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99 ----------------------------------------------
외전-헤드의 도전
[수치플로 진행시 +30미터. 골든 +50미터]
[소프트 SM 플레이: 추가 지급 화장지 70미터]
[하드 SM 플레이: 추가 지급 화장지 100미터]
스페이스 아이템을 미끼로 나를 계속 유혹하던 헤드는 그런 문구를 띄워서 내 행동을 조종하려고 했지만 나는 헤드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는 개뿔이고 나는 내가 그냥 SM 플레이 고자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나는 핫걸에게 그 문제를 진지하게 얘기했다.
핫걸은 그게 꼭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헤드가 병신이 아닌 한 이 정도 됐으면 캐릭터 파악은 되지 않았겠냐고 하면서 말이다.
핫걸은 헤드가 무슨 일들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했다.
헤드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았지만 헤드는 그 능력을 나에게 전부 다 발휘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일종의.
뭐라고 할까.
궁전에 불려간 광대같은 느낌?
헤드에게는 자기가 할 일이 있지만 나는 헤드가 할 중요한 일에 소용되는 것은 아니고 헤드가 자신의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적당히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 기웃거리며 구경하는 존재 같았다.
나로서는 완전히 땡큐인 상황.
한 가지만 더 바라자면 헤드가 내 인생에서 아예 관심을 다 꺼줬으면 싶기는 하다.
그러나 그건 너무 큰 바람인 것 같아서 그냥 적당히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기로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헤드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온 인류 중에 나 하나만이 선택됐다고 생각하는 건.
그건 진짜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형이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는 많은 능력자가 존재하는 것 같고.
그 사람들은 헤드를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헤드들은 그 사람들의 인생에 다른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헤드들이 우리 헤드보다 덜 미쳤을 것 같지는 않고 나는 이만하면 운이 좋은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내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를 하자면.
나는 지금 내가 알던 사람들을 떠나 낯선 곳에 와 있다.
그곳은 헤드가 나를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둔 곳 같았다.
[무인도에 불시착한 후 그곳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자들에게 유일한 희망인 스펌을 주입하고 여자들을 구하면 한 사람을 구할 때마다 화장지 2개씩 지급.]
그 문구가 떴을 때부터 나는 내 인생이 이상한 방향으로 꼬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헤드는 내가 그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 상황을 조종해 버렸다.
헤드가 나를 압박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다.
내가 스페이스 아이템을 구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 헤드는 내가 내 인생을 통해 스쳐 지나갔던 여자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실종, 사고, 사망.
그런 방법등으로 말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나와 일정거리 이상을 유지하던 사람들이었다.
초등학교때 같은 반이었다거나 중학교때 이 주 동안 우리 학교에 와서 교생 실습을 하고 간 선생님, 고등학교 때 옆 학교에서 미모로 이름을 날리던 여자애, 뭐, 대학에 가서 축제때 소개받은 여자들.
그런 식으로 말이다.
누군가에게서 내가, 너 아무개 알지? 라는 말을 들어도 응, 이라는 말이 바로 나오지는 않고 응? 하고 한참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더듬어야 겨우 기억해낼 수 있는 정도의 그런 관계들.
그러나 나는 그런 소식들이 연달아 전해지는 것을 들으면서 그것이 헤드의 경고라는 것을 알았다.
'이 정도는 별 것 아닌 것 같겠지만 이 일들이 네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자들한테 일어나면 어떨 것 같아?'
그런 은밀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은 느낌.
그러고나서 그 팝업창이 다시 떴을 때 나는 헤드의 꼭두각시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헤드는 내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이 세상의 구성원을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나한테 경고를 하겠다는 그 이유 하나만을 가지고도 말이다.
그런 헤드를 상대하는 동안, 나는 영리하게 구는 게 좋다.
헤드는 야비하게 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미션을 수행하고 스페이스 아이템을 획득할 조건을 충족시키면 그것들은 꼭 주었고 나는 그 아이템이 내 여자들을 지켜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미션을 부지런히 수행했고 사실 스페이스 아이템도 많이 모았다.
그런데 유일한 문제라면 그거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만나는 여자들한테도 정이 든다는 것.
그래서 결국 그 여자들을 위한 스페이스 아이템도 필요하게 된다는 것.
웬 뫼비우스의 띠 같은.
아닌가? 시지푸스의 노동이라고 해야 되려나?
끝도 없고 끝날 기미도 없다.
헤드는 그걸 알고 나를 선택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자식이야말로 악마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이유로 결국 나는 섬으로 향했다.
헤드가 지정해 준 바로 그 섬이었다.
나를 섬에 데려다 준 사람은 카린이었다.
카린은 내가 그 섬에 가야 하는 이유를 듣고 불쌍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당신 인생도 참. 에효.
라는 것 같은 딱 그 정도의 표정이 카린의 얼굴에 지어졌다.
알아. 알아. 나도 안다고!!
나는 그렇게 부르짖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당신한테 그런 동정은 받고 싶지 않다고. 으허으어억.
