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딸(2)
어서 오세요. 만물수리점입니다.
일단 물건은 받아 놓았다만….
이것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는 당최 모르겠다. 취학 이전의 어린 여자아이들이나 좋아할 것 같은 장난감을 도마뱀이 가지고 있는 이유도 모르겠고.
다음날 아침 유하에게 그것을 내놓고 고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유하는 내 손에 들린 요술봉을 힐끗 본 다음 “아뇨.”라는 두 음절로 나를 절망시켰다.
“못 한다는 건 기술적인 문제야? 아니면 역할의 문제야?”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어 보려고 다시 묻자 이번에도 간단하게 “후자요.”라고 대답하고는 청소를 해야 한다며 가버렸다.
후자라….
내가 맡아야 할 물건이라는 거네. 그러니까 평범한 장난감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야 도마뱀이 쓰던 거니까 평범할 리는 없겠지. 그렇다고 정말로 무슨 마법의 소녀나 달에서 온 공주가 쓰던 물건일 리는 없고.
요술봉을 들고 이리저리 휙휙 돌려봐도 도무지 특별한 구석은 발견할 수 없었다. 평범한 플라스틱이다. 도깨비나 혼령, 나무들에게서 느꼈던 기운 같은 것도 없다. 아니…아닌가?
없다고 하기에 좀 걸리는 데가 있기는 했다. 미묘한 차이지만 어젯밤에 비해 무게가 가벼웠다. 착각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근소한 차이기는 했다. 아니, 어쩌면 그 차이가 무게와는 조금 다른 걸지도 모른다.
차이가 있다고만 느낄 뿐 그게 뭔지는 모르는 채로 끙끙거릴 뿐이었다. 결국 핑크빛 요술봉만 노려보며 오전을 보내고 말았다.
자정까지는 12시간 정도. 곤란하다.
신경이 쓰여 점심도 먹는둥 마는둥, 식탁에 밥풀만 떨어뜨리다 나와 안절부절 시계를 보면서 오후가 반쯤 지나갔다.
바깥에서는 아이들의 소리가 재갈재갈 들려왔다. 하교시간이다. 수리점 앞 도로로 지나가는 아이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아파트 단지나 큰길 쪽으로 가니까 시끄러운 것은 상대적으로 덜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쩐지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지나갈 줄 알았지만 뜻밖에 발소리는 수리점 출입문을 향해 몰려왔다. 그리고 문이 벌컥 열린다. 햇빛과 함께 “계세요?”하고 묻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이들이었다. 햇빛을 피해 재빨리 구석으로 숨었지만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 중 두 명은 나를 찾아내고 “안녕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인사했다.
인사성도 밝네.
유치원생과 거의 구분이 안가는 걸 보면 1학년쯤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남녀가 섞여 다섯 명인데 어두컴컴하고 황량한 작업장 분위기에도 위축되지 않고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들어오라는 뜻으로 전등을 켜주자 안을 두리번거리며 우르르 몰려왔다. 가장 앞의 아이가 내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거 고쳐줄 수 있어요?”
그것은 플라스틱 사육통이었다. 곤충이나 햄스터 같은 걸 키울 수 있게 만들어진 네모난 통인데 파란색 뚜껑에는 환기를 위한 창살과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어디가 고장 난 건가 살펴보니 뚜껑이 통에 고정되도록 거는 부분이 한쪽만 멀쩡하고 다른 쪽은 빠져 있다.
플라스틱 부품 하나가 통째로 없는 거니까 보통의 경우라면 버리고 새 것을 사겠지만 아이들 용돈으로 해결하기에는 새 사육통의 가격이 만만찮을지도 모른다. 유하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폰으로 유하를 불러내자 그녀는 통을 힐끗 내려다보더니 공구 상자를 가져와 뭔가 달그락 달그락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작업 선반 주위로 동그랗게 모여 서서 그 모양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여기에 뭘 키울 거야?”
지켜보기 무료해서 물으니 아이들이 한 목소리로 “도마뱀이요.”라고 대답했다.
“애완용 도마뱀?”
이렇게 크고 못생긴 거? 양손을 벌려 길이를 대중하며 묻자 아이들이 고개를 저었다.
