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7화 (7/218)

물레(6)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깨어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린 나는 낯선 정경에 잠시 혼란했다. 기억은 곧 돌아왔다. 맞다. 여기는 내 집이었지. 나는 어제 여기에서 깨어났고 묶여 있었고 기억을 잃어서 당황했고….

이번에는 침대에 묶여있지 않았지만 그 정체 모를 고강도의 붉은 실은 아직 손발에 감겨있었다. 침대에서 내려가려다 보니 바닥의 유리파편도 그대로였다. 어제 처음 본 그대로……잠깐, 아니잖아.

생각해 보니 어제 밤이 되어서 자려고 다시 돌아왔을 때 분명 바닥은 깨끗했거든. 그래서 메이드 겸 비서라는 여자, 유하가 치웠으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면 기껏 치워놓았는데 또 뭔가를 깨뜨렸다는 건가?

이상한 것은 하나 더 있다. 이 방에서 뭔가가 깨지려면 내가 그것을 건드리는 수밖에 없는데 유리는 내가 잠든 동안 깨졌다. 오늘은 사지가 자유로우니 건드렸을 수도 있지만 어제는? 침대에 묶여 있었던 어제는 왜 깨진 거지?

문득 어제 창고에서 본 화병이 떠올랐다. 만지지도 않았는데 혼자 뚝 떨어져 깨지더니 파편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던 그것…. 이것도 그런 건가?

눈에 힘을 주고 바닥의 유리파편들이 혹시라도 움직이나 노려보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식사 준비가 되었으니 올라오세요.”

유하였다. 내가 깨어날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 시각에 맞춰 아침을 준비한 것이다. 3층에 올라가자 죽과 생채, 과일로 이루어진 식사가 보였다. 막 잠에서 깨어난 터라 입안이 깔깔해서 과일도 죽도 반가웠다. 비서로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메이드로서의 그녀는 나무랄 데가 없다.

“내 방의 유리…병인지 뭔지 그거, 혹시 원래 아침마다 깨지는 거야?”

새콤한 포도알을 삼키며 지나가듯 묻자 유하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로 만든 장식품인데 매일 그 시각이면 깨졌다가 밤이면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가요. 그래서 아침에 잠 깨는데 편하다고 침대 머리맡에 두셨지요.”

내가 그랬다고?

어제 손님이 돌아가고 나서, 내가 실제로 하는 일이나 무엇을 볼 수 있는지에 관한 걸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느냐고 따졌을 때 그녀는 “묻지 않으셔서요.”라고 대답했었다. 그때는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싶었지만, 매일 혼자서 깨졌다 붙는 유리장식을 머리맡에 놓고 알람 대신으로 사용했던 나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뭐 이런 내가 다 있어?

식사가 끝나자 유하는 커피와 함께 날달걀 하나를 내밀었다.

“난 반숙이 좋은데.”

내 말에 그녀의 무심한 얼굴 위로 한심하다는 표정이 얼핏 스쳤다.

“얼굴에 쓰세요.”

얼굴? 아, 얼굴. 그렇지, 참. 지금 내 왼쪽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지. 부은 데다 멍도 시퍼렇게 들었을 테고. 무서운 물레 같으니라고. 내 부업이 돈을 얼마나 벌어다 주는지 모르겠지만 매번 이렇게 맞는다면 몸이 남아날까 싶은 일격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치마 좀 들춰 보라니까 아무 생각 없이 펄럭 들춰 주고, 위에는 뭐 입었느냐고 물어보니까 도포도 훨훨 벗어주고 하더니 고맙다면서 이제 가도 된다고 하니 갑자기 화를 내며 주먹을 날리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도 덕분에 알고 싶은 것은 모두 알았다. 그녀가 도포 안에 입은 것은 색동저고리, 치마 안에 입은 것은 단속곳이 아니라 남성용 바지였다. 크기가 작아 속옷처럼 보였지만 분명 속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색동저고리에 스란치마, 바지에 도포. 이것은 모두 손님의 어머니가 숨겨두었던 옷상자에서 나왔다는 그 옷들이었다. 거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만 하나씩 골라 입은 것 같은 모양새다. 과연 도깨비다운 요상한 센스랄까.

