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5화 (5/218)

물레(4)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그럴듯했다. 귀신이란 게 보통 밤에나 보이는 거지 백주대낮에 출몰하지는 않잖아.

물론 시간상 지금 바깥은 환하지만 처음 여기 내려왔을 때 작업장 안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했었다. 창은 블라인드로 가려져 있고 빛이라곤 계단 뒤편 불투명한 유리창에서 조금 새어 들어온 것이 전부였다. 물레가 있던 창고 안은 말할 것도 없다.

귀신인지 환각에 불과한 건지 아직 몰라도 어두울 때에만 볼 수 있는 거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계단 옆의 벽에 나란히 설치된 여섯 개의 스위치를 손바닥으로 밀어 주르륵 꺼버렸다. 전등이 일시에 꺼지며 시커먼 어둠이 휘몰아쳐 눈을 가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답답한 시간이 잠시 이어졌다. 체감한 것보다 짧은 순간이었을 터다. 단지 캄캄해졌을 뿐인데 시각은 물론 다른 감각들도 한꺼번에 가려진 것처럼 둔한 느낌이 들었다. 무겁고 눅진한 침묵 속에서 눈은 천천히 시력을 되찾았다.

작업장 내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창에서 계단을 따라 흘러내린 가는 빛이 안을 어둑하나마 밝혔다. 캄캄해지자마자 뭐라도 금방 튀어나올까 걱정한 것과 달리, 물레에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몇 분간 지켜보았으나 보이는 것도 변하는 것도 없었다.

살인사건의 단서를 잡은 탐정 같은 기분으로 스위치를 꺼놓고 긴장했던 나는 맥이 탁 풀렸다. 이건 아니었나? 꽤 신빙성 있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이 물레에 붙은 귀신이 부끄럼 타는 성격인가.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귀신은 있지도 않았던 건지 모른다.

아니 그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글은 게시판 제목 그대로 괴담이었을 뿐 나는 귀신을 보는 것도 쫓는 것도 아닌 그냥 환시 증상을 가진 병자에 불과한 게 아닐까. 불 꺼놓고 귀신이 나오길 기다리다니 이게 무슨 한심한 꼴이야.

나는 자신의 바보짓에 낙담하며 다시 불을 켜기 위해 벽을 더듬었다. 소리를 들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입을 다물고 목 안에서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어깨를 떨며 소리죽여 웃는 소리.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소리가 허공을 데구루루 굴렀다.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 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린 것과는 반대편에서, 마치 작업장을 가로질러 풀쩍 뛰어가는 것처럼 웃음소리는 꼬리를 끌며 움직였다. 그 꼬리를 따라잡자 허공을 휙 가로지르는 푸르스름한 불빛이 언뜻 보였다.

찾았다.

푸른 불빛 아래서 희뿌연 옷자락이 펄럭 휘날렸다. 넓은 도포자락이 번득 뒤집혔다가 나풀나풀 떨어진다. 어둠 속에서 하얀 버선코가 슬쩍 보였다가, 발끝을 세워 휙 돌자 치마가 펼쳐지며 버선부리와 단속곳 사이의 정강이가 요염하게 드러난다.

창고 안에서 춤을 추고 있던 여자였다. 상대가 귀신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춤추는 귀신이라니.

머리 풀고 피 흘리고 소복 입은 귀신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지만, 볼 때마다 춤추는 귀신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꽤나 잘 춘다. 이 옷 저 옷 아무거나 마구 집어서 걸친 것 같은 차림새가 무대의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팔을 날개처럼 펼치고 빙글 돈 여자가 갑자기 치마를 휩싸 쥐더니 우뚝 멈추었다. 기우듬한 고개가 내 쪽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나를 발견했다. 발견했을 뿐 아니라 시선을 당기며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훑어보고 있다. 그러더니 두 눈을 상큼 치켜뜨고서 입술을 끌어올려 웃었다.

파르스름하니 미광을 띈 얼굴로 웃는 모습에 오싹한 한편, 제대로 보이는 그 얼굴이 예상 외로 예뻐서 놀란다. 곱다고 해야 할까 요염하다고 해야 할까. 눈짓 하나에 천생 여자, 타고난 암컷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어…나 지금 귀신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는 건가.

홀아비 냄새 나는 내 방의 정경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않았지만, 혹시 나는 바람둥이였나? 아니면 귀신이라도 반응할 정도로 평소에 여자가 궁했던 거…아니! 아니! 거기까지!

지금 중요한 건 내 연애사가 아니잖아!

“이보오, 김서방.”

귀에 착 감기는 목소리였다. 그것이 갑자기 지척에서 들려왔다. 목소리뿐 아니라 말을 건 장본인도 어느새 코앞에 서 있었다. 귀신같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소리도 없이 눈앞으로 다가오질 않나, 통성명도 한 적 없는데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을 걸지 않나.

여자귀신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번 더 생긋 웃더니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가는 술잔이 있으면 오는 술잔이 있고 노래에도 답가가 있는데, 내 춤을 보고도 어찌 모른 체 하오? 아직 흥이 덜 올랐으면 장단이라도 맞춰 주리까?”