“요마안해요. 귀여워요.”
라는 건 여자아이들의 대답이고
“쪼그매요. 제가 파리도 잡아줬어요.”
“근데 안 먹어요.”
이건 남자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손대중으로 보여주는 크기는 10cm 정도였다.
“그렇게 작은 거면 야생 도마뱀 아니야?”
내가 다시 물었다.
“제가 잡았어요!”
“나도 같이 잡았잖아.”
“일경이랑 도원이가 밟으려고 해서요, 제가 못하게 했어요.”
“선생님이 버리라고 했는데요, 불쌍해서 제가 우리 집에 있던 햄스터집을 가져왔어요.”
“근데 도망쳤어요. 이거 고치고 잡으러 가야지.”
관심을 보여줘서 흥이 나는지 아이들이 서로 다퉈가며 대답했다.
그런데 멀쩡히 잘 사는 도마뱀을 일부러 잡아서 니들이 잘 키워주겠다는 거냐.
“도마뱀 힘 완전 세요. 이거 도마뱀이 부쉈어요.”
안경 쓴 남자애가 사육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10cm짜리 도마뱀이 무슨 힘으로 플라스틱 걸이를 부수겠어. 원래부터 시원찮았겠지. 그렇게 말했더니 아이들이 고개를 홱홱 저었다.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도마뱀이 원래 힘이 세대요.”
“곤충도 사람보다 훨씬 힘이 세대요.”
“개미도 사람만하면 차도 막 들어서 던진다고 했어요.”
곤충 이야기는 맞는데 도마뱀이…
“이 사육통, 혹시 학교에 뒀었니?”
문득 생각이 떠올라서 묻자 아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실에 놔두고 갔는데 도마뱀이 부수고 탈출했어요.”
“파리도 안 먹고.”
파리를 잡아줬다는 남자아이가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아아, 그렇구나. 며칠 전 심심풀이 족자가 있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뭐 들었다기보다는 그림으로 본 내용이지만.
학교에 놀러갔던 도마뱀이 잡힐 뻔했다는 건 이 이야기 같은데. 그런데 그때는 얼핏 보고 지나갔지만 도마뱀이 갇혀 있던 통은 확실히 멀쩡했거든. 멀쩡한 통을 이렇게 부술 수 있다면 도마뱀은 아니다. 그러자 범인이 분명해져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다 됐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유하는 없어진 플라스틱 대신 파란색 외피의 전선을 이용해 새로운 걸이를 만들었다. 뚜껑과 비슷한 색이라 얼핏 눈에 띄지 않아서 아이들은 만족한 얼굴로 사육통을 돌려받았다.
“수리비는 5만원.”
내가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유하가 진심인지 궁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놀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일제히 항의했다.
“뭐가 그렇게 비싸요?”
“새로 사도 그보다는 싸겠다.”
“몇 개는 사겠네.”
계산이 빠르네. 똘똘하다.
“내 친구를 잡아갈 거라니까 비싸게 받는 거야. 내가 도마뱀 친구인 거 몰랐구나?”
“에이~ 거짓말!”
“말도 안 돼!”
거짓말이 너무 쉽게 들통 나니까 재미없네. 초등학생 1학년에게 이 정도는 안 통하나?
“어쨌든 5만원. 내가 사장이니까 내 맘이거든.”
유치하게 우기면서 다시 손을 내밀자 아이들이 난처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돈 없는데. 엄마한테 가서 이를까? 아빠한테 전화할까? 이런 표정인 것 같다. 아~귀여운 것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유하를 쳐다보았다.
“돈 없는 모양인데. 할 수 없네. 고친 거 다시 원상복구 해놔.”
유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며 공구를 잡았다.
“내 친구 안 잡아가면 돈 안 받을게.”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에게 슬쩍 말했다.
“어떤 도마뱀이 아저씨 친구인데요?”
안경 쓴 녀석이 물어본다. 내 친구 말고 다른 도마뱀을 잡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등에 줄무늬가 세로로 길게 있으면 내 친구야.”
사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은 다 그렇게 생겼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시선을 교환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다? 내 친구 힘 센 거 알지? 잘못하면 물린다?”