뻔히 보이는 힌트들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 도깨비 여자를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참 바보였지만.

애초에 나를 김서방이라고 불렀을 때부터 눈치 채야 했다. 술자리를 벌여놓자 그녀가 펄쩍 뛰며 좋아했던 것도 술이 아니라 안주로 나온 메밀전병 때문이었을 터다. 다른 반찬은 손도 대지 않고 메밀전병만 먹은 것을 봤을 때라도 알아차려야 했다. 손님에게 어머니가 메밀묵을 마구 먹더라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뒤늦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게 그나마 다행인가.

이상해진 성격, 이상한 행동, 힘이 세지고, 어두울 때 활발해지고…. 아들이 치매 증상이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사실 도깨비가 들린 어머니의 평범한 행동이었을 뿐이다. 지금 몸이 안 좋아진 것은 아마도 도깨비의 음령(陰靈)한 기운이 범접해 생긴 병일 테고.

그 도깨비에게 제대로 맞은 나도 불쌍하지. 스테인리스를 뚝 끊을 정도의 힘에도 끄떡없던 내 피부를 붓게 만든 도깨비의 주먹이라니. 이 튼튼한 피부나 팔 힘은 저런 걸 상대할 때 죽지 말라고 하늘이 주신 건가.

입속으로 투덜거리며 달걀을 굴리는 내게 손님이 왔다는 유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제 전화해서 알려준 대로 물레를 가지러 온 모양이었다.

작업장으로 내려가자 손님은 물레로부터 멀찍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물레와 멍든 내 얼굴을 번갈아보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거기에 깃든 것이 귀신이 아니라 도깨비라는 말을 들었어도 꺼리는 것은 여전했다. 귀신이나 도깨비나, 사람이 이해할 수 없고 가까이 하면 안 되는 존재인 것은 비슷했다.

“정말 이대로 가져가도 되는 겁니까? 여기 붙은 그…것도 아직 그대로라면서요.”

그건 그렇다. 물레에 붙어있는…아니, 정확히는 물레가 본체인 도깨비겠지. 그 여자도깨비는 내게 조금 화가 나 있을 뿐 여전히 팔팔하다.

“붙어있는 그대로 가져가셔야 하거든요.”

“예?”

내 대꾸에 손님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어깨를 으쓱하고서, 나는 도깨비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에게 알려줬다. 어제 냉장고 안의 모든 메밀 요리를 탈탈 털어서 바친 뒤에야 겨우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다.

“처음부터 어머니께서 도깨비와 뭔가 거래를 하신 것 같아요. 그 이상한 행동들은 그래서 나타난 거고요. 그러니 병원에서 댁으로 모셔 오시는 게 좋겠어요. 약속한 거래가 끝나면 도깨비는 자연히 떠날 테니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드문 일이죠. 도깨비가 사람을 잠시 홀리는 일은 있어도 사람에게 들리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 그런 게, 무슨…그런, 그래도 되는 겁니까?”

그가 사색이 되어서 물었다. 창백해진 남자의 얼굴을 보고 나는 묘한 괴리를 느꼈다. 그가 아니라 나로부터.

나는 방금 그에게 ‘당신의 어머니가 도깨비와 거래를 해서 신들리듯 도깨비에게 들린 거다’라고 무심히 말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언제부터 내게 당연했지? 물론 어제 하루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기는 했었다만. 그게 이처럼 쉽게 자연스러워질 수 있는 일인가?

내가 지나치게 적응력이 좋은 건가.

머뭇거리는 동안 남자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우선 손님을 진정시킬 필요를 느꼈다.

“걱정 마세요. 위험한 건 아니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다소 불편한 일이 생기겠지만 위험하지는 않아요. 도깨비도 약속했고요.”