살살 감기는 목소리로 하는 말인즉 ‘내 춤을 구경했으니 너도 한 번 춰 보아라’는 것이다.

여기 춤 춰보라고 시키는 귀신이 있다.

보통 어떤 사람이 뭔가에 집착하면, 예를 들어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서 밤낮 시끄럽게 불러 젖히고 있자면 누군가 옆에서 “저것이 노래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라고 한소리 하게 마련이다. 즉, 하고 싶은 일을 못하고 죽어서 한 맺힌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이 여자의 경우에는 그게 춤인가 보다.

“무얼 하오? 사내대장부가 되어 계집 앞에서 수줍음을 타오?”

머뭇거리고 있자 여자 귀신이 고개를 기울이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코앞에서 보자 뽀얀 피부며 까맣게 반짝이는 눈동자가 묘하게 생기 있어서 정말로 이게 귀신인가 싶다. 그런데 이 귀신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귀신 쫓는 만물수리점에 맡겨진 걸까. 혹시 지금처럼 만나는 사람을 붙잡고 춤추라고 했다가 안 하면 해코지를 한다든가….

어쩐지 빨간 마스크 괴담이 생각난다. 무슨 대답을 해도 죽이는 그 여자와 이 귀신도 같은 부류일까. 시킨 대로 춤을 추면 “내가 원한 건 팝핑이었어!”라며 관절을 꺾을지도 몰라.

“내 말이 우습소?”

묻는 여자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화내는 것 같다. 위험해. 위험해. 이쯤 되자 슬슬 유하라는 여자가 괘씸해진다. 이런 식으로 분업을 하고 있었다면 그녀 역시 물레의 사정을 대강이라도 알았을 터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보내? 이건 엿 먹으라는 수작이잖아.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그녀가 아무 말 없이 보낸 것은 아니었다. 들었던 그때는 쓸데없다고 생각한 말을 덧붙였었지.

혹시?

그 혹시가 맞기를 바라며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몸 안에 숨이 채워지자 불안이 밀려나가고 근거도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것을 목소리에 실어 말했다.

“성미도 급한 이로세. 꽃을 보았으면 향을 맡고, 향을 맡은 후에나 어르는 게지.”

나 뭐라는 거냐. 여자의 옛말투를 듣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치고 말았다. 어쩐지 갓끈 느슨히 당기고 합죽선이라도 펄럭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민망한 나와 달리 여자 귀신 쪽은 샐쭉하니 올라갔던 눈꼬리가 휘어지며 다시 웃는 낯으로 돌아갔다.

“이제 보니 풍류를 아는구려. 그래 이 몸에게 무슨 향을 맡으려오?”

“주향(酒香)은 어떤가.”

말하며 계단 뒤쪽을 힐끗 보자 과연 거기에 있었다. 내 키만 한 냉장고 하나가.

- 창고로 들어가는 문은 1층의 진열선반 뒤편에 있어요. 술과 안주는 계단 뒤 냉장고에 있고요.

물레를 고치라고 나를 내보내며 유하라는 여자가 한 말이었다. 뜬금없이 웬 술과 안주 위치를 알려주느냐고 생각했었지만….

냉장고 문을 열자 여기가 수리점이 아니라 술집인가 싶게 온갖 종류의 술병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음식이 담긴 유리 용기가 쌓였고 그 옆에 젓가락과 냅킨까지 준비되었다.

그것들을 작업 선반에 차려놓자 여자는 어쩔 줄 모르며 좋아했다. 그리고는 따르면 따르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춤 좋아하는 귀신이 아니라 술 좋아하는 귀신인가?

작업 선반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을 나누었다. 여자는 몇 잔을 마시고 나자 흥이 오르는지 콧노래를 부르고, 이윽고는 어깨를 들썩이며 민요 같은 노래를 한 가락 뽑아냈다. 청아하니 목소리가 듣기 좋기도 하고, 술이 들어가자 도홧빛으로 붉어진 뺨에 가실 새 없이 미소를 띤 모습이 보기 좋기도 해서 나는 귀신이고 뭐고 조선시대로 놀러간 기분이 되어 술자리를 즐겼다.

그녀는 이제 춤 같은 건 잊어버린 것 같았다. 술을 몇 병이나 비우고 흥얼흥얼 노래하다가 문득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비밀 하나 알려주리까?”

비밀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쳐다보자 그녀는 상체를 숙여 내 귓가로 입을 가져왔다. 귀신이 숨을 쉴 리 없는데 숨결과 함께 달짝지근한 주향이 풍겼다. 그녀가 더욱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순례의 벽장에는 벽돌이 다섯 개인데 그 중 하나만 비었다오.”

