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이 여자는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니 기억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편이 옳은지도 모른다.
내 첫 번째 기억은 침대에서 깨어난 순간이다.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된 시점도 바로 그때다. 그런데 방금 처음 본 그녀는 별다른 대화도 뭣도 없이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필요한 말을 해줬다. 그렇다는 것은 기억을 잃기 전에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는 결론밖에 없다.
혹은 인정하기 싫은 가정이지만, 내가 순행성기억상실증일 수도 있다. 아…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메멘토의 주인공 같은 삶은 영화로만 보고 싶지 직접 겪는 건 절대로 싫다.
잠깐 사이 머릿속에서 질문들이 휘몰아쳤다.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그녀를 붙잡고 궁금한 것들을 묻고 싶었지만 힘들여 참았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송두리째 잃은 사람 앞에서 밥 먹고 나서 물으라고 하는 차가운 여자다.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서 약점 잡힐 필요는 없었다.
여자는 내가 나온 곳에서 한 층을 더 올라갔다. 3층에는 아래층과 똑같이 문이 하나, 그리고 다시 계단이 있었다. 여자가 들어가는 사이에 계단 위를 슬쩍 보니 아마도 옥상으로 통하리라 짐작되는 철문이 있다. 여자를 뒤따라 들어가자 내가 있던 곳과 구조는 같되 분위기는 전혀 다른 공간이 나타났다.
여성의 방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똑같은 구조, 똑같은 바닥, 똑같은 벽지인데 벽에 걸린 그림이나 가구나 자그마한 장식품 같은 걸로 딴 세상을 만들어 놓았다.
꽃이 핀 크고 작은 화분들, 푹신해 뵈는 샤기 러그, 원목 소파, 알록달록한 쿠션, 책상 위에는 아기자기한 한지 인형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창문은 여기도 롤 스크린으로 꼼꼼히 가렸지만 그 위로 조각보 장식이 드리워져 내 방의 살풍경한 모습과 비교되었다.
그리고 좋은 냄새.
나는 여자에 대한 첫인상도 의심도 잠시 잊어버리고, 어쩐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방안의 정경을 멍하니 감상했다.
그 사이 여자는 뭔가를 다듬고 썰고 끓이고 부치더니 금세 식탁 위에 제대로 된 한끼를 차려놓았다. 김이 솔솔 오르는 밥과 국, 숙채와 생채, 고기와 부침이 먹음직스럽게 놓여서 눈과 코와 혀와 위장을 자극했다.
하마터면 아무 생각 없이 수저를 들 뻔했다. 그러나 그 전에 여자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보자 처음의 의심과 경계가 되살아났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궁금한 것은 식사 후에 물으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이 수상한 여자가 만든 음식을 먹기 전에는 아무 것도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인질로 삼아 뭐가 들어있을지 모를 음식을 먹이려는 건가?
여자를 슬쩍 보자 그녀가 말없이 내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수저를 가져가더니 식탁 위에 차려놓은 것들을 모두, 밥과 국으로부터 반찬까지 하나하나 조금씩 집어서 보란 듯이 먹는다. 마치 기미 상궁이 수랏상 앞에서 기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수저를 되돌려 놓은 다음 이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때? 독은 없어 라는 듯이.
어째 음식에 독 넣었을까봐 의심하는 남자에게 밥 먹인 적 많은 사람 같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몸 사리는 것도 체면구기는 일이고, 어차피 안 먹으면 질문을 할 수 없었다.
피부가 튼튼한 만큼 위장도 튼튼하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흙 퍼먹는 심정으로 입안에 음식을 넣은 나는 두 가지를 새로 깨달았다. 하나는 그녀의 요리가 꽤 맛이 좋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지금까지 몰랐지 싶을 만큼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먹었다. 새로 퍼주는 밥을 몇 그릇이나 비우고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찬 다음에야 수저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배가 차자 만사가 귀찮아지며 멍한 기분이 든다. 애써 정신을 차려야 했다.
