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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스페이스 아이템
“네 엄마가 네 동생 가졌다.”
“네에에에에에?”
헉. 헉헉헉!!!
“아버지!!! 세상에!! 아버지! 하! 아니. 진짜! 아버지. 짱이예요!!”
나는 남자로서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정말이다.
나는 차를 비이잉 돌아서 아버지를 격하게 안아드렸다.
“아버지. 진짜 멋지세요. 저도 동생 생기는 거라고요? 어머니한테도 전화드려야겠는데요? 어머니 아이인 거 맞죠? 아니. 그건 맞겠지.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앤데. 아버지 아이인 것도 맞아요?”
“이 자식이. 못 하는 소리가 없네.”
그러면서 아버지는 정말로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 생기게 되는 그 아이는 내 동생이기는 하지만 나하고는 엄마도 아빠도 모두 달랐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희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하고는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인연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득 그 생각이 들자 나는 아버지에게 한없이 고마워졌다.
“감사해요. 아버지. 지금까지 저, 이만큼 키워주셔서요.”
“이제는 내가 너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만 남은 거 아니냐? 네 동생이 크는 동안 네가 잘 돌봐줘야 된다.”
아버지는 정말로 신이 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왜 안 그렇겠는가.
나는 샴페인을 마시자고 하면서 아버지를 잡아 끌었다.
집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축하드린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어머니답지 않게 창피해 하시는 것 같았다.
“이 나이가 돼 가지고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다른 사람들한테 하기가 너무 창피해서 아직 아무한테도 말을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말에 나는 그런 서운한 말이 어딨냐고 했다.
“애가 뱃속에서 들으면 어쩌려고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리고 창피할 게 뭐가 있어요? 두 분 다 정말 대단하세요. 제가 뭘 해 드리면 좋을까요? 아참. 어머니. 지금 하고 계시는 연구랑 실험은 다 중지하셔야 되는 거 아니예요? 태아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거 아니예요?”
“안 그래도 그 얘기를 하려고 하기는 했어.”
“어머니. 제 동생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까 다른 건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시고 편하게 쉬세요. 절대로 과로하시는 것도 안 되고 이제는 연구하시는 것도 안 돼요. 아기 태어날 때까지만이라도요.”
나는 내 아이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것보다 더 들뜨고 흥분이 돼서 소리를 질러댔다.
진짜 그런 빅 뉴스는, 그런 대단한 흥분감은 오랜만에 들었다.
어머니는 나에 대한 연구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돼 가는 상태에서 임신 소식을 알게 돼서 다행스러웠다고 하셨다.
나도 그것 때문에 더 안심했다.
만약 그 일이, 스페이스 아이템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일이 생겼다면 혼자서 마음이 분주하고 걱정이 됐을 것 같았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의지하고 있던 마음이 컸는데 더 이상 그런 일을 부탁드릴 수 없게 되었다면 걱정이 컸을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정우 형이 왜 내 동생에 대해서 말을 해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때는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못 만나고 계속 엄마한테 삥 뜯기고 계셔서 그런 거구나.’
나는 정우 형이 그 소식을 듣고 갔으면 진짜 좋아했겠다고 생각했다.
정우 형은 아마 정우 형이 돌아간 세계에서 동생을 만나게 되겠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나는 연우에게도 전화를 해 주었고 연우는 비명을 질러댔다.
당장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하더니 인사도 없이 전화를 톡 끊어버렸다.
연우의 마음이 얼마나 급했는지 상상이 되었다.
아버지는 나하고 오랜만에 술잔을 나누시면서 나도 이제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나는 내 나이의 남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유연하게 넘어갔다.
‘그럼 이제 정말로 몸캠 영상 사이트는 빨리 끝내 버려야겠는데? 동생도 생기는데 여자들이나 쫓아다녀서는 영 체면이 안 서겠는데?’
나는 속으로 그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동생을 위한 스페이스 아이템까지, 스페이스 아이템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 결론도 얻어졌다.
