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천 만물수리점-10화 (10/218)

가장 가까운 남(3)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눈앞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선반에 차곡차곡 쌓였던 모든 물건들이 뒤섞여 깔려 있다. 어찌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지 도깨비들도 미처 물건인체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다가 내가 들어가자 일제히 쳐다보았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쓰레기 하치장 같기도 한 그 안에서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아 창고 안은 고요했다.

적막 속에서 항아리 밑에 깔린 멍석 도깨비가 딸꾹 소리를 냈다. 딸꾹. 딸꾹. 멍석이 들썩거릴 때마다 그 위의 항아리가 끼릭끼릭 흔들렸다. 도깨비들이 서로를 마주보더니 슬슬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항아리가 뒤뚱뒤뚱 움직이고 멍석이 도르르 말려 벽에 기대고 낡은 책이 펄럭펄럭 날아 선반 위로 올라갔다. 올라간 다음에는 마치 창고에 진열된 평범한 물건인 체하며 새침하게 있었다. 그러고 나자 바닥에는 아마도 도깨비가 아닐 물건들만 너저분하게 남았다. 나는 그 사이로 아무것도 밟지 않게 조심하며 걸었다.

꼬맹이 혼령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어디론가 도망쳐버린 것 같다. 다행히 창고 전체가 그 모양은 아니었다. 출입문 앞의 딱 한군데만 폭탄 맞은 것처럼 변했을 뿐이다. 이 오사리잡놈 같으니라고. 다음에 눈에 띄면 넌 당장 자반고등어다. 묶어서 매달아놓을 테다.

그런데 귀신을 묶어놓을 수 있나?

“요란하군요. 고생 좀 하시겠습니다, 해명 도령.”

밖에서 슬쩍 들여다 본 백은호가 웃으며 말했다. 얄밉게 한 마디 하더니 그는 약속이 있다며 그대로 떠나버린다. 유하를 힐끗 보자 찻상을 치운다고 역시 가버렸다. 너절하게 어질어진 것들의 정리는 모두 내차지였다.

바람도 안통하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창고 안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 같은 잡동사니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동안, 도깨비들은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보거나 곁눈질로 나를 감시했다. 수십 쌍의 시선이 뒤통수와 등짝에 쏟아지는 것을 느끼며 남이 만든 난장판을 혼자서 끙끙 정리하는 사람의 기분 같은 거 요괴인 너희들이 알 리가 없겠지. 짜증난다.

술병 두 개와 유리잔이 깨지고 도자기 인형 하나에 금이 갔을 뿐 다른 물건들은 멀쩡했다. 깨끗이 치우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창고를 나오자 유하가 문 앞에 있다가 붉은 빛이 도는 차가운 음료를 내밀었다. 꿀을 넣은 오미자차다. 음료수 한 잔으로 기분이 풀려버리는 것을 보면 나는 성격이 좋은 게 분명했다.

“혹시 말이야. 혼령이 못 움직이게 잡거나 묶어두는 방법 알아?”

나와 오래 지낸 그녀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물었다. 유하는 빈 유리컵을 가지고 위층으로 올라가다 말고 다시 돌아왔다. 쟁반을 선반에 내려놓은 다음 내 앞으로 온 그녀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앉았다. 무슨 일인지 몰라 멍하니 보고 있자 허리를 조금 숙이더니 내 발목을 붙잡았다.

유하의 돌연한 행동에 뒤로 물러나려는 몸을 간신히 억제했다. 겁먹은 건 아니다. 하지만 말도 없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놀라는 수밖에 없다. 그녀가 바지의 끝단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을 때는 아찔해서 저도 모르게 몸이 움찔거렸으나, 그 순간은 짧았다. 손가락이 발목을 쓱 만지며 지나간다 싶은 순간 뭔가 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늘고 가볍고 긴 어떤 것. 발목에서 떨어진 유하의 손에 그것이 들려 있었다. 붉은 실이다.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를 침대에 묶어두었던 정체불명의 고강도 붉은 실. 자르는 방법을 몰라 일주일째 감고 다닌 그것을 아주 쉽게 풀어버린 것이다. 분명히 매듭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는데?

유하는 내 양쪽 발목에 이어 손목의 실까지 모두 푼 다음, 왼손 손가락 네 개를 쭉 펴서 거기에 그것을 둘둘 감았다. 그때 신기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분명 두 손과 두 발에서 풀어낸 네 개의 실이었다. 그것을 묶어서 잇지도 않았는데 마치 저절로 붙어버린 것처럼 긴 하나의 실이 되어서 그녀의 손에 감긴다.

신기한 일은 하나 더 있었다. 풀어낸 붉은 실은 하나당 기껏해야 1m정도. 네 개를 다 합해도 4m가 고작일 터다. 여자의 손이라 한 바퀴마다 15cm쯤은 감길 테니 30바퀴도 되기 전에 끝이 나야 했다. 그러나 내가 보는 앞에서 붉은 실은 점점 큰 타래를 만들며 50번 넘게 감기고 있었다.

마술을 보는 것 같다.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멍하니 지켜보는 가운데 유하는 두툼한 실타래를 만들어서 내게 내밀었다.

“이걸로 잡아둘 수 있을 거예요. 묶은 사람만 풀 수 있는 실이니.”

고리모양으로 말린 실타래를 받아들며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방금 한 말은, 나를 묶어둔 사람이 그녀였다는 거잖아.

처음 깨어난 날 한 시간 가까이 별 걸 다 물었지만 질문은 아직도 많았다. 아니, 일주일동안 새롭게 생긴 의문들이 많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의문과 함께 새로운 정보도 확실히 쌓이고 있었다.