“약속이라니…그런 걸 믿어도 됩니까?”

남자는 말하면서도 두려운 듯 목소리를 낮췄다. 두렵지만 어떻게든 이해하고 타협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의 존재와 규칙을.

어제 슬퍼하던 모습을 봤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무서워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여서 머리를 쓰다듬고 싶어졌다. 중년의 어른에게 그런 실례되는 행동을 하는 대신 나는 싱긋 웃었다.

“믿어도 될 걸요. 도깨비라는 게, 먹고 노는 거나 좋아하고 다혈질에 태평하고 단순무식한데다 밝히는 요괴지만. 어쨌든 거짓말을 안 하거든요.”

그렇지? 물레 도깨비씨.

돌아보자 낡은 물레가 어쩐지 파르르 떠는 것처럼 보였다. 성미 좀 죽여. 이 아가씨야. 달걀로 눈가를 문지르며 나는 중얼거렸다.

손님은 꺼림칙한 표정을 풀지 못하면서도 물레를 차에 실었다. 그가 수리비를 계산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 물었다.

“한복샵에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어요?”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다. 대답은 알고 있었다. 그는 묘한 낯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한복샵에 가셨던 건 맞는데, 뭘 훔치신 건 아니고 오히려 천이며 한복 재료를 몽땅 사가셨다고 하더군요.”

그랬을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시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드리세요. 어쨌든 시간이…”

다시 한 번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가 멈칫 다물었다. 내가 하려던 말은 분명 그에게 슬픈 이야기일 터였다. 망설이고 있는 나를 그가 빤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에서 최대한 단어를 골라보았지만 결국 입을 열지는 못했다.

‘당신의 어머니에게는 이생의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바꿔도 좋게 들릴 리가 없으니까.

- 꽃비 내리시면 말이오. 순례는 그 비를 밟으며 갈 게요.

도깨비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고 전해줄 수야 없잖아.

손님을 배웅하고, 그의 차가 떠나는 소리를 문 너머로 듣고 나서야 나는 한숨을 쉬었다. 물레가 없어서 휑한 작업 선반을 보자 서운한 한편, 그래도 뭔가 해내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도깨비는 손님의 어머니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뻔하지. 벽장에서 발견된 옷이며 쓰레기통에서 나왔다는 천조각,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이 도깨비의 재주를 빌려 옷을 지었던 거다. 이유는 몰라도 옷을 지어 다섯 개의 함을 모두 채우는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대가로 뭘 줬을까. 몇 번을 물어봤지만 물레 도깨비는 ‘약속’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별로 영리하지도 않은 걸로 알려진 이 종족은 그러나 단순한 만큼 올곧은 데가 있었다.

- 좋지 않소? 이승의 마지막 광경이 그림처럼 아리따우니. 순례는 죽을 복도 있나 보오.

그런 말도 했었지. 뭐 편히 잘 죽을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하겠지만 물레 도깨비의 그 말은 과연 요괴나 할법했다.

밖에는 꽃이 피었을까?

궁금했다. 모든 창이 가려져서 통 밖을 볼 수 없으니까. 유하에게 물으면 되겠지만 그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보면서 꽃이 피었느냐는 질문이 도저히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삽살개 그 녀석은 어디로 가버렸지? 유하보다는 개에게 꽃이 피었느냐고 묻는 쪽이 편할 것 같다.

빛을 두려워하는 신병이라니 귀찮기 짝이 없었다. 아니, 빛이라고 해야 할지도 사실 정확하지 않다. 어제 해가 지고 나서, 밤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밖으로 나가려고 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 문이 열리는 순간 고작 가로등의 약한 불빛이었는데도 나는 귀신같은 빠르기로 맞은편 벽까지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낮에도 밤에도 밖으로 나갈 수 없다니. 혹시 광장공포증인가? 집안이나 작업장의 전등은 얼마든지 환해도 아무 문제없는데 어째서 고작 가로등에 놀라 도망친 걸까. 아니면 나는 사실 사람이 아니고 지박령 같은 거 아닐까?

