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딥웹 MK-392화 (392/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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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스페이스 아이템

위치를 확인해 보니 같은 건물 같은 아래층이다.

이렇게까지 가까워졌는데 내가 다른데 신경쓰고 그냥 가 버릴까봐서 헤드가 완전히 몸이 닳아버린 모양이었다.

그래. 내가 가서 찾아봐준다, 하면서 나갔더니 선배가 오고 있었다.

잠깐 나갔다 온다고 말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선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전화를 해 봐야하나 했는데 딱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선배의 얼굴이 아주 안 좋아서, 아주아주아주 안 좋아서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뜨끔했다.

사람이 사람을 처음에 어떤 포지션으로 만났는지는 아마도 그 사람과의 관계가 끝날 때까지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 같은데 내가 선배의 후배로, 그것도 신입생이었을 때 만나서 나는 아직도 선배 앞에서 괜히 기가 죽고 주눅이 드는 것 같은 그런 게 좀 있는 것 같다.

“서, 선배님. 저, 잠깐 밖에 좀. 어. 네. 다녀오겠습니다!”

“밖에 어딜? 가는 것도 아니고 다녀온다고? 어딜 다녀오는데?”

“그. 음. 잠깐 둘러보려고요.”

“어딜? 여길? 이 건물? 그렇게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요?”

선배는 내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당연히 그렇겠지.

“선배. 그냥 그럴 일이 있나보다 생각하세요. 제가 다른 데 기웃거리다가 걸려도 선배 탓하지는 않을게요. 선배를 불지도 않을 거고요.”

선배는 더 화가 난 얼굴이었다.

“오면서 제가 커피 사 올게요. 뭘로 사와요? 마끼아또?”

“아으! 짜증나. 비서라는 애도 멋대로 퇴근해 버리고!”

선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사이트도 사이트지만 선배가 그렇게 화가 났는데 그냥 갔다가는 앞으로 두고두고 탈이 생길 것 같아서 쭈뼛거리면서 선배 옆에 서 있었다.

“왜 안가?”

“화 나신 것 같아서요.”

“너한테 화난 거 아니니까 그냥 가!”

“근데 비서가 왜 퇴근을 해요? 선배가 분명히 일을 시켰잖아요.”

“아. 몰라. 미치겠어. 비서가 아니라 상전이야. 상전.”

“오오. 로펌 비서는 변호사 상전이예요?”

“말만 비서지. 낙하산들이란 말이야. 대기업 부사장급, 전무급 자식들이 와서 꽂히는 거야. 그 사람들은 자기들대로, 자기 자식들이 대형 로펌에서 일한다는 말로 내세울 수 있어서 좋은 거고 우리 로펌에서는 그걸 빌미로 해서 사건을 수임하기가 편해지니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건데 딱 그냥 누이하고 매부만 좋은 거야.”

“그래도 너무 심하네요. 변호사님이 그런 걸 시켰는데 들어오지도 않고 그냥 퇴근을 한다니. 선배가 너무 오냐오냐 해 준 거 아니예요?”

“내가 오냐오냐할 수 있는 위치기는 한 줄 알아?”

선배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릴렉스 하고 조금만 있어요. 커피 사 가지고 올게요.”

“너는 근데 어딜 간다는 건데 그래!”

“선배. 아무리 선배하고 제 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 못할 비밀이라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센스있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요?”

눈을 찡긋 했더니 선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랐다.

뭘 상상했길래 저러는 거래?

나는 발걸음도 가벼웁게 아래층으로 향했다.

내 걸음이 충분히 빠르지 않아서 헤드의 애간장이 다 녹아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우리의 위치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작은 점으로 표시된 그것은 이제 나와 2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내가 영상을 보지도 않았는데 미리 만나게 하는 건 특이한 일이었지만 헤드가 급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을 했다.

헤드가 나 때문에 며칠간 싸지도 못한 건지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점멸하는 점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간 곳은 휴게실이었고 거기에, 비서로 보이는 여자들과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내가 들어가기 전에 파티션 저쪽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짜증나. 몰라. 바꿔달라고 해야 될까봐. 나하고는 좀 안 맞아. 과시하려고 그러는 것 같잖아. 의뢰인도 아니고 그냥 지인인 것 같은데 그러면 같이 커피숍에 가서 마시면 되지 왜 나한테 그런 심부름을 시키는 거냐고!”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좀 자숙해야 되는 거 아냐? 내용증명 보내라는 거 제대로 안해놔서 깨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깨지긴 누가 깨져? 다음부턴 주의 좀 해 달라고 부탁한 거지.”

“그래. 대단하다.”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가면서 들렸다.

말하고 있는 여자가 아마도 선배의 비서 같았다.

그리고 이건 그냥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저 싸가지가 내가 만나야 할, 나한테 스페이스 아이템을 줄 여자일 것 같았다.

“혹시 정유진 변호사님 비서분이 여기 계십니까?”

나는 파티션을 지나가면서 내가 그쪽으로 갈 걸 알도록 헛기침을 조금 하면서 들어갔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옷차림과 헤어 스타일, 착용한 아이템들이 고급이었다.

누가봐도 있는 집 자식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내가 등장하자 모두들 일제히 스캔을 뜨기 시작했다.

특히 여자들은 내가 입은 옷을 중심으로 해서 나를 관찰했다.

상류층들도 구입하기가 어려운 일본 명품 브랜드를 구할 수 있었던 건 류아 때문이었다.

류아가 가장 최근에 공수해서 내 드레스룸에 걸어 놓은 것이 그거였고 나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가장 먼저 손이 닿는 것을 꺼내서 입은 것 뿐이었는데 이게 이 여자들에게 제대로 어필이 된 모양이었다.

그 여자들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무슨 브랜든지 아는 척을 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적인 자리도 아닌 그런 곳에서, 의뢰인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고 그저 나를 향해 호감을 마구마구 표출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미어캣처럼 고개를 쏙 빼고 일제히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 누가 유진 선배의 비서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저 여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너라고 말해.

네가 정유진 변호사의 비서라고 말해.

나는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 여자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입술이 열렸다.

“제가 정유진 변호사님 비선데요. 무슨 일이시죠?”

비이이이잉고! 나이쓰!

나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 여자는 내가 갑자기 자기를 보고 웃자 경계를 하는 것 같았다.

“혹시.”

누군가 그렇게 말을 했다.

그 말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는 잘 알고 있었다.

얼굴을 그동안 너무 팔고 돌아다녔어!

아니나 다를까, XX 대표님 아니세요? 라는 말이 나왔다.

“아닌데요?”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유진 선배의 비서를 바라보았다.

“아직 퇴근 전이죠? 부탁 할 일이 좀 있는데요. 같이 가실 수 있죠?”

나는 되는대로 말했다.

“정 변호사님이 저를 찾으시던가요?”

그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자기는 아주 성실성 넘치는 비선데 변호사님이 자기를 찾는 줄 몰라서 여기서 이렇게 노가리를 까고 있었다고 어필을 하려는가 보았다.

나는 그 여자한테 장단을 맞춰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인아씨. 가는 거야? 그럼 우리끼리 먼저 가 있는다? 일 끝나면 와.”

“응. 근데 나 늦을지도 모르니까 기다리지는 마.”

인아라는 여자가 뒤에서 말하고 있었다.

늦을지 모르긴 뭘 늦을지 몰라.

나하고 무슨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하길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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