나는 은호 형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조용하게 태교에 전념할 수 있을만한 집을 알아보고 싶다고 말했고 은호 형은 은호 형의 인맥과 정보망을 동원해서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요새 같은 대저택을 구해 주었다.
어머니는 질색을 했지만 나와 아버지는 한 마음 한 뜻이 돼서 어머니에게 그것을 받아들이게 했다.
집안 일을 도와주는 직원만 해도 네 명이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달려올 수 있으니까 조금도 불편해 하지 말고 부르시라고 당부를 했다.
“근데 아들이래요, 딸이래요? 아직 안 알려줘요? 어머니가 알아볼 수도 있지 않아요?”
라고 스무 번쯤 물은 후에 나는 내 동생이 될 녀석이 여자애라는 것을 알았다.
하아. 가와이이이이~
여동생이라니. 여동생이라니!!
나는 내 동생이 좋아할 궁전 같은 집에 공주같은 드레스를 잔뜩 사 줄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난데없이 여동생이 예약되는 기분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한정 수량으로만 나오는 수제 명품을 주문해놓고 그게 나올 때까지 가슴 졸이면서 기다리는 것에 비유를 하면 되려나.
이 녀석은 대기 시간이 정말로 길었지만 충분히 충분히 기다릴 가치가 있었다.
근도도 내 동생이 생길 거라는 소식에 기뻐해 주었고 이름은 뭐라고 짓는다고 하시냐고 물었다.
그건 모르겠다고 하자 근도는, 그럼 이제 너는 찬밥 신세가 되겠다라는 말로 염장을 질렀다.
"너는 진짜 아들도 아니잖아."
근도는 내가 그 사실을 혹시나 잊고 있을까봐 말해주었다.
내 상처가 다 아물었을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열심히 열심히 내 딱지를 들추려는 건데.
흥이다! 나쁜 놈.
그래도 약이 오르지는 않았다.
한 사, 오 년 전쯤에 그런 일이 생겼다면 무서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가 내 자식을 낳게 생긴 나이인데 그런 일로 훌쩍거리지는 않는다.
나는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올라오셔서 내 동생이랑 같이 살 집을 특별하게 지어주고 싶었고 그 일을 위해 유재경을 긴급 소환했다.
예산이 꽤나 들어갈 것 같은데 기왕이면 모르는 사람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기회를 주고 싶었다.
유재경은 기꺼이 그 일을 맡아 주었다.
앞으로 일 년은 꼬박 걸릴 일이었다.
한 일주일 정도를 내 동생 일에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녀석의 일에) 매달리면서 지내다보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사이트에 접속을 했더니 새로운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화장지 하나씩이 생성된다는 것인데 그 화장지는 스페이스 아이템을 획득하는데에는 쓸 수 없고 영상을 다운받을 때에만 쓸 수 있다고 했다.
헤드는 내가 몸캠 영상 사이트에 방문하지 않는 것을 보고 위기감을 느낀 것 같았다.
정우 형의 npc였던 여자들을 다 만나고나자 이제 사이트에 접속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판단한 거라고, 그렇게 혼자 추측을 한 모양이다.
헤드가 딥 웹을 지배하는 사람이었는지 어쨌는지와 상관없이 나한테는 왠지 허당처럼 느껴졌다.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러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랬다.
내가 접속하지 못한 동안 저절로 모아진 화장지는 여덟 개였다.
나는 왠지, 내가 사이트를 다시 찾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면서 자기가 준비한 선물을 좀 더 좋은 걸로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헤드의 모습이 상상이 돼서 웃음을 터뜨렸다.
영상을 다운 받기 위해서 화장지를 모으는 일은 정말 귀찮고 자괴감도 드는 일이었는데 그야말로 개이득.
내 동생은 태어나기도 전에 예쁜 짓을 한 것이다.
동생 때문에 접속하지 못한 동안 그런 일이 생겼으니.
이제는 영상의 캡쳐 사진을 보고 영상을 골라서 다운을 받기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어서 내 만족도는 엄청나게 상승했다.
유재경과는 일 때문에 만나는 일이 많았다.
아버지, 어머니와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사이에 껴서 의견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