가 빨리빨리 나가지도 않는 연우랑은 놀기 글렀다고 생각하고 나는 수영의 자리 옆으로 갔다.
센스 만점인 소이가, 다른 자리로 옮겨가 있었다.
“치. 뭐야. 연우 언니가 안 놀아주니까 오는 거예요?”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예요? 다 들었는데.”
“진짜로 그런 거 아니거든?”
이겨서 득 될 게 뭐가 있다고 바득바득 우겨본다.
수영과 얘기를 하는 것도 오랜만이어서 할 말이 많았다.
둘이서 얘기를 하는 동안 단정한 정장차림의 스튜어디스가 빵과 샴페인을 가져왔다.
목 마르고 입이 궁금하던 참에 잘 됐다고 낼름 받았더니 쉽게 자리를 뜨지 않고 우물쭈물했다.
이 분도 내 마성의 매력에 빠지셨나 하고 바라봤더니 빵에 올린 알이 철갑 상어 알이고 샴페인은 돔페리뇽 몇 년 산 어쩌고 저쩌고 설명을 했다.
“으응. 철갑상어 알이래.”
“네.”
무감동하게 처묵처묵하는 수영.
스튜어디스는 핫 걸에게도 설명을 해 주려는 듯 했지만, ‘쏘리. 타이어드.’라는 짧은 두 마디가 설명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수영은 스튜어디스가 모욕감을 느낄까 걱정이 됐는지 재빨리 설명을 붙였다.
“저 선배 때문에 웃은 거예요. 그리고 저희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충분히 편안해 하고 있어요. 정말이예요.”
스튜어디스의 붉은 얼굴이 천천히 제 색깔을 찾아갔다.
“혹시 피곤하시면 앞쪽에 침대가 마련돼 있으니 사용을 하시면 됩니다. 100퍼센트 수제로만 만드는 스위스의 명품 브랜드인…….”
스튜어디스는 다시 웃음이 나올까 해서 걱정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충분히 쉬고 있어요. 정말 우리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게요. 아. 괜찮으면 샴페인을 두어 병 더 가져다 줄 수 있나요? 여기에서 바로 따라 마실 수 있게요.”
내가 말하자 스튜어디스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자들은 타격을 입을만한 소비를 할 수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것 같아요. 다시 먹겠냐고 하면 절대로 철갑상어 알은 안 먹을 것 같은데. 나한테는 그냥 빵이면 충분한 것 같아요.”
수영이 말했다.
“밥이면 더 좋고.”
내가 말하자 수영이 웃었다.
우리가 섬에 도착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속속 그곳에 도착했다.
근도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반겼다.
근도의 품에는 근도랑 똑같은 옷을 맞춰입고 머리를, 아니, 털을 뒤로 빗어 넘긴 므로가 안겨 있었다.
근도가 음식을 서빙할 때는 므로가 잠시나마 자기 차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며 연우가 신이 나서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데 므로가 연우를 바라보고 바로 달려와 주었다.
연우는 더할 나위없이 행복한 얼굴을 했다.
"나를 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말했더니 므로 이 새퀴가 나를 보고 혀를 쏘옥 내밀었다.
오늘은 날이 날이니만큼 그냥 봐주기로 했다.
주먹을 쥐어서, 튀어나온 가운데 손가락으로 한 번 콱 쥐어박아주기만 하고.
은호 형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나를 조용히 불러냈다.
그 자리에는 카린도 있었다.
은호 형도 멀리에 있다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있다가 영화를 한 편 상영할 거야.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근도가 말했다.
“영화? 무슨 영화?”
내가 묻자 카린이 마구마구 자랑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뭔데 그래요?”
“코야 리코랑 류아는 정우씨에 대해서 알아요. 우리가 먼저 얘기를 해 줬거든요. 우리가 이 섬에 모이는 이유도 알고 있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여자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면서도 결과를 알게 되는 게 겁이 나서 그동안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코야 리코와 류아가 먼저 그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뭐……라고 해요? 믿어요? 그 얘기를 듣고? 두 사람이?”
나는 은호 형에게 물었다.
“응. 믿더라고. 얘길 듣고 울었어.”
“그 얘기를 어떻게 믿을 수가 있을까요?”
나는 오히려 그 말이 믿기지 않아서 물었다.
“그러게. 좀 이상한 일이긴 하지. 그런데 믿더라고. 완전히 다른 생인데도 그 기억이 남아 있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뭐라고 해야할까. 믿는다기보다 이해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
은호 형이 말하자 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런데 영화라는 건 뭐예요?”
내가 다시 물었다.
“그걸 영화로 만들었어. 코야 리코의 대본과 류아의 주연으로.”
“네? 그렇다고 류아 혼자만 등장해서는 얘기가 안 되잖아요.”
“배우들을 섭외했지. 류아와 코야의 인맥으로는 어렵지도 않은 일이고.”
그 말을 듣고 나는 근도와 카린을 바라보았다.
그게 과연 잘 한 일인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자 은호 형이 급히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영화를 찍은 건지 몰라. 대사도 없고. 각각 단편적인 모자이크의 역할만 맡았을 뿐이야. 나머지는 나중에 우리가 자막을 넣어서 해결했어.”
나는 그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영화라고 하는데 이제 와서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은호 형에게 그 일을 맡아서 진행하도록 했다.
섬에 모든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카린은 야외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그 정면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었고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가 있었다.
대사는 없고 자막으로 대신 돼 있어서 식사에 집중하기가 어렵기는 했지만 모두들 불만 없이 영화를 보았다.
낯익은 류아의 모습에 반가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라도 뭔가 깨닫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다른 생의 이야기였기에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유나만큼은 거기에 집중하면서 열심히 보았다.
가끔 나와 눈이 마주쳤고 그때마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세세한 부분에서 틀린 점이 보여서 그런 것 같았다.
영화가 끝이 났을 때 내 여자 친구들은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은호 형이 그 이후의 순서에 대해서도 준비를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은호 형은 이제 나한테 정우 형을 소개시키라고 말했다.
“네?”
얼결에 나는 간이 무대에 떠밀려 올라갔다.
거기에서 마이크를 잡고 나는 내가 해야 할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정우 형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러기 전에 내가 여기에 모인 각 사람을 어떻게 알게 된 건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몸캠 영상 사이트에 대해서 말이다.
이제는 그것에 대해 말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나는 거기에서 영상을 보고 나면 그들을 만나게 됐다는 얘기를 했다.
그들은 내가 나를 바보로 만드는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믿기지 않은 얘기를 들으면서도 내 얘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각 사람을 만나게 된 일에 대해서 얘기했고 정우 형으로 이어지는 길고 긴 얘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때 너무나 놀랐고,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조언을 구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고 말하면서 나는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작품 후기 ============================
하.. 진행이 겁나 맘에 안 들어서 지금 고민이 끝도 없네요. 꼭 애지중지 키운 새끼 넘어져서 얼굴에 흉진 거 보고 마음 안 좋은 것처럼. 지금까지 온 걸 확 쳐서 한 2화정도로 하고 휙 넘겨버릴까 싶기도 하고. 끄아아아. 우선은 여기에 손댈 여력은 8월까지는 안 나올 것 같으니까 끌고 가기는 하는데... 일단은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내용 치는 걸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이 상태로 계속 진행을 하기는 합니다마는 눈에 보이는 실수에 그냥 눈 감고 넘어가려니까 아효ㅠㅠ 징징거려서 죄송해요. 작가가 중심 잡고 확 끌고 가야 보시기도 편할 텐데. 막히는 데 있으면 술술 풀리는데도 있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