바깥 풍경이 보고 싶다.

어떤 모습일까. 공기는 어떨까. 사람들은? 꽃은 피었을까?

그날 하루 내내, 나는 바깥을 그리워하며 작업장과 내 방을 오갔다. 손님이라도 왔으면 좋겠다. 문이 열릴 때 살짝 바깥을 볼 수 있잖아. 그런 생각으로 작업장에서 뒹굴거리다가, 방으로 돌아가서 인터넷에 접속해 로드뷰로 집 앞 정경을 감상하다가, 유하에게 가게 앞에 방범용 카메라 같은 걸 설치하면 어떨까 물으려다 어쩐지 바보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런 하루를 보낸 끝에 다시 밤이 되었다. 묘하게도 낮 동안 기다리던 손님은, 어두워진 후에야 찾아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처음 본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통통하니 혈색 좋은 얼굴에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겉모습은 인자한 얼굴의 할머니였으나, 그 안에는 분명 어스름한 곳에서만 나타나는 요괴가 있었다.

“오라,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넨다. 통통하고 아담한 몸에는 편한 원피스, 도톰하니 따뜻한 카디건을 걸치고 발은 양말만 신고 있었다. 집이 어디인지 몰라도 집안에서 돌아다니던 모습 그대로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분명했다.

오래 걸었대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몸은 도깨비의 보호를 받으며, 지치지도 다치지도 않을 것이 분명하니까. 내가 걱정되는 것은 단 하나. 어째서 이 할머니가 도깨비가 깃든 채로 내게 왔을까 하는 것뿐이다.

물레를 돌려보냈으니 이제 나와는 관련이 없을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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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7)fin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할머니는 나를 향해 거침없이 다가왔다. 여든이 가까운 연세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다가오더니 묘하게 반짝이는 눈길로 나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어물전에서 생물 고등어 고르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어찌나 꼼꼼히 보시던지 내 등이 푸르고 눈은 맑고 아가미가 선홍색이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느껴졌다.

“저기…”

“그럭저럭 쓸 만하네.”

참다못한 내가 입을 여는 것과 동시에 할머니가 말했다. 밑도 끝도 없이 뭐가 그럭저럭 쓸 만한데요…? 궁금했지만 어쩐지 묻고 싶지 않았다. 이건 감인데 안 듣는 게 나을 것 같아.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전에 대화를 주도해야 했다.

“할머니 여기 오신 거 아드님은 아세요? 지금 댁에서 걱정하고 계실 거 아녜요.”

가족 이야기를 꺼내 봤으나

“뭔 맘에도 없는 걱정은. 됐으니 자리라도 깔아봐. 노인네를 맨바닥에 앉힐 테여?”

할머니에게 코웃음과 함께 무시당했다. 참…도깨비가 들려있는 상태였지. 성격도 도깨비와 비슷해질 테고 사람에게 없는 신통한 능력도 생겼을 터다. 이 할머니, 아니 도깨비를 어떻게 쫓아낼지 난감해 하고 있는데 계단에서 유하가 내려왔다. 한쪽 팔에 왕골돗자리를 끼고 있었다.

“방금 아드님이 전화하셔서 여기 계시다고 알려드렸어요. 곧 오실 거예요.”

그녀가 바닥에 돗자리를 펼쳐놓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라는 듯이 거기에 교자상을 펴고 위층에서 음식과 술을 날라다 놓는다. 도깨비가 좋아하는 메밀요리는 물론 고기며 나물이며 전이며 잔칫상이 따로 없었다.그녀가 밖에 잘 나오지 않고 안에만 있는 건 이런 음식들을 만들고 있어서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유하는 상만 차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선가 등롱을 몇 개 가져와서 벽에 걸어놓았다. 작업장 안이 등에서 스며 나온 호박색 불빛으로 은은하게 밝아졌다.