기억을 잃고 누군지 모를 수상한 여자와 마주보고 있는 이 와중에 만사가 귀찮아지다니. 나는 의외로 태평한 성격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식탁을 대강 치우더니 어느새 준비했는지 머그잔에 가득 커피를 채워서 내놓았다. 그것을 한 모금 맛본 다음 한 가지를 더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 여자와 알고 지낸 시간이 짧지는 않으며 그녀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내 잔에 담긴 것은 드립 커피와 우유를 반씩, 거기에 각설탕 네 개를 넣은 달달하고 순한 것이었다. 내 입에 꼭 맞았다. 인정한다. 어린애 입맛이다. 어쨌든 이런 커피를 내게 주고 자신의 것으로는 블랙을 준비한 걸 보니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불리지 않아 쫄깃하게 씹히는 현미를 섞은 밥도, 간이 싱겁고 담백한 양념을 한 반찬들도, 건더기가 많아 자작한 국도 모두 내 입맛에 맞았다. 그녀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다. 이런 것들을 하루 이틀 사이에 알게 되지는 않을 터다.
그러나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냈을 텐데도, 어째서 이 여자를 믿을 수 없는 걸까.
나는 신중하게 질문을 골랐다. 그녀의 대답이 진실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이 필요했다. 내가 답을 알고 있는 질문, 그러나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를 것 같은 질문, 그녀가 내게 적대적이라면 진실을 속일 것 같은 질문.
“내가 기억을 못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아 진짜.
아무래도 내 입은 별로 신중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이게 가장 궁금하기는 했다. 내 질문을 들은 여자가 짐작했다는 듯이 답했다.
“전에도 여러 번 같은 일이 있어서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건 아니길 바랐는데.
“얼마나 자주…?”
“일 년에 한 번 정도였어요.”
묘한 대답이었다. 기억상실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일 년에 한 번 생기는 일을 여러 번 겪었다면 이 여자는 나와 얼마나 오래 지냈던 걸까. 많아야 이십대 중반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데.
“우리는 어떤 사이지?”
“고용주와 고용인. 물론 해명 도…기억이 안 나겠지만 당신이 고용주이고요.”
고용주의 이름을 막 부른다? 아니 그보다 방금, 뭔가 급히 말을 바꾼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데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이 미묘한 거라 따지기도 어렵고.
별 수 없이 궁금한 것을 계속 물어보았다.
“무슨 일을 했는데?”
“여기 거주하면서 비서와 가사도우미를 겸했어요.”
믿을 수 없다.
솔직히 이렇게 젊고 예쁜 여자가 비서 겸 가사도우미라는 건 남성의 로망이자 환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내가 재벌 2세라든가 수십억대의 유산 상속자라든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면 몰라도 멀쩡한 미모의 미혼 여성이 기억상실 햇빛 공포증 독신남과 한 건물에 살면서 수발 들어주는 일 같은 걸 할 리가 없잖아.
…기억상실 햇빛 공포증 독신남이라니 내가 봐도 암울하네.
여자는 의혹과 불신이 섞인 내 표정을 힐끗 보더니 덧붙였다.
“보수가 좋았거든요.”
보수가 얼마였냐고 묻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숙식 제공에 월급은 매달 결산 후 순이익의 40%. 건물 3층과 옥상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근무는 아침 식사시간부터 저녁 식사시간까지. 휴일은 자유. 명절과 연말에는 보너스 500%. 시간외 수당과 휴가비와 공과금은 별도고요.”
나 뭔가 엄청난 걸 들은 것 같다.
순이익의 40%? 혹시 기억을 잃기 전의 나는 선천성 호구였거나 금치산자였거나 세속의 재물에 관심이 없는 위인이었던 거냐.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막 지어내는 건 아닐까? 계약서 보여 달라고 해봐?
내 얼굴이 어지간히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여자는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이어서 설명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의 일은 제가 했으니까요. 해명씨는 외출을 싫어해서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은 제가 전담했고요.”
여자의 설명에 두 가지 질문이 동시에 떠올랐다. 물론 한 입으로 두 질문을 동시에 할 수는 없었으므로, 신중하지 못한 내 입은 말릴 틈도 없이 더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나는 왜 외출을 싫어했지?”
여자가 느릿하게 눈을 치떴다. 이쪽을 보는 듯 마는 듯하던 눈길이 잠시 나와 부딪쳤다. 속을 읽을 수 없는 까만 눈동자가 긴 속눈썹 아래에서 흔들렸다.
“몰라요.”
