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하우스(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유하는 말없이 계단을 돌아 올라갔다.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예상이 맞는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째서 백은호가 수리와 관련 없는 일로 사람을 보냈는지, 왜 유하가 그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지.
두 사람 사이에 내가 모르는 신경전이 오가고 있음을 확실히 눈치 챈 건 지난 번 공주에 다녀와서였다. 유하는 새벽에야 돌아온 우리를 건물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문을 열어주고 방에 따뜻한 음료를 준비해뒀다고 말할 때까지도 그녀가 걱정하고 있었구나 생각했다.
공주로 갈 때 별 생각 없이 그녀에게 말도 않고 떠났던 것이다.
백은호는 나를 내려주고 곧장 갈 생각이었지만 차문을 열어준 유하가 그것을 닫지 않고 서있었기 때문에 출발하지 못했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서 두 사람이 나직이 대화하는 것을 들었다.
남의 대화를 엿듣는 것이 실례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우선 닫힌 출입문과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이 신기했다. 다음으로 그 목소리에 실린, 전에 본 적 없는 날선 긴장이 마치 벨 것처럼 느껴져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바깥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우자 마치 문에 귀를 대고 엿듣는 것처럼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입니다. 하찮은 것에 근심이 많으시군요.”
정중한 말투인데도 어딘지 얕잡아보는 듯한 어조는 백은호.
“내가 우려하는 건 당신의 무모함이지 하찮다고 말하는 그것들이 아니에요.”
조용하지만 또박또박 눌러 말하는 쪽은 유하다.
“무모하다는 말씀이군요. 놀랍게도. 다름 아닌 당신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짧은 단어를 말했다.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 말이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몰라도 유하를 화나게 만든 것이 분명했다.
“감히!”
라고, 으르렁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나직이 외친 것이다.
기묘했다. 목소리라고 하기에는 귀가 아닌 다른 부분을 진동하는 울림이 있었다. 피부를 뚫고 들어와 내장을 한바탕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계단 난간을 이루는 철제 파이프가 우웅 소리를 내며 떨었다. 보이지 않는 울림에 방어하려는 것처럼 몸이 확 굳었다. 동시에 파이프의 울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마치 튕겨서 떠는 기타의 현을 손으로 꽉 누른 것 같았다.
바깥이 함께 조용해졌다.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 조용했다가 차문이 탁 하고 닫히는 소리에 이어 차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하가 돌아오기 전에 서둘러 2층으로 갔지만 두 사람은 분명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생각한다.
유하도 나도 그 대화에 대해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생긴 의문은 물론, 공주에서 있었던 일도, 그 때문에 생긴 나 자신에 대한 의문도 그녀에게는 입을 다물었다. 나에 대해서나 그녀에 대해서나 정보가 더 필요했다. 뭐 하나라도 정확한 정보가 없다면 대화를 주도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번 일은 내게 있어서 좋은 기회인지도 몰랐다.
백은호와 대화할 때 그녀가 내보인 반응은 전에 없이 격렬했다. 내가 말없이 백은호와 함께 외출한 것이 그녀를 흔들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유하가 자기도 모르게 감춰야 할 것을 드러냈다면 같은 일을 한 번 더 시도해봄직 했다.
백은호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다. 스스로 요괴라고 시인한 그다. 의외로 간단히 말해버렸다. 유하보다는 그쪽을 공략하는 편이 나은지도 몰랐다.
그러나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역시 나 자신이다. 인간인지 아닌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도무지 아는 것이 없었다. 좀 더 나 자신을 몰아붙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했다. 여우 소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안전장치로 백은호를 데려간다면. 애초에 이 미끼를 던진 것도 그 자이니까.
마음을 정했을 때 내 눈에 띈 것이 있었다. 찾아온 여자가 보여줬던 황금색 명함이다. 의자위에 있었다. 유하가 도로 그녀에게 준 것을 봤는데 두고 간 모양이었다. 명함을 집어 들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화감이 있었다. 얇고 가볍고 매끄럽다. 당연한데 어딘지 이상했다. 직사각형의 빳빳한 종이인데 왠지 보기보다 두껍고 울퉁불퉁한 느낌.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까. 명함을 앞뒤로 뒤집어보며 고심하는데 발밑에서 졸랑졸랑 움직이는 것이 있었다. 삽살개다. 내가 키우는 것 같기는 한데 좀처럼 집에 붙어있지 않고 어디론가 싸돌아다니는 녀석이 모처럼 와서 내 발밑을 빙빙 돌고 있었다.
“밥은 유하한테 달라고 해.”
머리가 복잡한 나는 발끝으로 녀석을 툭 건드리며 말했다. 삽살개는 가지 않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혀를 빼물고 할딱거리는 녀석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먹을래! 먹을래!”
녀석이 말했다. 유하한테 가라니까.
“먹을래! 내가 먹을래!”
녀석은 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말을 할 줄 알면 말귀도 좀 알아먹어라.
“그러니까 유하에게 밥 달라고 하란…”
“나 먹을래!”