할머니는 음식을 보자 애처럼 좋아라 하는 얼굴로 상 앞에 털썩 앉으신다. 그리고는 나를 흘겨보았다.

“뭘 한대? 멀대 같이 서서. 이리 와 잔도 채우고 안주도 멕여드리고 할 것이지. 원 눈치도 없이.”

제가요? 왜요? 할머니의 타박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얌전히 옆으로 가서 흰 잔에다 맑은 술을 따라드렸다. 도깨비가 들려있다고 해도 어르신과 다툴 수는 없잖아. 에휴.

할머니는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크으, 좋다. 거기 산적 하나 다오. 아니, 꼬챙이는 빼고. 겉보기엔 멀끔한데 손이 굼뜨네 그래. 뭐 하냐. 잔 비었다. 얼릉얼릉 채워.”

이분 성격이 원래 이러신 건가. 아니면 도깨비가 들어서 그런가. 처음 보는 사람을 종 부리듯 하시네.

불만을 삭이며 시키는 대로 안주도 집어드리고 술도 따라드리고 생선도 먹기 좋게 발라놓고 떡도 한입 크기로 떼어놓았다. 몇 잔을 따르고 나자 눈 밑에 홍조를 띠며 느긋이 흥얼거리시는데 춤이라도 춰보라고 할까 겁나서 얼른 말을 걸었다.

“옷은 다 지으신 거예요?”

할머니가 내 쪽을 힐끔 돌아보신다.

“그럼. 다 지었지. 할 일을 다 했으니 선보러 예까지 온 게 아니겠어.”

할머니 방금 단어 하나를 잘못 발음하신 것 같은데요. 혹시 점이라고 하려던 거 아니에요?

“…선이요?”

결혼 적령기의 남녀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만나는 자리를 가리키는 그 선이요? 아니면 점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이루어진 그 선이요?

당황한 내 속이 들여다보인다는 듯 할머니의 눈이 둥글게 휘어졌다.

“오냐, 선이지. 왜? 선보러 왔다니 이 할미한테 장가들라고 할까봐 겁나냐? 꿈도 야무지다. 저승에서 영감이 둘이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기다리고 있어, 이놈아.”

말하고 나서 깔깔 웃는 할머니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웃음이 잦아든 후에도 싱글거리는 낯으로 끄덕끄덕 고갯짓을 했다. 눈앞에 없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둠을 가로질러 벽을 넘어,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엿보는 얼굴이었다.

“물레랑 말이다. 내가 약속을 했거든.”

할머니는 빈 술잔을 손안에서 굴렸다. 새로 술을 따르려고 하자 손짓으로 거절했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손재주가 없어. 얼마나 없냐 하면, 시집 와서 시어머니가 보선에 구멍이 났다고 아가 이거 좀 꿰매 오니라 하셨거든. 그래서 내가 대바늘을 들고, 왜 그 이불 홑청 꿰맬 때 쓰는 거를 들고 덤벙덤벙 꿰매다가 드렸더니 이년이 발가락으로 바느질을 해왔다고 욕을 먹었더란다.”

할머니, 대바늘은 제가 생각해도 좀 아닌 거 같네요.

“그러니 오죽이 다른 바느질이야 말할 것도 없지. 평생에 자식들 구멍 난 옷 한번 꿰매준 적이 없어. 바느질 할 일이 생기면 시어머니가 하고, 시어머니 눈이 어두워지고 나서는 딸이 했지. 내가 포한이 져서, 죽기 전에 자식들한테 내 손으로 옷 한 벌이라도 지어 입히고 가야지 싶은 거야.”

아…옷상자 안의 옷은 그거였구나.

“그래서 물레하고 약속을 했단다. 내가 옷 짓는 걸 도와주면 나도 물레 소원을 하나 들어주기로. 그래 좀 전에 막내 옷까지 다 지어놓아서 이제 물레 소원을 들어주러 온 거란다. 고것이 나 죽고 나면 혼자 남아 쓸쓸하다고 친구 많은 데로 데려다 달라는데 거기가 여기라잖아. 이 집 주인이 대접도 잘 하고 생긴 것도 잘나고 같이 놀 도깨비 친구도 주변에 많다 하더라고.”