허망할 정도로 단순한 대답이었다.
“저야 계약한대로 일하고 대가를 받으면 될 뿐이죠. 제가 고용주의 사생활까지 알 필요 없잖아요.”
맞는 말이긴 한데.
“물어본 적도 없어?”
사람이라면 호기심이란 게 있는 거잖아.
“없어요.”
딱 잘라서 대답한다. 더 묻기가 민망할 정도로 단호했다. 그렇다고 그녀의 사생활 존중 정신에 감탄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다른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그럼 내 직업은 뭐였지?”
여자는 이 질문에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앞으로 갔다. 거기에서 손바닥보다 작고 빳빳한 종잇조각 하나를 주워 내게 내밀었다. 상호와 사람 이름이 적힌 작고 빳빳한 종이라는 건 명함 말고 없다. 흰 바탕에 오직 글자 두 줄이 전부인 성의 없는 디자인이었다.
동천 만물 수리점
김해명
만물 수리점? 아무거나 고장 난 거 가져가면 다 고쳐준다는 그 만물 수리점? 바닥에 선풍기와 라디오와 텔레비전 같은 게 먼지 뒤집어쓴 채 널려있고 낡은 의자에 앉은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드라이버 하나로 뭐든 고쳐버리는 그 만물 수리점?
그럼 1층의 뭐에 쓰는지 모를 넓은 공간은 작업장이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비슷하기는 한데 그래도 만물 수리점의 작업장치고는 사치스러울 정도로 넓잖아?
사실, 아직 젊은데도 3층짜리 건물주에 미인 비서 겸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기억상실에 햇빛 공포증 같은 미스테리한 구석도 있고. 쓰레기가 사람으로 보이는 환…아니, 이건 빼고. 어쨌든 이런 특별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으니 직업도 평범치 않을 듯한데 고용노동부 추산 만 천개나 된다는 직업 중 하필 만물 수리점이란 말인가.
나는 식탁 밑으로 보이지 않게 자신의 손을 매만져보았다. 부드러운 피부가 느껴졌다. 긴 손가락은 남성의 것치고 섬세한 편에 가까웠고 손톱은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손의 어디에도 굳은살이나 흉터 하나 없었다. 이것이 기술자의 손인가? 백수의 손 같은데.
그러고 보면 아까 그녀도 대부분의 일은 자신이 한다고 말했다. 내가 게으른 사장이었던 건 둘째 치고, 그렇다면 저 여자는 미녀에 비서에 가사도우미에 만물 수리까지 하는 만능 고용인이란 말인가. 이건 삽살개가 소년으로 변하는 것 못지않게 비현실적이다.
‘뭔가 말이 안 돼. 어딘지 이상해. 왠지 몰라도 찜찜하고 꺼림칙한데 어떤 걸 트집 잡아야 할지 모르겠어.’
이렇게 시작부터 밀려버리자 신중한 질문은 됐고 당장 궁금한 거나 되는대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가족도 없이 혼자서 사는지, 평소의 생활습관은 어땠는지, 어떤 옷을 자주 입었는지, 친한 사람은 누구인지 등등. 거의 쉴 새도 없이 쏟아 붓듯 질문했다.
여자는 대부분 막힘없이 대답했다. 물론 남의 개인적인 사정은 모른다는 말로 잘라내는 때도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내게 주는 정보를 제한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으니 따질 수도 없다.
그렇다고 또 포기해 버릴 수는 없어서 되는대로 한 질문들을 포석 삼아 이따금 함정용 질문을 던져보았다. 전에 했던 질문을 살짝 비틀거나, 들은 것과 다른 내용으로 묻거나 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고 헷갈리지도 않았다.
둘 중 하나다. 그녀가 진실만을 말하고 있거나 기억력이 매우 좋거나.
진실 여부에 관한 성과는 전혀 없는 채로 거의 한 시간째 묻고 답한 끝에, 나는 내가 일가친척이나 친구 하나 없으며 비사회적이고 게으른데다 까칠한 성격의 준백수라는 것만 알게 되었다.
……어쩐지 억울하다.
결국 질문 하다 지친 내가 먼저 입을 다물었다.
“더 궁금한 건 없나요?”
질문이 끊어지자 여자는 승리를 즐기는 기색도 없이 덤덤한 어조로 물었다.