지금 왜 나를 묶어둔 거냐고 물으면,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단순한 대답을 듣게 된다.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가만, 그럼 나를 묶어놓았던 사람이 너라는 거야? 왜?”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내가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며 묻자

“잠결에 떨어질까 봐서요. 아침마다 유리장식이 깨지니까 그 위에 떨어지면 위험하잖아요.”

유하는 역시 눈 하나 깜짝 않고 대답했다. 그럼 유리장식을 딴 데 두면 되잖아. 하지만 그렇게 물어봐야…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 못했네요.”

이걸로 끝이었다. 생각 못했다는데 더 물을 말이 없었다.

아직까지 거짓말을 하거나 거짓말이리라 의심할 증거가 분명 없다. 물으면 납득이 가는 대답을 해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녀가 선택해 내미는 정보만 들을 수 있는 셈이었다.

그래서 의문이 생겨도 묻지 않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철벽같은 여자라도 언젠가는 빈틈을 보일 터다.

그녀가 준 실을 가지고 나는 창고 문의 안쪽에 간단한 트랩을 짰다. 트랩이라고 해봐야 실로 올가미처럼 매듭을 만든 다음 올가미의 동그란 부분을 테이프로 살짝 문에 붙여두는 정도다. 올가미의 위치는 혼령 꼬맹이의 목 부분.

녀석이 아까 그랬던 것처럼 문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창고 안을 정찰하려고 하면 그 순간 올가미를 당길 셈이었다. 단순한가?

하지만 동물은 원래 단순하다. 대부분 같은 시각에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길을 다니고 같은 것을 원한다. 그래서 덫에 걸리는 거고 그래서 사기에 당하는 거지.

나는 문에서 멀리 떨어진 다음 벽에 바짝 붙어 올가미의 끝 부분을 잡고 있었다. 옆에 큰 항아리와 멍석을 세워 은폐도 제대로 했다. 멍석과 항아리 사이로 문을 감시하며 꼬맹이가 머리를 내밀기만 기다렸다. 혼령이니까 목에 올가미가 걸린다고 해서 숨이 막히거나 하지는 않겠지? 어서 와라, 꼬맹아.

그리고 문을 노려본지 10분 만에 잠들어버렸다.

핑계가 아니고, 아무런 변화도 움직임도 없는 곳을 멍하니 보고 있는 일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데. 한 번 벽보고 5분만 있어 보든가.

어쨌든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들어서였다. 아침마다 유리장식 깨지는 소리를 알람으로 들었던 나다. 소리를 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내 옆의 선반에서 온갖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광경을 보았다.

내가 한 시간 동안 정리한 걸!

억울한 것도 잠시, 쏟아지는 물건들 한복판에 서 있는 혼령 꼬맹이의 모습이 보였다. 현행범이다, 이 자식! 꼬맹이를 잡기 위해 나는 미로 같은 선반 사이를 달렸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르고 녀석은 선반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위에 있는 뭔가를 잡고 싶은 것처럼. 잡고 싶은데 손이 닿지 않아 발을 구르는 것처럼 두 팔을 쭉 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꼬맹이가 보고 있는 것은 커다란 촛대였다. 벽에 고정하려고 만들어진 황동 촛대다. 가지가 세 개에 크리스탈로 조가비 모양 장식을 한, 이 창고 안의 잡동사니들 중에서 그나마 봐줄만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저게 떨어지면 황동 부분은 좀 휘어지고 말더라도 유리쪽은 확실히 깨져버릴 터다.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꼬맹이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주변의 다른 물건들은 이미 모두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촛대 역시 몇 번이나 들썩였지만 가지 부분이 선반 기둥에 걸려서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렸다.

“떨어져. 떨어져. 떨어…”

“그만 못해? 임마?”

내 손이 녀석의 팔을 낚아챘다. 혼령이라 공기처럼 통과해버리는 게 아닐까 잠깐 걱정했지만 뜻밖에 그 팔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이 내 손아귀에 잡혔다. 오싹하게 차갑다는 것만 다를 뿐이다.

“심술도 정도껏 부려. 어리다고 봐주…”

꼬맹이를 끌어당기던 나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기껏해야 내 가슴까지밖에 닿지 않는 작은 키였지만 시선이 선반 위를 향하고 있어서 그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뭐랄까. 집중하고 있는 건가? 아니, 그 이상이다. 간절하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내게 팔이 잡힌 것도 아랑곳 않고 녀석은 촛대를 향해 소리쳤다.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떨어져!”

녀석이 한 번 소리칠 때마다 촛대가 미친듯이 요동했다. 철제 선반의 위아래를 우그러뜨리며 날뛰더니 뚝 소리를 내며 기둥에 걸려있던 가지가 부러졌다. 동시에 황동의 커다란 몸체가 바닥을 향해 내리꽂혔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유리 장식이 깨져 흩어지고 우아한 모양으로 휘어져 있던 가지가 구겨지듯 꺾였지만 거기에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촛대가 떨어지는 순간 안심한 것 같은 꼬맹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강아지를 건져놓고 기뻐하는 아이 같았다. 떨어지라고 소리칠 때의 절박하게 일그러졌던 얼굴이 눈처럼 녹아서 풀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것. 눈 녹은 물처럼 축축한 감정을 어쩐지 나는 함께 느껴버렸다.

멍하니 서 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녀석이 사라진 후였다.

아, 잡았어야 하는데.

나는 다시 난장판이 된 주변을 돌아보고 한숨을 쉬었다. 등 뒤에서 도깨비들이 눈을 깜박거리며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한숨이 한 번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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