그러니까 내가 메밀 요리랑 술이랑 잘 먹이고 ‘생긴 것도 잘나고’ 근처에 도깨비가 우글거려서 여기가 좋다는 겁니까. 음… 어째서 호구 취급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아니 그보다 도깨비가 많다는 건 그러니까 내가 지금까지 본 이상한 것들 이야기인가? 그거 다 도깨비였어?

“그래 와서 보니까 물레 말이 맞네. 여기 두면 내가 가고 나서도 재미지게 잘 살겠네. 안심하겠어.”

도깨비가 들려 다른 사람이 되었는지 몰라도, 그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이 할머니는 정말로 물레 도깨비를 걱정하고 있었던 거다.

“물레 도깨비와 오랫동안 알던 사이였어요?”

사람이 도깨비와 친하게 지낸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도깨비의 기운은 인간의 것과 달리 극양이나 극음으로 치우쳐 있으며, 그 때문에 범접한 사람은 건강을 잃기 쉬웠다. 그래서 보통은 인간 쪽에서 먼저 도깨비를 멀리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내 질문에 목안으로 웃는 소리를 냈다. 할머니가 웃었는지 도깨비가 웃었는지 모르겠다.

“동무나 같지 뭐. 젊어서부터 밤이면 같이 수다도 떨고, 달구경도 하고, 부뚜막 옆에서 고구마도 구워먹고, 지나가던 남정네도 깜짝 놀래켜주고 그랬지.”

할머니, 마지막 건 도깨비나 하는 짓이잖아요. 그나저나 젊어서부터라니 적게 잡아도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도깨비와 친하고도 탈 없는 사람이 있다니 기록감이다.

“보니 안심하겠네…”

할머니의 목소리가 어쩐지 얌전해졌다. 몸집도 좀 작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니, 허리가 굽은 거다. 조금 전까지 꼿꼿하게 세우고 있던 등이 휘어져 있었다.

할머니의 뒤로 푸른 불빛이 어른거렸다가 휙 날아올랐다. 허공에서 하얀 옷자락이 펄럭였다. 물레 도깨비였다. 할머니에게서 빠져나온 물레 도깨비가 옷자락을 팔랑이며 맴돌다가 도로 할머니에게 펄쩍 뛰어왔다. 할머니 옆에 쪼그리고 앉은 물레 도깨비가 고개를 기울여 그녀를 쳐다보았다.

“순례는 자나?”

조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할머니가 힘없이 눈을 뜨고 웃었다.

“졸리네.”

“좀 더 놀지 왜?”

“실컷 놀았어. 실컷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다 해봤네. 그러니 이제, 할 말만 하고 나면 자도 되겠네.”

“응. 아이들 올 거야.”

물레 도깨비가 대답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찻소리가 들려왔다. 문밖에서 급히 브레이크 밟는 소리에 이어 차문 여닫는 소리, 그리고 발소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뛰어 들어왔다.

세 명이었다. 작업장 안의 정경에 잠시 멈칫거리는가 싶더니 교자상 앞에 앉은 할머니를 보고 세 사람이 동시에 달려왔다.

“어머니!”

“아이고, 엄마. 우리가 얼마나 놀란 줄 알아? 세상에 어떻게 그새 여기까지 오셨대?”

“괜찮으세요? 다친 데 없어요?”

물레를 맡기러 왔던 손님과 50대 초반 쯤으로 보이는 여성, 그리고 40대 중반이리라 싶은 남성이었다. 형제라는 것을 증명하듯, 모두 어머니를 닮아 인상 좋은 얼굴에 작지만 단단한 체격을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들을 올려다보고 지긋이 웃었다.

“선옥이까지 왔냐. 그 먼데서. 애들은 어쩌고?”