…뭔 소리야?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거리는 내 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목안에서 구르는 듯한 그 소리가.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까지 그녀가 있던 자리는 텅 빈 채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야말로 귀신답게 갑자기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 앞에 놓였던 술잔에는 처음 따라놓은 그대로 맑은 술이 찰랑찰랑 담겨 있었다. 함께 부어라 마셔라 하며 비운 술병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술이 꽉 차서 뚜껑도 따지 않은 그대로다. 처음 꺼냈던 술병만 달랐다. 안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먹은 흔적만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정말로 귀신과 대작하고 있었다는 실감이 나자 오싹 한기가 들었다.

망연히 그것들을 내려다보는데 컴컴한 작업장 한 쪽이 갑자기 밝아졌다. 출입문이 열린 것이다. 누군가 문을 열고 어두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중년의 모르는 남자다. 아, 모르는 게 당연한가.

“계십니까…? 아무도 안계시…어이쿠, 사장님 아니십니까.”

남자는 캄캄한 작업장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높이다가 나를 발견하자 안으로 뛰어들었다. 반가운 듯 들어왔지만 막상 내 가까이는 오지 못한다. 문으로 들이친 빛이 사라지지 않은 범위까지만 다가왔을 뿐이다. 그 빛 때문에 더 짙어진 작업장 구석의 어둠속에서 나는 모르는 얼굴의 중년 남성과 문 밖의 환한 거리를 번갈아보았다.

그가 내 시선을 좇더니 문을 닫으라는 뜻인 줄 알았는지 출입문 쪽으로 돌아갔다. 나도 그게 더 편해서 그가 문을 닫는 것을 보며 스위치를 올렸다. 작업장 안은 다시 전등의 빛으로 환해졌다.

문을 닫고 돌아오는 남성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혹시라도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손님은 풍채 좋은 중년의 신사였다. 청바지에 캐주얼 점퍼 차림인데도 가벼워 보이지 않는 건 살집 있고 인상 좋은 얼굴 때문이겠지. 호인의 상이었다.

누굴까. 물건 맡긴 적 있는 고객? 근처 식당 주인? 우리 동네 통장님?

그는 다가오다 말고 작업 선반 위의 물레를 보자 반색을 했다.

“다 고치신 겁니까?”

물레를 맡긴 장본인이었구나. 지난주에도 찾아왔다가 화내면서 갔다더니.

“글쎄요. 고쳤다고 해야 할지. 아직 문제가 좀…”

말을 얼버무리는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어디가 고장 났는지도 모르고 있고. 귀신이 문제라면 떼어낼 방법도 모르고.

손님의 얼굴이 금세 도로 어두워졌다. 그가 불안한 얼굴로 슬금슬금 물레에서 멀어졌다.

“거 참. 어떻게 빨리 안 되겠습니까? 맡기자마자 외국 나가셔서 벌써 석 달째 아닙니까. 저희야 이런 물건 갖다 버려도 상관없지만 어머니께서 그렇게 찾으시니…. 지금도 병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만 어머니 상태가 너무 안 좋아요. 이러다 언제 일 당할까 무서운데 정신만 드시면 물레야 물레야 찾고 계셔서 옆에서 어찌나 죄스러운지…. 그렇다고 저 불길한 걸 아픈 분께 가져다 드릴 수도 없고.”

잠들어 있는 동안 유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외국에 나가 있다고 말해둔 모양이다.

손님이 탄식과 불평을 겸해 쏟아내는 말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대략 얻을 수 있었다. 병환 중인 어머니가 아끼시는 물레. 물레에 붙은 귀신. 그래서 그 여자 귀신을 떼어내 달라고 내게 온 것이다. 사실 직접 만나보니 굳이 떼어낼 필요가 있나 싶은 게, 술만 주면 착하고 노래도 잘하고 비밀도 알려주고 이쁘……어도 귀신이지. 예.

귀신은 어디까지나 귀신. 죽은 사람이 산 사람과 어울릴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물레의 주인은 병환중이라 하고. 하지만 손님의 어머니는 어째서 그렇게 물레를 찾는 걸까? 지금은 누구도 사용하지 않고 사진이나 박물관의 유리 박스 안에서만 존재하는 낡은 물건, 쓸모도 가치도 없는 골동품을.

그리고 그 골동품에 붙은 여자 귀신은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순례의 벽장에는 벽돌이 다섯 개…”

비밀이라며 속삭인 그녀의 말을 떠오르자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수수께끼 같은 그 말에 손님이 반응을 보였다.

“예에?”

묻는 목소리에 동요하는 기색이 있었다. 얼굴을 보자 더 확실해졌다. 크게 뜬 눈, 정색한 얼굴, 굳은 몸이 말하고 있었다. 뭔가 있다. 입질이 오는 것을 느낀 낚시꾼이 된 기분이었다. 놓치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했다.

무심하게 보이려고 애쓰면서 손님인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말해. 다 알고 있으니까 말해. 신령님 눈을 속일 수 있을 것 같아? 응? 이런 표정이길 바랐는데 정말 그렇게 보였는지 그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조심히 입을 뗐다.

“저, 방금… 어머니 벽장에서 나온 상자 말씀하셨습니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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