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4화 (4/218)

물레(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춤을 춘다고.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 창고 안에서. 흰 옷자락을 펄럭이면서.

통상적으로 이런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저건 귀신이거나 사유지에 무단 침입한 정신병자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하겠지. 사실 나도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는 했다. 하지만 나는 불과 몇 시간 전 잡동사니나 강아지가 사람으로 변하는 광경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저것도 같은 종류의 환각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잠시 얼어붙었던 몸이 스르르 풀렸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거지.

창고 안의 누군가는 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로 춤에 열중하고 있었다. 눈이 점점 어둠에 적응하자 어렴풋하게나마 그 모양을 알아볼 수 있었다.

한복인지 뭔지 모를 묘한 옷을 입은 사람이었다. 머리에는 갓을 썼고 상의는 도포 같은데 가는 허리를 어두운 색 천으로 질끈 동였다. 하의로는 스란치마 위에 짧은 한복 치마를 겹쳐 입고 신발도 없이 하얀 버선만 신고 있었다.

이런 모습으로 손끝을 떨쳐 넓은 옷소매를 펄럭이고, 물결을 타는 것처럼 들썩이며 발을 옮기거나 흥을 실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음악도 없고 고수의 북소리 하나 없는데, 보고 있으려니 절로 어깨를 들썩이며 장단을 맞추게 되었다.

발끝을 세워 걸음을 내딛고 팔을 느릿하게 저어 허공에 호선을 그리는 모습이 어찌나 우아하던지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숨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곧장 후회했다. 내 짧은 숨소리를 들은 상대방이 춤을 멈추고 이쪽을 휙 돌아본 것이다.

어둠속이라 제대로 안 보일 거라 생각했건만, 뜻밖에도 상대방의 얼굴은 파르스름하니 미광을 띠고 있었다. 달걀 모양의 얼굴에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며 쪽진 머리까지 빠짐없이 보였다.

그러니까 즉, 어둠 속에서 옛날 옷 입고 춤추던 정체불명의 여자가 고개를 홱 돌리고 나를 정면으로 쳐다봤다는 말이다. 파란 조명 받은 얼굴로.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손아래에 있던 스위치를 달칵 눌러버렸다. 강한 조명이 눈을 찔렀다.

갑작스러운 빛 때문에 눈이 아팠지만 그보다 창고 안에서 춤추던 여자를 제대로 확인해야 했다. 얼굴을 찡그리며 간신히 눈을 뜨자 작업장보다도 넓은 공간에 철제 선반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것이 보였다.

그 뿐이다.

춤추던 여자는 없었다. 선반 뒤편 어딘가에 웅크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물건 사이로 구석구석이 다 들여다보였다.

역시 이번에도 잡동사니가 사람으로 변했던 건가. 그러나 어느 잡동사니가 변한 건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선반마다 잡다한 물건들이 먼지를 뒤집어쓰며 놓여 있었다.

이 빠진 그릇, 부처상, 돌멩이, 낡은 책, 족자, 새끼줄과 부적으로 봉인된 항아리, 노리개, 실타래, 나무토막….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골동품으로부터 왜 보관하는지 모를 쓸데없는 것까지 가득했다. 나는 그 물건들을 대충 훑어보며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다.

눈이 다시 빛에 익숙해지자 이곳의 조명이 그리 밝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넓은 공간을 밝히는 것은 거리를 두고 설치된 두 개의 백열등이 전부였다. 전등갓도 없이 달랑달랑 매달린 호박색 전구가 먼지와 거미줄로 흐릿했다.

창고 안은 흡사 선반의 벽으로 만든 미로였다. 선반과 선반 사이의 좁은 길이 수없이 꺾이고 막혔다. 몇 번이나 막다른 곳을 만나 돌아나가며 길을 외워야 했다.

그 와중에 바스크 인형의 눈이 도로록 움직이며 나를 쳐다본다든가, 대나무 피리가 먼지를 뿜으며 혼자서 소리를 낸다든가, 종이를 접어 만든 나비가 나폴 나폴 날아다니는 환각이 있었지만 이제 그 정도로는 놀라지도 않았다.

하긴 선반에 있던 화병이 갑자기 뚝 떨어져서 깨진 다음 그 파편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어 다시 화병이 될 때는 좀 섬뜩했다.

혼자서 통통 튀어 다니던 비단공이 나를 보자 움찔 했다가 평범한 공인체하며 가만히 서있을 때는 “너 돌아다니는 거 봤거든.”하고 말을 걸 여유도 있었다. 그러나 비단공이 끝까지 움직이지 않아 나는 공에게 말을 건 바보가 되어버렸다.

이래저래 꽤나 헤매서, 시간이 제법 흐른 뒤에야 창고 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창고 안이 의외로 넓다는 것만 확인했을 뿐 별 건 없었다. 그래도 유적지를 탐험한 기분이랄까. 묘한 성취감에 젖어 있다가 그제야 유하라는 여자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물레는 문 맞은편의 선반에 있다고 했었지.

처음 헤맬 때는 길고 복잡했지만 다시 문 앞으로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물레는 문 맞은편, 벽에 딱 붙여 설치된 선반 가운데 칸에 놓여 있었다.