카린은 그냥 조종사와 비행기를 보내주기만 해도 됐겠지만 나를 직접 따라왔다.
근도도 함께였다.
근도가 왔으니 근도 껌딱지인 므로도.
아니. 므로가 왜 오냐고.
구경났냐고.
남은 지금 속 타 죽겠고만.
그래도 나는 속으로 좀 많이 감격했다.
인생을 헛 산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면서 좀 흐뭇해지려고도 했다.
그러나 카린은 거기까지 온 것이 헤드의 꿍꿍이를 구경하려고 그런 거였을 뿐이라는 듯이 상큼한 얼굴을 하고 냉큼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다.
그래도 근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근도는, 내 일이 끝날 때까지 그 섬에 남아있어 주겠다고 말했다.
도움도 안 되는 므로도 함께였다.
어쨌거나 거기에 있는 동안 나도 뭔가를 먹고 살기는 해야하고 그리고 헤드가 혹시라도 이상한 트릭을 쓰려고 할 때 자기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하면서 근도는 나를 격려해 주었다.
떠나버린 줄 알았던 카린은 다시 돌아왔다.
섬에서 머물면서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잔뜩 가지고서.
카린이 가져온 것은 근도가 머물 베이스 캠프를 짓는데 사용되었다.
저런 걸 보면 카린도 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니까?
하여간 내가 인복은 있어요.
“헤드 말인데. 설정플에 너무 빠지는 것 같아서 큰일이다?”
근도가 말했다.
내 말이.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딱 그 말이었다니까?
헤드는 근도가 따라와서 베이스캠프를 차린 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곧바로 네고를 해 왔다.
내가 사이트에 접속해서 사이트 공지로 뜨는 헤드의 메시지를 볼 때까지 헤드는 알람을 시끄럽게 울려댄다.
나는 귀찮아서 공지를 확인했다.
헤드는 내가 베이스캠프에 가서 쉴 수는 있지만 근도가 베이스캠프를 떠날 수는 없다고 했다. 내가 위험해지더라도 근도가 와서 구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별 그지같은!
아니. 왜, 왜, 왜!!!
그래놓고는 아예 지도까지 띄워놓고 근도가 움직일 수 있는 구역까지 자기 마음대로 딱 정해놔 버렸다.
내가 그 사실을 알려주자 어이 터진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근도.
“어쩌겠냐. 스페이스 아이템은 모아야 되잖아. 제발 부탁하니까 너. 그 홍익인간 정신 좀 버려. 어차피 인생은 솔로 플레이다? 세상의 모든 여자를 다 네가 구해야 된다는 생각은 좀 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재미보고 적당히 정 떼라고. 제일 걱정인 게 뭔줄 아냐? 헤드는 화장지로 너를 낚았나본데 내 생각에는 이 섬에 있는 여자들을 위해서 네가 또 스페이스 아이템을 모아야 될 것 같아. 하나만 약속해라, 정우야. 그냥 몸만 준다고. 마음은 주지 말고. 이 병신아!”
“하, 개새끼. 말 참 과격하게 하네. 나도 알아, 인마!”
그러게.
참 쉬운데 나는 왜 그걸 못해서 이 고생인가.
“그래도 다행이네. 므로라도 데려와서. 나는 그럼 므로하고 놀면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적당히 화장지 챙길 정도로 몸만 대주고 와.”
“뭘 몸을 대줘! 내가 뭐, 아마존 여전사들한테라도 가냐?”
“아몰라. 어쩐지 그냥 그럴 것 같아. 그징. 므로양.”
두 자식이 나를 보고 웃는다.
건방진 자식들!
근도는 못 때리고 므로한테 발길질을 해 보지만 근도의 수퍼 세이브에 차단되고.
“간다.”
내가 근도에게 말했을 때였다.
허공에 조그만 상태창이 떠올랐다.
[레벨1. 공략인원:0.]
뭐야.
내가 지금까지 본 상태창 중에 가장 허접하다.
헤드는 왜 되도 않는 것에 도전을 해서 보는 사람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건지.
“근도야. 너도 이거 보여?”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상태창이 근도에게도 보이나 해서 물었다.
“뭐가?”
“이 상태창 안 보여? 나 1레벨이래. 공략인원은 0이고.”
“그런 게 있어?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나도 달라고 해. 나도 달라고 해. 응? 응?”
이 자식이 미쳤나 하고 있는데 므로는 더 날뛰었다.
얘들을 여기에 남겨두기로 한 게 잘 한 짓인지 정말 모르겠다.
결국 헤드는 걔들한테 상태창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여기에서 한 발도 이동을 할 수가 없을 거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고 개밥그릇을 던져주듯이 진짜 성의없는 상태창 하나씩을 녀석들 앞에 띄워 주었다.
[레벨1. 공략가능성: 없슴. 앞으로도 영원히 없슴. 절대로. 네버! 네버! 네버!!]
근도랑 므로의 것이 똑같다.
그런데도 둘은 자기들한테도 상태창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한 것 같았다.
그 두 바보를 두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여자라 이거지.
기다려. 오빠가 갈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