외치는 것과 함께 삽살개가 펑 하고 소년으로 변했다. 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팔을 확 뻗어 내 손에 있던 명함을 낚아채려고 했다.
“야!”
손을 피해 뺏기는 것을 막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녀석은 단념하지 않고 계속 명함을 향해 달려들었다.
“먹을래! 먹을래! 내가 먹을래!”
뭐 이런 바보 강아지가 있어! 아니, 지금은 사람인가. 인간으로 변하자 훨씬 커진데다 팔을 뻗고 팔짝팔짝 뛰면서 내 손의 명함을 쫓아다니니 꽤 성가셨다.
“이봐, 멍멍아. 이건 종이잖아. 맛없어. 먹으면 탈나고. 배고프면 유하한테 가란 말이다!”
“내가 먹을래! 내가 먹을래!”
말이 안 통하는 강아지다. 한 손으로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 번쩍 들자 20kg가까운 무게로 보이는 소년의 몸이 가볍게 들렸다. 내 힘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처럼 보이지만 본래는 강아지, 무게도 강아지의 무게였다.
‘어, 그런 거라면 혹시…’
나는 명함을 새삼 쳐다보았다. 처음 집었을 때 느꼈던 위화감은 혹시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손으로 만졌을 때 보기와 다른 느낌을 받았다면 이것은 원래 명함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일지도 몰랐다. 삽살개가 소년으로 보여도 들었을 때 무게는 강아지 그대로인 것처럼.
방금 깨달은 것에 잠시 몰두해서 방심한 사이였다. 내 손에 뒷덜미를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녀석이 갑자기 팔을 확 뻗었다. 그리고 앗 하는 사이에 명함을 낚아채서 제 입에 낼름 집어넣어 버렸다.
“야! 임마!”
아직 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명함 끄트머리를 잡고 확 당기자 녀석의 침으로 범벅이 된 네모난 것이 쏙 빠져나왔다. 그런데 모양이 좀 달랐다. 아니, 많이 달랐다.
“뭐야, 이건…”
크기는 비슷했다. 직사각형인 것도, 얇고 가벼운 것도 같았다. 다만 그것은 종이가 아니라 나무였고 그 위에 에메랄드 하우스라고 적힌 글자 역시 녹색이 아니라 하얀색의 반질반질한 어떤 것을 모자이크 한 것이었다.
‘뭐지? 조개껍질인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것은 조개껍질이 아니다.
성분을 따지자면 케라틴과 약간의 칼슘 정도겠지만 이렇게 조각조각 잘려있는 경우에는 버리는 용도 외에 쓸 데가 없다. 버리더라도 아무데나 버릴 것이 아니라 태워서 없애라고 옛날 사람들은 말하고 있었다. 만일 쥐가 주워 먹기라도 하면 사람으로 변한다는 터무니없는 협박을 덧붙여서 말이다.
‘손톱이라니.’
손톱을 잘게 잘라 모자이크해서 글자를 만들다니 이게 무슨 악취미인가 싶다. 유하는 이것을 여우 소굴로 들어가는 통행증이라고 했지만 이런 게 여우의 취향이란 건가. 어딘지 오싹했다.
어쨌든 백은호에게 연락해야 했다. 거절하지는 않겠지? 계속 거래해야 할 사이고 알고 지낸지도 14년이나 되었다니 여우 소굴에 같이 들어가자는 정도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까. 이 기회에 백은호의 정체도 확인하고.
생각하며 전화기가 있는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 옮겼다고 생각했다. 분명 내 발은 한 걸음 한걸음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곧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와야 하는데 어째서 계단은 없고 마냥 평평한 흙바닥인 걸까.
‘작업장이 흙바닥이었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분명…
“해명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자 유하가 허공에서 뛰어내려오고 있었다. 아니, 허공은 아니고 계단이 있는 것 같은데 어쩐지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계단뿐만 아니라 유하의 모습도 약간 투명해져서 등 뒤의 파란 하늘과 녹색 나뭇잎이 얼룩덜룩 피부 위로 드러나는가 싶더니 그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이윽고 그녀는 완전히 사라졌다.
“어……·.”
사라져버렸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울창한 숲 뒤로.
그녀뿐 아니라 작업장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리석 깔린 바닥은 풀이 드문드문 난 흙바닥으로 변했다. 선반들 대신 커다란 나무들, 전등이 붙은 천장 대신 태양이 떠 있는 파란 하늘. 어두컴컴한 작업장은 화창한 봄날의 숲속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무슨…”
환각인가 싶었지만 손으로 만져본 나무는 그 질감도 무게도 현실과 다름이 없었다. 풀도 흙도 속임수가 아니다. 나는 명백히 작업장에서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다른 장소로 옮겨져 있었다.
설마 들어와 버린 거야? 여우의 소굴로? 이렇게 간단히?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다. 백은호 없이 혼자서 여기에 와버린 게 진짜 문제였다. 구미호가 있다는 이곳으로. 아무도 없이 아무 준비도 없이 혼자서 달랑.
그나마 다행이라면 햇빛 아래에 서 있는데도 공포나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 정도일까.
“하하…”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가 울상으로 바뀌었다.
이제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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