교과서 아니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고색창연한 모습이다. 손잡이는 손때가 묻어 반질거렸고 몸체가 거무튀튀하게 변색되어 있었다. 살을 얽어 맨 동줄만은 새것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려보자 물레바퀴가 돌돌 구르는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멀쩡하잖아.’

혹시나 싶어 작업장으로 물레를 들고 나와서 다시 살펴보았다. 작업 선반에 올려놓고 밝은 조명 아래에서 이리저리 확인했으나 부서진 곳은 없다. 오른쪽 살 두 개가 살짝 금이 가 있었는데 금이 갔다기보다 부러진 것을 접착제로 붙인 흔적이었다. 이렇게 오래 된 물건이니 고친 자국쯤이야 이상할 것도 없다.

어쩌면 어디가 부서진 게 아니라 아예 부속이 없어진 걸까.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물레는 실 잣는데 쓰인다는 게 내가 가진 관련지식의 전부다. 물레방아라든가 그와 관련된 영화 몇 편과 19금 지식이 쓸데없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상관없는 것 같고.

만물수리점이라지만 무슨 생각으로 이런 물건까지 맡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정보가 필요했다.

그러고 보니 내 궁색하고 살풍경한 방에는 컴퓨터 책상이 있었지.

나는 계단을 올라 별로 내 집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그곳으로 돌아갔다. 3층에 있는 그녀의 집과 비교하자 한층 비참해졌다. 어째서 고용주의 집이 고용인의 집보다 못한 거지? 혹시 내가 잠든 사이에 집이 바뀐 게 아닐까?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영화도 있잖아. 물론 그 영화에서는 약혼자가 바뀔 뿐이지만….

스스로도 좀 아닌 것 같은 불평을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물레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간략한 역사와 물레의 구조 정도였으나 그 이상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검색으로 나온 여러 장의 사진에서 내가 맡은 물레와 비슷한 모양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진을 프린트한 다음 작업장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멈칫했다가 도로 앉았다. 그리고 순수한 호기심, 아니면 직감으로 검색창에 ‘동천 만물수리점’이라고 써넣은 다음 엔터를 눌렀다. 검색창은 잠시 움직이지 않다가 반짝 뒤집어지듯 바뀌었다. 하얗게 황량한 화면이 펼쳐졌다.

검색된 거라고는 단 하나의 카페뿐이었다. 하나뿐이지만 나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쩐지 두근거렸다.

‘이건 리얼인데’라는 푸른색 제목 아래로 검색된 내용의 일부가 보였다. 굵은 글씨인 ‘동천 만물수리점’ 뒤편으로 ‘밤에만 나온다는 소문’과 ‘명함에 적힌 이름은 김해명’이라는 구절이 눈에 쏙 들어왔다. 키보드 위에 머물러 있던 손이 움찔 떨었다.

상호와 이름만으로도 의심할 여지없이 내 이야기다. 우연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마우스를 움직여 제목을 클릭하자 한지무늬에 수묵화 그림이 배경인, 제법 그럴듯하게 꾸며진 카페 대문이 보였다.

검색된 내용은 ‘마니마니’란 별명의 회원이 도시괴담 게시판에 올린 글이었다.

[ 이건 같은 반 친구가 실제로 겪은 거.

걔네 집에 밤마다 천장 위로 뭐가 막 달려 다니는 소리가 나서 처음엔 쥐인 줄 알고 쥐약 놨는데 효과가 없어서 지붕 뜯고 들어가 봤더니 웬 놋요강이 하나 있었다고.

그게 밤마다 굴러다녔던 건데 어째서 천장 위에 놋요강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름.

요강을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렸는데 그날 밤도 또 천장 위에서 요강이 굴러다녀서 귀신 붙었다고 집안 식구들 밤새 무서워서 떨었음.

친구 엄마가 점집 가서 물어봤는데 요강이 뚜껑을 잃어버려서 그거 찾아다니는 거라고 했음. 그래서 창고 안에서 뚜껑 찾아줬는데 그날 밤에 요강이 이번에는 뚜껑이랑 같이 굴러다녔음.

친구네 식구들 다 밤새 한 잠도 못 잤다고 함.

다시 점집 가서 물어보니까 뚜껑이 찌그러져서 아프다고 우는 거라고 함. 그래서 친구 아버지가 먼데까지 가서 놋쇠 그릇 같은 거 만드는 데서 뚜껑을 원래대로 만들어 왔다고 함. 그런데 그날 저녁에는 아예 요강과 뚜껑이 천장을 부술 기세로 굴러다녔다고 함. 친구네 식구들 다 모텔로 피신함.

다음날 점집 가서 따지니까 무당이, 뚜껑 고칠 때 망치로 두들기고 그래서 속병이 심하게 들었다고 그거 고치려면 특별한 수리점으로 가야한다면서 웬 만물수리점을 알려줬는데 사기 같아서 안 가려다가 날마다 요강과 요강뚜껑이 천장에서 세트로 널을 뛰니까 옆집에서 민원 들어오고 난리 나서 어쩔 수 없이 속는 셈 치고 갔다 함.