“애들이 대학생인데 무슨 걱정이야. 준성이 차로 편하게 왔어. 어디 가고 싶으면 말을 하지. 우리가 차로 모셔오면 되잖아.”

타박하는 딸의 목소리에 걱정과 안도가 섞여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 사람을 하나씩 돌아보았다.

“셋이 다 왔구나.”

“퇴원 하셨단 말 듣고 누나랑 같이 바로 출발했죠. 도착하자마자 어머니가 어디로 사라지셨다잖아요. 나 진짜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어요.”

“그래도 어머니 덕분에 삼남매가 다 모였네. 어머니 걸으실 수 있겠어요? 제가 업을까요?”

아마도 그들 중 맏일, 물레를 가져왔던 손님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힘없이 손사래를 쳤다.

“내가, 이 자리 뜨기 전에 할 말이 있어.”

목소리도 손짓만큼이나 힘이 없었다. 삼남매가 서로와 어머니를 번갈아 보았다. 그들이 입을 다물자 작업장 안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숨 쉬는 것이 신경 쓰일 정도로 무서운 침묵 속에서 맏아들이 조심히 물었다.

“어머니, 무슨…”

“열다섯에…”

속삭이는 것 같이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맏아들이 멈칫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는 한 마디를 꺼내놓고 긴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뱉으며 말을 이었다.

“열다섯에, 시집을 갔어. 중신을 선 할매 말이 가세는 기울었어도 남자가 성실하니 고생은 안 시킬 거라고. 첫 달거리 한 해에 댕기머리 풀어 쪽을 찌고, 뭣도 모르고 시키는 대로만 살다보니 아들 하나 딸 하나 애가 둘인데 그만 덜컥 서방이 죽었네. 그때가 열아홉인데.”

할머니의 말을 듣고 있던 삼남매가 동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모르는 이야기인 눈치다.

“애티도 안 벗은 것이 갓난쟁이 둘을 데리고 과부노릇을 하고 있으려니 시부모가 보기 딱했는지, 애들은 놔두고 재가를 하라는 거야. 내가 어렸어도 에미라, 애들 두고는 못 간다고 울고불고 하는데 친정 아버지가 와서 나를 끌고 갔었다. 다음 해에 자식 없는 홀아비한테로 시집을 갔어.”

먼데를 보는 눈으로, 할머니는 먼 옛날을 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찌나 두고 온 애들이 보고 싶던지, 어느 날에는 시어머니 쌈짓돈을 훔쳐서 버스를 타고 옛날 시댁으로 찾아갔다. 싸리문 앞에서 시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남의 집으로 시집 간 년이 어디를 찾아왔느냐고 대빗자루를 들고 쫓아내는데 내가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애걸을 했지. 우리 애들 한 번만 보게 해주세요. 얼굴만 보게 해주세요. 그런데 집안에서 웬 조그만 애가 할머니를 부르면서 나오잖아. 내가, 내가 그 목소리를 듣고 그냥 담벼락 밑으로 숨어버렸다. 그렇게 보고 싶어서 미친년 모양 달려와서는.”

하나씩 짚어 되살린 옛날이 눈 속에 맺혀서 부풀어 올랐다.

“시어머니가 얼떨결에 나랑 같이 담 밑에 숨어 있다가, 애가 도로 들어가고 나서 고부간에 억장이 무너져 둘이서 얼굴을 파묻고 눈이 붓도록 울었어. 그리고는 이 악물고 돌아와서 소처럼 일만 하면서 살았다. 사람 마음 간사한 것이, 한해 두해 세월이 쌓이니 정도 쌓이고, 애 낳아서 키우다 보니 두고 온 것들 깜박깜박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이 나이가 되었다.”

쭈글쭈글 주름진 볼 위로 회한이 흘렀다.