착한 어른은 어린이에게 거짓말 하면 안 돼요. 그런데 난 좀 덜 착하니까.
아이들이 사육통을 가지고 우르르 몰려 나가자 나는 낄낄 웃었다. 애들이 귀엽게 보이는 건 나이 먹고 있다는 증거라던데. 체신없이 웃는 나를 보고 유하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도마뱀을 잡으면 안 된다고 설명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공구들을 정리하며 그녀가 문득 물었다. 그거야 옳은 말이지.
“귀엽잖아. 녀석들도 딱히 도마뱀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건 아니고. 뭐…생명의 무게라든가 이기적인 애정이라든가, 그런 건 지금 설명해준다고 이해하지도 못할 것 같고.”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알아요.”
유하가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에 이끌려 그녀를 돌아보았다. 뒷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공구상자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돌아서자 보통 때와 다름없이 담담한 얼굴이 보였다.
“그보다 어제 받은 물건의 수리는, 진전이 있나요?”
말을 돌릴 생각인지 정말 궁금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물었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잠깐 잊었는데 내가 맡은 물건의 수리를 못하고 있었지.
“조금 기분전환을 하면 뭔가 생각나지 않을까요. 대금을 불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하셨어요.”
그건 사실이다. 요즘에는 창고 대신 작업장에 두고 있는 대금을 잡자 녀석이 손안에서 기분 좋은 듯 꿈틀거렸다. 대금 도깨비는 도깨비 연회에서 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연주할 때면 가장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창고로 가지 않고 작업장에 눌러앉아 있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취구에 아랫입술을 살짝 닿게 하고 숨을 불어넣자, 대나무 몸통 안으로 빨려들듯 흐르는 숨을 따라 부드러운 저음이 울렸다. 춘야연을 몇 음 낮추어 느리게 연주했을 뿐이지만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평소보다 훨씬 길게 연주하는 동안 창고의 도깨비들이 하나둘 나와서 주변에 몰려들었다. 늘 같은 곡인데 똑같이 좋아해주는 건 고맙지만 연주할 때마다 관중이 생기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다. 도깨비는 별로 영리한 편이 아니라던데, 어쩌면 내 연주를 항상 잊어버려서 들을 때마다 새로운 걸지도 모른다.
연주가 끝나자 도깨비들이 왁자하게 떠들며 한곡 더 하라고 부추겼다. ‘한곡 더’라고 해봐야 춘야연이지만.
내가 다시 대금을 잡고 숨을 고르는 동안 작업 선반 위에 앉아있던 도깨비들이 꿈틀꿈틀 한쪽으로 몰려갔다. 요술봉 주위에 동그랗게 모이고 있는 것이다.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 얼굴이었다. 요술봉과 도깨비들을 서로 번갈아보며 소곤소곤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감이야, 영감. 누가 이런 걸 만들어?”
“비린내가 나는데 무슨. 용신일 걸.”
“아냐. 아냐. 산도깨비 냄새가 나.”
“부채에게 무슨 코가 있다고. 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구먼.”
“영감 취향이잖아.”
요술봉을 두고 오가는 이야기 같기는 했다. 저런 장난감이 영감 도깨비의 취향이라는 건 일단 둘째 치고, 도깨비들이 관심을 보일만한 물건이었다는 게 뜻밖이다. 쑥덕거리는 도깨비들 옆으로 가자 내가 언제 연주를 하나 지켜보던 녀석들이 와글와글 투덜거렸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내가 좀 급했다.
“너희들, 이 물건이 뭔지 알아?”
내 질문에 도깨비들이 눈을 껌벅껌벅, 부채는 팔락팔락 거렸다. 대답이 없다. 다만 말없이 창고 쪽을 보는데 눈치를 살피는 표정이었다.
“김서방에게는 말하면 안 돼.”
대빗자루 도깨비가 속삭이자 다른 도깨비들도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뭘 말하면 안 되는데?”
설마 이런 질문에 넘어갈까 싶었지만
“이 물건이 도깨비 조화라는 걸 말하면 안 돼.”
간단하게 넘어갔다. 도깨비가 똑똑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사실인 것 같다.
────────────────────────────────────
────────────────────────────────────