그런데 그 수리점에 맡겼다 가져오니까 진짜로 조용해짐.

지금 그 요강은 친구네 집 창고에 얌전히 있다고 함. 찝찝해서 버리지는 못했다고. ]

글은 거기에서 끝이었다. 검색에 걸린 상호는 본문이 아니라 댓글에 있었다. 글을 읽고 누군가 말도 안 된다며 댓글을 달자 거기에 마니마니가 답댓글을 단 것이었다.

[ 주작 아님. 친구가 핸펀 걸고 맹세함. 동천마을 상가에서 좀 떨어진 길가에 있는데 가보면 귀신같은 여자가 나옴. 가게 이름이 동천 만물수리점이라고 하는데 나도 가봤음. 근데 친구 아버지가 만난 사람은 남자라던데 그 남자는 밤에만 나온다는 소문이 있음. 명함도 받았다는데 명함에 적힌 이름은 김해명이라고 남자이름 맞는 거 같음. 진심 광주 오면 내가 안내해 줌. ]

뭐지?

이 글이 사실이라면 나는 귀신 붙은 요강의 속병을 치료해준 건가? 내 가게는 수리점이 아니라 무슨 귀신 붙은 물건 맡기는 곳이었어? 그런데 문제는 이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딱 잘라 부정할 수가 없다는 거다.

그럴 수밖에. 내 눈으로 물건이나 개가 사람으로 변하는 광경을 보고, 조금 전에는 어두운 창고 안에서 웬 여자가 춤추다 사라진 것까지 목격한 마당이다.

내게 최악의 상황이라면 환각증상을 보이는 기억상실 햇빛공포증 독신남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귀신을 보는 기억상실 햇빛공포증 독신남’이란 선택지가 생기자 둘 중 어느 쪽이 더 암울한지 헷갈렸다.

한편으로 이 새로운 정보는 그동안 설명할 수 없었던 의문들 사이를 묘하게 연결하고 있었다. 내가 경험한 환각도, 평범치 않은 생활방식이나 환경도 대충 이해가 된다. 기억상실이나 바깥으로 나가기 두려워했던 것도 흔히 ‘신병(神病)’으로 불리는 제약의 일종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고.

이렇게 5분 전까지만 해도 만물수리공이었던 내가 검색 한 번에 무당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정보화 시대의 폐해인가 수익인가.

감사할 일인지 억울할 일인지 모르는 채로 나는 일단 표면상의 본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프린트 한 사진을 가지고 작업장으로 돌아가 물레와 나란히 비교해 보았지만 빠진 부품 같은 것은 없었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손잡이를 돌려봐도 잘 돌아간다. 도대체 뭐가 잘못 되었다는 건지 모르겠다. 겉보기에 멀쩡한데 뭐가 잘못되었는지는 모른다…. 마치 나 같은 상황이다.

응? 가만.

그러고 보니 인터넷에서 본 글에 따르면 귀신 붙은 요강을 맡은 사람은 나였단 말이지. 유하라는 여자도 내가 안 깨어난 바람에 물레를 석 달째 못 고쳤다고 말했고. 그렇다면 이 물레는 요강과 마찬가지로 귀신이 붙은 물건이라 맡겨진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대부분의 일을 자신이 했다고 한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요컨대 평범한 수리는 그녀가, 귀신이 붙은 특별한 물건의 수리는 내가 맡고 있었다는 거다. 이런 식의 분업을 통해 겉으로는 만물수리점이면서 뒤로는 귀신 쫓는 고액 부업을 하고 있었던 거지. 세금도 안 내고. 아…그건 좋네.

귀신 붙은 물레라.

나는 조금 전까지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이리저리 살피던 물레로부터 슬금 물러났다. 귀신이 붙어있다고 생각하자 어쩐지 더 음침하게 보였다.

하지만 막상 귀신이 붙어있다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쫓아내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게다가 내가 정말로 그런 일을 했었다고 확신하기도 어려운 것이, 그 방면으로는 도무지 아는 게 없었다. 기억상실과 별개로 다른 지식들은 무사한 것 같으니 뭔가 할 줄 안다면 생각날 법도 한데 떠오르는 게 없다.

전문적인 지식은 아니라도 귀신 쫓는 방법이라든가 부적이라든가 뭐라든가 아무튼 그런 걸 하나라도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아는 거라야 영화에서 보거나 괴담 같은데서 주워들었음직한 이야기들이 전부다. 뿐만 아니라 이 물레가 정말로 귀신에 씌었는지도 사실 확신을 못하겠다.

알아볼 길이 없다. 알아볼 방법도 모른다.

어쩌라고….

겉보기에는 멀쩡한 물레를 앞에 두고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하다못해 아까처럼 환각이라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동사니가 변한 사람들은 어쨌든 말이라도 통하지 않았던가?

“어…어?”

그 때를 돌이켜 본 나는 번득이는 것처럼 스친 생각에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그때도, 창고에서도, 삽살개가 변했을 때도 공통점이라고 할 한 가지 현상이 있었다. 지금은 없고 그때는 있었던 현상.

어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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