“내가…이 나이가 되었다…”

스스로 말하고도 믿지 못하는 것처럼, 할머니는 마지막 말을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이 나이가 되었다. 이렇게 늙어서, 곧 떠날 나이가 되어버렸다. 댕기머리 대롱대롱 흔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한 세상이 훌쩍 지나 이 나이가 되었다. 이제 입을 다물어서 들릴 리 없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고즈넉이 들려왔다.

어머니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삼남매는 움직이는 것도 두려운 모양 꿈쩍 않고 있었다. 상상도 못한 말을 들었을 터였다. 무거운 침묵이 고였다.

“엄마…”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딸이었다.

“어쩜 나한테라도 말을 하시지. 딸 뒀다 뭐에 써요? 세상에, 우리 엄마. 평생 그걸 가슴 속에 묻고 혼자서…”

“누나 말 맞아요. 우리도 자식 키우는데 그런 걸 이해 못할까. 지금이라도 제가 알아볼게요. 조금만 수소문하면 금방 찾을 수 있어요.”

막내가 누나의 말에 맞장구쳤다. 맏아들을 보며 “그렇죠, 형?”하고 물었지만 그는 말을 못하고 어머니의 작은 어깨를 껴안았다. 가장 큰 형이 우는 꼴을 보이기는 싫어서인지 어머니의 등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만 끄덕였다.

“꼭 찾아서 모시고 올게요. 안 그래도 우리 나이에 삼남매는 단출하지. 남들은 다섯이야 여덟이야 하는데. 셋에서 둘이나 늘어서 다섯이 되니 얼마나 좋아요, 응? 우리 어머니 팔순잔치에는 식구들이 바글바글 하겠네.”

40대 중반, 고등학생 자녀가 하나쯤은 있을 나이의 남자가 그래도 막내라고 백발이 성성한 어머니 앞에서 애교를 섞어 너스레를 떤다. 누이가 옆에서 “그럼 그럼.”하고 장단을 맞췄다.

“밤이라 추우니까 어서 가요, 엄마. 집에 가서 하고 싶은 이야기 실컷 더 해요. 내가 우리 엄마 얘기 밤새 들어줄게.”

딸이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할머니의 볼에서 주름이 밀려났다. 입술을 크게 휘어서 웃으며, 할머니가 세 사람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내 새끼들.”

감출 수 없는 애정이 울컥울컥 올라와서, 할머니의 어깨가 움칫거렸다.

“기저귀 차고 손가락 빨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언제 이렇게 컸나. 내 새끼들. 서방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는 거 헛말이지. 헛말이고말고. 내가…”

볼 위에서 그늘 없는 행복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가 인제…한도 없고, 원도 없다.”

내가 인제, 편히 잘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한 게 할머니인지 물레도깨비인지 모르겠다. 웃는 낯으로 잠든 할머니 옆에서,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할머니를 봤는데 그게 환상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삼남매는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갔고 며칠 후에 나는 밖에서 놀다 돌아온 삽살개의 털에 벚꽃잎이 몇 장 붙은 것을 봤다. 꽃잎 쌓인 곳에서 실컷 뒹굴다 온 모양이었다.

그날 저녁 출입문 옆 창문에 기대,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바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마음을 달래던 나는 근처 사는 사람들의 두런두런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박사장도 알잖아. 서량 병원 옆에서 식당 하는 정사장. 그 집 어머니 상 당해서 조문 갔다가 이상한 걸 봤어.”

“뭘?”

“왜 그 돌아가신 양반 자식들 이름 적힌 팻말 말이야. 장례식장 입구에. 정사장 형제가 이남일녀거든. 그런 줄 알았는데 어제 갔더니 자식 이름이 다섯이 적혀 있더라고. 거기다 이상하게 다섯 명 다 성은 없고 이름만 적어 놨더라니까.”

“허어, 뭔 일인고?”

“모르지 뭐. 사연이 있겠지. 내가 그걸 물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고.”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두 사람의 목소리는 사라졌다.

마치 누군가, 궁금해 하고 있는 내게 소식을 전해주려고 일부러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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