“없어. 지금은.”
그녀는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나를 힐끗 보더니 가차 없이 말했다.
“그럼 일하러 가시죠. 해명씨가 잠드는 바람에 3개월째 못 고치고 있는 물건이 있으니까요.”
나 지금 자신이 기억상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지 서너 시간밖에 안 된 사람이거든요. 이 판국에 일은 무슨 일이야.
동정심이나 인간미라고는 한 톨도 없는 말에 울컥했다가 문득 깨달았다.
“…3개월이라고?”
물론 삽살개 소년에게 듣기는 했다. 내가 석 달째 잠들어 있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석 달 동안 침대 신세를 진 사람이 이렇게 멀쩡하게 벌떡 일어나서 돌아다닐 수 있을 리도 없고 깨어났을 때 그 흔한 링거 하나 꽂혀 있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스테인리스를 뚝뚝 끊을 정도로 지나치게 힘이 세다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그런 말을 믿겠냐고.
믿을 리가 없는데
“맡기신 분이 매주 한 번씩은 찾아와서 언제 고칠 수 있느냐고 물으셨어요. 지난주에 단단히 화가 나서 돌아가셨으니 며칠 안에 못 고치면 매상도 매상이지만 평판이 나빠질 거예요. 서둘러 주세요.”
그녀가 말하고는 휙 돌아서자 그 사느란 서슬에 현실적인 의문 같은 것은 싹둑 잘려나갔다. 그래. 실로 쇠기둥을 자르고 잡동사니가 사람으로 변하는 걸 보고 삽살개가 말하는 것도 듣는 내가 3개월 동안 자다 일어난 것쯤이야 뭐.
비상식이 쌓이자 상식을 압도하며 분별력을 위협하는 와중에도 나는 필요한 질문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고쳐야 할 물건이 뭔데? 알겠지만 난 아무것도 기억 안 나거든.”
“물레예요. 창고에 뒀어요. 문 맞은편에 있으니 바로 보일 거예요.”
여자가 대답했다.
실 잣는데 쓰는 그 물레? 전자 제품 같은 것만 고치는 줄 알았는데 그런 오래된 물건도 맡았던 모양이다.
“창고로 들어가는 문은 1층의 진열선반 뒤편에 있어요. 술과 안주는 계단 뒤 냉장고에 있고요.”
여자가 덧붙였다. 안 그래도 창고 위치를 물어보려던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멈칫했다. 문의 위치는 그렇다 치고 술과 안주가 있는 건 왜 가르쳐주는데? 아니 그보다 나는 왜 작업장에 술 같은 걸 놔뒀지? 설마 알콜 중독은 아니겠지?
다시 물어보려고 했지만 여자는 이미 돌아서서 설거지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뭔가 거칠었다. 어쩐지 마누라 눈치 보는 남편 같은 심정으로 조용히 그곳을 나섰다.
명백한 환자를 일자리로 내모는 처사가 불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자영업자의 괴로움인 거겠지. 누가 월급 주는 것도 아니니 환자든 뭐든 일 해야 먹고살 거 아니냐고. 거기다 석 달이나 퍼 자면서 쉬었다는데 할 말이 없다.
터벅터벅 걸어 계단을 내려가자 선반 뒤편 어두컴컴한 곳에 과연 문이 하나 있었다. 차가운 손잡이를 돌리고 문을 밀었다. 더욱 어두운 내부가 드러난다. 먼지와 쇠와 나무 냄새가 서늘한 공기에 실려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뿐, 도무지 캄캄해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스위치는 보통 문 손잡이 쪽 벽에 만드는 법이다. 나는 오른손으로 창고안의 벽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어깨 조금 아래쪽 높이에서 스위치가 손에 걸렸다. 그것을 누르려는 찰나에 뭔가 움직이는 것을 봤다.
어둠 속이었다.
문으로부터 5m쯤 앞, 캄캄한 속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부시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다가 갑자기 휙 날아오른다. 허공을 철썩 치는 소리에 이어 다시 우아하게 나부끼며 맴을 돌았다. 나는 스위치에 손을 댄 채로 굳었다.
그 하얀 것은 분명 옷자락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저것은 틀림없이 사람이다.
누군가 창고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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